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메닐&레비.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Reading 2015. 4. 25. 03:23

제라르 뒤메닐& 도미니크 레비.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김덕민 역. 그린비, 2009.


 뒤메닐&레비(Gérard Duménil et Dominique Lévy)의 <현대마르크스주의 경제학>_Économie marxiste du capitalisme_(2003, 국역은 2009) 국역을 읽었다. 그린비에서 나온 책치고 만듦새는 만족스런 편은 아니다. 중간에 비문도 있고 문장이 은근히 잘 안 읽힌다(같은 저자-역자지만 후마니타스에서  나온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이번에 샀는데 어떨지 두고 보자). 어차피 나는 경제학 전공자도 아니고, 수식이 나오는 모델링을 이해하는 훈련을 받은 적도 없을 뿐더러 애초에 그쪽을 이해하는데 그다지 흥미가 없다(같은 추상화라도 차라리 18세기 도덕철학자들의 심리학적 모델링을 이해하거나 아도르노의 텍스트 해석모델을 재구축하는 쪽이 더 재밌다). 그런 점에서 나는 확실히 경제학 텍스트에 그렇게 잘 맞는 독자는 아니다. 대조적으로 포괄적인 사회이론이나 (브레너 같은) 경제사 텍스트는 쉬어가는 셈치고 취미삼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아마 이 책이 그러한 요소를 담고 있지 않았다면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뒤메닐과 레비의 텍스트는 노동생산성/자본생산성과 이윤율을 설명하는 부분 정도를 제외하면 수식 자체를 거의 활용하지 않으며 가능한한 (기본적인 맑스주의 경제학 개념을 알고 있다면)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문어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한다. 그들의 서술은 대체로 짧고 명료해서, 풍성한 설명이 아쉬울 수는 있지만 혼란의 뒤범벅은 없다. 나를 포함해 맑스주의 경제학의 주요쟁점들을 숙지하고 있지 않은 독자라 할지라도, 다시 말해 뒤메닐과 레비의 주장의 어떤 지점들이 숙고될 수 있을지 알아챌 수 없는 독자라고 해도 대략의 요지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저자들이 명시적으로 밝히듯 <현대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목표는 맑스주의 경제학적 분석틀을 현대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화를 설명할 수 있도록 갱신하는 데 있다. 이런 맥락에서 텍스트의 절반 가량(특히 2,3,7,8장)이 20세기 전반 및 1970년대 후반부터의 신자유주의 시기의 역사적 변화를 짚는데 할애된다. 이때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지배하는 시기는 특별히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뒤메닐과 레비가 <자본의 반격> 및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같이 신자유주의만 중점적으로 다룬 텍스트들만 여럿을 썼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이들은 20세기 자본주의의 주요한 특징으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가능하게 한 주식회사/지주회사 체제, 관리자 계급(관리직 및 사무직)과 같은 "새로운 계급"의 등장을 초래한 관리혁명, 엄청난 양의 화폐자본을 자본가에게 공급할 수 있는 금융혁명을 강조한다. 여기에 케인즈주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자본의 작동에 대한 국가개입이 증대한다. 뒤메닐과 레비가 강조하는 지점 중 하나는 관리자 계급이 기존의 자본가VS.노동자의 계급갈등구도를 수정하게 만드는 새로운 계급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7장은 아예 관리자 계급을 다루는 데 할애된다). 이들은 오늘날의 사회구성체가 자본주의라기보다는 "자본-관리주의"라고까지 주장하며, 이는 금융의 헤게모니와 함께 이 책이 제시하는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이론적 변경'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관리자 계급이라는 이론적 항이 도입될 때 이전의 계급갈등이론이 어떻게 수정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이론적 고찰이 필요한 부분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처럼 자본이 움직이는 범위를 넓히고 또 자본을 조정하는 기제들이 증대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자본주의는 구조적 위기의 반복적인 등장을 회피할 수 없었다. 뒤메닐과 레비는 이러한 구조적 위기를 이윤율의 변화와 연결지어 설명한다(단 구조적 위기는 자본주의에서 항상적으로 등장하는 경제순환과는 구별된다..."특히 성장 속도의 감소, 거시경제적 불안정성의 증가와 금융적 혼란을 포함하는 전체적인 통제불능의 상태" 90). 그들에게 이윤율의 변화는 자본-노동비율의 변화, 달리 말해 기술변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초래되는 결과다.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인 기업간의 경쟁은, 맑스 자신도 <자본론>에서 서술했듯, 서로 다른 이윤율을 기대할 수 있는 다양한 부문 간에 자본이 이동하는 경향을 낳는다. 1960년대까지 세계 자본주의가 기록적인 번영을 자랑한 "영광의 30년"이 끝난 뒤 인플레이션 및 구조적 실업이 만연하고 케인즈주의는 실패했다는 진단이 내려지면서 신자유주의가 대안으로 등장한다. 뒤메닐과 레비는 신자유주의에서 특히 금융자본의 확장 및 국가적 정책이 이들의 이해관계에 점차 종속되었음을 지적한다. 이들의 신자유주의 분석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일국적 시각이 아니라 국제적(중심부와 주변부 국가) 관점에서 주변부의 국가에게 더 많은 피해가 전가되는 상황을 조망한다는 것이다.


 4,5,6장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조응하여 이론을 확장시킨다.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이들이 4장에서 주류경제학의 일반균형이론을 수정하여 "미시적 불균형이론" 및 "일반적 불균형 모델"의 아이디어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직관적인 수준에서 말해보자면, 주류적 모델이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수요-공급을 통해 가격이 균형가격에 수렴한다고 주장할 떄, 불균형 모델에서는 각 자본이 불균형 상태에 대응하기 위해 조정/행동할 때마다 충격이 발생하여 "균형을 향한 수렴을 균형 부근에서의 구심운동으로 변화시킨다"(68). "경제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결정적인 요소는 어떤 주어진 시기의 수요 수준이 아니라 주로 불균형에 대한 행위자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 단기에 나타나는 수요의 동태적 움직임이다"(71). 즉 불균형에 대한 반응이 충격을 생성하고 충격의 누적이 전체적인 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등장한다--이러한 모델로부터 뒤메닐과 레비는 자본주의체제의 "경향적 불안정성"을 이끌어낸다. 5장은 소득, 기술변화, 이윤율을 다룬다--저자들은 이윤율의 필연적 저하 경향을 지지하며, 이러한 경향의 주요한 요인으로 기술변화를 도입한다. 관리테크닉의 진보와 같이 이윤율의 저하를 상쇄하기 위한 기제들 역시 존재하지만, 항존하는 불안정성과 구조적 위기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6장에서는 경제 이론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맑스주의 사회이론의 개념들(예컨대 생산양식, 생산력, 생산관계, 계급, 국가, 착취, 헤게모니, 상부/하부구조, 재생산 등등)을 짤막하게 다룬다.


 앞서 말했듯 나는 뒤메닐과 레비의 이론적 기여를 온당하게 평가할 안목이 없다. 나의 이론적 관심사는 정치경제적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회이론을 탐색하는 것, 그리고 그것과 문화적 실천을 포함한 다른 영역들과의 변증법적 관계를 설정하고 나아가 이데올로기적 층위에서 맑스주의적 분석을 갱신된 형태로 재도입하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내 관심사를 그 자체로 충족시켜주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는 이들의 다른 보다 본격적인 저술들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만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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