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잔혹동시' 논란에 대한 코멘트

Comment 2015. 5. 8. 04:58

기사링크들: http://www.nocutnews.co.kr/news/4409268

http://www.nocutnews.co.kr/news/4409464

(A양 어머니 인터뷰)


이하 나의 코멘트.



며칠 만에 정신차리고 SNS에 접속했더니 이런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나는 솔직히 이 책의 출판에서 무엇이 문제되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 한국인들은 자신의 신분에 무관하게 자신이 쓴 글을 출판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는데, 저자의 나이가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10살이면 이런 사고도, 글쓰기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가? 글쓰기가 누군가의 주관적인 '도덕감정' 또는 좀 더 솔직히 말해 독서취향에 부합해야 할 이유 따위는 없다; 인용된 시와 같은 사고는 심지어 이보다 어린 나이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10살이면 이런 사고를 할 수 없다는 건 지극히 주관적인 편견에 불과하다. 이 텍스트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감이나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복무하고--설령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그 텍스트를 비판할 수 있지 그 텍스트의 출판을 비판할 수는 없다--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진짜 문제인 쪽은 (한국의 교육환경 속에서 일상적으로 얼마든지 배태될 수 있는) 부모에 대한 증오감을 어떻게든 덮어버리려는 '이데올로기'에 휩싸인 사람들이지 않나? 때로 모든 것이 완벽한 환경에서조차도 증오심은 생성되곤 하는데, 애초에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없는 환경에서 왜 증오가 표출될 수 없다고 그토록 강박적으로 외치는가?


동시에, 심지어 내 페이스북 지인들을 포함해서, 이 텍스트가 아이의 작품이 아닌 부모의 작품이라는 의심을 제기하거나 저자의 어머니의 인터뷰가 아이를 천재로 만들고픈 비뚤어진 교육관의 소산이라는 이야기들 역시 보인다. 미안하지만 내게는 역시 이런 클리셰 덩어리인 반응들 쪽이 훨씬 더 이상한 심리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상식적인 반론들만 제기해 볼까.


첫째, 이 시가 다른 사람의 개입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문헌학적 증거 따위는 전혀 없다. 기껏해야 "내가 아는 10살은 저런 글을 쓸 수 없어" 정도의 미치도록 주관적인 편견이 근거랍시고 내세워지는데, 그건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의 경험이 부족한 걸 보여줄 뿐이다. 내가 아동문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보다 문학텍스트를 많이 읽었을텐데, 사람들의 내면이 갖는 독특성은 그러한 편견이 상정하는 것보다 꽤 폭이 넓다. 문장이나 어휘를 가다듬는 데 시인이라는 어머니가 참여했을 순 있겠지만 저자의 주변인이 그 정도로 개입하는 경우는 10살이 아니라 90살 작가에게도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처음으로 구상했을 때 고작 (만으로) 19세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고, 남편인 퍼시 비시 셸리나 바이런의 조언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알지만, 만약 누군가 <프랑켄슈타인>이 메리 셸리가 아니라 남편이나 바이런의 작품이라고 (특별한 문헌학적 근거 없이)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를 지독한 남성우월주의자male-chauvinist 정도로 취급할 것이다.


둘째, 노벨상 운운 등을 언급하며 어머니의 인터뷰를 비꼬거나 조롱하는 경우도 나는 배려심이 부족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말해 저자의 어머니는 예상치 못했던 거센 비판에 직면했을 때 (특별히 정치적 입장을 정교하게 가다듬지 않은) 평범한 학부모가 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노벨상이나 현대적인 동시 이야기하는 게 무슨 대단한 야심의 소산인가? 그냥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당황한 사람이 무언가 대중을 상대로 설득력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키워드를 짜내어 말한다고 보는 쪽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나? 저 "A양 어머니"가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건 그가 무슨 대단한 교육적인 커리어를 추구해서가 아니라 그냥 주변에서 그렇게들 하기 때문에, 그게 자녀에게 맞는 교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일 확률이 훨씬 높다. 물론 그런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무슨 공인이나 대단한 지식인도 아니고 그냥 글 잘 쓰고 발상이 재밌는 자녀를 둔 (본인도 문학적인 관심사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 일상적인 층위에서 얼마든지 할법한 일들인데, 그걸 굳이 까내리고 의심하고 조롱해서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 건지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국의 학부모들이 견지하는 교육관을 비판할 순 있겠지만, 그게 단지 딸의 흥미로운 글쓰기를 출판했을 뿐인 평범한 사람에 대한 비난으로 표출되는 게 옳지는 않다. 규탄을 하고 싶다면, 21세기에 살고 있는 19세기 사람들을 규탄하시라.


자, 우리에게 주어진 사실만 정리해보자. "A양"은 꾸준히 글을 써왔고, 어머니는 딸의 글이 흥미롭다고 생각해서 책으로 묶어 출판했다. 이 글이 자신의 도덕관에 맞지 않는다고 느낀--조금 심술궂게 말하자면 자신의 자녀가 자신을 증오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어떻게든 등을 돌리고 싶은--몇몇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냥 그 책을 사지 않았더라면 됐을텐데,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길 선택했다. 소비자의 눈치를 보는 심약한 출판사가 전량폐기를 선언하자--이것도 상식적인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도 이것보다는 용감한 출판사들이 있었다!--황당해진 어머니는 나름대로 스스로의 입장을 옹호하는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다시금 이 어머니의 교육관에 대한 꼰대질이 행해지고 있다--주로 모두가 자기처럼 먹물을 먹고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잊어버린 사람들로부터 말이다(나를 포함해서, 먹물들은 자기가 먹물인 걸 잊어버릴 때 종종 헛발질을 하곤 한다).


여기까지의 사태에서 상식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는 건 글쓰기, 출판, 인터뷰 셋 밖에 없다. 병적인 것이나 괴상한 것을 꼽고 싶다면 나머지를 분석하는 쪽이 좋다--책과 글을 둘러싼 이야기인데 글을 읽고 이야기할 줄은 모르는, 혹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밖에 볼 줄 모르는 눈뜬 장님들 말이다. 글을 읽을 줄 모르고 사람에 대해 멋대로 떠드는 것만 수이 여기는 사회에서 A양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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