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erson, Perry. _In The Tracks of Historical Materialism_. 읽고 생각. [140211]

Reading 2014. 3. 18. 12:29

* 2014년 2월 11일 페이스북


Perry Anderson의 _In The Tracks of Historical Materialism_을 읽었다. Rene Wellek Library Lecture 에서 강의한 내용을 묶어 편집한 소책자다--출간년도는 1983년인데 실제 강의년도는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크지 않은 판형으로 순수하게 읽을 내용은 색인빼고 딱 100쪽이다. 바닥까지 떨어진 영어실력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고자 붙들었으나...예상보다 이틀 정도 늦어졌다. 제목과는 달리 표지에 얼굴이 나온 네 명은 각각 하버마스, 푸코, 라캉, 데리다(데리다만 좀 이상한 사진이 나와서 알아보는데 시간이 걸렸다)이다. 아니나 다를까, 하버마스를 제외한 셋을 structuralism 으로 묶어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게 2강의 핵심논지이다. 하버마스는 좀 더 쳐주기는 하지만 "언어학적 전회"라는 기본 틀에서 구조주의자들이 겪은 문제를 빗겨나간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버마스에 대한 앤더슨의 좀 더 상세한 검토는 2005년 출간된 _Spectrum_에 실려있다(국역본은 2011년에 나왔다). 찾아보니까 앤더슨의 이 강의록도 <역사유물론의 궤적>이라는 이름의 국역본이 있다. 군데군데 어휘가 좀 어렵고 몇 번씩 읽어봐야되는 문장이 있긴 하지만 쭉쭉 읽으며 대강의 요지를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은 책이다.

총 세 차례의 강연 및 추기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앤더슨은 자신의 전작 <서구마르크스주의 읽기>_Considerations on Western Marxism_에서 수행한 작업을 이어서 진행한다(아쉽게도 내가 전작을 못읽어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모르겠다). 1강, "예측과 성과"Prediction and Performance에서는 프랑스, 이탈리아의 좌파적 사상들이 어떻게 곤경에 처하게 되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미권을 포함한 각지에서 (앤더슨이 볼 때 좀 더 실천적이고 충실한) 새로운 연구자들이 나오고 있음을 말한다. 30년 전이니까, 이때 앤더슨이 꼽는 사람들이 홉스봄이나 에릭 올린 라이트, 브레너, 괴란 테르본, 니코스 풀란차, 클라우스 오페 같은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앤더슨은 프랑스쪽의 좌파적 '철학'에 비판적이며, 역으로 그가 좀 더 사적 유물론의 본 정신에 가깝다고 평가하는 쪽은 경제학(만델, 브레이버만Harry Braverman, 아글리에타Michel Aglietta...모리시마 미치오나 존 로머 등등)이나 역사학(홉스봄, 윌리엄스, 브레너 등등)이다. 이런 말이 공정한지는 모르겠는데, 앤더슨의 성향이 지극히 '영국적'이라고 한다면 조금이라도 전달될까? G. A. 코헨을 철학에서 성과를 거둔 사람으로 꼽는데, 솔직히 앤더슨이 가차없이 비판하는 프랑스 쪽만큼 무게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튼 이미 맑시스트 계보에서 일급이든 이급이든 고전이 된 책들을 각 분야별로 죽 훑어보면서 "나름 전망이 밝다"라고 말하는 식이니까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묘한 느낌이 들긴 한다.
그럼 (앤더슨이 "라틴권"이라고 지칭하는) 프랑스-이탈리아 쪽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2강의 제목 "구조와 주체"Structure and Subject를 보기만 해도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바로 감이 온다. 프랑스 좌파이론에 대한 앤더슨의 관점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사르트르부터 구조와 주체 문제 때문에 맑스주의 사회철학들(...이라고 해봐야 결국엔 알튀세 혼자 언급된다)이 흔들흔들 거리다가 (소쉬르의 언어분석틀을 가져온) 구조주의자들한테 주도권을 빼앗겼고, 구조를 강조하다가 주체를 설명할 수 없게 된 구조주의자들은 68 이후 구조를 망각하고 주관주의로 빠진 포스트구조주의로 넘어가면서 자기 이론의 기반까지 말아먹었다 정도가 되겠다; 구조 간의 이행문제, 물질적인 것들을 망각한다는 점, (언어를 가져오다보니) '개인'주체만 상정하고 집단적 주체는 사고할 수조차 없다는 점 등 나름대로 생각해볼만한 비판점들은 몇 군데 있긴 하지만 사실 지금 읽으면 특별히 흥미있는 방식의 비판은 아니다. 앤더슨이 자기도 열심히 읽었다고 푸코, 라캉, 데리다, 레비-스트로스를 다 이것저것 인용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가 안 읽어봐서 모르겠고 푸코 읽기는 심각한 오독이 너무 많아서 별로 신용이 안 간다. 특히 권력문제 같은 경우 푸코가 가장 하지 말아야 할 통념이라고 비판한 "그럼 사람들을 감시하는 주체는 도대체 누구냐"같은 질문들을 던지기도 하고... 앤더슨이 어찌보면 가장 공을 쏟는데 사실 지금의 시점에서는 가장 읽어서 배울 게 없는 부분이다.
3강 "자연과 역사"Nature and History에서는 하버마스의 비판적 검토로 시작해서(이 부분의 논지는 지금도 아주 쓸모없지는 않은데 너무 간략하다) 다시금 서유럽 전반에서 나타나는 맑스주의(자)의 위기에 관한 정세분석으로 넘어간다(대체로 앤더슨이 꼼꼼한 독자인 건 맞는데, 이 책에서 지금 읽어도 괜찮은 부분은 정세분석의 비중이 높고 광범위하게 저자들을 소개하는 1강과 3강이다). 68과 동구권의 쇠퇴 이후 유로코뮤니즘이 야심차게 시동을 걸었다가 어떻게 추락했는지, 이런저런 연구들은 많이 나왔는데 정작 사회의 혁명적인 전진을 수행할 세력결집은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느니, 사민주의를 포함한 경쟁자들과 어떻게 차별화해야하는지...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지금 읽어도 딱히 옛날 얘기같지 않다는 게 더 문제라면 문제일수도 있겠다. 오히려 추기에서 앤더슨이 확고하게 말하는 사적유물론의 우위가 지금은 보란듯이 쪼그라져들었고, 그가 당시에 언급한 "희망"들이 지금은 다 노년기에 접어들었음에도 후계자들은 없다는 점에서 이러저래 더 암울하다. 페미니즘, 평화운동-반핵운동, 생태운동 등과의 연계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지만...'연구는 좋은데 실천할 수 있는 "전략"strategy이 없다'는 진술은 오늘날에도 똑같지 않은가?(그래서 포스트맑스주의에서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을 답변으로 내놓긴 했는데...글쎄올시다, 다) 여기서 앤더슨이 경계대상으로 지목하는 제3의 길 같은 사민주의자들이나(물론 독일은 예외일수도 있겠다) 레이건/대처 계보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지금은 다 한 풀 꺾였는데, 맑시스트들은 더 축소되면 축소되었지 세력을 확장한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앤더슨이 30년 전 자신의 강연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며칠 전 타계한 앤더슨의 옛 동지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의 인터뷰를 보면 참 암울하기 짝이 없는데, 앤더슨도 똑같은 기분일까? 아니면 그는 여전히 무언가 희망을 믿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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