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영국의 가정담론과 여성의 우정에 관한 기초적인 노트

Intellectual History 2022. 5. 3. 04:30

18세기 영국의 가정담론과 여성의 우정이라는 주제에 관해 후배의 논문작업에 코멘트했던 내용.

1) 17-18세기 영국 가정담론의 기본적인 뼈대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기 문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당대 영국은 애초에 고전어 읽는 능력이 상류층/지식인의 1차적인 기준 중 하나였으며, 키케로와 아리스토텔레스, 크세노폰을 수시로 번역해서 교양독자들이 읽는 사회였다. 성인 남성=시민이 있고, 국가/사회는 그 시민들의 집합체로 이해된다. 각 시민은 가부장으로서 자신의 가정을 지배/관리하고, 여성·하인·미성년 아동은 그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가부장의 관리를 받는다.

이러한 담론에서 시민의 삶은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구성된다. 

a. 자기 자신의 여러 역량을 키우고 악덕/약점을 관리하는 영역
b. 가부장으로서 가정을 관리하는 영역(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다아시가 베넷 씨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건 베넷 씨가 가정관리에 실패한 가부장이기 때문이다)
c. 시민으로서 가정 바깥에서 전체 사회/국가의 운영과 통치에 참여하고 다른 시민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영역

이때 여성이 위치하는 영역은 기본적으로는 b의 가정영역이다. 고대 그리스·로마를 상상하면 쉽게 감이 오지만, 이때의 가정은 (적어도 관념적으로는)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수준의 핵가족이 아니라 토지·장원과 같은 가족의 생산수단/살림살이 전반을 지칭한다. 물론 18세기 영국은 한편으로는 "상업사회"로서의 자의식이 대두하는 곳이자, 현실적으로 여러 형태의 노동을 통해 먹고사는 여성이 존재하는 시대였지만, '정상적인' 가정을 논하는 언어는 여전히 기본적으로는 '농경사회'의 자급자족하는 정치-경제 단위로서의 가정을 전제하고 있었다. 여기서 가정의 경제를 지탱하는 것은 하인(고대세계 혹은 초기 근대에서도 아메리카나 식민지처럼 노예들이 허용되는 세계에서는 노예들)들의 노동이었다. 이때 가부장은 시민으로서 공적 영역=가정 바깥의 활동에 참여하는 게 미덕이자 의무인 사람들이니, 이런 가정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부유한 상류계층이라면 가정 경영능력을 갖춘 집사에게, 그보다 소박한(?) 규모의 가정은 부인에게 이러한 역할을 할당한다(실제로 가부장 사후에 부인이 영지를 관리하고 경우에 따라서 발전까지 시키는 사례들도 있는 듯 하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으로 알려졌던 <가정관리술>이나 크세노폰의 <가정관리술>은 남성에게 자기 절반 정도 나이의 여성을 부인으로 맞아들여 가정을 관리하는 요령을 가르치고 훈련시켜 최종적으로는 부인이 가정관리를 전담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한다. 이렇게 가정,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가정사/가사oikonomia*가 부인의 몫이라는 성별분업은 고전기에서 18세기, 아니 거의 20세기 초중반까지도 이어지는 것 같다. "복부인"처럼 부동산 투자를 통해 재산을 불리는 부인들을 지칭하는 말이 1990-2000년대까지도 남아있던 한국을 생각해보면 이 관념은 꽤나 최근까지 지속된 듯 하다.

 

(*지금 우리가 경제economy라고 부르는 그 말의 원어. 18세기에도 "Oeconomy"라고 하면 보통은 가정의 살림살이를 지칭하고, "economist"라는 단어가 [대체로 부인의 능력을 칭찬하는 말로 쓰이는] '가정살림꾼'을 지칭하는 용례는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어휘의 역사를 추적해보면 가정관리술로서의 "economy"가 먼저 있고, '국가'polis의 살림살이에 관한 학문이라는 "political economy"란 말이 등장하는 시점은 그 다음인데, 후자의 위상이 점차 공고해지면서 19세기 중후반에 "political"을 뗀 "economy", "economics"가 [국가단위의] 경제/경제학이라는 용법을 획득한다고 할 수 있다)


2) 17-18세기에 영국의 가정/여성담론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여성도 여성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능력이 필요하고, 그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확산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여성을 (도덕적 능력을 포함한) 여러 역량의 주체로 만드는 과정이 담론적으로나마 구축된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이 이전까지 애초에 교육이고 뭐고 시킬 필요가 없는 방치된 존재로 간주되었다면 (교육받은 소수의 여성들은 대체로 딸을 교육하는 가풍이 있는 인문주의/학자 집안 출신들이었다) 이제는 제대로 교육을 시켜서 도덕적으로도 튼튼하고 신앙생활도 잘 하고 집안 살림도 깔끔하고 효율적으로 척척 해내는 능력있고 올바른 주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담론이 대두한다. 그런 맥락에서 17세기 후반부터 여성 및 여성교육을 위한 각종 교육서·지침서가 점차 출간되는 양상을 볼 수 있다.

 

이를 부정적으로 보면 여성에게 각종 도덕적 굴레가 씌워지는 거고, 좋게 보면 여성의 능력과 주체성이 올라가는 건데(어쨌든 교육을 제공하고 능동적인 행위자로 간주하는 거니까) 현실은 둘 다일 것이다. 현대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여러 가지로 불만스러울 수 있지만,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여성주의자들이 등장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 자체가 마련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3) 당시 영국에서 여성교육을 주도한 중요한 동력 중 하나는 교회였다(20세기까지 '신여성'들이나 '페미니스트'들 상당수가 기독교적 배경을 지닌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복잡한 이야기를 최대한 생략하고 넘어가면, 기독교 담론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여성/가정담론의 변화를 이끌면서도 중요한 긴장의 지점을 남겨두었다. 여성은 가정에서는 가부장의 지배를 받는 구성원 중 한 명이지만, 교회에 가면 똑같이 구원과 신앙생활의 대상이 된다. 간단히 말해 여성이 남편이나 아버지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게 중요하니까 당신들 말 안 들을래요, 내 주인은 하나님이지 당신들이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실제로 초기 교회부터 각종 여성 순교자 전승을 보면 이교도인 아버지/남편에 맞서 '신의 신부'가 되는 걸 선택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다른 교인들과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고받는 의무도 있다보니, 기독교인으로서의 여성은 자연스럽게 좁은 의미의 가정에 국한되지 않는 '사회생활'도 하게 된다--이런 맥락에서 이 시기에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공적 영역/사적 영역의 분할을 성급하게 적용하면 곤란하다. 부인용 지침서에 자애(benevolence)의 의무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가정생활의 의무 중 하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이웃을 돕는 거다, 라고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여성의 '사회적 역할'도 생기는 것이다(예전에는 그래서 교회에 여성부/부인회가 중요한 축이었던 거 같은데 요즘 교회들은 어떤지 모르겠음).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 젠더론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여성신도들에게 기독교인으로서의 의무와 신앙인으로서의 의무가 갈등구도가 아니며 양립가능하다는 것을, 가능하다면 둘이 하나의 의무라는 걸 납득시킬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17-18세기의 '초기 여성주의' 담론은 이 점을 파고 들어 여성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남편과 결혼에 복속되는) 전통적인 여성 주체의 의무를 상대화시키는 전략을 선택하는 예도 종종 볼 수 있다.

 

cf. 18세기 말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급진파의 공화주의적 언어를 배경으로 삼고 '나라가 잘 되려면 가정이 잘 되어야 하고, 가정이 잘 되려면 여성이 부인/어머니로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선택지를 고른 사례다. 사회가 잘 굴러가기 위해 여성에게도 의무/책임을 부여하는 기존의 담론이 있고, 이 담론의 논리구조를 하이재킹하여 '그러니까 여성의 주체적 역량을 끌어올려야만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전략은 앞 시대의 초기 여성주의 담론과 근본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나는 <여권의 옹호>에서 이전 시기의 여성/가정담론에서 유의미하게 새로운 주제를 도입하는지에 회의적이다. 루소를 비롯한 당대 여성교육론의 일부를 공개적으로 실명비판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여권의 옹호>를 채우는 내용 대부분은 이미 18세기 여성문인·여성교육가들에 의해 전개된 것들이다. 사후 '사생활'을 담은 전기가 출간되면서 울스턴크래프트가 대대적으로 매도되기 전까지 <여권의 옹호>가 대체로 큰 이의없이 받아들여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 책이 기존의 담론에서 논의된 내용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4) 18세기 영국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conversation를 잘 수행하는 사회적 능력, 혹은 일종의 사회성sociability/sociality이 매우 중요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커피하우스, 클럽과 응접실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을텐데, 커피하우스나 클럽에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여성들은 응접실 또는 편지교환을 사회적 의사소통의 주된 통로로 이용할 수 있었다. 편지를 예의있게 또 재미있게 잘 쓰는 능력을 익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점차 중요성을 부여받았다(넓게 말하자면 리처드슨의 <파멜라>의 인기도 이런 흐름의 일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여성과 남성, 또 여성과 여성의 사교적인 관계형성이라는 주제를 공식적인 여성·가정담론에서 다루는 게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게 된다.


5) 우리가 갑자기 처음 열리는 수업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히 기존의 커리큘럼을 참고해서 베끼고 짜깁기하는 것이다(!). 여성의 교육도 비슷하다. 원래 여성교육의 커리큘럼이라는 게 매우 추상적인 형태로만 존재했던만큼, 여성을 도덕적 주체로 만드는 교육과정은 이미 훨씬 구체적으로 진척되어 있던 인접분야를 상당한 부분을 참고 혹은 변용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인접분야란 바로 남성의 주체성/교육과정을 설명하는 지식이었다. 

여성의 우정은 그렇게 모방을 통해 발명된 개념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본래 고전기 남성 시민들 간의 개념이었던 우정은 16-17세기 인문주의 담론에서 재발굴된다. 여성문인들·여성교육론자들은 이를 참고해서 여성-여성 (좀 더 문제적으로는 결혼관계 바깥의 여성-남성) 간의 우정 담론으로 구축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나는 아직 이 일련의 과정을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정리한 연구를 본 적이 없는데, 어쨌든 박사 이후의 프로젝트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

6) 지금까지 설명했듯, 현실에서 여성들이 가정영역, 혹은 남편/아버지/자녀와의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 외부 구성원들과 교류하는 기회가 늘어나고, 또 친구/우정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담론적 뒷받침이 함께 진행되면서 여성의 우정은 18세기쯤 되면 여러 가지 형태로 언급되는 듯 하다. 나도 아직 명확히 정리한 내용은 아닌데, 지금까지 본 문헌에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여성 간의 우정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들이 주로 다뤄지는 듯 하다.

a. 현실 혹은 가상의 여성 간 우정을 묘사하고 칭송하는 주제; 때때로 결혼과 비교하여 여성 간 우정이 더 우월하다는 주장으로도 발전
b. 여성에게 우정이 어떻게 좋고 나쁜가, 혹은 좋은 우정과 피해야 할 (가짜) 우정이 무엇인가를 규정하고 구별하는 방법
c. 여성이 여성 친구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바람직한 혹은 피해야 할 친구의 유형과 요건

여성 간 우정의 담론을 제대로 보려면 이런 주제들을 식별하고, 어떤 장르의 글에서 어떤 주제가 다뤄지는지 섬세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여성 우정을 비판하는 문헌 또한 그게 여성 우정 자체를 비판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성 간 우정 중에서 '해로운' 유형을 비판하는 것인지를 구별해야 한다. 이중 a와 b의 주제의 경우 여성의 우정과 여성에게 기존에 주어진 가정적 역할 사이에 미묘한 긴장을 감지하는 문헌들이 가끔 보이기는 한데, 18세기 중후반에 그 긴장이 얼마나 명료화되는지는 나도 앞으로 공부해야 함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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