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그린버그, <바이마르의 세기>, 짧은 소개

Intellectual History 2019.01.07 16:42
연초에 급성장염으로 뻗은 김에 휴식 차
우디 그린버그, <바이마르의 세기: 독일 망명자들과 냉전의 이데올로기적 토대>, 이재욱 역, 회화나무, 2018 를 읽었다(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5807210 ; 원저 서지사항은 Udi Greenberg, _The Weimar Century: German Émigrés and the Ideological Foundations of the Cold War_ Princeton: Princeton UP, 2014).

<바이마르의 세기>는 개인적으로 2018년에 한국어로 번역출간된 최고의 책 중 한 권이다. 2년 여 전 원저를 처음 읽었을 때 시간만 된다면 직접 번역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는데,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직접 대조해보진 않았지만) 대체로 막히는 부분 없이 잘 읽히는 한국어로 깔끔하게 출간되어 무척 기쁜 마음이다. 이 책은 20세기 서양사 및 인접 연구자에 국한되지 않고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힐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배경이 되는 전간기 독일과 냉전 초기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정책과 대학의 관계, 지식인·사상적 실천과 현실정치의 관계, 오늘날 모두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깊게 생각해본 사람은 많지 않은 민주주의 문제,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이 남아있는 냉전체제 및 그 사상의 문제, 그리고 (트루스포럼 등 극우 개신교단체에서 내놓는) 시대착오적 반공주의 언어가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가 등에 일말의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린버그의 저술에서 아주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바이마르의 세기>는 무척 상이한 지적 배경에서 출발한 다섯 명의 지식인·사상가, 즉 프로테스탄트 카를 J. 프리드리히, 사회주의자 에른스트 프렝켈, 카톨릭 보수주의자 발데마르 구리안, 자유주의자/전투적 민주주의자 카를 뢰벤슈타인, 국제법 사상가 한스 모겐소 등이 어떻게 유사한 삶의 궤적을 밟아나갔는지를 추적하면서 1920년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현대 민주주의 체제의 중요한 모멘트를 재구성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함께 성립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은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와 극단적 인플레이션, 나치즘의 대두로만 기억된다. 그러나 그린버그는 혼란과 위기에 빠진 민주공화국을 수호하고 발전시키려는 다양한 사상적 시도가 있었음을 아울러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늘날처럼 '민주주의의 (상대적) 우월성'이 주어진 상식처럼 기능하는 세계와 달리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한 국가가 극히 소수였던 시기에, 더불어 자유주의 이념이 결코 충분한 다수표를 획득했다고 말할 수 없는 공간에서 민주공화국과 종교·개인·가족·공동체·노동·국제관계 등을 포함한 수많은 주제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는 그 자체로 격렬한 논쟁거리들이었다. 보수적인 종교인들은 민주공화국을 가족·공동체의 삶을 파괴하는 세속화와 자유주의의 산물로 보았으며, 사회주의자들은 그것을 노동계급의 최종적 승리를 위해 타도해야 할 기만적인 지배도구로 바라보았다. 이 책이 주목하는 다섯 명의 사상가는 이러한 당시의 지배적인 정조와 달리 민주공화국이 각자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논리를 위해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특히 민족주의, 나치즘, 소련의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정치적 토대로서 말이다.

역사가 보여주었듯 독일 최초의 민주공화국을 위한 사상적 실천은 바이마르공화국의 몰락을 막아내지 못했다. 다섯 모두 나치화되어가는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사상이라는 것이 한갓 실체없는 관념적 말놀이에 불과하다는 속물적 단견과 달리, 체계화된 사상과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영향력을 행사할 적절한 시대적 조건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수 세기 동안 말라붙어 있던 씨앗이 싹을 틔워 번식하듯 세계에 작용한다. 이제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 들어간, 그리고 소련의 공산주의와 전지구적 체제경쟁에 들어갈 1940-50년대의 미국은 바로 그러한 조건을 제공했다. 다섯 명의 독일인 망명자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왜 나치즘·공산주의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지, 세계 민주주의의 대표자인 미국이 왜 나치제국과 소련제국을 대상으로 전세계적 투쟁에 나서야 하는지 등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하면서 냉전과 함께 만들어진 새로운 전지구적 통치질서의 중요한 사상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은 미국의 중요한 정치적 결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걸 넘어 제2차세계대전 종료 후 자신들의 모국이었던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의 "탈나치화" 뿐만 아니라 해방 후 남한(프렝켈), 냉전기 라틴아메리카(뢰벤슈타인) 등 미국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각지의 통치에 유의미하게 개입할 수 있었다. 바이마르공화국 시기 형성된 이들의 사상이 이처럼 초기 냉전기 세계체제의 운영에까지 깊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이 시기는 책 제목이 가리키듯 "바이마르의 세기"이기도 하다.

또 하나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사실은 이 다섯 명의 사상가들이 모두 현대의 새로운 국가통치모델, 즉 국가 통치엘리트(관료·학자·언론인·정치인·기업인 등), 대학과 연구소, (록펠러 재단처럼) 막대한 자원을 제공할 수 있는 자선단체 간의 결합체가 형성하고 작동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국가권력-전문지식/교육-민간자원의 결합체에서, 대학과 연구소는 통치엘리트들을 교육하고 또 (소련학Sovietology처럼) 이들이 활용할 전문지식을 생산·제시하며, 민간단체들은 지식인들과 통치엘리트들이 방대한 국내외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인적·물적 자원을 제공한다. 이를 고도로 발전된 전문지식장을 중심으로 국가통치를 현대화하는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면--오늘날 한국은 미국을 모방하면서 이 과정을 기계적으로 흉내내고 있으나 이것이 어떠한 모델에 기초하는지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정치인·관료·지식인·언론인은 놀라울 정도로 소수인 것처럼 보인다--오랜 관방학(cameralism)의 전통을 지닌, 그리고 1920년대에 이미 막스 베버의 동생 알프레트 베버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인조슈타(InSoSta, 사회과학 및 국가학연구소Instituts für Sozial- und Staatswissenschafte / Institute for Social and State Sciences)가 수천 명의 관료후보자들을 양성하고 있던 독일은 여기서 단연 선두주자였다. 냉전을 맞이하여 전세계를 통치할 막대한 지적·인적 역량을 필요로 하게 된--그리고 나치 억압의 결과로 가치를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망명지식인들을 한꺼번에 선사받는 행운을 누리게 된--미국에서도 이러한 시스템의 구축이 진행되었으며, 독일인 망명자들은 국가와의 협력에 소극적이었던 기존 미국 명문대의 운영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전문지식-국가통치 복합체의 형성에 참여했다. 다섯 명의 여러 저술들이 수업커리큘럼을 통해 수많은 미국인 엘리트들의 교과서로 활용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젊은 역사 연구자들, 역사연구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에게 <바이마르의 세기>는 여러 이유에서 유익한 참조점이 될 수 있다. 책 자체의 내용을 차치하더라도, 그린버그는 전간기 독일과 냉전기 미국의 지적·제도적 풍토를 그려볼 수 있는 비교적 최근의 영어권/독일어권 연구 목록을 주석을 통해 풍성하게 제공한다. (사상가와 현실의 변화를 다소 지나치게 매끈하게 그려낸다는 의문은 있으나) 지성사와 정치/제도 연구가 결합하여 매력적인 연구서사를 그려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도 장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대의 역사가, 물론 과거도 마찬가지지만, 일국적인 관점에서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깨우쳐준다는 데 있다.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슬프게도 여전히 많은 한국사 연구자들에게 한국의 역사는 여전히 지나치게 일국적인 시각에서 이해된다. 단순히 무역이나 외교, 전쟁 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주요한 언어와 체제가 형성되는 과정 또한 한 사회 내에서만 설명될 수 없다는 인식에 기반한 연구가, 특히 해방과 냉전기에 있어서는, 더욱 필요하다. 가령 우리는 20세기 한반도의 여러 중요한 변화에 기독교인들이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정확히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용된 언어였는지(당연하지만 서구가 하나가 아니듯 기독교 선교단체도 하나가 아니다!), 그 언어가 한국적 맥락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추적하는 연구는 아직도 소수의 관심사로만 남아있다. 2000년대 이래 '세속화'가 중요한 키워드가 되면서 종교의 역사적 역할에 관한 연구도 매우 확장되었으나 한국의 정치사상 연구자들은 여전히 '세속화된 근대'를 너무나 자명한 기준으로 여긴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편견을 깨줄 것이다. 새뮤얼 모인(Samuel Moyn)의 20세기 인권사 연구(특히 완전히 새로 번역되어야 할 _The Last Utopia_ 및 _Christian Human Rights_ 등)를 포함해 상기한 경향을 반영한 최근 냉전기 지성사 연구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빠르게 번역되기를 희망한다.

덜 전문적인, 그러나 사상과 현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유익하다. <바이마르의 세기>는 오늘날 우리가 자명하게 받아들이는 (혹은 비판하는) 자유주의/민주주의의 여러 언어들이 매우 독특한 조건과 그 필요에 기인해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당연히 오늘날의 우리가 독일인 망명자들의 경로를 되밟을 필요는 없겠지만, 자유주의/민주주의 위기론이 다시금 곳곳에서 대두하고 있는 시점에 그 주요한 출발점 중 하나를 검토해보는 건 지적으로 무척 가치있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좀 더 강조하고 싶은 지점은 현대국가에서 대학 및 전문지식생산자들과 통치기구가 맺는 관계다. 한국의 대학은 한편으로 이공계나 각종 사회조사/정책에서 볼 수 있듯 국가통치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오면서도 동시에 80년대 체제비판적 전통에서처럼 국가권력에 의식적인 거리를 두는, 그리고 2000년대부터는 시장의 상대적으로 단기적인 요구에 맞춰가는 상반된 흐름들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다. 나는 이러한 흐름 중 무엇 하나가 더 우월하거나 더 사악하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시장주의에 너무나 쉽게 굴복해버린 이들이든, 반대로 지나치게 낭만적인 '근대학문'의 이상이 그대로 통용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든, 그 어느 흐름의 지지자도 자본과 인력이 집적된 체계화된 전문지식생산과정과 근대국가 사이의 관계 및 그 역사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불만스럽다. 우리가 1940-50년대 미국의 냉전대학을 한국 대학을 위한 이상적인 모델로 간주할 필요는 없겠지만, 여전히 고등교육과정을 그저 등록금과 취업, 입시의 문제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교육정책을 이끄는 지금의 한국에 <바이마르의 세기>는 시스템을 다시 생각하기 위한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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