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사와 지성사 연구: 어느 동료의 작업구상을 듣고

Intellectual History 2020. 11. 12. 01:13
30분 전, 내 생각에 지금까지 한국에서 나온 인문학 연구 중에 드물게 '이건 제대로 완성만 되면 정말 세계 레벨에서 생각해도 대가 수준의 작업'이라는 확신이 드는 논문 설명을 들었다(한국 인문학계에 대가가 없지는 않겠지만, 동시대에서 작업하는 사람에게 이 정도의 구도를 접하는 건 처음이다). 유감스러운 점 두 가지가 있다면, 내가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서 나중에 초고를 받아 읽는다고 해도 아주 일반적인 수준의 코멘트밖에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아쉬움, 그리고 한국 학계에서 이 작업의 뛰어남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사람이 아직 매우 드물기 때문에 저자의 역량이 꽤 긴 시간 동안 충분히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1.

보통 지성사·사상사 연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정치사상사, 혹은 (정치)철학자들의 작업을 역사화하는 연구다. 물론 지성사 연구에는 다른 흥미로운 영역이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전에 몇 번 언급한 학술사history of scholarship 계열의 작업이다. 스키너나 포콕의 케임브리지학파보다 더욱 유구한 전통, 즉 고전·르네상스 문헌학 연구를 계승하는 학술사가들은 단지 과거 저자·저작의 지적 맥락을 복원하는 것을 넘어, 과거의 '학문적' 성과물을 역사적으로 탐구한다. 즉 통상적인 정치사상사 연구가 과거의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정치적 논쟁과 그 언어를 복원하고 거기에서 텍스트와 저자가 갖는 의미를 재구성한다면, 학술사는 보다 좁고 전문적인 영역, 즉 과거의 학문적인 작업이 놓여있던 학술적 맥락과, 그 맥락 속에서 그 작업이 어떠한 의미를 가졌는가를 추적한다.

많은 연구자들에게 학술사에의 입문서로 간주되는 아르날도 모밀리아노Arnaldo Momigliano의 1950년 논문 <고대사와 고물수집가>(Ancient History and the Antiquarian)를 예로 들어보자. 모밀리아노는 18세기까지의 초기 근대 유럽인들이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썼고 탐구했는가를 다룬다. 이 글이 오늘날의 연구자들에게도 강렬한 충격을 선사하는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과거인들의 역사서술을 읽을 때 '기법'의 차원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한다는 데 있다. (초기 근대 시점에서 볼 때) 정통적인 역사서술의 목표는 주요한 인물의 행위와 증언에 입각하여 정치체 또는 정치적 영웅들의 운명을 서사화하는데 있었다. 모밀리아노는 초기 근대에 그것과는 다른 역사서술의 전통이 점차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고물수집가·고문헌연구자들은 고대와 중세의 다양한 유물을 수집하고 보관했을 뿐만 아니라, 유물로부터 무슨 사실을 어떤 방식으로 추측해낼 수 있는지를 정열적으로 탐구했다.

결과적으로 고물수집가들은 과거를 재구성하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와 그 자료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을 넓혔고, 나아가 그로부터 (좁은 의미의 정치사에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졌던) 과거의 문화와 사회상이 그 자체로 역사적 복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정통적인 역사가들을 포함해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이들의 자료수집욕, 그리고 지엽적인 사실관계에 몰두하는 성향을 경멸하고 조롱했다. 그러나 모밀리아노는 결국 고문헌수집·연구의 성과와 접근법이 역사가들에게도 받아들여졌을 뿐만 아니라(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는 18세기에 정통적인 역사서술과 고문헌연구의 방법이 통합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실례였다), 20세기의 야콥 부르크하르트와 같은 문화사에까지도 이어지는 현대 역사학의 핵심적인 영역으로 자리 잡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2.

모밀리아노의 지도학생으로서 르네상스 학술사 연구의 대가로 우뚝 서 있는 앤서니 그래프턴Anthony Grafton은 여러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스승의 통찰을 깊이에서나 너비에서나 과거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시켰다. 그의 엄청난 작업량과 영향력을 요약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이므로, 여기서는 그래프턴의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인 <조제프 스칼리제르: 고전문헌학의 역사에 관한 연구>(Joseph Scaliger: A Study in the History of Classical Scholarship, 1권은 1983, 2권은 1993 출간)의 의의만을 간단히 설명하자. 책은 르네상스 시기의 가장 뛰어난 고전문헌학자 중 한 명인 조제프 스칼리제르를 다룬 전기(傳記)다. 우리가 아는 통상적인 전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한 명의 학자로서의 스칼리제르에, 그리고 스칼리제르가 남긴 저작들이 어떠한 '학문적 방법'을 활용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이다.

그래프턴은 먼저 15세기 후반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고전문헌을 연구하는 방법론이 어떻게 발전했으며, 이에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 프랑스 고전문헌학 방법론의 갈등을 다룬다. 당대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문헌학자라 할 수 있는 안젤로 폴리치아노Angelo Poliziano가 여러 수고본manuscript 중에서 정본을 어떻게 정할 것이며, 수고본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원칙을 확립했다면, 프랑스인들은 오래된 수고본을 엄격하게 따르는 것보다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판본 간의 언어를 비교하는 방법이나, 문헌이 속한 문학적·철학적 장르에서 통용되는 용법을 참고하는 추론적 방식이 효과를 발휘할 때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프턴은 최초에 프랑스적 전통에서 수학한 스칼리제르의 고전문헌 비판방법이 어떻게 점차 이탈리아적 전통에 가깝게 변해가는지를 추적한다(물론 이후 스칼리제르는 고전문헌의 비평판을 내는 것을 넘어 역사연대기와 같은 다른 장르로 향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작업에서 그래프턴이 어떠한 연구모델을 확립했는가에 있다. 그는 (부분적으로 수학사 연구를 참고하여) 단순히 당대의 논쟁과 인적 네트워크를 살펴볼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의 여러 고전문헌학자들이 동일한 고전문헌 대목을 어떤 방식으로 복원했는지, 어떠한 주석을 다는지를 철저하게 파고들어간다. 간단히 말해 그래프턴은 과거의 학자가 스스로의 연구대상을 다루기 위해 활용한 '학문적 방법' 자체를 다시 읽어내고, 그러한 방법이 다른 방법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음에도 분명 이루어지고 있었던, 오직 같은 문제를 다루는 학자들끼리만 읽어낼 수 있는 논쟁의 쟁점이 무엇이었는가를 복원한다. 스칼리제르가 학자로서 보여준 천재성은 단순히 매우 많은 자료를 읽고 외웠다는 것을 넘어 자신이 다루는 과거 문헌의 사소해보이는, 같은 시대의 동료들이 무시하고 지나쳐갔던 디테일한 오류가 왜 발생했는가를 역추적하여 새로운 역사적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데 있었다--그래프턴은 스칼리제르가 자신의 비평판에 남긴 주석에서 이 사실을 다시 찾아낸다.


3.

모밀리아노와 그래프턴의 연구가 이를 접한 사람들, 정확히는 이들의 연구가 함의하고 있는 바를 읽어낼 수 있었던 연구자들에게 엄청난 지적 충격을 주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오늘날 영국에서 학술사를 계승하는 가장 뛰어난 젊은 연구자들은 위 연구에 노골적인 정도의 존경심을 표하고 있다). 학술사 연구는 과거의 지적 작업을 이해하는 일이 그저 내용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형식과 방법을 복원하는 차원에서도 높은 수준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입증했다. 학술사가들은 또한 지성사 연구가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논쟁만이 아니라 과거 최고의 지성인들이 남긴, 혹은 매우 전문적인 집단 내에서 생산되고 유통된 텍스트 또한 엄밀한 해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의 관심사에서 모밀리아노와 그래프턴 이후의--물론 1950년생 그래프턴은 여전히 현역으로 필드를 선도하는 대가이지만--학술사 연구에서 눈길이 가는 흐름 중 하나는 학술사적 문제의식과 정치사상사적 문제의식이 맞닿는 사례들이다. 많은 사람들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지적인 축적이 이루어진 사회에서 학문적 논쟁이 정치적인 성격을 띠거나, 반대로 정치적인 논쟁이 고도의 학문적 테크닉을 빌려 이루어지는 일은 일상적이다(멀리 갈 것 없이 부정투표와 통계적 방법론의 문제나, 정치적·경제적 쟁점에 있어 법학 및 사회과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수행하는 역할을 생각해보자). 이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부터 계몽주의의 시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유럽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특히 2000년대 이후 학술사가, 혹은 학술사의 보다 정교화된 문헌학적 접근법에 함축된 잠재력을 깨달은 연구자들은 이처럼 특정한 학문적 저작이 어떠한 정치적인 논쟁과 닿아있었으며, 반대로 정치적인 논쟁의 참여자들이 학문적인 성과를 어떻게 참조했는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예컨대 성경 구절을 어떻게 번역하고 이해할 것인지, 어디까지가 계시와 기적의 이야기고 어디까지가 비유와 '다소 과장된' 표현인지, 교부들의 저작과 행적을 어떤 식으로 해석할 것인지는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쟁점과 연결되어 있는 문제였다. 보다 거대하고 전문적인 정치신학적인 주제는 말할 것도 없고, 예컨대 17세기 후반 잉글랜드의 '초기 페미니즘' 텍스트 중에서는 바울 서신 특정 어휘의 번역을 두고 그리스어 판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제임스흠정역에 문제가 있으며 제네바역 성경이 더 낫다는 주장을--그에 따르면 후자의 번역은 남편과 부인의 관계를 좀 더 평등하게 표현했다--개진하는 예도 있다. 그 시기 가장 유명한 여권 옹호자이자 여성 지식인이었던 메리 아스텔(Mary Astell)은 자신이 고전문헌을 제대로 읽을 수 없으니 성경의 비평과 번역을 둘러싼 논쟁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음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학문적 방법의 차원에 주목하는 접근법을 통해 새롭게 읽어낼 수 있는 영역은 전문가들 사이의 논쟁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학술사의 접근법과 문제의식이 영향을 끼친 또 다른 분야는 오리엔트와 아랍, 이슬람 세계의 연구다. 초기 근대의 학자들은 무엇보다도 성경과 고대사 연구를 위해 오리엔트와 아랍세계를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17세기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는 모두 아랍(어) 연구를 위한 자리를 만들었으며, 부유한 인사가 직접 오리엔트 지역을 방문하여 다양한 유물을 수집해오는 일 또한 점차 빈번해졌다. 그들의 관심사는 단지 비유럽 세계를 이국적이고 기괴하게 묘사하는 데만 있지 않았다(그런 점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실제로는 서구의 오리엔트 연구에서 일부분만을 조명하고 있다). 그들은 아랍과 오리엔트의 역사를 쓰고자 했고, 경전을 탐구했으며, 경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언어를 다시 연구하고자 했다--고전문헌과 성경의 검토를 위해 벼려진 문헌비판의 방법은 아랍어 문헌의 검토와 연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초기 근대 유럽의 오리엔트 지역 연구에 대한 학술사적 접근법은 1990년대에 점차 시도되기 시작하여 이제 꽤 두툼한 단행본 사이즈의 연구서가 매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케임브리지 정치사상사학파의 대가들이 학술사적 관심사를 받아들인 예도 흥미롭다. 홉스 연구자로서의 퀜틴 스키너는 한국에는 거의 소개되어 있지 않은데, 1990년대 이래 스키너가 홉스 연구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지점 중 하나는 르네상스-튜더 시대의 수사학적 전통을 재구성하고, <리바이어던>을 포함한 홉스의 주요한 정치 저술이 그러한 인문주의적 전통과 닿아있음을 지적한 데 있다(<홉스 철학에서의 이성과 수사학>Reason and Rhetoric in the Philosophy of Hobbes, 1997). 그의 최근 논문모음집이 <인문주의에서 홉스로: 수사학과 정치학의 연구>(From Humanism to Hobbes: Studies in Rhetoric and Politics, 2018)라는 제목을 달고 있음은 단순한 취향 문제가 아니다. 가장 뛰어난 홉스 연구자가 가장 뛰어난 학술사 연구자일 수도 있음을 입증한 또다른 예로는 노엘 맬컴Noel Malcolm의 저작, 특히 "홉스, 에스라, 성경: 어느 전복적인 관념의 연구"(Hobbes, Ezra, and the Bible: The History of a Subversive Idea; _Aspects of Hobbes_, 2002에 수록)가 있다.

물론 정치사상사와 학술사의 문제의식을 결합한 가장 거대한 작업물은 J. G. A. 포콕(Pocock)의 <야만과 종교>(Barbarism and Religion, 6 vols., 1999-2015) 연작이다. 직접적으로 모밀리아노의 기번 해석을 참고하고 또 이를 (부분적으로) 수정하고자 하는 포콕의 책은 기번의 <쇠망사>를 다루기 위해 그의 역사서술이 연결되어 있는 초기 근대 유럽의 다양한 학문 전통을 심도있게 탐색하고, 그것이 역사서술이라는 글쓰기 장르에 어떠한 방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준다. 포콕은 단순히 특정한 학문들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각각의 지적인 전통에 속한 텍스트들을 하나씩 검토하면서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쓰여졌는지, 저작에 어떤 글쓰기 장르들이 교차·결합했는지, 글쓰기를 통해 어떤 논쟁점들이 드러나는지를 재구성한다. 독자로 하여금 그래프턴의 스칼리제르 전기가 부여한 충격에 버금가는 (혹은 독자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지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야만과 종교>일 것이다.


4.

한국의 인문학 연구자들 중 많은 이들이 어느 순간에서 지적인 발전을 멈추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핑계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 그중 하나는 진짜로 뛰어난 연구,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축적된 연구, 독자로 하여금 (책의 정수를 소화할 수만 있다면) 새롭게 사유하도록 하는 연구를 따라가고 자기의 지적 자원으로 만드는 일을 좀처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의 탓이든 본인의 탓이든 간에, '선생님'들께서 더 높은 지평을 추구하기는커녕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자신의 동학과 제자들에게 자기와 같은 지평에 머물러 있기를 기대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학자들이 더 깊은, 더 넓은 연구를 하기는 쉽지 않다. 젊은 연구자들이 논문실적에만 신경쓴다는 한탄의 뒤에는 '에이, 내가 공부 별로 안 한 건 사실이지만 연구란 거 별로 없잖아, 그냥 학회와 프로젝트 일이나 열심히 하면 되지!'라는,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영역을 보잘 것 없는 일로 치부하는 지적인 나태함이 깃들어 있기 일쑤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러한 태도가 개인적으로 소름끼치게 싫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문학 연구자들의 일에도 지극히 해롭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이 스스로의 지적인 게으름을 인정하는 건 그분들의 자유일 수 있겠으나, 그러한 태도가 젊은 연구자들을 좀먹어 어느새 대충 어느 선만 맞추면 된다는 문화로, 자신이 박사 때 공부한 것 이상의 깊이로 갈 필요는 없고 그때그때 유행하는 키워드나 적당히 받아먹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으로, 나아가 자신들의 동료와 후배들이 무언가 위대한 작업의 문을 열어젖히고자 할 때 '딱 이만큼만 하면 되잖아, 왜 그런 번거롭고 쓸데없는 일을 하려고 해?'라고 지적하는 게 현실적이고 우정어린 충고라고 착각하도록 하는 지적 열등함의 집단적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도저히 좋아할 수 없다.

어느 분야에서나 전문 연구자들의 작업이 갖는 의미는, 특히 그것이 더 깊고 심원해질수록,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제대로 음미하고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바꿔말해 직접적인 유용성이 전제된 분야들을 제외하면 해당 분야의 연구자들이 자신의 작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자신의 지적인 노력에 얼마나 진지한지의 여부가 그 필드의 사회적 가치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임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위기론 자체가 진부해졌을 정도로 인문학의 위상이 바닥을 구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인문학 연구자들 자신이 자신의 공부를 값싸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적당히 재치있는 말을 해서 펀딩과 인기나 타먹으면 되는 것처럼 취급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작업이 진짜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 길을 골랐고, 나와 동료들이 진짜로 좋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기를, 또 그럴 때가 왔을 때 그에 걸맞는 가치를 (비록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일지라도) 인정받기를 바란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언급한 동료의 작업이 언제 형태를 갖춘 결과물로 나올지는 모르겠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의문에서 시작하여 그것이 어떠한 지적인 체계로부터 비롯되는지를 추적하고, 그것이 또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주는 작업이 영어권의 좋은 대학의 좋은 출판부에서 접하는 걸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바로 나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동료의 손에서 빚어지고 있다는 건 한국의 인문학 연구자에게는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고 기쁜 일이다. 그게 기대만큼의 수준으로 완성된다고 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이해하고 음미하며, 나아가 자신의 작업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지적인 자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정말로 뛰어난 작업은, 그 방법론과 통찰의 가치만 이해할 수 있다면, 설령 시공간적 대상을 공유하지 않더라도 나의 연구를 성장시킨다). 우리가 자기만족적인 정체 상태를 반복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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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인 2021.02.18 19:22 Modify/Delete Reply

    서울대 인문대 졸업생이고 대학교의 인문학 교육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사람으로서 어떤 구상일지 어떤 학과의 학자분인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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