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쾌락추구, 자유주의, 합리적 개인에 대한 코멘트.

Comment 2015. 3. 15. 14:56

원래 다른 분의 글에 리플로 썼던 내용들을 옮겨둔다. 이 자체로 완결적인 주장이라기보다는, 내가 1990년대부터 동시대까지 내가 바라보고 있는 한국사회의 '자유주의화'를 기술하기 위한 스케치들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1. 원글은 서강대 경영대 OT사건("작아도 만져방") 및 취향존중-루저정서의 결합, "노잼, 노답, 개노잼, 핵노답" 등의 키워드에 관해 짧게 언급하고 있다.



"원래 축약어가 만들어지는 방식은 그것 자체가 따로 생각해볼만한 주제인데요(가령, 서울대생들의 경우 일정년도까지 서울대입구역을 입구역으로 줄여불렀지만 이제는 설입이라고 부르죠... '서울대입구역'을 하나의 의미단위로 파악하던 걸 서울대(->설)+입구역(->입)으로, 즉 조어방식 자체가 바뀐 건 굉장히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노답, 노잼, 안물 같은 표현은 사실 축약 자체가 조롱의 뉘앙스를 함축한다는 점에서 조금 더 큰 흐름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어표현에서 자유주의적/효용주의적utilitarian 경향이 두드러지는 과정을 고찰해보면. "모든 것이 취향의 문제가 된다는 것"은 1) 판단주체로서 개인이 갖는 절대성이 강조 2) 개인에게 얼마나 쾌/불쾌를 주는가가 모든 판단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등장 과 같은 요소를 함축합니다. 이중 1번이 사실 이전의 보수적 질서(군대적 조직형태, 전근대적 기성세대, 비합리적 질서로서의 유교/기독교, 애국주의/민족주의 등등)에 대한 반발로서 자유주의적 기조가 어떤 정당성을 가졌는가를 설명해준다면--그래서 2000년대 전반까지는 단순히 기성질서를 비웃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윤리적인 우월감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2번은 그렇게 헤게모니를 획득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어떤 종류의 언어적/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가를 설명할 수 있게 해 주죠. 긍정의 접두어로 본래 군대에서 기원한 '꿀'과 같이 미각적 함축이 들어가 있는 표현이 선택된 것(재미가 잼 이란 단어로 함축된 것도 미각적 성격, 특히 '단 맛'에의 선호와 아주 무관할 수는 없습니다), ~성애자와 같은 표현이나, 어떻게든 더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여러 접두사를 붙이는 것--개꿀잼 처럼--은 확실히 오늘날 감각적 쾌에의 경도를 보여줍니다; 저는 계속해서 '더 매운 맛'에 대한 선호가 유행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고 싶고요.


문제는 한국사회가 이러한 일종의 '거부/비판의 정신'으로서 자유주의적 기제를 컨트롤할 수 있는 공적 정신/윤리체계를 성립시키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사실 근대영국 같은 경우 (벤담처럼 정말 끝까지 래디컬했던 인간을 제외하면) 대표적인 자유주의자들이라고 해도 자신의 사고체계 안에서 '신의 의지'나 '시민사회의 도덕'처럼 개개인의 쾌락추구를 제어하는, 적어도 모두의 쾌락추구를 조화시키는 기제들을 넣지요--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본래 예정조화적인 함축을 아주 강하게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나타나는 오늘날의 자유주의적 실천들은 그러한 공공성 혹은 제어장치를 결여하죠. 사실 은어에 대립하는 표준어는 원래 서로 다른 사회집단에 속한 사람들끼리의 공적인/표준적인 의사소통을 확립하기 위해 요구되는 거라면, 지금 일상어적인 실천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은어가 변형/재생산/유포되고 있는 과정은 공공성의 쇠퇴 혹은 부재를 지칭하는 면이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공적인 윤리/덕성 대신 파편화된 소그룹들 및 그 안에서만 통용되는 쾌락추구적 성향이 남아있는 셈인데--서강대 경영대 OT사건은 그래서 단순히 성 윤리의 쇠락이라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다른 이에게 어떻게 비칠지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 자체가 결여된 사례로 보는 쪽이 더 유의미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건 일차적으로는 90년대 초까지의 보수적인 공공윤리가 일종의 비합리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급속도로 사라진 것, 그리고 장기불황 및 경쟁의 격화 등과 함께 사람들이 스스로를 루저/피해자/약자로 설정하고 이 포지션에 기대어 타인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다는 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여기서 자유주의적 담론은 타자에 대한 무책임의 정신구조로 넘어가는데 매우 좋은 논리적 도구가 되어주었고요.


저는 근데 더 심각한 문제가 여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수적 질서로의 일종의 퇴행적 실천이 등장한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각종 국가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난 번에 웹툰 <뷰티풀 군바리>를 언급하셨지만, 이거나 <진짜 사나이> 같은 프로그램의 핵심코드 중 하나는 '개념없는' 여자/연예인/외국인 등을 벌주고 혼내면서 '개념있는' 존재가 되도록 '정상화'한다는 데 있는 거거든요. 즉 지금 사회에 부재한 공적인 질서에 대한 요구가 우파적 질서, 시민들을 지배하고 훈육하는 절대적인 힘에 대한 무의식적 자기동일시로 이어진다는 가설을 제출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뷰티풀 군바리>는 그러니까 여성을 노골적으로 성적 대상으로 간주하는 '쾌락추구적' 시선과 그 '개념없는' 여성에게 강제로 '개념장착과정'을 부과하는 보수적 기제의 합산인 셈이고요."




2. 원글은 2006-08의 대학사회: 학생복지담론, 스키장MT 및 해외답사의 등장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말씀하신 사례들이 제가 넓은 범위의 '자유주의화'라고 부르는 현상들을 구성하는 사례들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스스로를 공동체 성원이 아닌 소비자, 조금 더 이론적인 언어로 시장경제에서의 '합리적 개인(시장참여자)'로 인식해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요; 이 흐름에서 당연히 스스로를 공동체/집단이 아닌 개인으로 간주한다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죠; 문화와 언어표현에서 개인의 쾌락추구가 가장 중요한 동기로 등장하는 것도 이 현상의 한 면이며, 그런 점에서 저는 90년대부터 2010년대는 확실히 (적어도 10-30대에서는) 자유주의적 개인이 공동체주의적 개인을 대체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성리/강촌MT나 국내답사의 진정한 기능은 그것이 서로를 인식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종의 의례적 실천이라는 데 있습니다(물론 당연히 이때 공동체가 좋기만한 건 아니죠). 이 MT는 가서 '아무 것도 하지 않기' 때문에 무의미한 게 아니라 역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사람들을 같은 공간에 두고 상호작용하게 만드는 데 진짜 기능이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학과행사를 '소비자집단의 합리적 구매'로 인식하는 측, 평소보다 저렴한 가격에 스키를 실컷 즐기고 올 수 있는 기회라는 식의 사고에서는 '술만 먹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과정에 내재된 관계형성의 기제는 이해될 수 없죠. 애초에 관계를 맺고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는 사고 자체가 합리적 소비자들에게는 사고불가능한 지점이니까요. 그러니까 한번에 몇 십 만원 씩 지출할 수 없는 처지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적어도 상징적인 층위에서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공동체를 재확인한다는 것보다는 합리적 소비로서 이 행위가 갖는 효율이 더 중요해지는 거고요. 요컨대 MT/답사를 일종의 '빈 공간'으로서 놓아둘 수 없다는 사고, 그 공간을 높은 효용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비행위로 채워야 한다는 사고 자체의 출현이 이 전환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처럼 개개인의 주체성이 자유주의적 주체=합리적 소비자로 변하는 것은 학생정치의 성격이 변모하는 과정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키워드가 '정치적 행위'에서 '복지증진'으로 바뀌어가는 것은 이미 익숙하시겠지요. 저는 이 현상을 (설령 군대식일지라도) 개개인의 정치적 참여로부터 힘을 끌어내는 정치조직이라는 과거의 유기적 모델이 합리적 소비자로서의 개인들과 소비자들의 소비환경을 통제하고 개선시키는 일종의 '관리자'이라는 분리된 소비자-관리자 모델로 재구축되어가는 과정으로 해석합니다. 후자의 모델에서 학생들이 학생사회 전체의 진짜 관리자라고 할 수 있는 학교행정당국에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죠; 애초에 합리적 소비자는, 그것이 본래 주어진 환경 내에서 최대한의 효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환경 자체의 형성과정에 참여하는 정치적 주체로서의 기능 자체를 인식할 수 없으니까요. 지적하신 대로 개별 엘리트들의 역할이 커지는 것도 저는 이런 맥락에서는 당연하다고 봐요.


여튼, 저는 '차가운 정서' 자체를 문제삼기보다는, 그것이 실제로 입각해있는 주체성의 모델, 즉 시장에서의 합리적 개인이라는 걸 지적하면서 파고드는 것도 이 거시적인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