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만. <열정으로서의 사랑> / 푸코. <정신의학의 권력>

Reading 2015. 3. 15. 16:10

니클라스 루만. <열정으로서의 사랑: 친밀성의 코드화>. 정성훈 역. 새물결, 2009. Trans. of _Liebe als Passion: zur Codierung von Intimität_ by Niklas Luhmann, 1982. [영역본 서문 포함]


지난 주에는 니클라스 루만의 <열정으로서의 사랑: 친밀성의 코드화> 국역본을 1회 읽었다. 1회라고 굳이 표기하는 까닭은, 나는 아직 스스로가 이 텍스트를 충분히 섭취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적어도 한번은 더 읽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한국어로 된 서평이랄게 거의 없지만 이 책의 독자들은 사랑 자체에 키워드를 맞추거나 루만의 입문서 정도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양자는 다 부분적으로만 사실일 뿐인데, 이 책은 본래 16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유럽(프랑스, 독일, 영국)의 사랑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어왔는가를 로맨스문학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조사를 통해 추적한 텍스트다.


 쉽게 말하자면 서유럽에서 사랑을 어떻게 이해해왔는지, 그리고 그 담론/소통의 내적 논리가 어떠한 어려움에 직면해 어떻게 변모해갔는지를 추적한다. 사랑의 소통분석의 배경에는 루만의 근대관, 즉 중세의 계층분화적 사회로부터 근대의 기능분화적 사회로의 이행이 있다. 예를 들자면, 중세의 농노들이 자신에게 정해진 영역 안에서 주어진 기능만 수행하면 되었다면 한 인간이 활동하는 범위가 넓어진 근대사회에서 개인을 경제, 법, 정치, 학문, 예술 그리고 사랑에 이르기까지 복수의 소통영역이 함께 작용하는 공간적 '체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적어도 <열정으로서의 사랑>에서 루만의 근본테제는 근대는 분화라는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사랑 개념이 중세의 이상ideal으로서의 사랑에서 17세기 열정으로서의 사랑으로, 다시 18세기말-19세기 초에 낭만적 사랑으로, 낭만적 사랑이 유지될 수 없게 된 오늘날에는 또 다른 형태의 보다 문제적인 개념으로 지속적으로 변해왔다고 루만은 주장하며, <열정으로서의 사랑>은 이 개념을 추적하고 묘사하는 일종의 역사-사회학적 텍스트다. 루만의 텍스트가 단순히 문헌학적/역사학적 분석이 아닌 역사-사회학적 분석인 까닭은, 앞부분에서 볼 수 있듯 루만은 이를 고유의 분석틀, 체계와 소통이라는 이론틀을 정립하고 이러한 이론틀로 사랑에 대한 소통을 도식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걸 거의 루만어(語)라고까지 부르고 싶은 심정인데, 이는 루만의 분석을 깊이 있게 동시에 난해하게 만든다. 우리가 익숙해진 언어적 직관과는 꽤나 다른 논리/용어 위에서 돌아간다는 사실이 어쩌면 한국의 외국어문학연구자들로 하여금 이 책에 쉽사리 손을 뻗지 못하게 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책을 온전하게 섭취하기 위해서는 최소 네 가지 측면의 앎이 요구된다. 루만의 이론 자체를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루만이 내놓는 설명의 언어들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는 습득해야 하며(루만이론의 이해), 루만이 전제하는 근대의 사회적 분화라거나 이성-열정개념의 역사적 변천에 대한 대략의 감은 잡고 있어야하고(서양근대의 이해), 루만이 분석을 전개하는 로맨스텍스트들에 대한 경험적 축적이 필요하며(서양 로맨스의 이해--극소수의 교양독자를 제외하면 소수의 외국문학 전공자들이나 알만한), 마지막으로 루만이 때때로 내놓는 사랑의 성격에 대한 코멘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랑 자체--적어도 두 사람 간의 연애--의 경험이 필요하다(사랑의 이해).


 이 네 가지를 모두 일정 수준으로 축적하고 있는 독자들은 내 생각에 한국에는 무척 희귀할 것 같다--따라서 이 텍스트를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독자/연구자들은 당분간은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바꿔말하면, 저 넷을 갖고 있지 못한 독자는 루만의 텍스트를 읽으면서 이 모든 것들에 대해 한발짝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셈이기도 하다. 그 모든 영역에서 루만의 언어는 엄청난 축적과 깊은 고찰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이 짧은 책은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견뎌낼 가치가 있다. 나는 그 길을 한 번 더, 필요하다면 그보다 더 많이 가볼 생각이 있다.






미셸 푸코. <정신의학의 권력: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 1973~74년>. 오트르망(심세광, 전혜리) 역. 난장출판사, 2014. Trans. of _La pouvoir psychiatrique: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3-1974_, 2003.


방금은 미셸 푸코의 <정신의학의 권력: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 1973~74년> 국역본을 읽었다. 이번 학기 수강하는 수업에서 <성의 역사> 1권의 앞부분을 젠더의 이해라는 맥락에서 발제할 일이 생겼는데, 어차피 나 자신이 그것을 풀어내는 정도로는 만족하기 힘들 것 같아서--다른 무엇보다도 젠더의 관점에서만 <성의 역사>라는 기획을 읽는 것은 푸코에게서 너무나 작은 부분만을 보는 것이다!--아예 1970년대 초부터 푸코의 사유가 어떻게 진전/변화해왔는지를 이참에 정리해보려고 한다--구체적으로는 한국어로 번역된 강의록들, <정신의학의 권력>과 <비정상인들>을 읽을 것이다(이후에 나온 저술과 강의는 적어도 국내에 번역된 것들은 최소 2회씩은 읽어두었다). 따라서 지금 이 책에 대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아주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광기'에 대응하는 '정신의학'과 그 실천에 내재한 권력을 초점으로 한다는 점에서 <광기의 역사>부터 <담론의 질서>에까지 이르는 담론/표상 층위의 분석으로부터 권력의 문제로 전환하는 시기의 푸코의 사유를 보여준다.


반드시 언급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이 책은 국내에 나온 푸코의 모든 텍스트들 중에서 규율권력에 대해 가장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1강부터 5강까지가 규율권력의 정의 및 기능에 대해 다루는 부분인데, 특히 4강에서는 벤담의 판옵티콘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꼼꼼하게 분석한다. <감시와 처벌>만 읽고 규율권력에 대한 아리송한 감만을 잡은 채 이를 미숙하게 활용하는 논자들이 많은데, <정신의학의 권력> 초반부를 한번이라도 읽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규율과 신체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언급하는 대목은 규율권력이 이후에 전개될 생명정치/권력 개념의 맹아를 포함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쉽게 말해서 근대의 권력장치가 인간의 신체를 붙잡고 그로부터 권력의 대상으로서의 개인 개념을 구축해내었다면--그래서 규율권력이 (대상의) 개별적인 성격과 (권력이, 적어도 국가단위에서, 보편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종합적인 성격을 갖는 것인데--정신의학은 이후에 언급될 감옥과 함께 규율권력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주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의학의 권력> 6강에서 12강까지는 진실을 생산하는 담론으로서 정신의학 개념의 발전과 흥망을 다룬다. 직접적으로 말해 정신의학은 의사의 환자에 대한 권력행위를 정당화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권력의 작동을 위해 지식과 진실을 생산하는 담론의 장이기도 하다. 즉 신체와 주체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고, 그것으로부터 '진실'을 이끌어내고, 진실을 이끌어내고 굴복시키고 앎을 생산하고 마침내 치료하는 과정에서 정신의학은 필연적으로 (환자의, 좀 더 나아가면 잠재적 환자들의 집합인 전체 사회의) 신체에 대한 권력을 그 곁에 두는데, 이는 권력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정당화의 논리를 제공하는 정신의학이 그 내부에서는 요동하는 담론적 투쟁의 공간임을 함축한다. 요컨대 어떤 권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느냐를 정하기 위해서 정신의학은 내부에 그 자체를 정당화하는 '과학적인' 논리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당성의 문제가 대표적으로 히스테리 개념을 두고 환자들과 의사들 사이의 권력투쟁을 가능하게 한다. 푸코의 권력이론은 흔히 권력만능이론으로 오독되고는 하는데, 정신의학의 '발전'과정에 대한 푸코의 상세한 독해를 보면 오히려 권력과 담론의 내부에서 일종의 변증법적 투쟁과정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 강의의 말미에서 푸코가 암시하듯 히스테리 개념을 둘러싼 19세기 말 정신의학의 투쟁은 성에 대한 앎과 진실을 생성하는 방향으로 다시 권력을 이끌지만. 이런 점에서 <정신의학의 권력>은 부분적으로 <성의 역사> 1권의 전편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강의요지, 강의정황은 규율권력의 맥락이 아닌 (푸코 동시대의 쟁점이었던) 정신의학과 탈정신의학, 반정신의학의 맥락을 주로 설명한다. 나는 여기에 대해서는 특별히 덧붙이지 않겠다(다만 푸코가 정신의학이 풀지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로서 정신분석이 나타난다는 식의 서사를 짜고 있음만 체크해두자). 역자의 100쪽이 넘는 역자해설은 <광기의 역사> 이전부터 푸코가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문제에 대해 갖고 있었던 문제의식을 추적한 글로 관심있는 이들은 한번 정도 읽어볼 만한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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