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자 다케시. <헤겔과 그의 시대>. 및 테일러.

Reading 2015. 1. 20. 22:49

몇 달 동안 질질 끌어오던 책들을 다시 읽었다.




곤자 다케시. <헤겔과 그의 시대>. 이신철 역. 도서출판b, 2014. [헤겔총서 제5권]



곤자 다케시의 <헤겔과 그의 시대>를 봤다. 이신철의 일본어 국역은 다른 책에서처럼 대체로 깔끔하다; 가끔 일본식 한자어를 조금 더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싶은 때가 있긴 하지만. <트랜스크리틱> 정본판 번역을 보면서 이쪽이 조영일보다 가라타니 번역이 더 낫지 않은가 싶었을 정도니까(후자가 번역한 <세계사의 구조>는 읽는데 큰 무리가 없지만 일본식 어투가 너무 깊게 침투해와서 중간에 걸리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곤자는 특히 헤겔에 대한 기존의 통념, 즉 그를 "프로이센의 복고 철학자 또는 독일 내셔널리스트나 전체주의자와 쉽게 동일시"하는 시각을 겨냥하고 헤겔을 "점진적 개혁에 공명하는 자유주의자"로 해석하는 롤즈 등의 노선에 따라 "비-프로이센적인 시민사회의 철학자라는 새로운 헤겔상"을 정립하려 한다(11). 그는 헤겔이 속한 18세기 말-19세기 초반 유럽의 정치/사상사적 맥락과 연결지어 헤겔의 텍스트, 특히 <정신현상학> - <법철학>-<역사철학>의 요지를 설명한다.

 

 저자가 본래 정치사상사, 정치학 전공자인만큼 헤겔이 속한 지적 배경을 풀어내는 기본기는 탄탄하고 서술은 깔끔하다. 칸트의 비판철학 전통, 루소로부터 오는 낭만주의적 전통만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로마의 공화정 전통까지 헤겔을 형성한 지적 맥락들을 본문만 따지면 170쪽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분량 속에 상세히 나열한다. 마찬가지로 저자의 전공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은데 위에 언급했듯 곤자가 다루는 텍스트 및 그가 주로 강조하는 주제들이 정치와 법, 사회철학으로서의 측면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은 지적해야 겠다. 실제로 이 책에서 가장 서술이 잘 되었다고 할 수 있는 부분도 <법철학 요강>과 <역사철학 강의>를 다루는 3,4장이다.

 

 헤겔을 국가 혹은 민족 이데올로기와 구별하려는 의도의 산물에서인지 그와 낭만주의와의 대립각이 유난히 강조되어 있다는 점도 언급하자. 아마 독일낭만주의 전통을 다시 이해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끼친 프레더릭 바이저 및 이후의 연구자들의 시선에서 볼 때는 (그들도 헤겔이 독일낭만주의를 그가 칸트를 극복해야 했듯 극복하려 했다는 사실에는 동의할테니) 곤자의 입장을 비판하지는 않더라도 조금 더 미묘하게 봐야하지 않는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카를 뢰비트의 영향을 받아들여 헤겔 이후의 독일사상을 맑스/니체 및 역사주의로 분류하고 나름대로 평가하는 5장은 맑스주의자들만이 아니라 헤겔부터 현상학/비판이론 사이의 보다 섬세한 줄기들--단적으로 신칸트학파--을 주목하는 사람들에겐 썩 달갑지 않을 것이고 나 또한 가장 불만스러운 부분이다. 헤겔의 사상에 대한 요약에 비해 이후의 전개 파트는 서술의 명징함이 떨어진다.


 한국에 번역되어 있는 헤겔 입문서들과 비교한다면, 2000년대 중반까지의 헤겔 연구동향을 종합적으로 다룬 바이저의 <헤겔: 그의 철학적 주제들>을 제외하고 핀카드의 헤겔 전기와 찰스 테일러의 <헤겔>을 꼽을 수 있겠다(이 두 권과 다른 책들의 격차가 너무 심해서...가령 나는 피터 싱어의 안내서를 전에 먼저 읽었는데 테일러를 보다보니 싱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워낙 양의 차이가 심해서 곤자의 책과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겠지만, 핀카드의 책이 인물과 시대의 역사적 전기biography에 초점을 두고 사상의 이해를 덧붙였다면 적어도 법/정치/사회철학의 맥락에서 곤자의 책이 조금 더 깔끔하고 명료한 편이다. 핀카드의 태도가 역사가에 가깝다면 곤자는 확실히 법/정치학자에 가까울 뿐더러 전자가 엄청난 자료를 바탕으로 도식화를 주저한다면 후자에게는 곧바로 도식화로 들어가기 때문에 가능한 분명함이 있다. 테일러는 내가 아직 역사철학을 다룬 파트로 들어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비교가 어려운데, 애초에 테일러가 헤겔의 논리를 훨씬 구체적인 수준까지 파고들고 있어서...이런 세밀함이야말로 영미권 연구자들의 진정한 강점이 아닌가 싶다. 글쎄, 곤자의 간략하고 명쾌한 서술이 곧바로 잘 와닿지 않을 때는 테일러로 돌아가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이는 더 읽어봐야 알 일이다.




 12월부터 정신없어서 미뤄두었던 테일러의 <헤겔>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대논리학> 및 <소논리학>(<엔치클로페디>의 1부)을 함께 다루는 논리학 파트의 한 가운데 있는 11장 "개념"이다. 70쪽 정도 분량이고 줄간격도 큼직큼직 하지만 여전히 천천히 읽어야 수월하게 이해하며 따라갈 수 있다. <정신현상학>을 다루는 파트에서 테일러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위치상으로도 한 가운데 있는 <논리학> 설명을 따라가면서 아직도 중요한 부분들, 독자의 사고를 상승시킬 수 있는 논리적 전개가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특히 '(부정적)총체성'과 관련된 10장-11장의 설명들은 후에 아도르노를 읽으려는 사람에게 적잖이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테일러는 (아도르노를 전혀 참조하지 않고) 총체성의 예로 악곡의 한 음표가 전체 악곡의 흐름 사이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예시를 드는데, 이런 설명은 아도르노의 예술비평관을 이해할 때도 거의 곧바로 적용될 수 있다.


 지금까지 읽으면서 내가 인식하는 헤겔은 작은 것들을 어느 하나 버리지 않고 주워담아서 그것들을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전체와의 연관관계에서 풀어내려는 사람에 가깝다. 헤겔 변증법에 대한 도식적인 설명으로부터 충분히 거리를 두고 그것을 보다 평이하지만 쓸만한, 유용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다; 핀카드를 포함해 오늘날 헤겔 전문 연구자들은 정-반-합으로 가는 '변증법' 도식이 헤겔에 대한 몰이해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아 지적하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변증법에서 전체로의 상승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테일러의 책은 아주 좋은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다시 느끼는 바지만, 이 '입문서'의 최대 강점은 개념과 미시적인 논리를 하나하나 풀어내고 그것들을 헤겔 자신의 논리적 순서에 따라 활용함으로서 실제로 독자들로 하여금 철학적 사고훈련의 여정을 함께 하도록 한다는 데 있다. 쉽게 말해서, <헤겔>을 읽는 시간은 단순히 헤겔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헤겔처럼 사고하는 법을 훈련받는 기회이기도 하다--"읽으면 머리가 좋아지는 책"인 셈이다.


 지금 딱 절반을 돌파했고, 몇 주 이내로 이 책의 끝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것으로 이제 헤겔에 대한 책들이 아닌 헤겔의 책들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