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사 연구의 방법들: 담론 연구, 개념사, 언어맥락주의」

Intellectual History 2023. 7. 27. 12:08

한국역사연구회(한역연)에 투고한 논문이 나왔다. 지성사 연구(방법론) 자체를 더 많은 연구자에게 소개하는 것이 논문의 목표인만큼, 별도의 포스팅으로 짧게 말을 붙인다.

 

이우창, 「지성사 연구의 방법들: 담론 연구, 개념사, 언어맥락주의」, 『역사와 현실』 128호 (2023년 6월): 363-98.

 

KCI 논문 상세: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981126 

(위 KCI 링크에는 원문 미리보기만 가능, 전체 논문을 읽어보실 분은 임시로나마 이 링크를 참조)

 

국문초록: "이 논문의 목표는 한국 학계 연구자들이 지성사 연구 방법론의 핵심을 비교적 용이하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여하는 것이다. 논문의 과제는 두 가지다. 첫째, 언어맥락주의 지성사의 핵심 논리와 쟁점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제시한다. 둘째, 지성사 연구자들이 수행하는 구체적인 연구 모델을 설명하고 소개한다. 논문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 두 장에서는 한국에 앞서 소개된 사상사 연구 방법론, 즉 비판적 담론 분석과 개념사적 접근을 살펴본다. 3장에서는 케임브리지학파의 등장과정 및 언어맥락주의의 이론적 전제, 그리고 그 구체적인 연구 모델을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언어 맥락주의의 확산과 전망에 대해 살펴본다."

 

처음 『역사와 현실』에 지성사 소개논문을 투고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 논문을 쓸 동기 자체는 분명했다. 나는 『지성사란 무엇인가?』 역자해제를 준비하면서 언젠가는 좀 더 학적인 독자를 고려한 담은 속편을 쓰겠노라는 마음을 품었고, 무엇보다 한국사를 포함한 한국 연구자들이 지성사 연구방법론을 좀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해왔다. 그렇다면 한 편의 논문이라는 제한된 형식에 어떤 내용을 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가? 어떤 연구방법론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메타적 층위의 이론적 논의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그러한 통찰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연구모델/프로그램으로 구현되는가를 봐야한다. 그리고 이를 보기 위해서는, 논문에도 지나가듯 언급한 바와 같이, 이를 시도한 작업물을 많이, 다양하게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영어권 역사연구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영역, 즉 영국의 영국사 연구와 미국의 미국사 연구 학술지 수 (십) 년 치를 파고들면서 '가장 평범한' 수준의 해석을 두고 오가는 논쟁을 쫓아가보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이러한 노고를 감수할 의지와 여력이 있는 한국 연구자가 매우 제한적으로만 존재하며(개인적으로는 대학원생 시절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훈련이라 생각한다), 한 편의 소개논문만으로 이를 갈음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행히 다른 해법을 찾을 단서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나는 지난 수 년간 젊은 한국사 연구자·대학원생과 틈틈이 대화하면서 그들이 현재의 학계에 어떤 점에서 아쉬움을 느끼는지, 또 어떤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지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무엇보다 위 논문을 준비하던 1학기, 성균관대 사학과에서 직접 한국사 전공 대학원생들을 가르치면서 이들에게 어떤 앎이 도움이 될지 고민해볼 수 있었던 것이다.

 

최종적으로 나는 일반적인 지성사 방법론 소개 논문에서 기대되는 바와는 상당히 다른 구성을 취했다. 케임브리지학파와 언어맥락주의에 대해 설명하기 전, 푸코와 (코젤렉의) 개념사에 관한 논의에 본문의 40% 가까운 분량을 할애하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선택으로 내가 의도한 바는 세 가지였다. 먼저 사상, 언어, 담론을 고유한 연구대상으로 설정하는 접근법의 구축이 어느 한 가지 학파나 조류만으로는 갈음할 수 없는, 프랑스, 영국, 미국, 독일 등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시도된 거대한 사학사적 변화의 일부였음을 드러내는 것이다(물론 나의 스케치는 매우 불완전하다; 대표적으로 여기에는 심성사나 전근대 종교사 연구를 비롯해 인류학적 접근법을 활용한 흐름이나, 지식사회사와 같이 담론의 '물질적' 측면에 주목한 연구 등이 누락되어 있다). 아직 사학사가 고유의 연구영역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한국 학계에서, 20세기 서구 역사학계가 어떠한 변화를 경험했는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연구자는 한국사는 물론 서양사 전공에서도 드물다. 사회과학의 침투와 그에 대한 적응·응전, 더불어 학계의 팽창과 함께 초래된 역사학의 분업-전문화 과정을 조망하는 시선이 없으면, 서구 일급의 역사학자들이 왜 계속해서 방법의 문제를 의식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한국처럼 인문사회 분과들의 구획이 강고하며, 그렇기에 이론적 논의를 극히 사변적으로만--숭배의 대상 또는 트렌디한 현학 정도로만--대하는 학풍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번 논문의 목표 중 하나는 바로 서구 역사학의 변화 자체를 역사화하는 것, 그리고 바로 그런 맥락 내에서 지성사 연구의 성장을 위치지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다른 주안점은, 그 연장선에서, 푸코나 코젤렉, 스키너, 포콕과 같은 이른바 '대가'들의 작업을 탈신성화하는 것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진행되고 있을 여러 '이론 읽기' 세미나의 풍경을 떠올릴 수 있듯, 우리는 여전히 대가의 작업을 어떤 '말씀'을 얻기 위해 혹은 일관된 이론을 뽑아내기 위해 겸허한 마음으로 읽곤 한다(학부 때야 충분히 그럴 수 있고 또 그게 주는 즐거움이 있지만, 지적으로 독립해야 하는 대학원생들도 이러한 독서에서 벗어나는 예가 드물다는 것은 비극이다). 이러한 비생산적인 독서에 벗어나 저자와 동등한 정신적 높이로 마주보기 위해서는 대가들의 작업 자체를 맥락화할 필요가 있다. 이들 역시 제 나름의 학문적 배경 속에서 성장했고, 자기 시대의 논쟁주제와 씨름했으며, 어떠한 동료 및 기관과 조우하느냐에 따라 다른 경로를 걸어간 '역사 속의' 존재들이다. 이들이 누구를, 무엇을 읽었고 어떤 적수를 상대했으며 어디로부터 무엇을 받아들여 가공했는가를, 그리고 이들의 문제의식이 대체로 그 혼자만의 것이었다기보다는 더 많은 이들과의 공유물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 그때 비로소 이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들려온다. 그에 필요한 최소한의 감각을 제공하는 것이 논문의 과제였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들의 작업을 이론이나 철학적 '말씀'/사변이 아닌 연구모델과 프로그램, 학파의 형성과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다. 푸코의 거대한 영향력과 별개로, 왜 푸코를 계승한 결집된 학파는 등장하지 않았는가? 반대로 훨씬 전문적인 영역에서 출발한 케임브리지학파는 어떻게 지난 6-70 여년 간 지속적으로 필드를 확장하는, 현대 인문학계에서 보기 드문 제도적 성공을 이룩할 수 있었는가? 이와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거대한 통찰만이 아닌 구체적인 연구모델, 특히 한 편의 논문을 생산하고 논문들의 누적을 통해 해석적 서사를 갱신할 수 있게 해주는 글쓰기-논쟁의 장르형식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 논문은 케임브리지학파의 성공 요인을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하고자 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글쓰기 모델이다. 학술지 논문, 즉 책(monograph)과 비교할 때 짧은 분량에 더 전문적인 독자를 대상으로 더 자주 생산될 수 있는 글쓰기 양식에 문제없이 적용될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논문들의 누적을 통해 해석적 서사를 질적으로 갱신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모델--언어맥락주의는 바로 이러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었다. 물론 핵심은 어느 학파/접근법의 우열을 가리는 일이 아니다. 새롭고 낯선 지적 조류를 접할 때, 이를 단순히 주제나 이론의 차원에서만 보는 대신 그러한 논의로부터 어떠한 연구모델/프로그램이 가능하며, 그러한 구현장치에 어떤 장단점이 있는가를 질문하는 아비투스가 중요하다.

 

초고 투고 후 받은 심사평 및 주변 독자들은 한편으로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내면서도, 동시에 한국사 전공자들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이 덧붙여지기를 기대했다. 곧바로 반영할 수 있는 제안은 최대한 반영했지만 (어쨌든 수정고는 초고에 비해 약 원고지 40매 정도가 더 길다) 그중 적지 않은 요청, 특히 한국 학계의 이런저런 시도를 분석하고 평가해달라는 요청은 별도의 작업을 필요로 하기에 포함시킬 수 없었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그와 같이 가치있는 작업을 수행하는 연구자들이 이어지길 바란다.

 

이제 다음 단계로 향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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