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위키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에 대하여

Comment 2017. 1. 30. 04:05
최근 한국 서브컬처계 및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무위키의 "성 평등주의"(Gender Equalism) 항목(namu.wiki/w/성%20평등주의 ; 이 항목은 현재 "나무위키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으로 개명되었다)의 조작문제가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사건은 여러 가지 면모에서 한번쯤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나는 해당문서 및 아름드리 위키의 "이퀄리즘" 항목(http://ko.areumdri.wikidok.net/wp-d/57c0c2520c0541170a594b6f), 그리고 사태의 경과를 상세하게 추적하여 기술한 페미위키의 "젠더 이퀄리즘 날조 사건"(femiwiki.com/w/젠더_이퀄리즘_날조_사건 ) 항목 등을 참고하되, 여기에 개인적인 관심사를 덧붙여 정리해보겠다.


1. (아마도 여성주의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진) 한 나무위키 이용자가 2016년 8월 초 "페미니즘보다 역차별 논란에서 좀 더 자유"롭다는 점에서 여성주의/페미니즘보다 좀 더 나은 "사상"인 성평등주의=젠더 이퀄리즘이 서구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이퀄리즘" 항목을 만들었다. 페미니즘이란 짜증나는 말을 대체할 개념이 필요하다는 생각 및 그 후보로 이퀄리즘을 거론하는 일은 DC 일부 갤러리를 포함한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전부터 유통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몇몇 커뮤니티에 한정되는 대신 하나의 '가치중립적'인 지식처럼 받아들여지며 한국의 온라인 공론장 전반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위키 사이트에 독자적인 항목으로 작성된 것은 처음이었다.

2016년 8월은 온라인 게임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으로 촉발된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메갈리안 공격 및 이에 대한 "넷 페미니스트"들의 반론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여기에 대한 정의당 문예위의 넥슨에 대한 비판적인 논평 및 정의당의 해당 논평 철회를 둘러싼 논쟁으로 말미암아 여성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고조되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반메갈리아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받던 나무위키의 해당문서는 여러 이용자의 참여 하에 급속도로 살이 붙기 시작한다. 8월 14일 r75판에서 최초 작성자가 덧붙인 문구는 이 문서의 성장이 당시의 메갈리아 및 여성주의에 대한 공격과 절대로 무관하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2015년 이후 메갈리아를 비롯한 쉐미니스트, 페미나치 단체들이 페미니즘의 이름을 방패로 걸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행하는 극단적인 언행과 징병제등의 남성에 대한 성차별들에 반감을 가진 성평등을 지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젠더 이퀄리즘이 페미니즘을 대체할 성평등을 지향하는 사상으로 대두되었다."

11월 1일 r141판을 작성한 기여자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첨가하면서 이 개념이 여성주의를 겨냥하고 있음을 명확히 한다: "평등이면 평등이지, 평등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누군가에게 더 이권을 주는 차별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 페미니즘에서 '평등'이라는 말이 '여성이권'과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점에 대한 경계다." "근본적으로 페미니즘은 여성이 악압받는 약자이므로 남성을 차별해야 평등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 기반이므로[sic]"(11월 7일 r145판 추가), "남성과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서 대하는 성 평등주의와는 전혀 같다고 볼수 없다"(같은 날 r152판 추가--물론 여성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표준적인 학술적 논의를 조금이라도 접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주장에 당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한 "성 평등주의"는 1월 24일 페미위키 측의 매우 구체적인 반론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할 때까지 약 반 년간 지속적으로 증식했으며, 위키 밖의 각 온라인 게시판, 인터넷 언론의 카드뉴스, 정의당 당원 게시판 및 당원 게시 현수막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 영향을 끼치면서 여성주의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했다. 이후 페미위키측의 세세한 반론으로 인해 젠더 이퀄리즘이 문서 작성자들의 믿음과 달리 '학계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많이 쓰이는' 용어가 아니며 그러한 주장이 최초 작성자의 "날조"임이 드러나면서 이 문서는 크게 정정되어 현재의 "나무위키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으로 개명되기에 이른다.


2. 별다른 공신력 있는 자료도 없고, 자신들이 직접 근거로 내세운 엠마 왓슨의 연설에 "Gender Equalism"이 전혀 언급되지조차 않는다는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이러한 주장 혹은 망상이 반년 가까이 제멋대로 자라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관찰대상이다. 작성자들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문구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는 작업은 분명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여성주의적 편견들이 어떠한 주장 혹은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재구성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과정이 반메갈리아적 입장의 형성과정과 근본적으로 유사한 논리를 따른다는 것만 짚어보고 싶다. 특히 오유-나무위키의 일부 이용자 등을 포함한 메갈리아 비판자들은 메갈리아로부터 기원한 전례없는 여성주의적 발화들을--물론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 발화들이 모두 설득력 있었던 것은 아니다--마주하여 정상/비정상 프레임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즉 "메갈"은 사회의 정상적인 합리성을 벗어나 남성에 대한 혐오·증오를 실천한다는 점에서 단지 여성주의적 수사를 휘두르는 "일베"일 뿐이며, 그에 대항하는 (오유를 중심으로 하는) 메갈리아 비판자들은 일베·메갈 양자와 달리 온건·합리적이며 정상적인 사회질서를 수호하는 이들로 그려진다.

이 패턴은 "성 평등주의"의 성립과 유통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이 구도에서 여성주의는 여성들만의 이권을 생각하고 남성을 차별하자는 주장, 기껏해야 과거 언젠가 무언가 유의미한 역할을 한 적이 있던, 충분히 공평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입장으로 제시된다(실제로 남초 커뮤니티에 가면 여성주의를 광기나 "정신병"이라고 격하하는 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성평등이 사회의 기본적인 당위로 자리잡은 현대에 사실상 성평등을 구축해온 거의 유일한 전통인 여성주의를 직접적으로 부인한다는 것은 합리와 정상성을 자처하는 이들에게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 우리는 "성 평등주의"가 여성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로 제시되어 여러 남초 커뮤니티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 상황을 ①한편으로 껄끄러운 여성주의(자)를 덜 합리적인 이들로 낙인찍어 몰아내면서도 ②동시에 이제 현실적으로 정당화되기 힘든 과거의 남성우월주의로 퇴행하는 걸 피하면서 ③합리성·정상성과 남성의 권리를 함께 점유하고픈 한국 남성들의 욕망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전통적인 가부장적 권위의 빠른 몰락과 새로운 규범으로서의 여성주의적 비판을 동시에 마주하는 젊은 한국인 남성들에게는 크게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일베로 표상되는 야만적·비합리적인 남성우월주의자, 여성들과 어울리기 위해 시시콜콜한 매너와 교양을 갖추어야 할 뿐만 아니라 때로 여성들에게 굴복하기까지 하는 것처럼 보이는 "페미니스트 남성", 그리고 양 극단 사이에서 현대적인 합리성을 갖추되 여성주의자들에 대항하여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고 목소리를 내는--정확히는 자신이 그렇다고 믿는--'정상적' 남성. "성 평등주의"라는 개념은 세 번째 길을 선택한 남성들이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다른 입장, 특히 여성주의자들을 공격할 수 있는 담론적 무기로 제련되었다. 이러한 무기는 여성주의가 남성들에게 전가하는 죄의식과 책임, 즉 여성혐오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그 질서를 구성하고, 동조하고, 혜택을 보고 있는 남성들 자신들이 현재의 상황을 반성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 의무를 지닌다는 믿음을 깔끔하게 날려버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우리 모두는 평등하고 또 평등한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 이제 남자도 그 평등한 권리란 걸 아무 죄책감 없이 누려봐도 되지 않는가! 물론 번쩍이는 듯 보였던 칼이 알고보니 마분지로 만든 가짜였다는 게 이 계획의 치명적인 결함이었지만 말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특히 한국사회를 보다 학적으로 관찰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이 사건을 단순히 망상과 사기, 날조의 결과물로만 결론짓고 넘어가는 대신 좀 더 유의미한 생각거리들을 끌어내고 싶다.

1) "젠더 이퀄리즘"이라는 개념 및 이에 준하는 입장이 영어권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물론 이것이 학적·일상적 용법으로 널리 채택되고 있다고 볼 근거는 현재로서는 없다). 구글 스칼라를 참고할 때 해당 용어가 등장한 최초의 사례는 2000년 8월 말, 남성잡지(A Man's Journal) <에브리맨>(Everyman, 이 잡지는 2011년 4월부터 온라인 블로그로 운영되고 있다)에 실린 "평등주의냐 노예상태냐? 남성들의 선택"(Equalism or Slavery? Men's choice)이란 글이다. 현재 프로퀘스트 로그인 없이는 매우 제한된 부분만 확인할 수 있는 이 글과 해당 잡지의 블로그 소개문(www.everyman.ca/about-this-site/)은 공통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위한 평등은 옳은 일이나 오늘날에는 여성에 대한 억압만이 부당하게 강조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데서 정확히 "성 평등주의"를 신봉하는 남성들의 입장과 일치하는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 평등주의"가 해당 시점부터 일관성 있는 용례를 가진 개념으로 정착된 것은 아니다. 이후 2010년대 중반까지 검색가능한 "gender equalism"의 용례들을 뒤져볼 때 어느 정도 일관적인 용법이 등장하는 시점은 약 2013-14년도쯤까지 와서다. 그러나 그마저도 매우 제한된 사례만이 검색되는 걸 볼 때, 이 개념은 여전히 매우 한정된 집단 내에서만 쓰이는 것처럼 보인다. 대학언론 듀크 크로니클에 한 학부생이 기고한 글에서 "남성 증오"(male-hating)적 용법으로 오염된 여성주의를 "성 평등주의"라는 말로 대체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는 하지만(http://www.dukechronicle.com/article/2015/05/feminism-needs-reconstructive-re-branding) 여전히 별 소득은 없어보인다. 이후, 페미위키에서 정리해놓았듯 영문 위키피디아에 2016년 7월부터 12월 사이 egalitarianism과 equlism을 등치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삭제되었다(femiwiki.com/w/영어_위키백과의_이퀄리즘_소동 ).

2) 아마도 영어권 온라인 커뮤니티, 특히 남초 커뮤니티의 담론생성과정을 직접 살펴볼 때까지 제대로 된 역사적 서술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가설은 그려볼 수 있다. 전통적인 (우월한) 남성상과 가족중심적 삶의 복구를 추구하는 입장이든, 남성에게 '부당한' 차별과 비난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든 남성과 여성 간의 "평등"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면서 여성주의·여권신장을 비판하는 언어는 적어도 2000년 초반부터 마이너하게나마 존재해왔으나 딱히 체계적인 개념화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2010년 대 중반, 특히 2013-14년 정도를 거치면서 이러한 입장들을 대변하는 용어로 "성 평등주의"가 사용되는 빈도가 약간이지만 점차 늘어난다. 과거의 직접적인 반여성주의와 달리, 이때의 "성 평등주의"는 자신이 여성주의의 반대자가 아니라 보다 완전한 대체항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실제 이러한 담론의 용법을 살펴보면, 이들이 말하는 '평등'이란 현실에 존재하는 불평등에는 별다른 눈길을 주지 않으며 단지 남성의 위상을 보전하고 여성주의를 비난하기 위해서만 동원되는 기만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난 영어권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의 상황을 설명할 능력이 없지만, 이른바 게이머 게이트를 포함해 여성주의에 대한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의 적대감이 증폭된 상황에서 "성 평등주의" 혹은 유사한 언어 사용이 앞으로도 이어지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는 전통적인 권위의 상실과 성평등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적 역할 사이에서 정체성과 자존감에 위기감을 느끼는 한국인 남성들에게도 매력적일 것이다. 우리는 애초에 한국인 남성들 및 남초 커뮤니티의 담론지형이 이러한 언어가 쉽게 유통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 조작된 개념이 이처럼 '성공적'으로 유통될 수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지금과 같은 담론지형이 유지되는 한 이 사건은 앞으로도 모습을 바꾸어 반복될 것이다.

3) 이 사건이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는 문서작성·기여자들 및 비판자들이 사용한 수사적 전략에 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문서작성자들은 서구의 학계를 "성 평등주의"의 상상적 기원으로 삼으면서 이 단어에 지적인 권위를 부여하고자 했으며, 비판자들은 팩트의 축적을 통한 논리전개를 통해 응대했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서구의 학계·시민사회에 강력한 지적인 권위를 부여해 왔다. 특히 온라인 여성주의자들이 '한국 남성'과 공격하는 양상을 관찰하면, 이들은 영어권 여성주의적 자료를 활용하여 여성혐오·성차별을 옹호/정당화하는 한국 남성들을 무력화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서구의 지적권위"를 무기삼아 사용하는 수사적 전략을 채택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종종 무시되는 사실이지만, 2010년대 한국 온라인 여성주의의 발흥은 미국의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주의 담론이 폭증한 것과 절대로 무관하지 않다. 역으로 특히 반여성주의적 입장을 고수하는 한국 남성들은 자신들이 합리성의 신봉자들이며 여성주의자들은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논자라는 구도를 설정한 뒤 (역시나 선별적으로 수집된) "팩트"에 기초한 논변을 통해 여성주의자들을 제압하고자 해왔다. 요컨대 "서구 선진 학술장"과 "팩트"는 각각 양자의 전략 중심에 있는 핵심개념이었다.

이번 사건은 두 진영이 논쟁에서 서로의 수사적 전략을 차용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반여성주의적 논자들은 서구 학술장이라는 권위를 (거짓되게나마)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구축했으며, 역으로 특히 페미위키의 이용자들은 강력한 팩트축적을 통해 "성 평등주의" 지지자들의 "선동과 날조"를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일회적인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후에 여성주의와 "한국 남성"을 둘러싼 논쟁들이 지금보다 훨씬 복잡하게 변모하는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지금까지 비교적 남성중심적이었던 온라인 공간, 특히 위키 항목의 생성과 수정을 둘러싼 편집전쟁이 점차 확장될 경우 더욱 흥미로워질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여성시대의 SLR클럽 침투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2015년 이전까지 한국의 온라인 공간은 서로 다른 관심사에 의해 형성되었고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복수의 커뮤니티들로 구성되었다. 메갈리아와 온라인 여성주의자들의 출현에서 진짜로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이 "미러링"이라는 개념을 동원해 자신들의 공격적인 발언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성혐오"라는 키워드를 통해 커뮤니티들 사이의 상호불간섭을 넘어 문제적인 발언과 문화를 대대적으로 공격하고 비판하는 걸 일상적인 행동양식으로 채택했고, 결과적으로 커뮤니티를 넘나드는 남성문화/여성문화 사이의 충돌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메갈리아의 붕괴 이후 온라인 여성주의자들의 결집력이 하락하고 이러한 충돌 혹은 접촉이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남초적 언어와 여초적 언어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대규모 SNS를 제외하고는) 다시금 별개의 문화로 분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이한 성향의 이용자들이 위키를 두고 편집전쟁에 돌입하는 전개는 국지적으로나마 두 언어의 충돌가능성을 제고한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들의 언어를, 그리고 새롭게 온라인 공간에 진입하는 사람들의 언어를 어떻게 형성할지는 이후의 전개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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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sculism for all 2017.08.08 15:29 Modify/Delete Reply

    Feminism v Equalism
    Are you a feminist or an equalist? The quest for gender equality is almost universally accepted as the definition of feminism. But are feminism and equalism the same thing? Barrister Charlotte Proudman and scientist, Dr Laura Waters don’t think they are, and join Jenni to discuss.
    http://www.bbc.co.uk/programmes/b05mt4l2

    A scientist's view: why I'm an equalist and not a feminist
    https://www.theguardian.com/higher-education-network/blog/2013/jul/12/scientist-equalist-not-feminist

  2. Masculism for all 2017.08.08 15:32 Modify/Delete Reply

    Feminism이 전체적인 평등을 표방하기엔 명칭부터 시작해서 무리가 많은 사상이라는 주장은 끊임없이 제기됐고 (결정적으로 트랜스 여성들을 "여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급진 페미들이 주장함으로써) 그런 페미니즘의 편협성을 비판하는 Equalism의 학설적 대칭은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이걸 주작으로 치부하기엔 해외에도 관련 자료가 너무 많군요.

  3. BeGray 2017.08.10 17:29 신고 Modify/Delete Reply

    Masculinism for all 님 //

    위에 링크하신 자료 중 로라 워터스의 글은 당연히 윗 글을 쓰는 시점에 참고했고요(저기에서 인용되는 로라 워터스는 딱히 성평등 관련해서 유의미한 연구자로 간주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팀 새뮤얼스에 대한 기사도 이런 독특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수준인데, 과연 이 기사들 내용을 읽어보신 겁니까? 이퀄리즘 "관련 자료가 너무 많다"는 말은, 그것이 공신력 있는 자료들이 충분히 많다는 주장이라면, 제가 저 글을 쓰던 시점까지에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이퀄리즘 관련해 구글 스칼라를 포함한 주요 학술 검색엔진에는 이퀄리즘을 여성주의를 유의미하게 대체할 수 있는 단어로 놓는 주요한 용례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요, 보다 비전문적인 용례들을 찾아볼 경우에도 해당 용법으로 사용된 경우는 특히 페미니즘과 비교할 때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적습니다(제가 구글링해서 한 100여건 정도 클릭해가면서 찾아본 것 같네요).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에서 나온 주요 연구물 앤솔로지에도 딱히 이퀄리즘 관련해 유의미하게 참고할 만한 내용은 거의 없고요. 간단히 말해 저는 Masculinism for all 님의 발언에 담긴 내용에 거의 별다른 지적 가치를 부여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스로가 이 분야 전문가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매일 인문분야 영어저널들을 뒤져보는 입장에서 제 스칼라십을 어느 정도 공개하면서 논의를 할 수 있는데요, Masculinism for all 님께서 원하시는 게 진지한 지적인/학적인 대화라면 "끊임없이 제기됐고"(그렇다면 도대체 몇 년도경부터 입니까?) "항상 존재해 왔다"(페미니즘조차도 역사적으로 항상 존재해오지 않았습니다; 17세기 영국에서 여성필자들을 발굴하려는 노력들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오늘날과 같은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하진 않죠) "해외에도 관련 자료가 너무 많"다(어느 해외, 어느 학계 혹은 여론장 말씀이십니까? 미국과 영국이 다르고 각 학문분과당 통용되는 말들이 다르다는 것도 당연히 아시겠죠) 같은 전혀 구체화되지 않은 진술 말고 하나하나 제대로 된 근거를 들어가면서 이야기를 시도하셨으면 합니다. 상상이 아니라 진짜 해외 학술장 갖고 이야기 할 거면요.

  4. sw19classic 2019.08.16 06:16 Modify/Delete Reply

    안녕하세요. 옛날 글에 실례합니다.

    해당 사건을 검토하셨다면 아이디를 보셨겠지만, 저는 이퀄리즘 당시 페미위키 측의 수육탕 님의 지적을 받아들였던 참여자 중의 하나로서, 본문 역시 관심 있게 읽었습니다.

    나무위키 이퀄리즘 사건이 기존 학계와 현장의 액티비스트들에게 해석되고 소통되는 경향에 관련하여 제가 갖고 있는 답답함은 다음과 같습니다.

    ㅇ 이퀄리즘 문서의 무비판적 등재 및 확산에 대한 학계의 논의가 더는 새롭지 않음에도, 그 교정 과정에서 나타난 나무위키의 전향적 태도와 높은 반응성에는 학계의 관심이 미진합니다.
    ㅇ 위와 같은 경향으로 인하여 나무위키가 실제보다 더 문제시되고 병리화되며 연구대상으로 쉽사리 객체화되지만, 그 논의의 동기나 방법론에 대한 정당화는 생략되거나 설득력이 약합니다.
    ㅇ 그래서 특수한 의사소통 공간(위키위키)으로서 나무위키의 특징과 가능성이 충분히 숙고되기보다는, 오히려 나무위키의 한계점과 연약함만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풍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하나의 문제를 세 문장으로 나눈 것입니다만, 이런 부분들이 사건 발생 후 몇 년이 지나도록 잘 교정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문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문단은, 비록 저를 아주 속시원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관련 문헌 중에서 가장 괜찮았던 통찰이었다고 느낍니다.

    근래 나오곤 하는 '팩트 물신주의' 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한 것이, 주지하시듯이 손희정 연구자 같은 케이스를 비롯해서 유명 페미니스트 분들이 팩트에 대한 불신과 회의감을 드러낸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퀄리즘 사건은 팩트가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낙관적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생각합니다. 페미위키 측에서 팩트를 동원했고, 여기에 나무위키가 신속하게 설득되었으며, 그 이후로 이 팩트에 근거하여 해당 문서를 훼손하려는 모든 시도를 차단해 오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하나하나 음미해 볼 만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퀄리즘 문서에 대한 지속적 훼손 시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껏 나무위키에 누적된 '이퀄리즘 복구' 토론 코멘트 수만 하더라도 25,000 건 이상이라고 짐작될 정도로 저항은 지속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의견이 분분한 50:50의 논쟁이 아니라, 고집불통 1~2명을 위한 98~99명의 비생산적 관여에 가까웠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2019년 현재, 안티페미니즘 진영은 성공적으로 '이퀄리즘 이전의 세계' 로 되돌아간 양상을 보입니다. 이퀄리즘이 부정되어 버린 상황에 완벽히 적응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퀄리즘에 관련된 나무위키에서의 소모적 논쟁은, 이제는 사실상 없습니다.

    이는 마치 2000년대 초엽에 있었던 호주제 폐지 논란을 연상케 합니다. 당장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 같았지만, 막상 폐지되고 나니 모두가 너무나도 쉽게 '호주제 없는 세상' 에 적응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이퀄리즘 사건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막상 이퀄리즘이 다시 망각 속으로 사라지자, 모두들 이퀄리즘을 그리워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서구 학계의 권위를 통한 정당성' 은 이제는 덜 필요하게 된 것일까요? (잠시 조던 피터슨이 그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지만, 슬라보예 지젝과의 논쟁(?) 이후로는 팬덤이 사실상 와해되었고 이제 더 이상은 '권위자' 가 아닙니다.) 이퀄리즘을 대신할 무언가가 어딘가에 생긴 걸까요? 어쩌면, 소위 '백래시' 가 인간의 적응력을 과소평가했던 건 아닐까요?

    이퀄리즘을 둘러싼 담론이 원체 흥미롭긴 하나, 한편으로는 이퀄리즘 사건을 비판하는 접근방법 내지는 인식론 자체도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진보적 변화에 못 이겨 질질 끌려가는 반동세력' 같은 스케치는 우리 사회에 대한 잘못된 인상 비평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보다는 더 나은 곳인지도 모릅니다. 이퀄리즘 사건에서 관점을 살짝 달리해 본다면, 아마도 상당히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가능성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래 된 글에 실례했습니다. 건승하십시오.

    sw19classic 드림.

    • BeGray 2019.09.03 21:28 신고 Modify/Delete

      먼저 답변이 많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ㅠㅠ

      상당히 지난 글을 주의깊게 읽어주신 점 먼저 감사드립니다 :) 제 글이 직접 논쟁에 참여하셨던 분께도 나름 설득력이 있었다고 한다면 무척 기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문제의식이 실제로 이퀄리즘 등재/비판 이후에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를 포함해 (나무)위키에서 팩트가 교정되는 방식에 관한 점이라면, 확실히 무척 흥미로운 연구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입장에 따른 편견 없이 사태를 충실하게 따라가는 연구자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인상은 저도 공유하고 있습니다(저 자신은 언제인가 좀 더 다뤄보고 싶은 주제이긴 합니다).

      다만 나무위키의 여러 항목들을 관찰해보면, 특히 어떤 강력한 정치적 지향점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일면적인 지점을 강조하는 작성자/기여자들이 등장할 경우, (아마도 외부에서) 더 강력한 팩트로 무장한&위키의 토론규칙에 익숙한 기여자들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문제적인 시각이 그대로 유통되곤 하는 것 같긴 합니다--아마도 토론 국면을 살펴보면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역시 규칙과 관습이 어떤 전략들을 불/가능하게 만드냐의 문제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위키의 개별항목들은 구체적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보니, 저는 특히나 나무위키처럼 거대한 집적체의 경우 하나로 뭉뚱그려서 낙관하거나 비관하기보다는 대체적인 추세를 느슨하게 그리면서도 개별적인 사건들을 좀 더 잘 관찰하는 게 우리에게, 특히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글을 처음 쓸 때보다는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다, 에 좀 더 가까워진 것도 같네요 :)

      / 피터슨의 팬덤이 사실상 와해되었다면 그것도 분명 주목해볼 뉴스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렇다고 페미니즘에 대항하겠다는 안티페미니스트들의 열망이 사라지진 않았을테니, 이제 어떠한 수사적 전략이 나오게 될 것인가가 기대(?)되네요.

      가끔이라도 들러서 제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의견 말씀해주신다면 언제든 감사하겠습니다!

  5. sw19classic 2019.09.04 15:31 Modify/Delete Reply

    BeGray 님,

    친절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부분들 중에서 제가 말씀 나누고 싶은 부분이 굉장히 많으나, 현 시점에서는 나무위키에 대한 비관론이 때로는 지나칠 만큼 단편적이고 과장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만은 유효함을 한번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나무위키를 어떻게 관찰할 것인가에 대해서 좋은 의견을 내 주셨는데, 저 역시 낙관론이 굳이 의미 있는 인식의 방법이라고 믿어서라기보다는, 기존의 비관적인 관점에 대항하기 위해 손쉽게 낙관론을 꺼내들어 주장했던 것에 가깝습니다. 여러모로, 나무위키를 무엇으로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한 지적인 준비 자체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느낌입니다. 제 개인의 견문이 좁은 것이기를 바랍니다만.

    언급하신 '문제적인 시각의 유통' 같은 것에 대해서는 차후 다시 자세히 풀어 소통할 기회를 기다리겠습니다만, 저는 문제적 시각이 쉽게 교정되지 못하는 책임은 일부 고학력 지성인들의 '장작위키', '땔감위키', '출처: 나무위키' 같은 조롱만으로 일관하며 방임하는 태도에도 약간은 지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사람들이야말로 문제적인 시각을 바로잡을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인구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나무위키에 대한 태도를 보다 전향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나무위키도 당장 바뀌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나무위키에는 인식론적 렌즈를 통해 질문에 접근해서 정당한 방법론을 통해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훈련이 된 인문학/사회학/여성학 전공의 기여자들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피터슨의 경우는 지금 다시 생각하니 '와해' 라는 단어를 쓴 게 좀 걸리는데, 제 요지는 "팬덤이 급속하게 냉각되어 동력을 상실했다" 는 정도로만 받아들여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피터슨의 팬질을 했던 적이 없었는지라 저도 결국 외부인의 입장에서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주요 남초 사이트 베스트글을 종종 살펴보다 보면 확실히 '인터뷰 스크린 캡처' 같은 피터슨 짤방들이 사라졌더군요. 한편 저는 현재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이 다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거나, 혹은 2000년대 후반에 그랬듯이 (ex. 여성부 죠리퐁) 조롱성 밈의 위상으로 되돌아간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요즘에는 소위 반일 같은 민족주의 문제나, 조국 딸 같은 형평성 문제를 놓고 새롭게 헤쳐모여를 하는 느낌입니다. 몇몇 논자들은 은근히 386세대 비판을 공론화하려 하는 모양인데 이 주제에 대해서는 BeGray 님의 촌평도 궁금해집니다.

    덤으로 사회심리학 연구자 입장에서 피터슨에 대해 갖고 있는 제 생각입니다만, 기본적으로 이 사람이 학계 활동을 하는 인사인 것은 맞습니다. 구글 스칼라에서도 확인되고 꾸준히 논문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라면 이 사람을 한 마디로 정의해야 할 때 '굉장히 올드한 사람' 이라고 말하겠습니다. 파시즘이나 신념체계 같은 주제에 아직도 꽂혀 있다는 것 자체가 지적으로 아직도 50~6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고요. 21세기 현대에 들어 확립된 심리학만의 학문적인 특징들(인식의 틀이나 지적인 규율, 패러다임 같은 것들)이 상당히 약합니다.

    피터슨이 강조하는 칼 융이나 종교관 같은 것은 이를테면 이런 것 같습니다. 과학자들끼리 학회 끝나고 술자리 갔는데 정년을 앞둔 연세 지긋하신 교수님이 얼큰하게 취해서는, "으허허, 내가 요즘 주역을 좀 읽어보고 있는데, 이거 하나에 사람의 운세와 우주 삼라만상이 다 담겨 있어! 자네들도 한번 읽어들 봐! 인생의 지혜야!" 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도 보통은 학술활동의 주제로 삼지는 않습니다만, 이 사람은 그걸 자기 책에서 드러냈다는 차이는 있습니다. 그저 저는 피터슨의 이런 행보가 BeGray 님께 심리학이라는 학문 전체에 대한 오도를 초래하지 않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음에 언젠가 나무위키에 대해 언급하시게 되면 또 말씀 나눌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답글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sw19classic 드림.

    • BeGray 2019.10.12 18:05 신고 Modify/Delete

      그동안 제가 여러 가지 일로 여력이 없었던지라--유감스럽게도 그 기간이 좀 길어질 것 같지만 ㅠㅠ--정성스럽게 써주신 답변에 한 달이나 넘겨서 다시 코멘트를 달게 되었습니다.

      첫 두 문단에서 말씀해주신 바에 대해서는 저도 깊게 동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문사회학 분야의 연구자/대학원생들이 자신들이 알고 다루는 내용을 더 많은 집단과 나누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 및 어떻게 이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한국의 대학원이 무관심하다는 점은 분명 아쉬운 일이고, 앞으로 계속 개선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기본적으로는 훨씬 좁은 범위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쓰여졌지만) 블로그를 느슨하게나마 운영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결정이기도 합니다.

      피터슨 이후의 커뮤니티 동향...이라면, 말씀하신 이후 매우 커다란 사건들이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고 있으니 앞으로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텐데, 어떤 변화로 이어지게 될지 현재로서는 그저 지켜보는 것 이상의 예상이 쉽지 않네요. 다만 이번 사태에서 30대 중반 아래의 세대들이 (어떤 입장이든 간에) 그 위와 상당히 다른 태도/언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주목하고 있고요, 이 점은 언젠가 시간이 될 때 짧은 노트라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하고 있습니다^^.

      피터슨에 대한 코멘트는 역시 동의하고요, 굳이 말하자면 저 또한 피터슨의 행보가 수많은 독자들에게 "현대 심리학"의 진리처럼 비춰지지 않기를 경계하는 마음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많은 포스팅을 제가 별 지적인 흥미를 느끼지 않는 저자에게 할애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비록 제가 계속해서 답변이 늦는 불성실한 모습을 보였습니다만, 앞으로 시간을 두고서라도 전개될 대화 저 역시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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