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영향을 준 13권의 책들.

Comment 2014. 9. 17. 01:01

요즘 페북에서 돌고 있는 놀이(?). 언제나처럼 나는 내 멋대로 했다. 목록을 만드는 김에 지금까지의 독서인생을 아주 부분적으로나마 정리해보자는 생각으로 설명을 붙였더니 꽤 시간이 걸리고 목록도 좀 늘었다. 사실 <성경> (어쨌든 국민학교 때는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같은 텍스트도 빠져 있고, 만화나 애니메이션, 웹사이트, 사람 및 단체와의 접촉(예를 들어 내 삶을 대학 때의 반공동체, 봉사단체, 교육공동체 나다, 법인화 반대 대학원생 모임과 같은 집단의 경험을 빼고 이야기하는 것은 넌센스다)과 같은 경험들이 전혀 거론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목록만으로 누군가의 지적 성장/영향과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특히 나처럼 직업적으로 책을 읽고 음미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규칙: 이 글을 보시고 나서 몇 분 동안이나 너무 오래, 그리고 복잡하게 고민하지는 마세요. 꼭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위대한 문학 저작만을 고를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어떻게든 당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책들을 10권 고르면 됩니다. 그리고 나서 저와 함께 다른 10명의 친구들을 태그해주시면 됩니다. 제가 여러분의 리스트도 볼 수 있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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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하고 자야겠다. 지금 안 하면 까먹을까봐... 유년기부터 쓰겠음.  솔직히 나는 10권으로 뭔가를 정리하기엔 어림도 없다. 이 리스트는 불완전한데, 무엇보다 칸트와 헤겔이 빠져 있다(이 둘은 내게 아주, 정말로 아주 중요하다). 거기에 나는 지금도 책을 읽으면서 계속 영향을 받는 중인 걸. 그래서 내 멋대로 더 붙였다. 사실 석사논문을 쓴 뒤 지난 3년간의 독서를 생각하면 여기에 더 들어가야 하는 게 맞다.


1. 위기철 <논리야> 3부작(<반갑다, 논리야>, <논리야, 놀자> <논리야, 고맙다>) : 국민학교 시절, 생각하는 방식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줬다. 여기에 맞먹을 책은 <수학귀신> 밖에 없을 거다. 주변의 문학전공자 중에 나는 텍스트로부터 가장 수학적/(언어)논리적인 구조를 따져보는 편에 속하는데, 아마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그런 훈련이 되었던 것 같다.


2. 채지충 <중국만화고전 55권> : 어릴 적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주 깊숙하게 내 세계관의 저변에 구석구석 깔려 있음을 지금도 가끔 지나치다 발견하곤 한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내게 사실 근본적으로 깊은 감명을 준 책들은 <장자> <사기> <채근담> <선>과 같은 것들이었다.


3. 미하엘 엔데 <모모> / <끝없는 이야기> + 국민-중학생 때 읽은 환상/현실적인 동화들 전부. 창비아동문고나 산하어린이가 어린 시절의 세계관을 구축하는데 엄청난 역할을 했다. 나처럼 직업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은 계속 뒤에 읽는 책들이 많아지면서 어린 시절의 독서경험을 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갖가지 창작동화들과 아동문고가 최초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절대로 과소평가될 수 없다.


4.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 : 가끔 지인들에게 이야기하는데, 중학생 때 도서관에서 아주 옛날에 번역된 이상한 판본을 꿈 해몽 코너에서 집었다.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해보는 습관이 생겼다는 게 중요하다. 분석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분석하는 습관이라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행동/성격과 마주쳤을 때, 그것을 미워하고 욕하는 대신 "왜 그렇게 되었을까"를 질문하는 것을 가리킨다.


5. 리처드 버튼 편. <아라비안 나이트>(범우사판, 전10권) : 고등학교 때. 사실 국민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아니 대학 학부시절까지 나는 항상 어떤 형태로든 (소설이 아닌) '이야기'를 읽었다. 어릴 적엔 각종 민담들과 전설들, 설화들을 보았고, 중학생 때는 판타지(톨킨, 젤라즈니)와 무협(특히 김용)을, 고등학교 때는 SF와 추리를 보았다. <그림형제 동화집> 은 고등학교 때. 이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이야기에 대한 근본적인 감각을 만들었다. <아라비안 나이트>를 고른 건 이야기의 대표적인 사례로서의 상징성 때문에.


6. 움베르토 에코. <푸코의 진자> : 중-고등학생 시절 세 번 정도 읽었다(최초에 읽은 판본은 중학교 도서관에 있던 <푸코의 추>였다). 정작 대학 때 안 읽은 것은 특이하다. 중고등학교 때 내게 제일 중요한 책들은 에코와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로저 젤라즈니였다. 돌이켜보면 이중 이후 지속적인 영향을 준 저자는 에코였다. 학부 시절에 포스트모던적인 감수성을 갖고 사는 데 에코를 읽은 경험은 꽤 컸다(그리고 포스트모던에 대한 비판으로 돌아서면서 자연스럽게 그를 더 읽지 않게 됐다).


7. D. H. Lawrence <Women in Love> : 학부 때 수업에서 읽었다. 연애 또는 누군가와의 관계 맺음에 대해 본격적으로 성찰하는 계기.


8. 우석훈. <88만원 세대> /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 지금 우석훈의 주장에 대해 그 어떤 코멘트가 붙든간에, 이 책이 학부 4학년 때의 나에게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소설만 파던 골수 인문대생이었던 나는 이 책들을 기점으로 최초로 사회적인 것을 바라보는 시야를 얻었고, 더불어 조직운용과 같은 실천적인 문제를 사고의 대상으로 삼는 기회를 가졌다. 내 삶에 사회적인 것, 실천적인 것과 사고하는 습성이 상호침투하게 된 건 어쨌거나 우석훈의 영향이 매우 크다. 과장을 섞지 않고 담담히 말해서 학부시절 내게 가장 막대한 영향을 준 책과 저자다. 그리고 난 아직 우석훈이 꺼냈던 이야기들 중 우리가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고 넘긴 주제들이 제법 있다고 생각한다. 그를 욕하고 평가절하하기는 쉽지만, 그가 던진 질문들을 충분히 숙고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9. 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 <탐구> <트랜스크리틱> <언어와 비극>. 석사 2년차부터 '사고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가라타니를 읽는 세미나를 1년 가까이 열었다. 돌이켜보면 내 공부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제공한 게 그 세미나였다. 딱히 우리를 지도해줄 사람은 없었고, 그래서 나는 매번 최소 3번씩 그날 읽을 분량을 읽고 정리해서 세미나에 들어갔다(세미나에 들어가서 중요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지금의 습성이 생긴 것도 이 때다). '이론적 사유'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이때부터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이론 혹은 사상가의 저술을 읽을 때 텍스트로부터 '한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을까'를 따져보게 된 것도 가라타니를 본격적으로 읽으면서부터. '독서의 윤리'를 고민한 것도 이때부터. <언어와 비극>에 아주 짧게 폴 드 만의 나치경력에 대해 논하는 좌담회가 나오는데, 이때 가라타니의 태도는 아직도 인상에 남는다. 가라타니가 발레리부터 끌어온 "가능성의 중심"이라는 키워드는 "극단적인 것이 진리를 체현한다"는 프랑크푸르트 1세대들의 격언과 함께 (나는 근본적으로 둘이 매우 유사한 원리를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의 독서관을 형성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독서의 윤리에 기초해서 읽을 때 가라타니의 현란함으로부터 어떤 나름의 일관된 태도를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더불어 가라타니를 읽으면서 동아시아의 사상적 문제들, 예컨대 마루야마 마사오나 다케우치 요시미를 건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말해둔다.


10. 테오도어 W. 아도르노. <미학이론> <미니마 모랄리아>. Fredric Jameson. <The Political Unconscious>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맑스주의와 형식>) : 석사논문을 쓰는 중간-후반에 읽었다. 내게 암묵적으로 그러나 깊숙히 박혀 있던 "문학과 예술은 반드시 해방적"이라는 편견을 깨트리고 텍스트의 서사구조와 이데올로기를 읽을 수 있게 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해주었다. 사실 PU를 먼저 읽고 제임슨을 따라 가다가 아도르노를 읽었다. <미학이론> 앞부분을 처음 읽었을 때 충격은 컸고, 텍스트 비평에 있어서도 미학적/예술철학적 전제들을 검토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미니마 모랄리아>는 인생의 고통스러운 순간에 한번쯤 다시 꺼내들게 되는 텍스트다. 예민함이 꼭 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이들 모두로부터 나는 변증법적으로 사고하는 방법론을 배우고 또 이를 보다 잘 숙달할 필요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아도르노의 텍스트는 거의 전부 중요하지만(솔직히 나는 <부정변증법>과 <신음악의 철학>을 뺀다는 게 마음에 조금 걸리긴 한다), 일단 직접적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만 꼽자면 이렇다(벤야민은 그래도 한국어로 번역된 건 박사논문이랑 <아케이드 프로젝트> 빼고 한번씩은 다 읽었는데, 아도르노만큼 감명깊지는 않았다. 벤야민 팬들은 싫어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천재적이라고 느낀 적은 한번도 없다...니가 뭘 안다고, 라는 말이 성급하게 나오는 걸 미리 방지하기 위해 칸트를 읽기 전후에 벤야민이 완전히 달리 읽힌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고 얘기해두자. 내게는 칸트나 헤겔, 맑스나 푸코가 훨씬 근본적인 것들을 건드리는 사상가들이었고, 아도르노가 사유의 끈질긴 모범을 제공한다).


11. 칼 맑스.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 <자본 2권> / 에르네스트 만델 <후기 자본주의>. :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에 대해선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거고, 내가 맑스주의자가 된 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은 석사 3년차 때 읽은 만델의 책 및 흥미롭게도 <자본> 1권이 아닌 2권이다. 왜 2권인지만 말해보면, 자본/기업의 운행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지를 '논리적으로' 해명한 텍스트였고, 나는 2권을 읽고 또 만델을 읽으면서 (특별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두 책을 읽었다) 맑스주의가 실제로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근본적인 현상을 해명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해준다고 느꼈다(내가 맑스주의자로 이행하는 과정은 그런 점에서 꽤나 예외적인 셈이다...). 만델이 <후기자본주의> 서두에서 밝힌 이론적인 언어들은 몇 가지 중요한 모티프를 숙고할 수 있게 해주었고, <자본> 2권은 내게 시간과 구조의 문제,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결정적인 요소로 변증법적 운동에 대해 사고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물론 이보다 조금 더 뒤에 읽은 베버, 특히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도 매우 인상 깊었지만, <자본>만큼은 아니다.


12. 미셸 푸코의 후기 저술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성의 역사> 1권 <안전, 영토, 인구>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주체의 해석학> <성의역사> 2권, 3권. : 전역 후 반년 간 세미나를 하면서 쭉 읽었다. 푸코의 책만이 아니라 푸코와 그의 사유, 논리적 도구들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다. 사태를 비스듬히 볼 것, 장치/매개의 입장에서 사고하기, 주어진 커다란 관점을 한번쯤 뒤집어보기...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푸코를 따라가보는 독서의 또 다른 장점은 한 명의 사상가가 자신의 사유를 계속해서 바꾸고 발전시키는 경로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도르노 같은 경우가 비교적 일찍 자신의 방법을 형성하고 그것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이라면, 푸코는 몇 가지 근본적인 논리도구는 유지하지만 자신의 개념을 계속 수정해가면서 서서히 큰 그림을 만들어나가는 경우에 속한다(조금 경우가 다르지만 가라타니는 후자 이상으로 많이 바뀌는 편이고). 푸코의 저작을 따라 읽는 것은 그러한 사례를 직접 체험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도 독서와 사유의 이해를 풍성하게 해주는 좋은 경험이 된다.


13. 제러미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 여기에 있는 리스트에서 가장 독특한 위치에 있다. 내 석사논문을 스치듯이라도 보신 분들이면 내가 이 텍스트에 왜 이런 중요성을 부여하는지 알 것이다. 나는 벤담으로부터 나의 일부분을 이루는 중요한 논리를, 나와 동시대인들의 사고를 점거했던 특정한 원리를, 그리고 자유주의 인간관이 가장 극단적으로 전개된 '정수'를 본다. 이런 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미스, 특히 <도덕감정론>의 인간학의 구조와 비교하는 게 좋다(나는 벤담을 밀보다는 스미스랑 비교하는 게 적어도 최초의 독서에서는 지름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벤담과 스미스가 무엇에서 부딪히는가를 보는 게 중요하다). 그는 절충적이지 않기 때문에 연구할 가치가 있다...한 마디로 나의 적수들 중 가장 중요한 텍스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벤담을 이해하면 아주 많은 것들을 같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가령 칼 슈미트는 단순히 독재옹호론자가 아니라 자유주의 전통에 대한 우파적 비판자로서 이해되어야 하며, 그가 가장 혐오하는 전통의 정수에 벤담이 있다고 말해도 아주 틀리지는 않다. 석사논문을 쓰면서 벤담과 디킨즈의 텍스트를 엮고 또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은 확실히 내 사고능력이 이전의 상태로부터 발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 개월 동안 자신이 이전에 사고할 수 없는 것들을 사고할 수 있게 되는 걸 스스로 확인할 때의 기쁨에 비견할 만한 즐거움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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