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자본주의, 대중민주주의, 복지국가, 민족적 정체성 [130211]

Critique 2014. 3. 18. 14:22

*2013년 2월 11일 페이스북


spatkapitalismus (독일어를 제대로 표기 못하는 걸 양해바란다) 가 19세기 초중반의 영국으로 대표되는 고전적 자본주의의 구도와 특히 class struggle에서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생각하기. 18-19세기, 좀 더 길게 잡으면 청교도 전쟁시기부터 19세기 후반까지의 영국사회가 기존에 나뉘어 있던 계급들이 산업자본주의로의 이행을 거치면서 상호대립/투쟁국면으로 돌입하는 시기였다면, 디즈레일리의 보수당 집권 이후 보통선거에 접근한 이후의 자본주의는 조금 다른 국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노동조합운동의 융성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대립/분할선이 이전보다 선명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예컨대 E.P. 톰슨의 두 저작 <The Making of English Working Class>와 <William Morris: From Romantics to Revolutionary>를 함께 읽은 사람이라면 후자가 그려내는 시대가, 비록 후자가 톰슨의 처녀작임은 감안해야겠지만, 전자에서 톰슨이 그려내는 것과 같은 대립구도를 충분히 이야기하지 못함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이렇게만 말한다면 매우 평이한 진술처럼 보인다. 그러나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해석에서 통상적으로 우리가 '경제적' 문제로 간주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전환점이 '정치적' 사건 혹은 제도변화에 의해 초래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음을 문제삼을 것이다. 여기에서 정치와 경제 영역을 혼동하는 딜레탕트적인 태도가 단순한 오류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하는 게 중요하다. 실제로 19세기 후반에 영국 정치 체제의 내부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고, 그것이 적어도 일국 내에서의 계급대립구도를 이전과 꽤 다른 것으로 바꾸어버렸다는 점, 그리고 그 변화를 고전적 자본주의의 구도를 연장시키는 것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자. 나는 VL의 제국주의에 대한 설명이 여전히 간결하고 탁월한 모범적인 저술임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국내의 문제가 국외의 문제로 전가되었음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읽혀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관점에서는 (예컨대 단순히 상층노동자들의 일부가 체제에 매수되어 자신의 본 소속을 배반하는 것으로 돌아섰다는) 서/중부유럽의 주요국가들에 점차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그리고 양차대전 이후 표준화된 모델로 등장하기 시작한 대중(소비)사회의 출현과 같은 문제들을 제대로 고찰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보통선거의 등장과 함께 초래된 변화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몇 가지 선명한 특징들을 열거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중(소비)사회의 출현, 대중민주주의 혹은 "보통선거에 의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확립, social democrats 들의 등장과 같은 문화적 측면의 지표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상부구조' 차원에서의 변화들만을 열거하는 대신 대중소비사회의 출현과 함께 경제적인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내수의 문제가 중요한 체제문제로 등장했음을 함께 생각해야만 한다. 즉, 고전적인 모델에서 단순히 노동자계급으로 분할되어 설명되던 존재들이 선거권의 부여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민'이 되었으며 동시에 대량생산공장=자본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소비자'가 되었다. 정치적으로 시민, 경제적으로 소비자(물론 여기에서 생산자=노동력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단지 소비자의 역할이 수출용 면제품이 영국 경제부흥의 주역이던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해졌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라는 정체성이 이전의 노동자계급을 포괄하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새롭게 부여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자본의 운동이 여전히 사회의 부침을 조장한다고 할 때, 체제 전반의 입장에서는 시민=소비자를 어떻게 계속해서 '정상상태'에 유지시키느냐는 것이 새로운 문제로 대두한다(대략적으로 말해 19세기 전반부에 이르러서도 영국의 지배자들에게는 빈곤층의 존재가 인륜적인 문제일 뿐 사회의 유지와 성장을 위한 필수과제로 인식되지는 않았다--<인구론>Theory of Population맬서스 정도가 그나마 예외적일 것이다). 영국사에 복지국가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건 양차대전을 거치면서부터이지만, 실제로 디즈레일리의 집권을 전후해서 어떤 새로운 경향성이 등장하는지, 그리고 제도적인 측면에서 그러한 경향성들이 어떻게 조금씩 구체화되는지를 살펴보는 건 흥미로울 것이다. 그러나 후기자본주의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사례에만 머무를 순 없다. 실제로 복지국가의 최초의 모델로서 언급되는 바이마르 공화국은 2차대전 전에 수립되었으며,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 비스마르크의 존재는 19세기 후반부에 이미 시민=소비자를 '관리'하는 것, 다시 말해 그들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정치적으로는 현 정권을 지지하며 경제적으로는 자국 기업들의 생산품들을 계속해서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도록) 제도적인 틀을 경영해나가는 것이 국가/정부의 필수적인 과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정리한다면 사회구성원들이 시민=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되는 순간부터 그들을 관리하는 것이 체제의 자기보존을 위한 필수적인 과제로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그런 점에서 통속적인 하버마스주의처럼 시민(소비자)으로부터 단지 관리의 측면만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구조적으로 실현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 위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변화는 우선 사회구성원 전반이 하나의 민족/사회/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동일한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만약 우리가 내수경기부양을 통한 경제성장 및 국민투표를 통한 정권유지가 당연한 것으로 자리잡은 사회모델을 상정한다면(그리고 나는 19세기 중후반부부터 적어도 서유럽에서는 이러한 모델로 이행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그러한 모델을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사회를 상정한다면,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간의 계급대립을 더 이상 떠올릴 수 없게 되는 편이 상식적이다. 서로 다른 후기자본주의-민족국가들의 대립이 격화되어가는 상황에서 민족문제가 계급문제를 가리는 은폐막이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실제로 사회 내부의 경제적인 격차가 해소되지 않았으며 경제구도가 위기에 접근할 수록 그러한 격차에 따른 생존가능성의 차별이 표면화된다는 점에서는 참이지만 사회 전체의 규칙이 재구성되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틀렸다. 대중소비사회 및 그에 근거한 대중문화의 등장은 (그리고 이때 출현한 대중문화가 포스트모던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고급문화'를 단순한 구시대적 잔재로 추락시키고 마침내는 모든 문화들에 고저차가 존재하지 않는 평평한 지대를 만들어버린다) 실제로 사회구성원들의 자기인식의 차원에서 계급이라는 기준 자체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대립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귀족계급의 대립이라는 고전적 자본주의의 모델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여겨져야만 한다. 대중문화의 목적은 사회구성체 자체를 고저차가 없는 평평한 지대로 만드는 것, 애초에 그 내부에서 대립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모나드들이 흩뿌려져있는 단일한 '공동체'를--그것이 단순히 상징계적인 인식체계에 불과할 뿐일지라도--만드는 데 있다. 대중문화는 고급문화의 지배적 위치를 무너트리는 게 아니라 그것이 전제하고 있는 질적 차이 자체를 폐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굳이 따지자면 오늘날 포스트모던기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대중문화의 전면적인 승리는 (그 안에서 고급문화는 단지 오타쿠적인 특이취미의 일환으로만 간주된다) 보편성이 이룩되는 과정이 변질되어 실현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재(나는 이 단어를 라캉적인 함의를 넣어 사용하고 있다)의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평평한 사회의 상징계를 찢어발기고 튀어나오는 사회구성원들의 비동질성, 즉 계급적인 격차는 새로운 사회구성체에서 단지 "우리 사회의 문제" / "불경기로 인한 예외적인 상태" 정도로 치부된다. 기회의 균등이라는 이름의 보편성=평등이 강조되는 까닭은 결과=현실의 불균등을 하나의 우연적인 것으로 격하시키고 묻어버리기 위함이다. 후자는 단지 화폐획득의 문제로 치부되면서, 개인적인 특성이나 우연적인 요소에 따라 얻어진 일시적인 우위로 간주된다. 즉 우연적인 것을 제거하고 나면 보편적인 차원에서 만인은 이미 사회 내에서 평등하다는 (비판을 위한 당위가 아닌)인식이 후기자본주의체제의 사회구성원들의 정신구조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아도르노를 비롯한 프랑크푸르트 1세대들이 경제적 틀을 최종적인 준거로 사용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놀라울 정도로 자제하는 까닭은 상기한 체제변동기의 한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아주 틀린 답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아도르노가 계급을 (문화적 표지의 한 준거로서가 아닌) 실정적으로 사용하는 적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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