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박사하기』, 위기론 너머를 이야기하기

Comment 2022. 12. 28. 12:04

교수신문에 <한국에서 박사하기> 기획 취지를 설명하는 글을 기고했다. 일부 내용을 인용하고 짧게 후기를 붙인다.
(기고 전문은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98526 참조)



"위기를 마주보기 위해서는 위기론을 넘어서야 한다. 『한국에서 박사하기』의 최초 기획에서부터 지금까지 품고 있는 문제의식이다. [...] 우리 인문사회 연구자들에게 위기론은 차고 넘치도록 풍족하지만, 위기가 정확히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명확하게 논의하는 언어는 현저히 빈곤하다[...]. 한쪽은 “얼마 남지 않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향해 전력질주하라”고 속삭이고, 다른 쪽은 “우린 다 망할 거야”라는 멸망의 비가(悲歌)를 합창한다. 방향만 다를 뿐, 우리의 문제를 직시하는 자세가 없음은 마찬가지다. 그때 알았다. 위기론을 넘어서야 위기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 책의 출발점이 된 <교수신문> 좌담회를 처음 기획하면서 나는 필자들에게 두 가지 논의방향을 제안했다. 첫째는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그런만큼 지적인 효용이 없는 거대담론 대신 대학원생·연구자들의 삶을 구성하는 세부 요인들, 예컨대 제도, 정책, 거버넌스, 조직문화 등에 주목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실제로 필진들은 모두 대학원·학계의 여러 거버넌스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둘째는 약자, 피해자 정체성에 얽매이지 말고 한 명의 연구자이자 동시에 스스로가 수행하는 제도적인 삶을 성찰하는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하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여러 대학원생이 차별과 비합리에 노출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단지 그러한 피해자로서의 자의식이 우리 자신이 수행하는 연구의 의미와 연구환경의 문제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냉정한 성찰을 불가능하게 할 만큼 커지면 곤란하다. 요컨대 이 책은 인문사회분야 연구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현재와 미래를 실천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출발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구체적이어야 실천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지금 우리 학계가 마주한 난국은 어느 한 두 명의 영웅적인 노력으로는 넘어설 수 없으며, 인문사회 연구자들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더 다양한, 더 생산적인 대화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그러한 대화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

 



여기서부터는 기고 후기.

책 출간 후 2주 가까운 시간 동안 벌써 적지 않은 코멘트를 접했다. 실제로 책을 읽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은, 세부적인 평가에 있어서는 엇갈린다 하더라도, 대체로 이 작업의 의의와 중요성에는 공감하는 듯 하다. 반대로 책을 읽지 않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경우, 주로 필진들의 학적·지역적 '출신성분'의 편파성에 불만과 의구심을 보내며(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소수지만 책에 대한 가차없는 예단으로까지 나아가는 예도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읽지 않은(을?) 사람들까지도 무언가 한 마디 말은 보태야 한다고 생각할만큼 현재 한국 인문사회·대학원이 느끼는 위기감이 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에서 박사하기>는, 기고 서두에서 밝히듯, 단순히 위기론을 반복하는 대신 어떻게 실제로 위기를 넘어설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려는 작업이다. 저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인문사회 대학원, 학계가 맞이하고 있는 문제를 짚어보고,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공유한다. 기획자의 입장에서 나의 주 관심사는 논의의 초점을 연구자·학계의 비/제도적 환경과 행동양식을 가능한 구체화하는 데 있었다. '비판적 지식인의 쇠퇴'에 대한 일전의 발표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97668 참조), 이제는 거대담론으로 일관하는 대신 연구자의 삶/지향을 구성하는 여러 구체적인 요소를 사고해야만 무언가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에서 박사하기> 역시 마찬가지의 문제의식에서 기획되었다. 논의 수준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방향을 잡고 출발하는 게 중요하다는 데는 다들 공감하리라 믿는다.

이는 필진 구성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책 1장을 읽어보신 분들은 눈치채시겠지만, 저자들은 모두 대학원 관련 거버넌스에 일정 수준 이상 참여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물론 전공, 지역, 젠더에 따른 다양성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결국엔 제도와 환경이 작동하는 과정을 관찰하고 그 변화에 참여해본 경험이 없다면 거대담론 혹은 개인적 문제의식을 반복하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솔직히 말해 이러한 문제의식에서조차 한국의 인문사회계 연구자들은 이공계보다 낮은 경험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박사하기>에서 제기하는 논의는 당연히 기초적인 것들이지만, 이보다 확연히 높은 수준의 분석을 제시할 수 있는 인적 구성이 현재 한국의 대학원에서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 구성에서 특히 지역적 대표성을 아쉽게 느끼실 독자들이 있는 건 당연하다. 솔직하게 이야기하겠다. 나는 2015년부터 대학원생 인권/연구환경 개선을 위해 활동해왔고, 그중에서는 전국적인 대학원총학생회 네트워크에 들어가 관련 입법을 시도한 것도 포함된다. 당시의 시점에서 대학원생 조직은 주로 수도권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비수도권과 연계하고 싶어도 연합 단위/활동가들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대학원 교육이 수도권에 몰리는 경향이 있고, 대학원총학생회를 비롯한 대학원생 기구 역시 수도권 대학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면이 있다는 게 주된 이유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원생노조가 조직되기 전까지 수도권과 (카이스트 및 포스텍을 제외한) 지방의 대학원생 운동은 거의 연결되지 않았다. 그게 <한국에서 박사하기>의 필진 구성이 지역적 협소함을 띨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까닭이다. 이건 앞으로 극복해야 할 현실이지 필진들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럼 왜 원생노조를 통해 지역적 다양성을 담보하지 않았냐?고 물으신다면, 원생노조와 직간접적 관계를 맺고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시점이 그런 자문을 구하기 적절한 때는 아니었다)

2015년 서울대 인권센터의 의뢰로 대학원생 인권실태조사를 시작했을 때, 또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으로 대학원생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를 쓰는 팀에 들어가서 작업했을 때, 나는 내 실명이 보고서에 실려도 괜찮을지 끝까지 고민해야만 했다. 이러한 참여이력이 연구자로서의 내 진로에 심각한 지장을 주지 않을지 여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직 나와 연결되지 않은 전국 각지의 대학원생/신진연구자 집단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이 있으시리라 생각한다. 그런 분들이 본인이 속한 환경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나는 <한국에서 박사하기>가 조금 더 널리 읽히고 이슈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 책은 완결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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