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핀카드[핀커드].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

Reading 2014. 10. 15. 18:08

테리 핀카드[핀커드].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 전대호&태경섭 역. 이제이북스, 2006. Trans. of _Hegel: A Biography_ by Terry P. Pinkard, Cambridge: Cambridge UP, 2000. 을 읽었다.

[2015년 4월 현재 도서출판 길에서 개역판으로 재출간]


 원서가 800쪽, 국역본이 1000쪽을 넘으니(주석 및 참고문헌 등을 제외한 본문만 840여쪽 가량 된다) 한국어로 출간된 헤겔 전기 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지난 주중부터 읽기 시작해서 어젯밤에야 다 읽었다(덕택에 수업 텍스트를 못 읽고 들어갔다ㅠㅠ). 번역은 군데군데 좀 의아한 대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읽는데 큰 무리는 없다. 헤겔 연구의 제 범위를 다루는 바이저의 책, 역시나 한 권으로 출간된 헤겔입문서 중에는 가장 탁월할 테일러의 책과 함께 헤겔에 들어가기 위한 사전독서목록에 포함시킬만하다. 다만 이제이북스 답게 현재는 품절(절판?)되어 도서관이 아니면 구할 길이 없다. 차라리 영서로 구하는 게 편할 정도. 칸트의 저술 국역본들이 적어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 기간 내에 죽 나와서 관심있는 사람이 한 번에 구할 수 있는 상황에 비교한다면, 헤겔 관련서적들은 역자&출판사들이 각자도생하는 것인지 전부 시간적 격차가 크게 나와서 누군가 헤겔에 관심을 가져도 대학 도서관을 통하지 않는 한 한번에 필요한 책들을 읽을 수 없는 게 아쉬운 감이 있다(당장 <대논리학>만 해도 재번역이나 개역판은 고사하고 더 이상 서점에서 구할 수 없다). 헤겔 전공자들이 헤겔의 국내보급을 좀 더 간절하게 원한다면 한번 손을 모아볼 만도 한데.


핀커드의 책은 전기이니만큼 직접적으로 코멘트할 지점이 별로 없다. 지금 책의 행방이 묘연해져서 찾을 수가 없는데, 바이저가 몇몇 대목에서 핀커드와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고 기억하지만 어차피 전공자가 아니면 크게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핀커드가 서술하는 내용들을 개략적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헤겔 개인의 인생 및 가족사. 기존의 수많은 "헤겔 전설" 및 오해에 대한 교정(대표적으로 헤겔은 콜레라로 죽지 않았다!). 헤겔 생일잔치가 언론에 크게 실린 걸 보고 프로이센의 왕이 삐져서(...) 다시는 (왕이나 귀족 빼고) 개인의 생일을 언론에서 다루지 말라고 명령한 소소한 대목들도 있다. 횔덜린, 셸링, 헤겔이 청소년기부터 매우 가까운 사이였고 헤겔은 젊었을 적에는 셋 중 가장 두뇌회전 속도가 느린 취급을 받았다거나 등등(그래서 셸링이 끝까지 헤겔을 인정하지 않은 거라든가...).


2) 헤겔이 살던 시대. 1770년부터 1830년 초까지의 독일의 정치적 상황; 계몽, 특히 프랑스혁명 및 나폴레옹 전쟁의 영향을 받은 개혁적 성향과 여전히 강력했던 보수반동적 성향의 충돌. 나폴레옹 전쟁 이후는 군주의 눈치를 보면서 개혁파들이 조금씩 전진하는 가운데 귀족/보수반동진영이 버티고 있는 반동정국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맥락은 "고향마을"로 대표되는 지역주민들 / 귀족계급 / 개혁파 부르주아들의 요구가 상충하는 상황과 연결되어 조금 더 복잡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핀커드는 특히 만년의 헤겔에게 쏟아진 "프로이센 정부에 충성하는 보수반동 철학자"라는 이미지가 심각한 오해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핀커드는 헤겔을 개인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이념적으로는 여전히 프랑스혁명의 정당성에 충실했으며 (예컨대 한창 반동정국임에도 바스티유 감옥 습격일을 기념한다거나) 단지 혁명이 아닌 (국가와 관료가 주도하는) 점진적인 개혁을 옹호한 이로 그려낸다. 물론 헤겔의 만년이 프랑스의 7월 혁명을 기점으로 한창 "혁명의 시대"가 다시 불붙을 때였기 때문에, 헤겔의 철학이 수많은 추종자를 양성했음에도 그렇게 쉽게 갈라지고 쪼개지는 건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3) 독일의 종교적/사상적 맥락. 가톨릭 대 개신교(헤겔은 개신교도였다) 구도는 현실에서 칸트 이후의 사상사적 맥락과 뒤얽혀 작용했다. 가령 독일 낭만주의 계보(피히테, 셸링, 슐레겔 형제 등등)에 속한 피히테가 무신론자 혐의로 예나 대학에서 해고된다거나. 칸트 이후 칸트에 입각한 근대철학을 극단적으로 전개하여 허무주의를 이끌어내고 이를 비판한 입장(대표적으로 야코비)과 칸트에 내재한 제 영역의 분할을 통합시키고자 하는 독일 낭만주의자들이 있었다면, 헤겔은 독일 낭만주의자들로부터 출발하여 양자 모두와 다른 고유의 입장에 도달한다. 분명 프랑스혁명의 한결같은 지지자였으면서 직접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지는 않았던, 그리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했던 헤겔은 자신의 사상적 입장이 '위험하다'고 몰리지 않을까 늘 걱정했다. 더불어 핀커드는 헤겔에게 횔덜린이 미친 영향을 매우 강조하는 편에 속하는데, 나 자신이 횔덜린과 헤겔 양자에 대해 어떤 입장을 제시할 수준이 못 되므로 평은 못 하겠다.


4) 2&3번과 연결된 독일 대학의 맥락. 당시 독일의 대학은 대학이 소재한 지역의 군주&왕의 후원에 의존했으며, 후원자가 어떤 의도를 품고 누구를 대학정책담당자로 임명하느냐 등에 따라 많은 변모를 겪었다. 독일 낭만주의 그룹을 대거 불러들여 일시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근대대학의 한 시발점이 된 예나 대학이 피히테의 해고 이후 급속도로 추락한 것이 한 사례다. 헤겔은 안정된 직장에서 정교수로 임용받을 때까지 예나 -> 하이델베르크 -> 베를린으로 옮겨다녔고 (그래서 꽤 이른 시기에 <정신현상학>을 출간했음에도 불구하고 헤겔은 꽤 늦은 나이까지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며 살았다) 헤겔의 경로를 추적하는 것은 독일에서 근대 대학모델 및 (귀족이 아닌 자본가, 관료 등의 새로운 시민계급을 위한) 교양교육의 이념이 어떻게 출현하는가를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헤겔이 슐라이어마허, 빌헬름 폰 훔볼트 등과 함께 (국가의 이익을 위한) 교양교육의 주창자에 속한다는 사실은 기억해둘 만 하다.


5) 4와 함께 헤겔 저술들의 사상적/사회적 맥락 및 입문에 가까운 내용 설명. 자잘한(?) 개별 텍스트들에 대한 설명으로는 역시 국내 단권으로 출간된 책 중에서는 가장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쨌든 헤겔의 자연철학까지 다루고 있으니까. 2&3과 연관되어 헤겔의 정치적 논설들이 갖는 의미 또한 설명된다.


요컨대 한번 읽어두면 18-19세기 전환기 독일의 사회사 및 지성사, 교육제도의 성립 등에 대한 개략의 감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제법 도움이 된다. 특히 서유럽 근대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잘 정리된 독일근대사를 쉽게 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 요긴할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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