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추석 일기.

Comment 2014. 9. 9. 02:25

추석 일기.


1. 호르크하이머의 논문 "전통이론과 비판이론"을 읽었다. 정리한 글은 따로 썼다. <에밀>은 아직 4부를 읽고 있다(내일까지는 다 봐야 한다). 에밀이 청소년기에 들어섰다. 루소는 이제 공감과 감수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우리의 사고는 항상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하며, 타인을 이해하는 것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고 말한다. 즐겁고 유쾌한 것이 아닌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공감의 거의 유일한 동력이다.



2. 사촌누이의 몸이 안 좋아서 내게 5촌 당질녀가 되는 세 살박이 아이가 혼자 큰집에 와 있다. 성묘를 위해 할머니가 외따로이 묻힌 산으로 가는데, 최근 전통의 전달을 유독 강조하는 어른들이 그럭저럭 걸어다니고 서툰 발음으로나마 말도 곧잘하는,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면서도 사람들에게 쪼르르 달려가 잘도 안기는, 그래서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이 꼬맹이를 데려갔다(지금까지 "큰엄마가-"라고 스스로를 호칭하던 큰어머니의 입에 "할머니가-"가 붙었고 우리는 낄낄거리며 놀렸다). 나름 경사가 있고 좁아서 걷기 그리 편치 않은 산길이라 아이를 들고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 나 뿐이었다. 산으로 들어서는 지름길이 너무 좁아 조금 넓은 길로 안전하게 가려고 홀로 방향을 틀었다. 판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하필이면 대강대강 모양만 그럴싸하게 만들어놓고 돌판 아래의 흙은 제대로 채워져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한 마디로 부실공사랄까. 우지끈, 소리와 함께 발밑이 무너질 때 품에 아이를 안고 있는지라 중심도 가누지 못하고 속절없이 오른편의 자갈밭으로 넘어졌다. 그 1-2초도 안 되는 시간이 순간 길게 느껴졌다. 다른 무엇보다도, 여기서 애가 다쳤다간 평생 사촌누이 볼 낯이 없다는--누이가 이 딸을 얻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지 않았다--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다. 넘어지면서 어떻게든 애는 안 다치게 하려고 최대한 품에 끌어당기고 내 몸만 바깥에 닿도록 데굴데굴 굴렀다(그러니까 주짓수의 스윕이나 낙법을 생각해보면 조금 원리가 이해가 될까?). 구르는 와중에 몸이 몇 년 전 열심히 훈련했던 시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마지막에 결국 아이가 땅에 가볍게 부딪혔고, 이윽고 울음을 터트렸다. 친척들이 소리지르면서 뛰어와 애를 들어올렸다. 엉엉 울긴 하는데, 요모조모 찾아봐도 다행히 긁힌 데 하나 없었다(다른 누구보다 내가 제일 가슴을 쓸어내렸을 거다). 살짝 부딪힌 게 걱정이 돼서 몇 시간 뒤에 또 확인해봐도 아무 일 없이 잘만 놀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던 나는 팔꿈치가 벗겨지고 온 몸에서 "나 굴렀소"의 티가 풀풀 났기 때문에 살신성인의 공로를 인정받아 면책되었다. 사실 팔꿈치도 팔꿈치지만 청바지로 보호받은 무릎이랑 정강이도 허물이 벗겨지고 멍들어서 걸을 때 좀 불편하긴 하다...


결론은 "잘 배운 격투기, 당신과 아이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는 뻥이고 애를 안고 있을 때는 정말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마음으로 가야한다는 것 ㅠㅠ 돌바닥이 무너질지 누가 알았으랴. 정말 친척어른들 말마따나 "용꿈 꾼", 십년 감수한 하루였다.



3.성묘도 공식 루트랑 비공식 루트가 따로 있다. 나이 먹은 남자에다가 운전수로서의 효용도 없었기에 비공식 루트로 갈 멤버로 동원되었다. 가보니 2년 반 전 입대를 앞두고 절하러 왔던 곳이다. 한전이 고압 송전탑을 설치한다고 아예 포크레인이 들어가는 길을 만들어버렸다. 공사를 너무 하다보니 산사태 위험이 생겨서인지 강철로 만들어진 돌망태가 몇 무더기 쌓여있었다. 한참을 걸어 올라갔더니 묘 지근거리에 송전탑이 어느새 서 있다. 밀양 때문에 널리 퍼진 영상, 형광등을 송전탑 아래 땅에 박으니 불이 들어오는 실험을 본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데 주변엔 사람이 못 살지." 공무원인 삼촌들은 "이 땅이 우리 땅이었으면 못들어오게 절대 반대했지"라며 멋적은 웃음을 짓는다. 멀리 전경에는 어느새 송전탑과 고압전선이 한가득 들어차 있다. 여기에 7대조 묘가 있다. 지난 주 벌초 때 처음 본 9대조 묘나 6대조 묘가 함께 정선에 있는데 이 묘만 왜인지 여기에 와 있다(나는 우리 집도 족보를 사들인 노비집안이 아닐까를 매우 깊게 의심하고 있었는데, 19세기 사람들의 묘를 벌초하는 걸 보고 내 가설을 포기했다...그리고 내가 죽어도 절대로 묘는 남기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절하고 주변에 누가 버려놓은 두유팩을 주웠다. 어디선가 까악까악 울음이 들려서 고개를 들어보니 송전탑 위에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계속 우짖는다. 전기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건지 흰 반점 하나 없는 몸뚱이는 꼿꼿하게 철탑을 붙들고 있다. 내려오는 길엔 말라비틀어진 뱀의 시체를 보았다. 흔한 플라스틱 끈/비료포대 쪼가리 정도로 생각했는데, 눈썰미가 있는 어른들은 단번에 뱀인지 알아보았다. 약간 광택이 남아있는 검은 끈 같은 몸뚱이가 바싹 말라 마른 흙길 위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독사니 아니니 말하던 어른들은 시체를 옆의 풀길로 던져두었다.



4. 어머니들은 어쩌다가 세월호 특별법 이야기를 했다. 물론 법의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왜 아직까지 그러고 있느냐, 이제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냐가 논의의 주제다. 이 주제를 갖고 웹에서 한참을 싸웠는데 정작 주변은 바뀐 게 없어 피로감이 몰려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5. 저녁 때 어머니와 함께 의림지로 걸어 산책을 다녀왔다. 너무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얼마 전에 목도한 교통사고를 얘기해주었다. 차가 오토바이에 탄 80대 노인을 쳤고, 노인은 멀리 가드레일까지 굴러갔다. 시체가 웅크려져 있는 모습이 처음에는 보따리 두어 개를 놓은 모습처럼 보였는데, 사람들이 다가와 시신의 다리를 펴는 걸 보고 비로소 죽은 이였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두려움보다는 허무감을 느꼈다는 이야기가 끝나고, 잠시 후 우리는 다시 우리들과 주변의 삶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잘 하니까 그래도 아주 잉여인간 취급은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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