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교양교육과 글쓰기 교육의 문제에 관해

Comment 2017.01.14 18:57
*내 글이 기초한 기사링크: http://v.media.daum.net/v/20170114030844867
[이 글은 편집을 거쳐 ppss에 게재되었다. http://ppss.kr/archives/98817 ]


실제로 하버드의 시스템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돌아가는지는 논외로 두고, 나는 이런 형태의 소규모 인원 대상 글쓰기 튜터링 프로그램이 교양교육, 특히 학부 인문사회과학 단과대 교육 과정의 핵심이 되어야 하며 이에 맞춰 우리의 교양교육체제를 재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학부교육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편에 속하는 대학에서 다년 간 배웠고 또 가르치는 과정에 부분적으로나마 참여한 경험에 기초하여 말하자면, 솔직히 한국 대학의 학부 과정에서 글쓰기 교육은 형편없이 빈약하다. 우리는 인용법과 페이퍼 포맷을 작성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기본적인 글쓰기 수업 및 학기당 한두차례 페이퍼 첨삭을 받는 교양과정 몇 과목만을 공통적으로 제공하며, 현재는 교양과정의 전체적인 축소 경향에 따라 이 기회마저도 줄어들고 있다. 물론 글쓰기를 제대로 훈련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겨우 이 정도의 교육으로 체계적인 글쓰기 능력이 생기리라 기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 그 이후에는 어떤 교육적 조치가 존재하는가? 답변은, 제도적인 차원에서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글쓰기 과제를 시키는 수업을 듣고, 그중에서도 비교적 소수의 성실한 교육자를 만나는 것이 유일한 가능성이고 이건 전적으로 개별 학생들의 운에 따른다(학부 졸업논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상황을 학생의 관점에서 다시 그려보자. 한국의 초중고교 과정이 아주 기본적인, 그러니까 A4 2-3쪽 분량의 학적·공적 작문을 조리있게 쓸 수 있는 능력조차도 가르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자식교육에 많은 자본을 투자하는 학부모 그리고 그 안에서 정말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자사고·특목고 또한 지금까지 대학에서 만난 학생들을 고려해볼 때 눈에 띄는 차이를 보여준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 대학부터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예를 들어 인문대학 입학생 한 명을 가정해보자. 기초적인 페이퍼작성 수업 하나를 듣고, 과제첨삭이 필수로 존재하는 교양과목 세 과목을 듣고... 열성적인 교수자를 만나는 행운을 지니지 못한 경우 졸업까지 첨삭을 받는 과목은 겨우 넷이다(나머지는 전공에 따라 다른데, 인문대에서조차도 전공에서 과제물에 대한 첨삭지도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학과는 몇 되지 않는다). 이 학생이 좀 더 성실하다면 글쓰기 교육센터에서 과제물에 대한 첨삭 두어 번 정도를 신청해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4-5년 후 졸업할 때 이런 교육을 받은 학부졸업생의 글쓰기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정확히 집어 말할 순 없겠지만 우리가 이른바 "세계 레벨에서 경쟁하는" 명문대 졸업생에게 평균적으로 기대하는 값에 도달하리라 예측하는 건 극도로 낙관적인 관점을 취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왜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가? 두 가지 이유를 꼽아보자.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건 현재 대학교육행정 관련 의사결정권을 보유한 인사들, 그리고 각 학과의 교육제도를 이끄는 교직원들이 (평균적으로 볼 때) 애초에 제도화된 글쓰기 교육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스템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라는 것이다. 의사결정권자들이 본인이 교육받아본 적이 없으며 또 자신의 청년기에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바를 현재의 의사결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 상황은 세대 간 환경이 단기간에 급격히 변한 한국사회에서 흔하게 나타나며 우리가 지금 언급하는 사례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로 서구선진학술장에 유학을 다녀온/젊은 교수 비중이 높은 학과는 한국에서만 교육받았으며/나이 든 교수 비중이 높은 학과에 비해 학부생 지도가 (그리고 대학원생 논문 지도가) 비교적 좀 더 성실하게 수행되는 경향이 있다는 경험적 관찰은 대학원생들이 종종 동의하는 바다; (비록 몇몇 매우 성실한 한국박사 출신 교수에겐 억울한 일일 수 있겠지만) "'국'자 붙은 학과"라는 자조적인 표현은 교육에 대한 경험적인 불만으로부터 비롯한다.

조금 역사적인 관점을 취해보자. 80년대부터 9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학부과정에서의(심지어는 대학원에서도) 읽기-쓰기 교육은 교수가 아닌 선후배들로 구성된 각종 자치조직 내에서 수행되었다. 2000년대 초중반을 거쳐 대학 자치조직의 학습기능 혹은 경우에 따라 자치조직 자체까지도 소멸했으나, 이 기능을 대체·보완하고자 하는 제도적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볼 때 한국 대학 교직원들이 학생사회의 교양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그나마도 소수의--일이며 그나마도 얼마나 치밀한 제도적 사고를 하는지에 대해선 의심스럽다. 유감스럽게도 독서와 글쓰기 교육을 각종 서클 내에서 받은 교직원들 중에서도 이러한 조직이 사라진 오늘날 공적인 제도의 적극적인 보완노력 없이는 학부교육의 중요한 부분이 빈 대목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매우 드물 것 같다. 종종 "요즘 애들의 빈약한 독서와 사고력, 글쓰기 능력"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리는데, 애초에 역사적인 변화에 대학교육행정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을 비난하는 게 큰 의미가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대학 학부교양교육의 글쓰기 및 독서 교육 부재가 개선되지 않을 때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인가? 건조하게 말해 우리는 학습능력과 의사소통능력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은 졸업생들을 사회 및 대학원으로 배출하게 될 것이며, 이는 사회적인 생산력 저하 및 공적 의사결정에서의 비효율로 우리 모두가 짊어지게 될 것이다. 많은 한국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활용하는 바와 같이 비교적 단순한 업무를 착취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시간동안 부과하는 삶만을 생각한다면 더 좋은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한국이 그러한 산업구조를 장기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회의적이다. 특히 현재 추세처럼 평균수명연장 및 사회고령화와 함께 대졸자들이 졸업 이후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새로운 지식을 학습해야 할 필요가 점차 피할 수 없는 미래로 다가온다면, 학부졸업 상황에서 충분히 높은 자가학습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것, 그 핵심에 있는 읽고 쓰기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개개인의 역량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심각한 효율저하로 이어진다. 늘 중요한 현안을 숙지하고 정치적 대표자의 선정 같은 복잡한 문제에 판단해야 하며 다른 이들과 의견을 교류해야 하는 정치적 의사소통에서의 합리성 보장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종종 간과되는 사실인데, 우리의 사회가 스스로의 모델로 삼고 있는 공론장은 합리적 의사소통을 수행할 수 있는 구성원의 역량을 요구하며, 언어를 통한 일정 수준 이상의 의사소통능력은 이 역량의 핵심이다).

결론은 분명하다. 우리는 학부교양교육 모델을 바꾸어야 하며 여기에는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지식의 처리능력과 함께 읽고 쓰는 능력을 일정 수준 이상 배양할 수 있는 교육과정의 제도화가 필수적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이러한 교육을 필요로 하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고, 이를 포함해 고등교육의 대대적인 개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음을 외면해선 안 된다. 덧붙여 나는 특히 교양교육의 중심을 맡고 있는 인문학 전공자들이 (심지어 자신들도 진지하게 믿지 않는) "기초학문" ·"인문학적 교양"과 같은 다소 신화화된 개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대신 바로 이 흐름을 주도하는 게 좀 더 합리적이고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이라 생각한다. 교육과 연구의 미래가 복고적 신화가 아니라 지성적 판단에 기초해야 한다면 말이다.

*이 문제의 재정정책적 측면에 관해서 결국 등록금 인상 혹은 정부지원증대와 같은 현실적인 재정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는 다음 글도 함께 참고할 것: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388114971523823&id=100009759707706 나 자신은 링크한 글의 지적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하되, 우리가 곧바로 영미의 재정적으로 부유한 대학과 똑같은 시스템을 채택할 수 없다면 일종의 타협적 모델을 설정하고 점차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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