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을 앞두고, 집회 및 시위에 대한 노트.
Comment 2015. 12. 3. 19:42아래 글은 약간의 편집을 거쳐 ppss에 실렸다(http://ppss.kr/archives/63266).
12월 5일이 겨우 이틀 남았다. 솔직히 집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자리인데 현재로서는 다른 일정이 너무 많다ㅠㅠ. 몸이 묶여있으므로 글이라도 써본다.
1.
지난 11월의 "민중총궐기" 시위 때 겨우 50명 정도의 연행자가 발생한 걸 두고 불법폭력이 도를 넘었다는 경찰과 우파 정권의 코멘트는 정치적인 목적을 겨냥한 과장된 제스쳐에 가깝다. 경찰들 본인이 잘 알고 있듯, 그날은 인원수를 감안할 때 오히려 충돌이 거의 없었고 오히려 심심할 정도였다고 보는 게 좀 더 공정한 평가일 것이다. 기술적으로 볼 때 차벽에 동원된 차량이 몇 대 망가진 거 말고는 (최전선에 깔아놓은 차벽의 손상은 당연히 처음부터 매몰비용이라고 놓았을 거다) 경찰은 아주 성공적으로 집회를 관리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집회와 비교해봐도, 기름값 정도 빼고는 경찰의 손실은 경미한 수준에 가깝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언론플레이를 하는 걸까?
2.
12월 5일이 어떨지 예측하기는 무척 어렵지만, 전술/전략적인 사고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찰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기술적으로 체포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잠시 도로 위에 내려가 있는 장면을 찍고 바로 체포해서 넘겨도 한국의 놀라울 정도로 국가권력친화적인 사법부가 도로교통방해죄를 승인해주기 때문에 패소에 대한 법적인 부담은 없다. 그러나 행정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체포보다 체포 이후가 더 문제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사실 중 하나는 서울 시내 유치장이 만 단위는 고사하고 천 단위의 인원수조차 제대로 수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그렇다고 다른 지방경찰청에 분산수감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채증 후 벌금통보가 유행하게 된 데에는 비용이 적게 먹힌다는 이유도 한 몫할 것이다. 수감인원도 제한적이지만, 거기에 경찰들은 체포한 인원수만큼의 조서를 써야 한다(일반적으로 권고되는 완전한 묵비권 행사는 오히려 형사 입장에서 상당히 편한 대응일지도 모른다...정해진 양식만 나열하고 끝나는 거니까). 유치장에 40-48시간 정도 붙들어둔다면 매끼니마다 (매우 조악한) 식사도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느 멍청한 중대장이 공명심에 불타 2천명을 체포해서 서로 보낸다고 가정해보자. 서울 시내 경찰서는 폭주하고, 직후 며칠간 경찰은 체포 후 행정처리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중대장은 따로 불려가서 표창이 아니라 갈굼을 받을 거다.
따라서 집회참석자 입장에서는 역으로 더 큰 규모의 인원을 동원할 수록 경찰의 영향력을 극소화할 수 있다. 100명을 검거한다고 가정할 경우, 1000명 규모 집회라면 1/10이 잡히고 집회가 풍비박산나겠지만, 10만명이라고 가정하면 집회 자체에는 거의 타격을 주지 못한다. 어차피 검거될 인원수에는 한계가 있으니까(그런 점에서 차벽은 한정된 검거인원수를 유지하면서 대규모 집회인들을 묶어두기 위한 전술적인 묘안이다). 인원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경찰력은 사실상 집회에 손쓸 힘이 없다. 진짜 대규모 집회를 경찰이 무력으로 진압한 적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아직 없고,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 불가능할 거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경찰의 강경태세주창은 두 방향을 향한 메시지에 가깝다. 하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 자체로 청와대-정부-집권여당을 향한 보여주기다. 식물정당 새누리의 막말정치가 사실 박근혜와 박근혜 지지자들을 위한 아첨에 가깝듯, 경찰의 강경코멘트도 마찬가지다. 경찰간부들이 법을 몰라서 "불허"라고 하겠나? 법은 멀고 대통령은 가깝다고 생각하니까 하는 거다. 두 번째로, 조금 더 간절한 소망은, 강경코멘트를 보고 잠재적 집회참여자들이 집회에 적게 참석하기를 바라는 '수행적 효과'의 실현이다. 사람들이 위험도를 높게 판단하고 집회에 더 적게 참여할수록 경찰에게 집회의 관리는 쉬워진다.
3.
폭설도 왔고 겨울이기 때문에 12월 5일은 올해의 마지막 주요집회가 될 것이다. 대중집회가 기세싸움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번 집회의 쟁점은 내년의 집회국면 및 이후의 여론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달려 있다. 세 가지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경찰 및 정권 측에 가장 좋은 전개는 사람들이 적게 와서 손쉽게 집회를 일망타진하는 거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번의 집회를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집회를 할 수 있고 하겠다는 마음 자체를 꺾어버리는 데 있다. 두 번째 가능성이 중간규모 집회가 열리고 일정 수준의 충돌이 생기는 익숙한 구도라면, 집회참여자들에게 가장 좋은 전개는 경찰이 차벽으로 봉쇄하는 것 이상의 개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거다. 이때 일부 인원의 심야검거는 가능하겠지만, 경찰은 공간관리 이상의 행동을 할 수 없다(그들 역시 무리하게 무력진압을 할 경우 어떤 역풍이 들이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세 번째 전개가 집회참여자들에게 유리한 까닭은, 상황이 그런 식으로 전개될 경우 강경진압 코멘트에 대한 신뢰도는 상당히 손실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0만명이 모였는데 겨우 100명쯤 검거하고 끝냈다고 하면, 총력을 다해 봉쇄하겠다는 경찰의 발언은 누가 봐도 블러핑에 불과하게 되어버린다(지금도 상당히 리스크가 큰 상황이다...법원의 결정에 경찰이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오히려 경찰력의 한계를 노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앞으로 경찰이 대중적으로 무슨 말을 하든 시위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지나갈 가능성이 높다. 정권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오늘날 경찰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이미 벌어진 집회를 제어하는 게 아니라 집회의 실현 가능성을 여론의 차원에서 억누르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역으로 이번 집회의 목표는 경찰을 물리적으로 극복하는 게 아니라 경찰의 여론전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데 있다. 많이 모여서 버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만 해도 분명 얻는 게 있는, 어떤 면에서는 역으로 집회참여자들에게 더 편한 집회다.
결론적으로, 12월 5일 집회의 관건은 1) 집회 자체를 성사시키고 2) 최소 수만 단위의 인원을 동원하며 3) 집회를 강행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따라서 2016년 "거리의 정치"의 전개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4.
지난번 집회에 대한 글(http://ppss.kr/archives/61414) 이후로 상반된 해석이 동시에 나타나는 건 흥미롭다. 한편으로는 집회의 폭력성을 제거하고 문화제적 성격을 더욱 강조하자는 해석이, 다른 한편으로는 집회의 전투적인 성격을 강조하면서 문화제형 모델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다. 언젠가 이것 자체에 대해서 좀 더 길게 이야기할 기회가 오기를 바라는데 (내가 이런 글로 생활비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매우 중요한 주제지만, 본업을 포기하면서 이 주제에 묶여있을 수는 없다ㅠㅠ) 짧게 드는 생각은 다음과 같다.
애초에 집회의 전투적인/초법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집회 장소를 광화문에 한정하는 것 자체가 자멸적이다. 이미 경찰이 먼저 와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지형설정까지 마쳐놓은 곳에 들어가서 물리적 행위를 하겠다는 태도는 처음부터 전술적 불리함을 떠안겠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 좋든 싫든 차벽에 포위된 세종로에서는 "보여주기" 이상의 무언가를 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러나 차벽은 애초에 "보여주기"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점에서 비단 전투적 시위 지지자들만이 아니라 문화제형 모델 지지자들에게도 극복해야할 난점으로 등장한다.
잠시 이론적으로 서술하는 걸 용서해주기 바란다.
집회를 의사소통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여기에는 세 종류의 청자가 있다--항의의 대상(주로 정부와 집권여당), 집회 참여자 자신, 제3자인 다른 시민들. 5일과 같은 대규모 집회의 주요한 초점은 이중 제3자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여론을 환기하는 것이다. 이때 집회 주최자/참여자의 행동능력을 극도로 제약함과 동시에 사실상 집회 자체를 제3자들의 시선으로부터,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 시민사회의 공론장으로부터 지워버린다는 데 차벽의 문제적인 성격이 있다. 가시성은 집회가 시민사회의 의사소통/결정과정의 한 부분으로 기능하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며, 집회가 가시성을 본질적으로 요구하는 의사소통이기 때문에 우리는 교통혼잡, 소음과 같은 비용을 기꺼이 감수한다--이 자리를 빌어 말하자면, 이러한 비용 때문에 집회시위를 자제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근대사회의 시민이 되기 위한 자격을 결여한 것과 다름이 없다. 현재 경찰의 전술은 위헌이라서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주 대화수단을 말살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여기에는 사회의 자율적인 의사소통을 지워버리겠다는 전체주의의 아주 오래된 꿈이, 치명적인 독약과 같은 사고가 깃들어 있다.
따라서 문화제형 모델의 지지자든, 전투형(?) 모델의 지지자든 일단은 공통의 목표가 당신을 기다린다. 그것은 차벽을 제거, 무력화, 우회하고, 집회/시위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물리적으로 노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법과 여론, 제도, 선거와 같은 공식적인 수단에서부터 차벽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필요하다면 마치 게릴라와 같이 집회를 하는 비-법적인 방식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며, 문화제의 지지자든 전투적 시위의 지지자든 고려해볼 만한 행동은 많다.
내 생각에 지금 어느 집회 모델이 옳은가에 대한 오래된 논쟁을 되풀이하기보다는, 어느 쪽으로 가든 우리의 앞을 가로막을 차벽을 치워버리기 위해 협력하는 게 좀 더 생산적일 것 같다. 어떤 음악을 틀 건지, 경찰과는 어디까지 충돌할 건지는 그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practical하게 사고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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