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교수의 인터뷰에 대한 비판적 논평: 87년 이후 시민사회에 관해

Comment 2015. 12. 4. 03:41
송호근 교수의 열린연단 강의 "한국 근대사회의 기원: 상상적 시민의 탄생"(http://openlectures.naver.com/contents?contentsId=48476&rid=251#literature_contents) 및 2년 전 인터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1&aid=0006623851&sid1=001)를 우연히 읽고 남긴 비판적인 논평. 한 페이스북 친구분의 게시물에 댓글로 달았던 이야기라 글투가 경어체다. 솔직히 최근 송 교수의 중앙일보 기고문을 (우연히) 보면서 당황하고 실망스러운 적이 여러 차례 있어 기대치가 아주 높지는 않지만, 언젠가 직접 저작을 읽어보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기를 빈다.



저는 링크해주신 열린 연단 강연문 외에 송호근 교수의 저술을 읽어본 게 없어서 정확한 코멘트를 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87년 이후를 설명하는 대목은 솔직히 정치적으로든, 이론적으로든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송 교수의 요점이 각자의 권리주장이 공공선 및 책임과 병행하지 못한 채 이기적으로 되풀이된다는 거라면--사실 이 이야기는 보수주의자들이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주장을 비난하면서 '멸사봉공'으로 되돌아가자는 주장과 매우 근접해 있습니다--, 애초에 서구 근대사에서 시민사회 형성과정은 각자의 권리를 어떻게 서로 조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와 분리불가능하다는 점을 먼저 짚어야 할 것입니다. 각자의 이해관계를 조화시킬 수 있는 두 가지 대표적인 개념적 장치가 바로 시장과 (비인격체로서의) 국가권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장의 경우, 18세기 이후의 경제사상사는 어떤 면에서는 과연 시장 혹은 그것을 조절하는 다른 기구가 각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공통의 선에 도달할 수 있는지, 있다면 그 방법이 무엇인지를 두고 벌어진 논쟁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국가권력의 경우, 송 교수가 자신의 해석을 지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끌어오고 있는 하버마스의 논의(<공론장의 구조변동>)가 바로 부르주아-시민 공론장=시민사회가 어떻게 (왕, 궁정이 독점했던) "공적인 영역", 즉 국가권력의 의사결정과정을 가져왔는지--그리고 그 메커니즘이 어떻게 무너졌는지--에 대한 역사적 설명모델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겠죠. 따라서 87년 이후 권리언어와 공공선의 관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권리언어가 이기적이고 공공선을 낳지 못하게 만든다는 비난에 머물게 아니라 각 시민의 권리주장이 공공선 및 공적인 의사결정과정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제도적/비제도적 메커니즘에 대한 시선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에 우리가 직접 몸으로 체감하고 있듯 한국의 문제는 단순히 시민사회의 부재만이 아니라 의사결정과정이 상층부에 독점되는 것, 즉 공공성이 배분되지 않는 제도적 구조로부터 기인하는 측면이 있죠. 요컨대 각자의 권리와 공공선 사이의 되먹임을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매개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하지만 송 교수의 인터뷰는, 물론 저는 인터뷰 성격 상 그의 논의가 과도하게 축약되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이러한 매개 혹은 장치에 대한 언급 없이 곧바로 과도한 권리주장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가버립니다. 거기에 은근슬쩍 "타협과 절충"을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헤게모니를 쥔 주도층"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대목을 보면--무슨 휘그적 사관을 보는 느낌인데--예컨대 "반공"처럼 공적인 것을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삼아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묵살하고 착취해왔던 보수주의자들과 매우 가까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물론 사적인 이익추구의 과도함이 현재 한국의 문제 중 하나일수는 있지만, 이걸 권리는 그만 외치고 공공선에 양보하고 사회주도층의 논의를 따라가라는 식으로 답변하면 곤란하죠. 결국 사적인 권리주장의 과도함에 대한 비판은 공적인 권력 행사에 대한 비판과 분리될 수 없는데, 한국에서 공적인 것이 과연 어떻게 정의되어 왔기에 사적인 권리주장이 제대로 흡수되지 못하고 있는가를 함께 바라봐야 한다고 봅니다(유감스럽게도 열린 연단의 강의든, 인터뷰든 송 교수의 분석에서 "공적인 것"에 대한 언급은 나와있지 않지만 말입니다). 저는 그가 이미 이 주제를 시야에 넣고 있으되 단지 인터뷰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좋게 나왔기를 희망합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