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주드> 1부 발제[140514]

Critique 2014.05.15 02:32

* 수업 시간에 발제한 내용.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글인데 그냥 올려둔다. 사실은 이렇게 1부에서 만들어진 원형이 어떻게 변주되는가, 변주의 과정에서 어떻게 최초의 원형이 변화하는가, (그리고 1부에서 거의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종교가 어떻게 개입하는가를 풀어야 그나마 어느 정도 꼴을 갖춘 <주드> 비평이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옥스퍼드 운동이라는 비교적 낯선 종교적인 사건을 원경에 깔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이 소설을 제대로 다루기는 무척 까다로운데, 다른 무엇보다도 어느 지점에서는 반드시 우리가 단지 예술로서의 불완전함을 직면하는 것인지, 새로운 양식의 단초가 돌출하는 것을 목도하는지, 독특한 개성의 표현을 바라보는지 제대로 판정하기 어려운 순간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완벽히 형식화된 소설들은 차라리 다루기 쉽다. 언제나 불완전한 텍스트들이 해석상의 난점을 제공한다. 공정하게 말한다면, 아래에서 전개한 초보적인 형식화의 시도는 파괴되어야 할 것이다...여기에서 다루지 못한 중요한 내용이 너무 많다.


<이름 없는 주드> 1부 읽기: 공간과 기만


1. 이름 없는 마을


<이름 없는 주드> (Jude the Obscure, 이하 <주드>)가 학교선생이 마을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은 소설의 각 부(part) 제목이 지명(地名)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생각해볼 때 의미심장하다. (후에 이름이 언급될) 필롯슨(Phillotson)은 이 작은 마을에서 가르침을 계속하는 대신 대학도시 크라이스트민스터(Christminster)에서 학위를 취득하고자 한다. 필롯슨의 이사는 정규반이 아닌 야간반에서야 겨우 수업을 듣던 (아마도 필롯슨과의 결별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유일한 학생인) 주드 폴리(Jude Fawley)의 세계관에 결정적인 분할을 제공한다. 자신이 살고 있지만 제대로 학문을 성취할 수 없는 시골마을 메리그린(Marygreen)이 있고 그 대척점에 학문과 이상의 도시인 크라이스트민스터가 자리한다. 필롯슨과의 결별은 한편으로 주드에게 크라이스트민스터를 인생의 목표로 제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주드가 자신의 세계를 불완전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 다시 말해 그의 육신이 붙들어 매어져 있는 생활공간과 그의 영혼 및 이상이 지향하는 공간이 <주드>의 첫 대목에서부터 갈라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간극은 소설의 첫 대목에서부터 1부 4장까지 매우 명확한 형태로 나타난다. 교사가 떠난 후 주드가 스스로에게 “멜로드라마적 음조로”(“in the melodramatic tones”) 읊조리는 순간은 “물 가져오라고, 이 게으른 꼬마 놈팽이야!”(“Bring on that water, will ye, you idle young harlican!”)라는 외침으로 중단된다(1.1.11). 주드가 ‘감수성’(sensibility)을 갖춘 소년임은 분명하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경작지에서 처음으로 외치는 “여기는 얼마나 추한 곳인가”(“How ugly is here!” 1.2.14)라는 언술은 그가 생활에 필요한 실용적인 판단이 아닌 미적인/감성적인(aesthetic) 판단을 처음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쫓아내야 하는 “새들의 좌절된 욕망에 공감”(“sympathetic with the birds’ thwarted desires”)하며 “그것들의 삶이 연약하고 처량하다는 점 때문에”(“Puny and sorry as those lives were”) “자신과 그것들의 삶을 묶어주는 동류의식”(“fellow-feeling united his own life with theirs”)을 느낀다(1.2.15). 주드는 “스스로가 무언가를 다치게 한다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소년”(“a boy who could not himself to hurt anything” 1.2.17)이다(그가 석조공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도 이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주드가 살고 있는 세계는 이와 같은 감성적인 삶을 허용하지 않는다. 새떼를 방치하다가 결국 매를 맞고 쫓겨나는 경작지에서 직접적으로 풍겨 나오는 “효용주의적 분위기”(“utilitarian air” 1.2.14)는 주드의 성격과 근본적으로 양립불가능하다. 새들을 쫓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다시 말해 그가 사람 몫을 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도구는 “새들만이 아니라 새들의 친구인 그 자신에게도 위협적”(“offensive both to the birds and to himself as their friend” 1.2.15)이다. 일터에서 쫓겨나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마주친 땅벌레를 보며 그는 “정상적인 걸음걸이로 나아간다면 매 발걸음마다 그것들 중 일부를 으깰 수밖에 없다”(“It was impossible to advance in regular steps without crushing some of them at each tread” 1.2.16)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연의 논리는 그가 좋아하기에는 너무나 끔찍했다. 한 편의 생명체들을 위한 자비가 다른 것에 대한 무자비가 된다는 사실이 그의 조화에 대한 감각을 아프게 했다”(“Nature’s logic was too horid for him to care for. That mercy towards one set of creatures was cruelty towards another sickened his sense of harmony” 1.2.18). 동류의식 및 공감이 생존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자연의 논리”는 (물론 이러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자연이 아닌 사회적인 삶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주드 혹은 서술자가 자연과 사회를 뒤섞고 있다는 것은 지적되어야만 한다) 앞서 언급한 “효용주의적 분위기”와 연결되어 이 마을의 성격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이와 같이 자신의 성격과 현실이 상충한다는 자각은 자연스럽게 그가 책과 학문의 세계를 이상화하도록 이끈다. <주드>에서, 적어도 초반부에서 독서는 주어진 세상에 보다 잘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한 가르침을 주는 대신 현실과 대비되는 다른 삶의 양식을 나타낸다는 것은 분명하다. 주드를 양육하는 드루실라(Drusilla Fawley)는 소년을 “책에 미쳐있다”(“crazy for books” 1.2.13)고 표현하면서 그에게 “왜 너희 학교선생을 따라 크라이스트민스터로 가버리지 않았니?”(“why didstn’t go off with that schoolmaster of thine to Christminster” 1.2.18)라고 힐난한다. 소년은 자신이 들은 꾸지람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그 아름다운 도시는 어디에 있는지”(“Where is this beautiful city”)를 묻는다. 이어지는 3-4장에서 드러나듯 이제 주드의 뇌리에서 크라이스트민스터는 지울 수 없는 이상향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정신적인 도약[크라이스트민스터의 삶을 상상하는 것]을 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육신이 처한 상태를 완전히 망각하게 되었다”(“He had become entirely lost to his bodily situation during this mental leap” 1.3.23). 다른 형태의 삶을 향한 주드의 갈망, 혹은 그가 속해 있는 곳과 그가 ‘속해야만 할’ 공간의 괴리는 소설의 시작부터 4장까지 크라이스트민스터가 누차 반복되는 동안 메리그린이라는 지명은 단 한 번(1.3.20) 언급된다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주드가 원하는 “초월” (“transcendence” Ebbatson 163)은 불가능하며 그는 계속해서 이 ‘이름 없는’ 공간이 표상하는 삶으로 이끌려 돌아온다.



2. 착각들


그러나 주드가 쫓겨난 경작지와 같은 방향에 있다는 데서 암시되듯(1.2.19) 크라이스트민스터는 단순한 이상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대학도시를 “천상의 예루살렘”(“The heavenly Jerusalem” 1.3.20)이라고 부를 정도로 갈망하며 그 방향에서 오는 여행객들에게 끊임없이 도시에 관해 묻는다. 그러나 주드의 질문에 답변하는 인물들 역시 크라이스트민스터에 관해 올바르고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대신 기만적인 답변을 내놓을 뿐이다. 주드가 처음으로 마주친 마부(carter)는 대학도시를 “고결한 심성의 사람들이 가득하고”(“noble-minded men enough”) “모든 곳에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지며”(“there’s beautiful music everywhere”) “세상에 그와 같은 곳은 다시 없는”(“that ha’n’t another like it in the world”)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장소와 같이 묘사한다(1.3.25). 두 번째로 만나는 인물은 약사 빌버트(Physician Vilbert)로 그는 라틴어와 희랍어 문법책을 가져다주겠다고 하며 고객유치를 부탁하지만 자신의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는다. 주드는 세 번째로 직접 필롯슨에게 편지를 써서 문법책을 부탁한다. 그러나 문법이 “비밀스러운 기호의 본성을 [해독하는] 단서”(“clue of the nature of a secret cipher”)가 되리라는 희망과 달리 실제로 도착한 것은 “30년은 된”(“thirty years old”) 낡은 책으로 그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는 것이었다(1.4.30). (종교와 무관한) 최초의 학문적인 기대가 “엄청난 망상”(“grand delusion”)으로 끝나지만, “자신의 엄청난 실수에 대한 충격적인 깨달음 속에서도 주드는 자신이 세계의 바깥으로 나갈 수 있기를 계속해서 소망했다”(“under the crushing recognition of his gigantic error Jude continued to wish himself out of the world” 1.4.31). <주드>의 1부는 이와 같은 소망이 좌절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며, 어쩌면 주드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향으로서의 학문 또한 애초에 기만적일지도 모른다.1) 이 소설은 주드가 그와 학자들 사이에 놓여있는 “벽 하나”(“a wall” 2.2.86)를 결코 넘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또한 학적인 삶이 실제로 더 나은 무엇이라는 믿음을 견지하기 어렵게 한다.

크라이스트민스터로 가는 길 자체가 수월하지 않은 것에 더해 메리그린에서 주드는 또 하나의 근본적인 장애물, 즉 결혼을 마주하게 된다. 주드가 처음으로 결혼으로 이끌리는 계기가 되는 장면은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크라이스트민스터에서 신학박사(D.D., Doctor of Divine)가 되고 이후의 출세를 상상하던 그의 머리에 애러벨러 던(Arabella Don)은 돼지의 살덩어리(“a piece of flesh” 1.6.38), 정확히 성기를 던져 그의 시선을 끈다. 주드는 그녀를 대면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품어왔던] 의지에 반하여”(“almost against his will”) 그녀의 몸과 그녀가 드러내는 섹슈얼리티에 직면하고 빠져든다(“He gazed from her eyes to her mouth, thence to her bosom, and to her full round naked arms, wet, mottled with the chill of the water, and firm as marble” 1.6.40). 이는 단순히 그녀에 대한 이끌림이라기보다는,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돼지의 상징으로부터도 강하게 드러나는 자신의 육체적인 삶 자체에 대한 각성이기도 하다. 실제로 주드가 애러벨러의 집에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그는 거의 최초로 후각적 자극(“A smell of piggeries” 1.7.44)을 지각한다. 어릴 적 품었던 어른이 되기 싫다는 소망(“He did not want to be a man” 1.3.18)은 성취될 수 없다.2) 거의 도발적이기까지 한 유혹을 거쳐(1.8.55-56) 성관계 및 임신을 미끼삼아 주드를 붙잡으려는 애러벨러의 계획은 성공하고 주드는 사실상 학업을 포기하고 결혼을 선택한다.

애러벨러와의 연애 및 결혼이 상징하는 지상의 육체적인 삶이 이전까지 주드가 걸어오던 (적어도 1부에서는 둘의 긴장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 학적-종교적인 삶과 정면으로 상충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둘을 단순한 대립항으로 설정하는 것, 혹은 하나가 다른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답이라는 식으로 <주드>를 읽기는 어렵다. 주드가 추구해오던 학적-종교적인 삶이 순진한 환상과 믿음의 산물이기도 하다면, 그가 실제로 (짧게나마) 도착한 결혼생활 역시 기만적인 면모를 품고 있다. 결혼 직후 그는 아내의 머리가 “가짜 머리”(“false hair”)임을 알게 되며, 임신 역시 잘못된 정보였고 보조개 또한 ‘인위적인’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1.9.59-60). 다시 말해 애러벨러와의 결혼생활은, 일견 그것이 ‘실제적인’ 삶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크라이스트민스터에 대한 이미지만큼이나 허구적인 요소들에 기초한 것이다. 이는 그와 그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마찬가지다. 주드가 애러벨러를 오판했다면, 그만큼이나 그녀 또한 주드를 잘못 판단한다. 그녀가 “조금 경각심을 갖기 시작해 실제적인 일을 위해 멍청한 책들을 던져버리고 장사에 매진하기만 하면 자신에게 옷과 모자를 얼마든지 사줄만한 생활력 있는 남편”(“a husband with a lot of earning power in him for buying her frocks and hats when he should begin to get frightened a bit, and stick to his trade, and throw aside those stupid books for practical undertakings” 1.9.58)을 기대했다는 사실은 주드에 대한 판단에서뿐만이 아니라 결혼생활에 대한 판단에서까지 그녀가 순진했음을 가리킨다—거짓 임신을 통해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호주로 출발할 때까지도 자신의 임신 사실을 몰랐다. 주드가 성인이 아니듯 애러벨러 또한 교활한 마녀가 아니다.

최초에 주드를 애러벨러와의 관계로 이끌었던, 혹은 아예 그 자체가 ‘살’(flesh)과 결혼생활을 상징했던 동물인 돼지를 도축한 뒤 결국 두 사람의 미숙한 관계는 파경에 이르고 결별한다. 주드는 결혼생활에서 자신이 기만당했음을 안 뒤 “세상을 조금 다른 눈으로 보게”(“to see the world with a different eye”) 되지만, 여전히 학적인 길을 추구하는 것이 “그 자신이 저급한 동물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one opportunity of showing himself superior to the lower animals” 1.9.62)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열려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충분히 ‘깨달은’ 상태는 아니다. 그는 다시 한 번 연애와 학문 모두에서 근본적인 좌절을 겪기 위해 대학과 수 브라이드헤드(Sue Bridehead)가 있는 크라이스트민스터로 향한다. 주드의 삶이 정답을 찾지 못하고 쇠퇴와 상승을 반복하며 그 폭이 점차적으로 축소된다고 파악하는 로버트 쉐이크(Robert Schweik)의 해석(89-91)처럼, 주드가 겪는 최초의 실패는 그가 이후에도 계속해서 마주할 일들의 원형처럼 자리하고 있다. 그가 메리그린에서 마주한 사회 부적응자로서의 자신의 면모는—그가 크라이스트민스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에게 꼭 맞는 곳일 거야”(“It would just suit me” 1.3.26)라고 중얼거리는 대목은 그와 맞는 곳이 어디에도 없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허구적인 기대를 담은 이상향의 설정으로 나아가며, 이는 다시 자신의 성적인 욕망 및 결혼으로 좌절된다. 결혼은 다시금 그 자체의 허구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무너지고, 주드는 다시 처음의 지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3. 참고문헌


레이먼드 윌리엄스. <시골과 도시>. 1973. 이현석 역. 나남, 2013.

Ebbatson, Roger. “‘A Thickness of Wall’: Hardy and Class.” Wilson, 146-61.

Hardy, Thomas. Jude the Obscure. Ed. by Dennis Taylor. London: Penguin, 1998.

Higgonet, Magaret R. “Hardy and His Crisis: Gender in the Interstices.” Wilson, 117-29.

Schweik, Robert. “The ‘Modernity’ of Hardy’s Jude the Obscure.” 1994. Bloom’s Modern Critical Views: Thomas Hardy. Ed. by Harold Bloom. NY: Bloom’s Literary Criticism, 2010. 87-101.

Wilson, Keith ed. A Companion to Thomas Hardy. MA: Blackwell, 2009.



1) 이 점에서 <주드>와 대학교육을 통한 새로운 앎의 필요성을 연결시켜 이야기하는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진술은 조금 엇나가있다는 인상을 준다(385-86).

2) 주드가 원래 품고 있던 동류의식과 사회적으로 주어진 남성성이 충돌한다는 해석(Higonnet 118)은 적어도 이 대목에 그대로 적용되긴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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