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하순의 노트 두 편

Comment 2021. 11. 2. 17:25

[2021년 10월 22일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던 글]

 

17-18세기의 신학-정치적 논쟁과 얽혀있는 팸플릿들을 읽다보면 깨닫게 되는 슬픈 사실 중 하나는, 20세기 후반 인문학 분과의 여러 '비판적' 논의들의 상당수가 그 정치적 입장과 별개로 신학적 논변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험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하여간 우리 삶에 중차대한 영향을 끼치는 어떤 근본적인 동인이 있고 세상의 모든 좋고 나쁜 문제는 그로부터 기원한다는 논리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20세기 후반 서구 학술장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간 비판적-철학적 논의에서 이 틀에 해당하지 않는 걸 찾기가 더 어렵다).

 

현실의 모든 문제들이, 역시나 비록 경험적으로 증명할 순 없지만, 그 근본적인 무언가의 반영 혹은 '증상' 같은 것에 불과하다는 논리 역시 마찬가지다. '증후적 비판' 비슷한 이름으로 널리 공유된 구호에 따르면, 평자들은 급변하는 사회의 이슈들을 전혀 따라가지 않더라도 그 근본적인 원인만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자신이 세상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20세기 초반 비판이론이 정신분석을 처음 도입할 때, 그들의 의도는 경제적인 요소로 설명이 되지 않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는 (당대에 매우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지적 도구를 도입하려는 것에 가까웠다; 오늘날 정신분석은 더는 그와 같은 사회적 인정을 받지 않지만, 그것이 인문학의 '이론적' 영역에 남겨놓은 여러 파생물은 그 사용자로 하여금 0.01만큼 자료를 봐도 100만큼 말하는 걸 정당화해준다는 데서 지금도 어딘가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반복하고 있다. 할렐루야, 아멘.

 

물론 과거와 오늘날 사이에 차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초기 근대의 논변들은 대체로 선함과 정당성의 기원을 탐색하는 것이었으며, 저자들은 자신들이 신학적 논변을 두고 논쟁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그러한 논쟁은 당시의 정치와 사회에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반대로 오늘날의 유사신학적 논의는 사회의 '진정한' 문제와 악, 혹은 해방적 힘의 원천을 논하며(그게 그러한 논의들이 한 발자국만 더 들어가면, 대표적으로 아감벤의 것이 그러하듯, 유사종말론이 되는 이유다), 자신들의 논의에 깃든 신학적 성격을 인지하지 못하고(오늘날 리버럴-진보 인문학계의 '비판적' 유사신학의 가장 역설적인 면은 그 사제와 신학자 본인들이 이 세계의 세속화가 완료되었다고 당연히 전제한다는 데 있다), 결정적으로 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과정에 별다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지적 여흥으로 간주된다.

 

나는 신학적 논리구조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반대로 누군가가 그러한 도식을 휘둘러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이 딱히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과학적' 사고훈련을 받은 지식인들이 종종 간과하지만, 대중적인 정치-문화담론에서 신학적 도식은 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원천으로 기능해왔고, 역사는 이 사실을 무시하는 '합리적 지성'이 거대한 리바이어던이 내리찍는 가벼운 일격에 너무나 쉽게 쓸려나가고 만다는 걸 잘 보여준다. 비판과 성찰 같은 키워드를 매우 당연하게 꺼내드는 우리 인문학계의 여러 영역에서 정작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효과를 낳을 것인지, 자신이 누구의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에 철저히 맹목적인 상태로 남아있다는 게 나의 작은 불만이다. 언어를 구사하는 자가 자신의 언어에 어떤 책임과 무게가 따라붙는지 망각할 때, 그 말은 진짜로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한다.

 

많은 인문학적 사회비평가들이 스스로의 언어적 계보에 무지한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에 비하면, 오늘날 생계와 직업의 수단으로서 인문학의 영역이 빠르게 쇠퇴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사소한 일일지도 모른다. 현재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없고를 정확히 이해할 능력이 있다면 상황이 급변해도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우리 학계는 그러한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공유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P. S.

 

개선할 점은 한도 끝도 없이 나오겠지만, 자료의 범위를 설정하고 해당 자료를 엄밀하게 분석하여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 곧 자료분석이 핵심이라는 사실은 대다수의 인문학 연구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유감스럽게도 이 과정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지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문학의 여러 영역 내에서도 제한적으로만 공유되고 있으며, 이러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종종 큰 붓으로 큰 글자를 써내는 데 아무도 '비판'을 제기하지 않는 분위기는 오늘날 인문학적 관용의 이름으로 칭송되고는 한다.

 


 

[10월 29일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던 글]

 

17-18세기 영국에서 출판된 철학서, 수양서, 평론, 도덕지침서, 교육론, 기독교 설교문... 같은 걸 읽다보면 보통 한국어로 "감정"이라 부르는 영역을 지칭하는 단어가 제법 다양하고 그 용법도 장르마다, 또 저자마다 묘하게 조금씩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된다(feeling, sentiment, emotion, passion, affection, sensation 등등... 여기에 pity, sympathy, love, charity 등등 좀 더 특정한 쓰임새를 지닌 단어들로 들어가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조금 다르지만 그에 못지않게 초보적인 해석자들을 엿먹이기 좋은 예는 "이성"(reason)인데, 왜냐면 이 단어는 사용자에 따라 매우 다른 의미와 용법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성은 어떤 저자에겐 단순히 계산하는 능력이고, 다르게는 자기 자신의 정념을 통제하는 능력이며, 사태의 이치를 따지는 합리적 사고능력이기도 하고, 신을 인식하는 역량이기도 하며--물론 신학적 입장에 따라 신 및 신에 관한 지식을 인식하는 수단으로서의 이성을 규정하는 구체적인 용법도 갈라진다)--... 등등이다(그게 내가 기본적으로 18세기 철학을 합리론 대 경험론으로 나누는 '근대적' 철학사의 도식에 회의적인 이유 중 하나다. 저자마다 "이성"의 용법이 동일하다는 보장부터가 없는데 굳이 그걸 유지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언제나 번역자의 순발력을 요구하는 "idea"나 "sense", "learning", 좀 더 엿같은 난이도의 "manners", "polite", "civility", "good-breeding" 같은 단어는 말할 것도 없다.

 

이 모든 어려움의 근본적인 이유는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다. 17-18세기 영국과 21세기 한국의 언어는 역사와 도덕, 철학 등등의 기본적인 전제부터 매우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두 시공간이 공통적으로 문화적으로 매우 역동적인 세계였다는 것도 한몫한다). 물론 그러한 어려움의 인식이 21세기의 한국어로 소통해야 하는 초기 근대 시기 연구자들의 난이도를 낮춰주지는 않는다. 어떤 고통은 그것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그때그때 주석을 달고, 임기응변을 발휘하고, 지적을 받고 고치거나 다시 설명을 덧붙이고, 이런저런 신조어를 시도해보다가 문장가독성이 개판이 되는 걸 깨닫고 그냥 적당히 한국어로 말이 되는 단어를 고르고... 등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아주 약간 더 의심투성이고 회의주의적이면서도 겸손하고 관용적인 인간이 된다. 이런 문제는 내가 그렇듯이 남들도 별 수 없다는 걸, 반대로 남들이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만큼 나도 완전한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당연히도 그냥 공부가 안 돼서 엉망으로 번역한 건 바로 눈에 들어온다--젠장, 관련 전공자에게 코멘트 좀 받지!라고 생각하면서).

 

이른바 타자성에 관한 인식이라는 것은 대단한 게 아니다. 그것은 내가 절대로 완벽하게 번역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세계를 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옮겨야 한다는 것, 나의 번역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운이 약간 좋다면 그럭저럭 의미가 통하기도 한다는 것(아주 가끔은 거기에서 진짜 중요한 포인트를 잡아채는 독자들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이 나와 남에게 함께 해당된다는 사실의 인식이다. 그것은 사소하고 일상적이기 때문에 실천적이며, 반대로 실천적이기 때문에 사소하고 일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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