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 <복학왕> 107화에 관해: 일상과 낭만

Reading 2016. 8. 17. 01:29
웹툰링크: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626907&no=109

이번 주 <복학왕>(107화) 마지막 장면은 낭만적 정서의 핵심을 짚고 있다. 두 인물은 다시는 서지 못할 곳에 서서 다시는 반복하지 못할 순간을 반복한다. 그 순간은 존속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덧없으나, 예술은 그 덧없음을 붙잡아 영원으로 만든다. 이 장면을 종결부로 선택한 기안84는 덧없음과 영원함이 함께할 때 이 대목의 정서적 힘이 극대화된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장면이 (특히 <패션왕>에서부터 따라읽은) 독자들에게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2000년대 후반 참여정부의 몰락과 실용정부의 등장, 촛불집회와 패배로 이어지는 일련의 변화를 거치면서 특히 젊은 세대에게 반(anti) 감상주의는 지배적인 경향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헬조선 담론이 확산되기까지의 7년 가까운 기간 동안 이러한 정념은 점차 강해졌으며, 우리는 일상은 지옥이며 그에 어울리는 삶의 태도란 자조와 체념에 기반한 냉소와 의심임을 어렵지 않게 체득했다. 일상의 공간에서 부정된 감상주의가 폭발한 곳으로 특히 음악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꼽는 게 아주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오디션 프로그램은 2010년대 전반부의 한국에서 눈물이 흐르는 장면을 가장 많이 내보낸 TV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기안84의 최대 히트작 <패션왕>은 보잘것없는 한 고등학생의 삶과 패션을 통해 더 충만하고 높은 삶이 가능할 수 있다는 믿음 혹은 욕망을 병치시킨다. 패션배틀의 악명높은 병맛과 또래문화가 아니면 어디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고딩들에 대한 매우 촘촘한 스케치가 공존하는 이 작품에서 우기명의 운명은 결국 방송작가가 제안하는 "감성에 호소하는" 설정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순간에 결정된다. 이 결정 이후 그는 결코 성공한 모델 김원호와 같은 선상에 설 수 없으며, 이른바 "지잡대"인 기안(사이버)대에 들어가 한국 사회의 기저에 깔린 모래 알갱이와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한 성공한 삶을 거부하고 찌질이로 남기로 결정하는 것이 <패션왕> 최고의 사실주의라면, 기안84는 작품의 종반부에 모든 등장인물들을 감동케하는 우기명의 런웨이를 배치함으로써 병맛이 낭만주의적 코드로 활용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초반부의 상당한 분량을 '지잡대생'의 생활에 대한 냉소적이고 자학적인 스케치에 할애한--그래서 거의 서사가 실종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던--<복학왕>의 최근 연재분은 그런 점에서 작가가 전작에서 다루었던 문제의식, 즉 비루한 일상과 그것을 넘어서고 싶은 욕망 사이의 간극에서 나타나는 낭만적 계기를 그려내는 과제를 좀 더 성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제 기안84는 결정적인 순간에 병맛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금-여기"의 비좁음을 예술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을 점차 찾아가고 있다. 더 이상 오디션 프로그램과 같은 동앗줄은 없는 세계, 미래의 도약이 불가능한 세상에서 인물들은 어떤 과잉된 제스처 없이 자신의 운명을 마주한다. 그러나 그 상황은 이제 분노, 냉소, 체념, 자조와는 다른 정념을 유발한다. 짙은 서글픔 뒤에는 지금의 비루한 인물들, 그리고 그 인물들에 이입하는 우리 자신의 현재를 순간적으로나마 초월하게 해주는 계기가 등장한다. 스스로의 보잘 것없음에 짓눌리던 인물이 과거의 자기 자신으로서 옛 연인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는 순간 과거와 현재의 두 시간이 겹쳐지고, 우기명의 삶은 지금의 하찮음보다 더 깊고 큰 것으로 전달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기안84는 2010년대 후반의 한국에 낭만적 계기를 복귀시킨다. 꿈은 다시금 일상에 깃들고, 예술은 그 순간을 붙잡는다. 이 장면을 간직하는 독자들은 이제 지금까지 말하고 느낄 수 없었던 감정양식을 느끼고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16년 8월 중순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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