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 도덕감정, 정치경제학에 대한 노트

Intellectual History 2015. 7. 3. 02:07

아담 스미스와 도덕감정에 대한 글에 긴 댓글을 단 김에 옮겨온다. 키워드는 감정-덕-도덕감정-공화주의-벤담-신고전파(19세기 후반 영국).


사실 이런 저런 논문을 보면서 머릿속에 정리했던 내용을 풀어놓은 거라, 스미스, 샤프츠베리, 흄, 벤담, 리카도 모두 (경우에 따라선 다시) 읽어야한다는 게 문제. 18세기 덕의 수사와 19세기 영국에서 개인과 사회 문제도 좀 더 제대로 공부해야 함.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면서 왜 덕과 감성이 다 private sphere로 끌려들어가 버렸는지는 해명이 필요한 주제--이것과 고전파->신고전파 문제도 같이 봐야 함. 소설의 가정소설/심리/미학화와 사회이론의 '과학화'가 유사한 시기를 공유한다는 것.


보통 스미스-맬서스-리카도-밀을 고전파로 묶지만 스미스와 맬서스 사이의 단절은 절대로 무시될 수 없고, 밀 이전에 한계효용론적 인간학 및 효용주의적/시장주의적 경제모델을 먼저 제시한 벤담이 있었다는 것도 체크. 실제로 고전파와 신고전파는 그렇게 쉽게 연대기적으로 구별되지 않음(스미스-벤담-제번스라는 흐름에서 보면 밀은 오히려 예외적인 반동?). 정치경제학의 역사보다는 사회이론의 역사와 인간학의 역사라는 틀이 오히려 잘 드러내주는 게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스미스-제번스로만 보는 것보다 몽테스키외-스미스 대 맬서스-벤담-제번스 이런 게 더 선명한 구도를 제공할지도. 전자에서 개인의 덕과 공공선은 분리될 수 없는 것, 후자에서는 개인의 덕이라는 인간학적 개념 자체가 더 이상 존립할 수 없음(리카도는 조금 독특한데, 19세기의 노동가치론 자체가 노동=근면으로서 덕의 개념과 아주 별개는 아니며 리카도도 그런 면이 없지는 않다).


1) 도덕moral/덕virtue과 감정의 관계는 17-18세기에 일관된 형태로 존재했다기보다는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마치 정치경제학적 사고에서 사치luxury 개념 혹은 로맨스에서 열정/정념passion 개념이 변하는 것처럼요. 뉴턴 및 로크와 함께 감각론적 인간학이 널리 퍼지면서 감각sense-감정sentiment이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소여라는 생각 또한 굳어지게 됩니다. 다만 감정의 위치는 처음에는 훨씬 부정적이었던 듯 해요. 17세기 후반까지도, 예컨대 로크의 <교육론>을 보면, (초기 근대에 재수용된) 스토아주의적 논리와 같이 감정이 인간을 제멋대로 흔들어 미덕으로부터 이탈하게 하고 이를 막기 위해 이성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볼 수 있습니다. 이성 및 기독교적 신앙이 인간을 구원하고 정념의 폭정은 인간을 망가트린다는 거죠.


2) 18세기 초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저자는 샤프츠베리고(저도 아직 원 텍스트를 읽진 못했습니다...공부할 게 많네요ㅠㅠ), 여기서부터 허치슨, 흄, 스미스에 이르는 도덕감정의 계보가 시작됩니다. 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요기를 참고하세요 

http://plato.stanford.edu/entries/emotions-17th18th/LD6Shaftesbury.html ; 3~6절이 도덕감정, 덕, 미학이랑 관련지어 읽기 좋습니다(단 여기선 샤프츠베리의 정치경제학적 주제에 대한 언급은 빠져있습니다).


3) 샤프츠베리에서 덕과 도덕감정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면, 이제 이성이 계산하는 힘 정도로만 밀려나고 감정이 덕의 주요한 원천으로 확실하게 등극하는 사고는 데이비드 흄의 것입니다(<인간 본성에 대한 논고>). 흄은, 루소도 마찬가지지만, 이성은 오로지 계산하는 역할만 할 뿐 인간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동력은 감정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이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도덕감정론자들에게 감정은 단순히 개인의 내적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흄이 처음으로 설명하는 pride 처럼 감정은 이미 시민사회적 삶의 산물입니다(이미 시민사회적 삶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에 18세기 중반부터는 홉스/로크적 사회계약론이 무의미해집니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을 들고 온 건 매우 예외적인 경우죠). 이건 스미스도 마찬가지고요. 요컨대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들에게 정념은 사회적 삶의 산물이자 공동체적 덕을 가능하는 매개입니다.


4) 공동체적 덕이라는 표현을 쓴 데서 눈치채셨겠지만, 스코틀랜드 학파를 포함한 17-18세기의 상당히 많은 논자들은 공화주의적 수사 위에서 사고합니다. 스미스를 경제학의 모델에 입각해서 개인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17세기부터의 사상사적 맥락에서 보면 그는 적어도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자는 확실히 아닙니다(적어도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겁니다...1980년대 이후 도덕철학이나 정치사상의 입장에서 스미스를 자유주의자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됐는데 아직 한국의 경제학사에서는 반영이 안 된 듯 합니다). <도덕감정론>이든 <국부론>이든 스미스의 목적은 국민공동체의 공공선을 창출하는 것이며, TMS에서 개인이 불편부당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를 통해 사회적 선에 도달하는 흐름도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 합니다; '사회'에 대한 스미스의 언급을 보면 저는 몽테스키외가 우선 떠오르네요. 스미스의 논리가 17세기 이후의 감각론적 개인에서 출발하는 건 맞지만, 이 개인이 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이는 개인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건 감안해야 합니다; 특히 감정의 논의에 초점을 두려면요.


5) 스미스에서 제번스까지 가려는 길을 사상사적으로 설명하려면 당연히 벤담이라는 항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실제로 제번스는 벤담을 자신의 인간학의 원 출처로 지목하죠). <도덕 및 입법의 원리에 대한 서설>에서 벤담은 도덕 감정 같은 건 다 가짜라는 매우 강력한 경험주의적--거의 속류적 실증주의에 가까운--진술을 펼칩니다. 공동체의 덕 같은 개념은 벤담에게서 완전히 사라지고 공공선은 개인의 쾌락/이익의 합산이 되어버립니다. 공리주의는 한편으로는 '계몽'이 가장 노골적인 형태로 드러나 공동체/선/덕/도덕과 같은 개념을 전부 (측정가능한) 효용utility이라는 단일한 개념으로 재구성하는 '합리화과정'이기도 하며(찰스 테일러), 다른 한편으로는 '덕의 공동체'를 표방한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동적 개혁론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공리주의가 도덕감정의 계보를 완전히 뒤틀고 고전파 경제학을 신고전파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고는 할 수 있겠습니다(벤담과 밀의 관계는 저도 공부를 더 해야 하는데, 지금 가진 인상은 밀이 벤담의 체계를 어떻게든 온건화/상식화 하려고 노력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절충주의'라는 맑스의 비판적 논평은 공리주의 모델에 있어서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 합니다).


6) 스미스가 죽은 1790년부터 제번스가 <정치경제학 원리>를 쓴 1871년까지 영국사회는 엄청나게 많이 변합니다. 공리주의자들이 법과 행정의 개혁에 나서고, 18세기에 인간과 사회를 설명하던 주요한 개념들--감성sensibility, 덕 등등--은 사회적 갈등이 폭발하고 개인의 선행과 국가의 제도개혁 간의 거리가 벌어지면서(이는 18세기의 공화주의적 사고와는 정 반대입니다) 가정과 같이 사적인 영역으로 후퇴합니다--저는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여튼 큰 정설은 그렇습니다. 맬서스와 벤담을 거친 후 한계효용론자들 이래의 경제학에 내포된 인간학--벤담에게서 유래하는, 가장 범속한 의미에서의 경제적 인간--이 스미스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는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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