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이론과 자유주의적 개인

Comment 2014. 9. 25. 11:54

일단 숙명여대 축제의상 논란 관련하여 한번 읽어볼 글을 링크한다.

http://slownews.kr/30878




이 주제에서 내 눈길이 가는 부분은 역시 10번에 제기된 문제. 숙대 총학생회의 결정에 대해 자유와 권리의 침해라는 식의 비판이 가해진다고 할 때, 이러한 비판 및 그 전제를 단순한 헛소리라고 넘기기 전에 도대체 어떠한 논리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주장이 생겨나는지를 생각해보자. 비판자들의 논리를 풀어보면 단순하다.


 대전제는 물론 고전적 자유주의의 명제다. 개인은 자신의 욕망과 의지에 따라 움직일 자유를 가지며, 이는 타인의 이익과 정면으로 상충하지 않는 한 불가침이다. '야한 옷'을 입을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자유에 포함된다. 따라서 그에 대한 제재가 가해져서는 안 된다.



논리의 가장 약한 고리는 역시 두 번째 문장에 있다. 이를 점검하기 위해서는 통상적으로 자유주의적 논변에 잘 포함되지 않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 '야한 옷'을 입는 걸 포함해 특정한 욕망/의지는 전적으로 개인 고유의 것인가? 즉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누군가 우리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라고 명령했을 때 이를 따르는 것을 통상적인 의미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면(물론 거절하고 총에 맞는다는 선택지와 뛰어내린다는 선택지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했기 때문에 자유가 있는 게 맞다는 논변도 있다), 비슷한 질문을 이 사례에도 적용할 수 있다. 즉 여기에 실제로 '야한 옷을 입고자 하는' 자유로운 욕망이 존재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겉으로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는 욕망/행위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고전적으로 분류해본다면 두 가지 방식을 꼽을 수 있다. 하나, 행위와 행위를 강제하는 권력에 대한 분석. 이는 앞서 언급한 머리에 총구가 겨눠진 사례랑 근본적으로 유사한데, 다만 명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권력과 지배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사람의 (겉보기에) '자유로운' 행위를 강제하는가를 다룬다. 아래 대학 축제의 예를 단순화시킨다면, 동아리 선배들이 암묵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조장했다거나, 주로 '야한 옷을 좋아하는 남성'으로 상정되는 소비자들을 보다 많이 유치하기 위한 경쟁적 이윤창출의 목표가 학생=노동자들이 자신의 성을 상품화하라는 식의 강제를 부과한다는 설명이 가능하다(이때 단순히 성상품화가 아니라 성적 노동의 강요와 착취가 문제가 된다). 맑스주의적 사회분석이론을 포함해 비판적 사회분석이론은 이렇게 특정한 행위를 강요하는 권력의 메커니즘 및 권력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기제/구조 등을 분석하고 밝혀내는 데 그 주요한 목적이 있기도 하다.


둘째, 인간의 의식 혹은 욕망을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 첫 번째 분석경향이 "그건 정말로 자유로운 행위인가"라는 질문 하에서 인간의 외적 행위와 그것을 강제하는 사회적 권력을 다룬다면, 두 번째 경향은 외적인 측면에서는 자유로워 보이는 개인/집단의 의식적 판단이 실제로 자유로운가를, 즉 "그건 정말로 자유롭게 생각해서 도달한 판단인가"를 묻는다. 아주 단순화된 예를 든다면, 누군가가 일부러 내게 거짓말을 했고 내가 그 거짓말에 기초해서 판단을 내린다면 이건 진정한 의미의 자유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감이 잘 안온다면, 독재국가에서 어릴적부터 세뇌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의 판단을 우리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고전적 맑스주의에서 제시하는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이 대표적 예시다.


 비판이론으로서의 정신분석의 등장은 이 흐름에 결정적인 논리를 제공했다. 즉 프로이트 이래 나의 욕망 혹은 가치체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통상적인 자유주의 모델에서 어떠한 의심도 받지 않던 개인의 '자발적인' 욕망 자체가 사실은 특정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비판이 가능해졌다. 정신분석을 비판적 이론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의식과 욕망의 형성과정을 (첫 번째 항목에서 다룬) 사회적 기제와 연결한 것은 이런 관점에서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해도 좋다(라캉을 전유한 알튀세르나, 프랑크푸르트 학파 1세대, 매우 넓은 범위에서 영국 맑스주의자들의 민족주의 연구 등등), 이러한 분석을 대학축제의 사례에 직접적으로 적용한 예를 본다면, 애초에 '야한 옷'을 입고자 하는 욕망 자체가 남성들의 성적 욕망에 적극적으로 복무하라는 사회적 요구를 내면화한 '자유롭지 않은' 욕망이라는 비판을 들 수 있겠다.



이 두 가지 흐름(양자의 결합을 포함해서)은 결국 동일한 대상을 비판하며 등장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지반을 갖는다. 곧 사회적 맥락을 배제하고 자신의 순수한 욕망/판단에 따라 행위하는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관념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비판적 이론들이 출현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자유주의의 핵을 이루는 모든 인간='자유로운 개인'이라는 믿음 자체가 비판적 사고와 양립불가능한 '이데올로기'라고 해도 좋다. 따라서 현재 숙명여대 총학생회의 결정에 '개인의 욕망의 자유로운 추구를 가로막는다'는 식의 비판은 그러한 순진한 의식,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소산이며, 이와 같은 논리의 확산은 한국사회에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깊게 침투해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비판적인 사고를 수행한다는 것이 오늘날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상세한 분석을 추가로 진행하지는 않겠지만, 한국 대중사회의 이데올로기 분석에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영향은 그 자체로 중요한 전제이자 역사적인 분석을 요구하는 사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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