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크룩섕크. <시민을 발명해야 한다>.

Reading 2015. 4. 13. 01:01

바바라 크룩생크[크룩섕크]. <시민을 발명해야 한다:민주주의와 통치성>. 심성보 역. 갈무리, 2014.


바바라 크룩섕크Barbara Cruikshank의 <시민을 발명해야 한다>_The Will to Empower: Democratics, Citizens, and Other Subjects_ 국역본을 읽었다. 번역이 아주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읽을만 하고, 무엇보다 책 자체가 정말 괜찮다. 70년대 후반 강의록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 영미권에서 푸코의 통치성 개념을 갖고 작업하려 했던 시도들이 여럿 있는데, 1999년에 나온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본 시도들 중에서--물론 아직 많이 보지는 못했다--가장 뛰어난 저술에 속한다. 예를 들어 웬디 브라운의 <관용>_Regulating Aversions_과 비교할 때 적어도 푸코적 틀을 활용하는 측면에서는 확실히 크룩섕크의 책이 더 모범적이다.


크룩섕크는 근대권력의 생산적 성격을 강조한 푸코의 테제를 충실히 이어받아 19세기 후반 영국에서부터 현대 미국에 이르기까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자기유지를 위해 어떻게 민주주의적 시민-주체citizen-subject를 '생산'하는가를 역량강화empower라는 키워드로 분석한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민주주의적으로 작동하는 근대적 시민국가는 필연적으로 역량 혹은 정치적 주체성agency을 가진 시민주체를 만들어내야만 하며, 시민생산과정 자체가 정치적/행정적 권력이 사회구성원들의 삶에, 조금 더 거시적으로는 '사회'라는 영역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중요한 영역이 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는 정치적인 영역 자체를 재구성하고 확장시킨다. 헤겔/아렌트적 분할, 즉 공적인 정치행위의 영역과 생존을 위한 시민사회의 영역의 분할 자체가 푸코적인 통치/권력 개념 하에서 완전히 재배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을 덧붙여둔다.


간략하게 주요한 테제들을 정리해보면,

1. (토크빌이 주장했듯) 자유주의 혹은 민주주의적 체제는 체제를 작동시키기 위해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자기 자신을 통치할 수 있는 시민-주체를 필요로 한다(나는 이 역량의 문제가 공화주의적 덕성virtue과 이어질 수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장기적으로 자유주의와 덕성이라는 문제틀 자체를 재고할 수 있다).

2. 역량있는 시민-주체는 자생적으로 생겨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 곳곳에서 역량을 결여한 비-시민들의 존재가 발견된다(빈민, 노숙자, 여성, 소수인종 등등).

3. 비-시민들을 시민-주체로 만들기 위해 역량강화empower의 갖가지 테크닉이 동원되며 이 테크닉은 새로운 통치영역을 확보한다; (정치적 영역과 구별되는) 사회 그 자체를 포함해서.

4. 권력의 주체형성 테크닉에는 자아관리에서부터 통계화된 행정적 처리까지 다양한 종류의 기법들이 활용된다. 이렇게 권력은 예속화과정을 통해 '능동적인 자기 통치가 가능한' 주체를 생성한다--"주체성을 억압하기보다는 양육하는 권력형태"(123). 한편으로는 개개인의 층위에서 영향을 끼치는 지점에서부터(푸코의 언어로 표현하면 규율권력), 통계적으로 처리된 다수를 통치하는 기법까지(조절권력).


이 텍스트에서 주로 다루는 사례들을 보면, 빈민이나 사회적 소수자 등의 '낙오자'를 정치적 주체로 만든다는 목표를 설정함으로서 권력은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그 구성원들의 삶의 형태를 주조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크룩섕크는 빈민의 생활비수급정책을 파고 드는데, 이런 맥락에서 보면 경남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건없는 무상급식과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빈민지원프로그램의 갈등구도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후자의 경우, 행정권력은 수급자격을 심사한다는 명분을 통해 지원대상자의 삶에 다양하게 개입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주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직접적인 침투로를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1장이 이론적 틀, 2장이 거시적인 역사적 배경을 제공한다면 3-5장은 각각 미국의 반-빈곤전쟁, 자부심 정치(자기감정 통치의 문제), 197-80년대 복지정책 문제라는 사례연구를 수행한다. 1-2장만 읽어도 대략은 이해할 수 있지만 3-5장까지 보면 좀 더 명확해질 것이다. 나는 <철학의 기원>과 <일반의지 2.0>에 대한 리뷰를 쓸 때 이 책을 끌어들이고 싶다. 분명히 말하건대 보고 숙고하고 배울 가치가 있는, (문학연구자들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푸코의 유산이 어떤 쓸모를 더 가질 수 있는가를 그 자체로 입증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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