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자연법, 자연권, "인간의 권리"에 관한 간략한 독서목록

Intellectual History 2022. 11. 5. 03:12

다음 프로젝트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이기도 하고, 18세기 말-19세기 초 영국 급진파 문인들에게서 "인간의 권리"(Rights of Man), "여성의 권리"(Rights of Woman) 같은 용어들이 어떻게 튀어나오는지 맥락을 개괄하는 문헌을 뒤적거리는 중이다. 나중에 관련 분야를 공부하실 분들 위해 간단히 정리한 내용을 공유한다.

 

 

1. 20세기 정치사상사의 논쟁거리 중 하나는 자연법(natural law)과 자연권(natural rights)의 역사다. 대충 (객관적인) 법(law / lex) 대 (개인의 주관적인) 권리(right / ius)의 대비를 생각하면 편하겠다. 근대화과정을 보편적인 규범으로서의 자연법 담론이 붕괴하고, 개인의 주관적인 권리만을 강조하는 '영미 자유주의식' 자연권 담론이 득세하는 일종의 타락과정으로 그리는 서사가 대표적인 예다. 보통 레오 스트라우스가 이런 내러티브의 대표 격으로 지목되긴 하지만,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프리드리히 마이네케의 <국가이성의 이념사>에서도 국가이성의 대두와 자연법적 사유의 붕괴를 탄식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초기 근대 정치사상사를 사적 소유권(property), 즉 "소유적 개인주의"(possessive individualism)가 대두하는 과정으로 묘사하는 C. B. 맥퍼슨의 예에서처럼 맑시스트 진영에서도 유사 버전이 있다.

 

요즘도 유럽 대륙법학의 지지자들이 "영미에는 lex가 없고 ius만 있다"는 식의 비판을 내놓고, 영미 내에서도 자유주의 비판자들이 근대 자유주의를 개인의 권리 혹은 주관성만 남은 세계로 비판하는 논리가 클리셰로 통용되는 걸 보면, 이런 역사적 도식은 20세기에 꽤 넓게 자리잡은 통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비슷한 내러티브에서 가치평가만 바꾸면 근대화를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승리하는 과정으로 묘사하는 서사가 된다).

 

 

2. 위의 서사를 '논쟁거리'로 언급한 데서 짐작할 수 있듯, 20세기 후반의 사상사가들, 대표적으로 중세법사상 연구, 또 케임브리지학파의 초기 근대 연구자들로부터 저러한 '자연권 타락서사'의 역사적 오류를 수정하는 연구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1960-70년대 존 던이나 퀜틴 스키너에게서 이미 자연법 전통을 다시 봐야한다는 요구들이 엿보이지만, 케임브리지학파에서 초기 근대 자연법 연구의 갱신을 이끈 대표적인 저자는 리처드 턱(Richard Tuck)이다. 턱은 자신의 박사논문을 출간한 (지금은 고전으로 자리 잡은) 『자연권 이론』 (Natural Rights Theories, 1979)에서 i) 중세 후기에서 내려온 자연법 사상이 그로티우스를 기점으로 "근대적"(modern) 자연법 이론으로 형성되며 ii) 이때 자연권 개념은 자연법을 부정하는 개인의 권리가 아닌 헌정constitution/정치체 형성의 출발점으로 기능하게 된다는 서사를 제시했다. 이 책의 충격은 대단했고, 홉스와 로크를 자연법에서 자연권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으로 지목하던 "스트라우스주의자"들의 내러티브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관련해서 널리 읽히는 턱의 또 다른 논문으로는 "The 'Modern' Theory of Natural Law" (in The Languages of Political Theory in Early-Modern Europe, 1987)를 참조.

 

브라이언 티어니(Brian Tierney)나 프랜시스 오클리(Francis Oakley) 등의 중세법사상 원로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로 기존의 ‘자연권 서사’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요점은 "자연권은 딱히 (초기) 근대의 산물이 아니며, 중세 법률가들로부터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었기에, 이들은 초기 근대를 ‘근대적’ 자연법/자연권의 시발점으로 놓으려는 턱과 스키너 역시 비판의 대상으로 공격했다(1990년대 중세 정치사상사 연구자들이 턱과 스키너를 직접적으로 겨냥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시기에 이미 케임브리지학파에게 해석적 헤게모니가 옮겨갔음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다만 지금은 이들의 연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니므로, 예전에 오클리의 2005년 책을 요약한 포스팅으로 설명을 대체한다(https://begray.tistory.com/397).

 

 

3. 다시 턱과 스키너로 돌아가자. 기본적으로 이들의 관심사는 격동의 17세기 정치사상, 특히 헌정주의 정치언어의 기원을 중세 스콜라주의·인문주의 전통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었다. 스키너의 고전적인 작업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 이래 턱을 비롯한 그의 학생들은 적지않게 이러한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17세기까지 근대정치사상으로서의 ‘새로운’ 자연법 이론이 만들어졌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뒤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17세기 자연법 이론과 주관적 권리 개념의 등장 사이에 명확한 관계를 설명하기 어렵다면, 20세기인들이 비난했던 주관적 권리는 언제, 어떻게 등장한단 말인가? 여기에 답변을 시도한 것은 18세기를 연구하는 지성사가들이었다.

 

케임브리지학파의 대표적인 18세기 연구자 중 한 명인 크누드 하콘센(Knud Haakonssen)은 덴마크 출신으로 에딘버러대학에서 흄과 스미스로 박사논문을 쓰던 중 J. G. A. 포콕, 던칸 포브스(Duncan Forbes), 도널드 윈치(Donald Winch) 등의 영향을 받아 케임브리지학파에 합류한 인물이었다(그의 지적 여정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2019년 출간된 하콘센 헌정논문집 Philosophy, Rights and Natural Law: Essays in Honour of Knud Haakonssen 의 introduction을 참조). 그는 한편으로 스코틀랜드계몽주의 정치사상·도덕철학의 역사를 탐구하면서도, 동시에 초기 근대 자연법 사상의 연구를 진전시키는 데도 깊이 관여했다―그는 리버티펀드(Liberty Fund)의 “자연법과 계몽 고전”(Natural Law and Enlightenment Classics) 총서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하콘센은 i) 자연법 언어에서 정치사상만이 아닌 도덕철학적 측면까지 강조했고, ii) 스코틀랜드계몽주의를 중심으로 17-18세기 유럽-영국-북미를 연결하는 철학사적 궤적을 그렸다. 우리의 맥락에서 유의할 점은, iii) 그가 특히 자연법 전통에서 배태되는 여러 유형의 "자연권" 개념에 주목했다는 사실이다. 자연법-자연권 논쟁의 핵심주제, 즉 ‘주관적’ 권리 개념의 등장과정을 지성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하콘센의 오랜 문제의식 중 하나였다. 요점부터 말하자면, 그는 18세기의 자연권 개념이 '객관적' 자연법을 부인하는 주관적 권리로 도입된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당대에 널리 퍼져 있던 자연법적 의무(duty)를 준수하기 위한 "도덕적 힘"(moral power)의 개념으로 이해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글의 목적은 연구의 상세를 소개하는 게 아니므로, 몇 가지 예만 들겠다. 1990년대까지 하콘센의 자연법·자연권 연구를 집약한 대표작은 『자연법과 도덕철학: 그로티우스에서 스코틀랜드 계몽까지』 (Natural Law and Moral Philosophy: from Grotius to the Scottish Enlightenment, 1996)다―서구 초기 근대 도덕철학사에 관심이 있는 분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J. B. 슈니윈드의 고전 『자율의 발명: 근대 도덕철학의 역사』(The Invention of Autonomy)와 함께 읽을 수 있겠다. 이 책이 기본적으로 스코틀랜드 계몽사상가들에게 집중한다면, 하콘센이 자연법 전통의 유럽적 맥락을 어떻게 정리하는지 간략하게 볼 분은 “Natural Law: Law, Rights and Duties” (in A Companion to Intellectual History, 2016, ch. 27)를 보라. 그 외 그로티우스와 장-자크 뷔를라마키를 중심으로 '자연권의 보수주의적 측면'을 강조하는 글로는 “The Moral Conservatism of Natural Rights” (in Natural Law and Civil Sovereignty: Moral Right and State Authority in Early Modern Political Thought, 2002, ch. 2)를, 프란시스 허치슨이 한편으로 자연권 개념을 도입하면서도 어떤 원리에 의해 그것을 견제하는가를 깔끔하게 설명한 사례연구는 “Natural Rights or Political Prudence? Francis Hutcheson on Toleration” (in Natural Law and Toleration in the Early Enlightenment, 2013, ch. 8) 등을 보라.

 

한숨을 쉬는 독자들을 위해 첨언한다면, 하콘센의 글은 전체적으로 매우 간결하고 명쾌한 설명을 제공하니만큼 상대적으로 부담없이 요점을 정리하기 좋다.

 

 

4. 18세기 자연법-자연권에 대한 하콘센의 설명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하나, 그렇다면 혁명기 정치언어로서 '인간의 권리'(Rights of Man)는 어떻게 등장하는가? 둘, 그러한 '인간의 권리' 혹은 '보편적' 자연권의 주장에 당대의 사상가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이번 소개글에서는 이에 관한 세 편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요약을 마친다.

 

1) 하콘센 본인은 "From Natural Law to the Rights of Man: A European Perspective on American Debates" (in A Culture of Rights: The Bill of Rights in Philosophy, Politics, and Law―1791 and 1991, 1991, ch. 1)에서 18세기 중후반 북미 식민지의 문인들이 영국·유럽의 자연법 전통을 급진화하는 사례들을 추적하는 것으로 첫 번째 의문에 대한 한 가지 답변을 제시한다. 이 글은 위에서 언급한 『자연법과 도덕철학』 10장에 개정수록되는데, 한 편의 글로만 보면 1991년의 원문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수정본에는 원문의 앞부분이 잘려있다). 미국과 '권리 담론'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은 이 논문집의 다른 글들을 읽어볼 수 있다.

 

2) 두 번째 물음에는 앞서 언급한 하콘센 헌정논문집에 수록된 논문 중 특히 12장 David Lieberman, "Declaring Rights: Bentham and the Rights of Man" 및 13장 Richard Whatmore, "Rights After the Revolutions"를 참조할만 하다. 18세기 영국 법이론 전문가인 리버만은 블랙스톤 비판부터 1789년 혁명기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비판, 나아가 후기 저작까지 제러미 벤담의 저술활동을 개괄한다. 벤담은 ‘자연권’ 및 ‘인간의 권리’에 지속적으로 비판을 가했는데,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러한 자연권·인간의 권리가 낳게 될) 인민주권, 그리고 그에 토대를 둔 국가권력이 무제약적으로 작용하리라는 우려의 산물이었다. 그의 개혁담론에서 주권을 적절하게 제약해야 한다는 것은 일관되게 유지된 문제의식이었으며, 이는 보편적 자연권·인간의 권리에 대한 불신을 낳았다.

 

왓모어의 놀랍도록 빼어난 글은 먼저 하콘센의 문제의식을 명료하게 지목한 뒤, 프랑스혁명기 프랑스·영국에서 자연권/인간의 권리 담론이 등장했다가 혁명의 실패와 함께 혹독한 공격의 대상이 되고, 결국 프랑스의 혁명가들이 어떤 대안적 경로를 탐색하게 되는지까지 서술한다. 3절과 4절은 혁명기 ‘인간의 권리’의 대변자로 알려졌던 두 지식인, 즉 에마뉘엘 시에예스와 톰 페인의 궤적을 개괄한다. 5절은 콩도르세를 중심으로 프랑스의 혁명가들이 "왜 프랑스는 미국과 달리 인간의 권리에 기초해 새로운 정부를 세우려는 시도가 실패했는가"라는 물음에 내놓았던 나름의 답변을 설명한다. 마지막 6절은 그러한 프랑스의 ‘실패’를 받아들인 혁명가들이 어디에서 대안을 찾고자 했는가에 주목한다. 그들은 특히 애덤 스미스와 토머스 리드(Thomas Reid), 더걸드 스튜어트(Dugald Stewart) 등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들의 논의를 참조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무엇보다 의무 개념의 복권, 혹은 권리와 의무의 병행을 강조함을 의미했다. 정치경제학은 그러한 목표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장-밥티스트 세의 저작에서처럼, 혁명 이후의 공화주의자들 중에서는 정치경제학적 지식의 보급을 통해 개개인에게 근면과 의무의 준수가 유용하고 또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하고, 나아가 의무의 확립을 통해 권리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의 초석을 닦고자 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마치 프랑스혁명에서부터 20세기 인권까지 직선적인 발전이 있었던 것처럼 전제하는 목적론적 역사관(예컨대 린 헌트의 『인권의 발명』에서처럼)과 달리, 벤담과 프랑스혁명가들의 사상적 궤적은 혁명기에 불타올랐던 개개인의 보편적 권리에 대한 강조가 혁명정부의 운명과 함께 몰락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주관적’ 권리 담론이 어떻게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그러한 재앙을 막으려면 어떠한 제한장치가 필요한지에 대한 기본적인 논점들은 이 시기부터 점차 형성되었다. 이후 한 세기 하고도 수십 년이 지나 카톨릭·개신교 사상가들이 파시즘과 공산주의에 두려움을 느끼며 자연법 전통으로부터 ‘국가의 지배에 잠식되지 않는’ 보편적 인권 개념을 빚어내기까지 19세기에 정치·도덕 언어로서의 권리 언어가 어떠한 운명을 겪게 되는지는 아직 새로운 연구자를 기다리는 주제로 남아있다.

 

*앞서 3번 항목에서 소개한 하콘센의 작업이 지성사적 접근법을 받아들인 도덕/정치철학사 연구에 가깝다면, 방금 소개한 세 편의 글은 한층 더 미시적인 정치적 맥락 내에서 사상적 실천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다루며, 따라서 18세기 후반-19세기 초 영국/프랑스의 논의를 공부하는 분들께도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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