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언론 대 열광적 문재인 지지자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노트

Comment 2017. 5. 21. 20:26
"진보언론 대 (열광적) 문재인 지지자"의 구도에 대하여, 현재의 흐름에 대해 몇몇 글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가설적인 내러티브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내가 "열광적"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나 자신처럼 현재 문재인 정권의 행보를 지지하지만 동시에 아래와 같은 정체성·행동양식을 갖는 문재인 지지자들에는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좀 더 좁은 의미에서의 "문재인 지지자" 층에 주목하며, 이중에서도 특히 강력한 도덕적 자기확신의 감정을 갖는 사람들에게 "열광적"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기술적으로 썩 틀리지는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아래는 그동안 내가 흥미롭게 읽은 글을 나열하고 간단한 코멘트를 붙인 것이다.

1. [펌] '진보언론의 노무현 문재인 왕따' 종합분석, 조기숙 교수(팟캐스트는 2017년 2월 10일, DVD프라임의 게시물은 같은 해 4월 11일)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16991103

: 물론 조기숙이 현재의 反진보언론 열광적 문재인 지지자들의 논리를 만든 유일한 원천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한경오를 "돈없는 조중동"이라고 부르거나 패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는 종종 나오곤 했다). 그러나 조기숙의 언어가 이전에 존재하던 진보언론에 대한 거북한 감정, 그리고 무엇보다 진보언론이 "우리 편 언론"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심리를 "참여민주주의" "탈권위주의" "운동권 엘리트" 등의 키워드 등이 들어가는 일관된 내러티브로 만드는데 중요한 뼈대를 제공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어보인다. 좀 더 자세한 건 자료를 뒤져보고 <왕따의 정치학>을 읽어야겠지만.



2. (뽐뿌 핫게펌) 한경오가 문재인을 싫어하는 명확한 이유 (오유 게시물, 2017년 5월 16일 오전)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332971

: 조기숙의 언어가 수개월에 걸쳐 문재인 지지성향 커뮤니티에 확산되었고 또 문재인 지지자들에게 전문가의 권위에 기초한 일관성 있는 내러티브 및 강력하게 선동적인 정치언어를 제공해주었다면, 조기숙의 책 출간과 함께 그의 주장을 이미지로 비교적 간단하게 정리한 자료가 등장하고 당연히 오유에도 높은 지지도를 받으며 입성한다(탄핵 이후 본격적인 경선~대선 국면 동안 조기숙의 언어가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찾아보면 어느 정도 윤곽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정치사상사 연구를 따라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조기숙이 말하는 거시적인 내러티브가 그다지 서구의 역사적 현실을 반영했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그러나 요점은 조기숙의 도식이 특히 한경오 대 문재인 지지자들의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특히 후자가 전자에게 매우 공격적으로 응대하도록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인식의 도구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3. 한경오와 구좌파세력들의 뿌리깊은 적개심을 눈치채야만 문재인을 지킵니다. (오유, 2017년 5월 16일 저녁)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333189

: 조기숙의 게시물을 그대로 받아와 한경오에 대한 경멸과 적대의 언어로 표출하는 게시물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게시자와 동조자들이 스스로를 '참여민주주의적 시민'으로 규정할 때 이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느냐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때 "참여"와 "시민"은 기능적 규정이 아니라 도덕적 자기규정 및 역사철학의 언어로 쓰이고 있다(내 생각에 이런 언어의 사용은 조기숙이 매우 명백하게 특정한 대중정치모델을 염두에 둔 레토릭을 활용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즉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세력인 "참여민주계"는 "소수 구좌파를 대변하는 진보언론"을 제압하며 "문재인을 대변하는 스피커"가 되어야 하는 도덕적-정치적 의무를 갖고 있다.

4. 한걸레 - 접수하려고 하니 준비들 하세요 (베스트 요청!) (오유, 2017년 5월 16일 밤)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humorbest&no=1436872

: 이 놀라운 글의 요점은 간단하다. "소액주주"의 힘을 모아 한겨레의 지분을 장악, 주총에서 "투표로 대표이사 해임하고 새로운 대표이사 선임", "한겨레 데스크를 비롯한 악덕 기레기들 청소" 하여 "한겨레 정론지"를 만들자는 것이다(댓글에서는 "문겨레"라는 표현이 두어번 제안된다). 오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이 글에서--2, 3번 게시물과 비교할 때도 월등한 추천수를 받았다--이들은 자신들을 새로운 시민들로, 한겨레(및 진보언론)를 새로운 시민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태언론으로 규정한다. 이때 "새로운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구태언론을 장악해서 문재인을 지지하는 언론 혹은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보자면 일종의 기관지로 재편성하는 것이다(나는 이들이 "참여"와 "시민됨"을 이해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떠올리는지 우리가 한번쯤 주의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5월 19일쯤에는 진보언론VS.문재인 지지자 라는 갈등구도에 논평을 내놓는 글들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들은 조금씩 다른 입장에서 암묵적으로 진보언론과 문재인 지지자들 사이의 화해를 제안한다. 몇 가지만 꼽아보자.

5. 문재인 지지자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필요하다(오마이뉴스, 2017년 5월 19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26797

: 이 글의 입장은 후반부에 명백하게 드러난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더 이상 무지하지도 않고 계몽해야할 대상도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전 세계 민주주의의 최첨단을 걷고 있는 선구자들이고,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라 하는 미국과 유럽국가에서도 부러워할 민주화 혁명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주체들이다. 이들에 대한 기존 진보언론들의 시각이 오히려 시민의 정치 참여에 대한 패러다임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진보언론이 사회 기득권들에 맞서서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고, 대중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 정부의 성공과 국민의 삶을 위해서 진보언론들이 큰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것 역시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진보언론에 대한 비판과 질책은 진보언론에 대한 사랑과 기대에 대한 반증이다. [...] 진보언론이 그 맡은 바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정치환경과 시민참여 그리고 시민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을 선도하기 보다는 그들과 발을 맞추어가야 한다."

간단히 말해, 양자의 화해는 절대적인 정당성을 가진 문재인 정부와 그 지지자들을 위해 진보언론이 "발을 맞추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적으로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는 굳이 덧붙이지 않겠다.

6. 참여정부계와 진보언론의 갈등이라는 신화(슬로우뉴스, 2017년 5월 19일)
http://slownews.kr/63837

: 한윤형은 민주당 정부 등장 시기로 거슬러올라가 진보언론과 참여정부의 관계가 적대적이기보다는 오히려 큰 틀에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은 진보언론의 정치적 스탠스를 고려할 때 당시로서는 특별히 의외라고 할 수 없었고, 현재의 '오해'를 풀기 위해선 매체 못지 않게 독자들--여기서는 물론 문재인 지지자들을 지칭한다--의 태도 또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아래에 달린 댓글을 볼 때 한윤형의 글은 문재인 지지자들, 적어도 열광적 문재인 지지자들을 설득한 것 같지는 않다. 여기서는 댓글에서 문재인 지지자들 중 일부가 공유한 인식과 믿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 말해두자(그중에 가장 흥미로운 것은 "가르치려는 태도"에 대한 거부다; 나는 메갈리아 절독운동 때도 특히 이후 문재인 지지도가 높은 오유에서 유사한 레토릭이 등장했음을 상기시키고 싶다).

7. [메아리] ‘좌절과 실패의 기억’ 지우려면(한국일보, 2017년 5월 19일)
http://www.hankookilbo.com/v/22bc28efaa344e84a29a5e4b4a09641c

: 가장 영리한 포지션을 채택한 이 글에서 고재학 논설위원은 세 가지 행동을 취한다. 첫째, 문재인 지지자들의 언어를 일부 차용하면서 진보언론의 "싸가지 없음"을 지적한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언론이 (보수언론과 달리) 지켜야만 하는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셋째, 양자의 갈등을 언급한 뒤 무게중심은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험난한 환경을 잘 헤쳐나가고 성공적인 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지에 있다는 결론부로 돌린다. 사실 레토릭으로만 따져보면 좋은 게 좋은 거 식의 논지전개지만, 기사에 달린 댓글 하나는 (문재인 지지자로 추정되는) 독자가 이 논평을 기분좋게 읽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정리로부터 내가 동시대의 관찰자/연구자로서 관심을 두는 질문은 다섯 가지다. 첫째, 어떻게 이러한 언어/행위의 논리가 형성되었는가? 둘째, 자신을 "참여민주주의"를 따르는 "새로운 시민"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한다고 믿는가? 셋째, 전통적인 독자층과의 갈등에 직면한 진보언론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가? 넷째, 문재인의 대중적인 지지자가 아닌 문재인 정권 혹은 그 내부의 행위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평가하고 있으며, 또 어떻게 활용하고자 할 것인가? 다섯째, 열광적 문재인 지지자에 속하지 않는 (사실 한국에서는 좀 더 많은 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이 현상을, 그리고 "새로운 시민"들을 어떻게 이해·평가하고, 또 그에 반응할 것인가?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면 한국의 대중정치는 아직도 매우 격렬하게 유동적이며 이 사실은 한동안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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