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카롱'과 한국 식문화의 본질?
Comment 2019. 5. 7. 01:36[5월 6일 페이스북에 포스팅]
이왕 예정에 없던 페이스북 포스팅을 한 김에 이번에는 흥미로운 '뚱카롱' 기사에 관해 문외한의 사적인 감상평을 덧붙여 본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040600075).
한국의 뚱카롱이 기사 내 음식문헌연구자의 코멘트처럼 "마카롱의 본질에 파고든 과자는 아니"겠지만, 프랑스의 맥락과 별개로 오늘날 한국 식문화의 중요한 경향 하나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긴 하다(문화와 사상의 연구자들에게는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무언가의 수용과 진화과정에서 본래의 '본질'이 관철되는 일 따위는 없다; 좀 더 정확하게는, 현대적인 연구자들이라면 문화적 산물에서 대체로 반본질주의적 태도를 견지할 것이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비교대상으로, 작년 초코파이류 과자 시장에서 인상적인 성공을 거둔 오리온의 <생크림파이> 시리즈를 떠올려보자. 여전히 오리온의 <초코파이>만 선택하는 사람들도 물론 적잖이 있겠지만, 롯데의 <몽쉘>에서처럼 마시맬로가 아닌 크림으로 속을 채운 크림파이류는 다소간 상호연관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시장을 형성해왔다. 롯데는 2000년대 후반 마시맬로 계열의 <가나파이>를 출시하면서 초콜릿코팅에 강점을 두었고(최근 허시의 브랜드명을 강조한 <카카오파이>가 나왔는데 개인적으로는 그저 그렇다), 이는 다시 <몽쉘>에서 초콜릿코팅을 강화한 버전의 출시로 이어졌다. 이처럼 2010년대 초중반까지의 초콜릿코팅이 '겉'의 강화에 초점을 두었다면, 2018년의 <생크림파이>가 시장에 진입하면서 초점을 둔 부분은 대조적으로 '속'이었다. 간단히 말해 <생크림파이>는 <몽쉘>에 비해 개별제품의 총 너비 자체는 작을지언정 크림층을 눈에 띌 정도로 두껍게, 씹히는 느낌이 분명히 날 정도로 밀도있게 주입했고, 성공했다. 실제로 이 제품의 성공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경쟁사 롯데가 <생크림파이>의 약진이 크림 속의 강화에 있다고 본 건 분명하다--이후 새롭게 나온 <몽쉘>의 포장홍보문구는 생크림 비중이 높아졌다는 식으로 쓰고 있으니까 말이다. 처음에 기본형과 카라멜 두 가지로 시작했던 <생크림파이>는 이후 '무화과맛'을 출시되면서 디저트 시장의 흐름을 명확한 인식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것임을 다시 입증했다.
물론 구체적으로는 2010년대 중후반의 어느 시점에서 한국에서 '고체의 느낌에 가까운 좋은 크림을 듬뿍' 맛보는 게 디저트 향유자들의 중요한 선택사항이 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엄밀함을 조금 낮추고 말하면 다음과 같이 보다 일반화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겉'이 아니라 '속'이 중요하고(물론 이 범주는 시각적인 측면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속을 꽉 채워서 풍성함의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이다. 이때의 겉과 속은 상당히 자의적인 구별이다. 그러나 가령 놀라운 성공을 거둔 디저트카페 <설빙>의 빙수가 갖가지 고명--아이스크림, 과일, 쿠키 등등--을 다양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고명을 풍성하게 제공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 그러면서 보다 고전적인 형태의 (팥)빙수에서는 보조적인 역할에 지나지 않았던 고명을 빙수의 주역으로 끌어올린 사례를 떠올려보면 '겉'과 '속'에서 '속'의 넉넉함이 디저트 선택에서 (유일한 기준은 아닐지언정)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는 말이 좀 더 구체적으로 와닿을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나는 한국 외식문화에서 유사한 패턴이 좀 더 앞서 실현된 것처럼 보이는 사례를 하나 떠올릴 수 있다. 이는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던 '한국식' 피자 시장이다. 1990년대 중후반 처음 피자 프랜차이즈가 들어올 때 보급되었던 기본메뉴들은 포테이토 피자 이후 점차 빠른 속도로 분화&변화하기 시작했고, 여기서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앞서 설빙 빙수의 '고명', 혹은 내가 말한 '속'에 해당하는 토핑이다. 감자-고구마-(새우에서 심지어 오징어계열의 한치까지 포함하는)해물-치즈-조각스테이크 등등 한 자리에서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종류의 토핑들이 20여 년 사이에 새로이 발굴되면서 한국형 피자 시장의 혁신을 주도했다(물론 링치즈에서 고구마무스를 거쳐 크림치즈, 심지어 커스타드 필링까지 들어가는 크러스트=빵 끝='겉' 부분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토핑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다). 이탈리아의 피자가 의도했던 맛에 전혀 개의치않은 채로 더 화려하게, 더 다양하게, 그리고 더 풍성하게(혹은 무겁게) 라는 세 가지 정신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2000년대 이래의 한국 피자시장은 오늘날 디저트 시장의 중요한 성공요인을, 사견이 허용된다면 한국 외식업계의 중요한 원칙을 선구적으로 구현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한국 디저트 시장의 한 흐름을 피자업계의 변화에서 나타났던 경향과 연결하는 게 허용된다면, 내 생각에 뚱카롱의 등장을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가성비 좋은 음식을 선호하게 된 오늘날 청년층의 안타까운 일면 정도로 보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이미 편의점 음식을 두고 "창렬"과 "혜자"의 대극적인 언어사용이 10년 전부터 널리 퍼졌듯 꽤 오래 전부터 '가성비'가 대중적인 외식문화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도 있지만, 그보다 이전 피자업계의 변화에서부터 '속'을 더 충실하고 화려하게 만드는 건 한국인들의 외식관에서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현실의 고단함에 대한 물질적인 보상이라는 수동적인 반응이 아니라 적어도 87 이후의 한국문화를 지금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상당히 적극적인 정신이기도 했다. 종종 그 결과물이 기괴할 때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그리고 우리는 모든 나라, 모든 시대에서 그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기괴함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성향을 양과 자극에 집착하는 천박함이나, 전통없는 사회의 단면으로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글쎄, 나는 단지 그게 한국인들이 살아가는 중요한 방식 중 하나고, 더 다양한 요소를 더 풍성하게 때려넣는 방식이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례--K-Pop--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좀 더 나아가자면, 그게 바로 현대 한국의 '전통'이기도 하다. 현대 한국을 경멸하는 비평적 관점들은 '전통없는' 한국상을 조롱하듯이 지적하는 클리셰가 있는데--그 반대편에는 뭐든지 유교 때문이라는 심각한 지적 게으름이 있다--나는 그런 클리셰가 정작 그러한 비평적 시선의 소유자들로 하여금 눈 앞에 있는 '한국적인 것'을, 지난 30여년 간 한국을 엄청나게 매우 빠른 속도로 바꾸어 온 동력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뚱카롱은 확실히 마카롱이나 아몬드 과자의 본질을 재현하는 게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본질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처럼 말할 수 있다면, 뚱카롱이 재현하는 것은 마카롱이 아니라 현대 한국 식문화의 어떤 중요한 경향이다. 그리고 어느 쪽의 본질이 더 우월한가, 하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어리석은 질문이다. 음식의 비평에 객관적 탁월함을 따질 수 없는 건 아니겠지만, 다양한 시공간 속에서 그 기준들은 생각보다 복잡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또 변해간다...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자체를 만들면서 말이다. 어쨌든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고, 우린 더 이상 예전처럼 손쉽게 그것을 경멸하거나 옹호하는 게 지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그다지 사려깊지 않은 시대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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