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일기: 바른정당 탈당사태와 유승민

Comment 2017. 5. 9. 22:59

* 이 글은 5월 2일 다음 기사에 대해 코멘트를 붙인 것이다: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70502000532


기사 내 인용: "바른정당 의원 14명이 2일 집단 탈당과 자유한국당 복귀를 선언했다. ‘좌파 집권’ 저지와 후보 단일화 무산을 명분으로 내세운 이들의 결단이 5ㆍ9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마지막 변수로 작용할지 관심이 모인다. 탈당ㆍ입당 작업이 마무리되면 바른정당 소속 의원은 비교섭단체 수준인 18명으로 줄고, 홍준표 후보가 속한 한국당은 107명으로 는다.


바른정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바른정당을 탈당하는 우리는 이제 홍 후보와 보수 집권을 위해 최선을 노력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전날 홍 후보와 심야 회동을 갖고 지지를 결심한 14명 의원 가운데 권성동ㆍ김재경ㆍ김성태ㆍ김학용ㆍ박성중ㆍ박순자ㆍ여상규ㆍ이군현ㆍ이진복ㆍ장제원ㆍ홍문표ㆍ홍일표ㆍ황영철 등 13명이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정운천 의원은 지역구 의견을 모으고 사흘 뒤 별개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다.

[...] 유 후보는 영등포경찰서 지구대 방문 뒤 취재진과 만나 “(집단 탈당이) 가슴이 아프다”라며 “어렵고 힘든 길을 같이 가고 싶었는데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분들 심정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8일 밤 12시까지 많은 국민들과 만나 선거에 출마한 이유, 대통령이 되려는 이유, 대통령이 돼서 하고 싶은 일을 말씀드리고 9일 국민의 선택을 받겠다”고 완주 의사를 재확인했다.

바른정당 소속 의원 절반에 가까운 집단 탈당으로 충격을 주는 가운데 추가 탈당도 예고된다. 이들은 사전 모임에서 강길부ㆍ정양석 의원을 포함해 3~4명의 추가 합류와 탈당 선언 연기를 두고 격론을 벌였으나, 대선까지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 때문에 우선 최종 합의한 14명만 탈당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종구 의원 등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의견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의 코멘트: 이미 많은 이들이 예측하던 전개라서 놀랍지는 않다. 단기적으로 보면 자유한국당이 확고하게 원내 제2당으로 복귀하는 것이 직접적인 결과고, 그 다음 결집하는 (극)우파들을 막기 위해 문재인·더불어민주당으로의 추가적인 결집이 있을 수 있어보인다. 그러나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 흥미를 끄는 주제는, 유승민이 어떻게든 대선을 완주한다는 전제 하에, 이것이 유승민 지지자들에게 일종의 성인전(hagiography) 식의 내러티브를 쓸 출발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서사인 "배신당하고 고통받은 영웅" 내러티브 말이다. 이 유형의 중요한 최근 사례가 바로 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계보인데, 우리는 여러 문재인 지지자들로부터 자신들이 고통받던 노무현을 배신했고, 그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문재인을 끝까지 지켜주어야 한다는 발화가 뚜렷이 나타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그런 점에서 이 경우는 "배신당한 영웅" 모티프와 일종의 신약적인 죄의식--예수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질한 인간들의 죄의식과 같은--이 결합한 매우 흥미로운 케이스다; 물론 유승민과 자신을 이 정도로 강하게 동일시하는 집단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정치인으로서의 유승민이 이러한 내러티브와 유의미하게 결합하기 위해서는 매우 다양한 조건이 추가되어야만 한다. 예컨대 강한 도덕주의적 기제에 따라 움직이는 열성적인 지지자 계층(이것이 386 진보들에게만 해당되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례인지, 혹은 한국, 특히 "합리적 보수 지지자"라고 자임하는 유권자들 내에서도 출현할 수 있는 요소인지는 두고 봐야한다), 단순히 인기있는 정치인 개인이 아니라 최소한 한 정파를 이끌 수 있는 리더로서의 역량, 결정적으로 이 두 가지의 결합에 기초해 한 명의 "유력한 정치인"이 될 수 있는가의 여부 등등. 나는 이것들이 단기간에 실현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으며, 유승민과 바른정당이 대선을 완주할 가능성 역시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러나 그가 박근혜라는 irregular의 충격으로 인해 가능해진 "보수 선진화"라는 의제를 다른 누구보다도 선점한 정치인이라는 것은 분명한 자산이며--간단히 말해,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을 합쳐서 홍준표 이후 전국 단위 정치인으로 누가 남는가?--이번 탈당 사태를 버틴다고 했을 때 차후 활용가능한 "배신당한 영웅" 내러티브를 갖추게 된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한국에서 프랑스·미국과 같이 중도에 대한 반동으로 극단주의 정치가 나타날 가능성은 적어도 당분간은 두 차례에 걸쳐 봉쇄되었다. 먼저 박근혜라는 초 비합리적 요소의 등장은 한국인들에게 정상성에 대한 강렬한 희구를 불러일으켰고, 다음으로 늙고 퇴행적인 정치인으로 간주되는 홍준표가 극단주의 정치를 선점하는데 성공하면서, 그리고 자유한국당·TK보수층의 결합이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젊고 강력한 극단주의 정치세력이 새롭게 대두할 위험은 적어도 단기간 내에는 쉽지 않게 되었다. 좌우파 모두의 극단주의가 봉쇄되면서 뚜렷한 중도지향적 경향을 드러내는 것이 2010년대 중반 한국 정치의 풍경이라면(따라서 2010년대의 가장 핵심적인 정치논쟁은 결국 한국의 독특한 '발전지향적 복지국가'에 관한 것이다), 진보-중도파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먼저 이 흐름을 적극적으로 붙잡았다. 작년 총선 이후 지금까지 진보-중도의 우위는 부분적으로 이들이 중도지향적 경향을 선점할 수 있었다는 데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우파에서도 마찬가지로 중도화·합리화가 일어날 것인가? 일어난다면, 누가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이 명확해지기 전까지, 유승민은 호오를 떠나 여전히 주목받는 행위자로 남을 것이다. 그가 다시 퇴행적 우파들에게 굴복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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