자유주의와 낭만주의 발제: 홉스의 자연상태

Intellectual History 2015. 9. 9. 00:45

수업 발제. 몇몇 지적받은 부분을 수정해서 올린다. 자연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는 너무 많기 때문에 이 글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은 수준의 정리라고는 할 수 있겠다.

*홉스를 전공한 지인의 코멘트에 따라 몇몇 역어 수정




홉스의 자연상태(the state of nature)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의 자연상태 개념에 관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무엇보다도 그 세속화된(secularized) 인간학에서부터 출발하고자 한다. 『리바이어던』(Leviathan)의 1부는 “인간”("Of Man")이며, 그 첫 장은 “감각”("Of Sense")이라는 데서 우리는 홉스의 논변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함을, 그리고 그 답변의 핵심에는 감각을 기초로 한 인간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7세기의 동시대인들, 대표적으로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와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77)와 마찬가지로 감각론적 인간학을 받아들인다.1) 이중 데카르트와 홉스는 인간이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객체로서의 세계를 우선적으로 감각기관에 의해 만들어진 감각자료를 통해 인지/수용하고, 이러한 감각자료를 토대로 이성(reason)의 계산에 기초해 판단/행위한다는 관점을 공유한다. 양자의 인간학은 기계적(mechanistic) 작동방식이라는 또 하나의 핵심적인 발상을 공유하는데, 이 발상의 요점은 감각 혹은 외부세계의 인지에서 인간의 판단 및 행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물리적 힘의 전달과 마찬가지로, 즉 톱니바퀴의 작동과 같이 ‘기계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데 있다.2) 이는 달리 말하자면 인간 외부의 변수와 내부의 상수를 적절하게 설정할 수 있다면 인간의 판단/행위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며, 나아가 이러한 행위의 축적으로 이루어진 인간 사회로부터 고유한 알고리즘을 포착할 수 있음을 뜻한다(물론 이것이 결정론적인 성격을 갖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최종적으로 홉스는, 슈미트(Carl Schmitt)가 적절하게 강조했듯3), 『리바이어던』의 서문("The Introduction")에서 사회가 그 자체로 인간=기계이며 그렇기에 학문이 단순히 그 작동방식의 이해를 넘어 보다 적절한 조작법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독자들이 13장의 “인류의 자연적 조건”("Of the Naturall Condition of Mankind")에 도달하기 전에 2장의 “상상력”("Of Imagination")부터 5장 “이성과 학문”("Of Reason, and Science"), 6장 “정념”("The Passions")을 거쳐 12장 “종교”("Of Religion")에 이르기까지 여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홉스 사유의 논리적 순서와 맞닿아 있다. 인간이라는 기계장치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부품들에 대한 설명을 마친 뒤에 비로소 홉스는 사회 혹은 공동체의 입장에서는 그 역시도 하나의 부품에 불과할 인간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혹은 기계론적 인과관계에 따라 주권 및 사회의 결성에 도달하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홉스의 자연상태는 원자론적인, 그러니까 그 고유의 작동원리를 가진 인간이 동일한 세계 내에 어떠한 사회조직을 갖추지 않은 복수의 개체들로서 존재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널리 알려져 있듯 이 상태는 “자연은 인간을 심신의 기능 모두 평등한 존재로 만들어놓았다”("Nature hath made men so equall, in the faculties of body, and mind" 1부 13장, 이하 숫자만 표기)는 조건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의 평등함 혹은 같음에 대한 강조는 세 가지 차원에서 전개된다. 하나, 인간의 역량은 개체별로 유의미한 차이를 갖지 않는, 한 마디로 고만고만한 수준이다. 둘째,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대개 같은 대상을 목표로 하지만, 자원은 희소성(scarcity)을 가지며 각자의 능력은 비슷하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경쟁적인 적대관계가 된다. 나는 보통 이 두 명제에 가려져 잘 언급되지 않는 세 번째 명제를 아울러 강조하고 싶은데, 이는 인간의 평등한 역량은 곧 인간 생명의 취약성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가장 약한 자도 능히 가장 강한 자를 죽일 수 있다”("the weakest has strength enough to kill the strongest")는 진술은 단순히 역량의 평등을 넘어 인간이 그 생명이 언제든 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취약함을, 나아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함축한다. 우리의 평등함은 굳건한 바위가 아닌 언제고 스러질 꽃과 같다.

희소한 자연 안에서 서로를 적대하지만 동시에 언제든 서로에게 살해당할 수 있는 상황은 자기보존을 위한 인간의 이성적 판단능력을 촉진시켜 계산과 대비("Anticipation")으로 이끈다. 인간은 다른 인간이 자신에게 얼마나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평가되는지를 끊임없이 계산한다. 동시에 자신의 안위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잠재적인 위협요소인 타인들을 자신의 의지 하에 복종시키고자 하는 경향이 일종의 전략적인 행위모델로서 출현한다("by force, or wiles, to master the persons of all men he can, so long, till he see no other power great enough to endanger him"). 홉스는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인간 간의 분쟁을 촉발시키는 세 가지 원리로 타인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려는 “경쟁”("Competition"),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불신”("Diffidence"), 타인의 인정(recognition)을 획득하려는 “영광”("Glory")을 꼽는다. 즉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인간의 합리적인 판단이 인간들을 역설적으로 서로에 대한 항구적인 투쟁으로, 영원히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로 이끈다. 직접적인 다툼의 유무와 무관하게 분쟁의 가능성이 항존하는 상태를 홉스는 “만인이 만인에 대한 적이 되는 전쟁 상황”("a time of Warre, where every man is Enemy to every man")이라 부른다. 이것이 바로 홉스가 말하는 자연상태의 본성이다. 자연상태가 인간들 간의 불안정성이 극대화되는 지점으로 묘사될 때 자연스럽게 불안정성을 최소로 낮추고 안정을 극대화하는 (이상적인) 상태가 대칭적인 위치에 출현한다. 전쟁상태가 “그 반대상황을 위한 보장이 존재하지 않는 모든 순간”("all the time there is no assurance to the contrary")이라면, 이를 제외한 “다른 모든 때는 평화상태이다”("All other time is PEACE"). 그렇다면 자연상태 혹은 전쟁상태를 극복하고 모두가 안전한 상태에, 평화에 도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홉스는 그 유일한 해법을 “모두가 두려워하는 공통의 권력”("a common Power to keep them all in awe")의 존재로부터 찾는다. 자연상태에서는 각자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로 인해 정의와 불의(Justice and Injustice)의 객관적인 설정 자체가 불가능했다면, 모두가 복종하는 절대적인 권력과 함께 (자연상태가 종식된 세계로서) “사회”("society")가 출현했을 때 비로소 정의와 불의 또한 성립한다.

개인들이 사회계약을 통해 주권자를 승인하고 그에 기초해 상호적대를 종식시킨 평화로운 사회에 도달하는 과정을 그리는 2부 “공동체”("Of Commonwealth")에 들어가기 전 홉스는 1부의 남은 부분에서 그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추가적인 개념들을 덧붙인다. 14장에서 16장까지의 대목에서 핵심은 “자연법”("Naturall Lawes")과 “계약”("Contracts")에 대한 설명이다. 즉 인간이 자기보존을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권리(right)=자유(liberty)를 갖는다면, 자연법은 이를 위해 이성의 작용을 통해 도출할 수 있는 (합리적인) 준칙들의 ‘객관적인’ 집합이며, 계약은 서로의 무제약적인 자유 혹은 권리행사를 제한하여 인간을 사회의 성립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는 행동양식으로 등장한다.4) 어떤 점에서 우리는 자연법을 “자연권”("The Right of Nature" 1.14)을 제한하면서 동시에 그것의 핵심원리인 자기보존을 보다 잘 실현하기 위해 제출된 공리로 이해할 수도 있다. 자연권이 자연상태에서 인간이 자기보존을 위해 무엇이든 실천할 수 있는 정당성을 의미한다면, 자연법은 그것을 보다 잘 실현하기 위한 합리적인 계산의 결과물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새로운 자연법칙으로 등장한다. 제1의 자연법은 “평화로운 상태를 구하고 이를 좇으라”("to seek Peace, and follow it)이며 이에 부속되어 “자연권의 총합으로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해 우리 자신을 보호하라”("the summe of the Right of Nature; which is, By all means we can, to defend our selves")는 격률이 제시된다. 자연법이 이성으로부터 등장한다면("A Law of Nature, (Lex Naturalis,) is a Precept, or generall Rule, found out by Reason"), 이성은 다시금 자연법이 부과하는 규범을 현실화하기 위한 동력으로 등장한다. 자연상태로부터 주권자와 공동체가 탄생하는 과정이 『리바이어던』 전반부의 주요 서사라고 한다면, 이성과 자연법은 양자를 매개하는 변증법적 운동과정의 주요 항이다. 이 운동과정에서 인간의 자기보존성향은 그 자체가 인간의 권리가 되며, 권리는 이성을 매개로 법(공리)으로 등장하고, 법은 계약을 통해 인간을 자연상태의 종식으로 이끌어 마침내 사회 속의 존재가 되도록 한다.5)

홉스의 자연상태 이론이 갖는 개성은 특히나 로크와 대비해 볼 때 보다 잘 드러난다. 로크는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 두 번째 권에서 자연상태를 이미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될 수 있는 상황으로 묘사한다. 로크의 이론에서 정부가 출현하는 계기는 자연상태에서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인데, 이미 자연상태에서 각자의 편익을 추구하는데 특별한 어려움이 없었던 인간이 무엇 때문에 정부의 성립에 도달해야 하는지 (특히나 홉스의 체계와 비교할 때)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은 널리 지적되어 왔다. 이때 로크의 자연상태가 그처럼 이미 만족스러운 상황일 수 있는 조건은 우리 모두가 신의 피조물이자 소유물(property)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공리로부터 비롯된다. 우리는 신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 노력해야 하며, 나아가 타인의 생명 또한 함께 보살펴야 한다. 이러한 전제는 풍부한 자원이라는 조건과 결합하면서 자연상태에서 인간이 타인을 적대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요컨대 로크의 자연상태론에서 신의 존재가 일종의 제1원인으로서 인간의 이성적 행위과정에 필요불가결한 논리적 장치로 등장한다면, 홉스의 자연상태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즉 인간이라는 원자의 작동방식을 결정하는 고유의 요소들이 있다면, 그로부터 복수의 인간들이 경합하는, 역시나 고유의 작동원리를 가진 자연상태가 도출되며, 여기서 나아가 그 자연상태가 극복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마치 외부의 원인과 무관하게 스스로의 동력과 구조를 갖고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장치를 바라보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6) 이 지점에서는 특히 인간학의 심급에서부터 자연상태 및 공동체의 심급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심급이 (상호 연계된) 자율적인 논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물론 『리바이어던』의 후반부에서 볼 수 있듯 홉스는 신을 세계의 지평 바깥으로 몰아내는 데 이르지는 않는다(적어도 그는 스피노자가 『신학정치논고』Tractatus Theologico-Politicus에서 보여주었던 도발적인 성경 해석방식을 채택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신의 통치가 임할 것이나 그 때가 지금은 아니며 오늘날은 주권자의 통치만이 유일하게 정당하다는 논변은 인간의 세계를 이해함에 있어 어떠한 외부적 요소의 개입 없이 그 자체로부터 작동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한반세기 뒤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는 자신의 우주론에 신의 역할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나폴레옹의 지적에 “제게는 그 가설이 필요 없었나이다”(Je n’avais pas besoin de cette hypothèse-là)라고 답한다. 우리는 자연상태에 대한 홉스의 이론이 마찬가지의 사고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을 잠재한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감각론적 인간학이 한 세대 뒤 뉴턴과 로크를 거쳐 어떻게 "감수성의 문화"("Culture of Sensibility")로 발전하는지는 G. J. 바커-벤필드(Barker-benfield)의 『감수성의 문화』(Culture of Sensibility) 1장을 참고.

2) 단, 데카르트적 심신이원론과 비교할 때 홉스의 인간학은 신체를 감각-판단의 유일한 장(field)으로 간주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3) 슈미트의 『토머스 홉스 국가이론에서의 리바이어던(The Leviathan in the State Theory of Thomas Hobbes) 참조.

4) 자연법 및 계약의 개념이 갖는 중요성은 『리바이어던』보다 대략 10년 전인 1642년 출간된 『시민론』(On the Citizen)에도 마찬가지로 강조되어 있다. 홉스는 후자에서 아예 “계약에 관한 자연법”("On the natural law of contracts" 1부 2장)과 “그 밖의 자연법”("On the other laws of nature" 1부 3장)을 구별하여 기술하며, 계약에 관한 항목을 제외한 자연법만 20개가 제시된다. 1651년의 『리바이어던』에서는 이 구별이 계약 및 총 19개의 자연법이라는 보다 정리된 체계로 바뀌어 서술된다. 『리바이어던』의 자연법 서술이 이성의 원칙 및 법논리학적인 성격을 강하게 보여준다면, 흥미롭게도 『시민론』에서 홉스는 자연법의 신성한("divine") 성격을 강조하며 1부 4장 “자연법은 신의 법”("That the natural law is the divine law")에서 볼 수 있듯 자신이 제시한 자연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성경 구절을 일일이 찾아 제시하면서 자연법의 정당성을 역설한다.

5) 『리바이어던』의 독자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주제 중 하나인 공포(fear)와 폭력의 문제가 자연법-이성(합리적 계산)과 맺는 관계는 아주 분명하지는 않다. 분명 공포는 이성으로 하여금 권리양도라는 계약을 이끌어내게 하는 기제로, 강력한 폭력은 계약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필수적인 수단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때 강력한 폭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출현하는가? 2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뤄지지만, 사회계약의 현실화하는 보증물로 이미 폭력이 존재한다고 하면, 그 폭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리는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상해볼 수는 있지만, 권리, 법, 이성과 같은 심급이 아닌 독자적인 심급으로서 폭력의 존재는 『리바이어던』의 논리를 그 기저에서부터 이원적인 것으로 만든다.

6) 우리는 여기에서 자연상태로부터 공동체로의 이행을 설명하는 홉스의 논변이 공시적인(synchronic) 성격을 띤다는 사실을 덧붙일 수 있다. 로크의 사회이론이 통시적(diachronic)이고 역사적인 성격을 띤다면, 다시 말해 원시와 같은 자연상태로부터 문명=정부의 성립이라는 진보적 서사를 바탕으로 한다면(루소는 역사적 단계론을 공유하되 그것이 더 나은 세계로의 발전이 아니라 타락한 세계로의 퇴행이라는 아우구스티누스적 시간관을 갖는다), 홉스의 경우 자연상태와 공동체는 주권자의 존재 유무에 따른 형식적인 구별일 뿐 로크와 같은 역사적 발달단계를 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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