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연의 한 카드자보에 대한 단평
Comment 2015. 11. 2. 19:58해당 사진 링크: https://www.facebook.com/2030korea/photos/pcb.1017918658267991/1017918554934668
한국 우파의 역사를 정리하는 건 매우 지난한 작업이지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이 우파에게 어떤 충격을 가져다줄지는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주제임이 분명하다. 한 가지 유력한 가능성은, 마치 과거 종북 프레임이 진보-좌파를 쪼개놓았듯(예컨대 2000년대 후반부터 "김정일 개*끼 해봐"라는 말이 가졌던 함의는 과소평가할 수 없다) 국정화 찬반이 우파의 분열을 촉진하는 경우다. 과거 중도 우파의 중추를 이루던 '합리적 자유주의자'들은 국정화 교과서에 비교적 일찍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 같고, (교수집단에 국한한다면)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조차도 국정화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전국 여론조사의 변이추세를 볼 때, TK가 유일하게 국정화 찬성이 우세한 지역으로 남았다는 사실은 현재의 국면에서 국정화 찬성파가 점점 더 고립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 마디로 말해 교과서 국정화 사태는 점차 중도우파와 극우파를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되고 있다. 이것이 그 자체로 정치적 결정의 향방을 바꿀 가능성을 과장할 필요는 없겠지만, 문화적 충격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더 오래 각인된다는 점은 짚어두자.
링크한 카드자보를 제작한 대한민국 청년대학생연합은 자유경제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한국대학생포럼과 함께 2-30대 내에서 비교적 드문 극우파 집단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한대포가 자유경제원 등이 대표하는 '국가 자유주의'(표현이 이상하다면 그건 이들의 입장이 기괴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장자유주의에서 국가기관의 전면적인 자유를 정당화하는 주장으로 넘어가는데 어떠한 어색함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의 독특한 이데올로기적 지형을 보여준다)의 계보 하에 있다면, 대청연은 '남성연대'-양성평등연대로부터 이어져온 곳으로서 굳이 비교하자면 4-50대 아스팔트 우파들("정게할배")에 좀 더 가깝다--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청연의 주요의제가 노조공격이었음을 지적해두자. 우리는 구성원의 학벌과 자본동원능력(한대포는 독립된 홈페이지를 갖고 있고 대청연은 그렇지 못하다)에서 양자가 각각 극우파 내에서도 상층계급과 하층계급의 계급분할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약간 심술궂게 말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국가권력에 대한 충성 및 동일시와 함께 당황스러울 정도의 반지성주의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동일하게 극우파의 질적 쇠락을 보여준다(비교하자면 20세기 전반의 파시스트 집단에는 그 사회의 지적 엘리트들이 포함되었다). 한대포 홈페이지에 (별로 들어가보길 추천하지 않지만) 올라온 세미나 ppt 자료를 보면 사유의 빈곤함과 미적 조잡함이 그대로 드러나며--이들에게서 유일하게 미적 감각을 추구하려는 노력 비슷한 걸 찾을 수 있다면 운영진 소개란의 사진들 정도일 것이다--대청연은 언제나 문제적인, 그러니까 합리성의 끝자락조차도 결여되어 논리라기보다는 주술적 맹종을 보여주는 온라인 자료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자기 자신의 언어에 "선동"당한다는 점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언어의 효과를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응시해야 하는 선동가의 미덕조차도 갖추지 못했다.
한대포의 "10대, 20대, 30대는 오염된 세대"라는 발언이나--이 논리에는 자신들만이 '정화'된 세대라는 다소 종교적 뉘앙스가 깃든 자부심이 들어있다--대청연의 이 카드자보는 지적 능력 및 대중장악력을 갖추지 못한 극단적 소수파들이 흔히 빠지곤 하는 경로를 보여준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논리를 아예 포기하고 더 크게 악을 쓰고 더 선정적인 문구를 날리는 거다. 물론 이런 수사적 전략은 자위용으로 (또는 그들을 지원하는 극우파 집단에게 칭찬받는 것으로)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중적인 여론전에서는 자멸에 가깝다. 예를 들어 대청연 카드뉴스의 25번째 페이지를 보자. 이들은 서울대 교수들 및 역사학자들을 비난하면서 이들이 지금과 같은 교육을 계속할 경우 자신들이 가르친 "걔들한테 맞아죽을 날이 올 겁니다"라고 광분한다.
나는 이 문구가 무척이나 불쾌하고 또 염려스럽다. 대청연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능력조차 잃은 것처럼 보인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대중정치는 공적인 정치에서 폭력을 적어도 겉으로는 배제하자는 합의 위에서 움직여 왔다. 심지어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봉사단과 같은 극우파 폭력집단들도 노인과 아주머니라는 정체성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폭력을 덜 진지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시늉은 한다. 대청연의 수사는 이 합의로부터 이탈했고, 이건 분명히 문제적이다. 일회용 피켓 등을 제외하면 특히 온라인에서 특별히 제작되는 정치적 의사표명이 이렇게 광기, 저주, 맹목적인 분노를 순진하게 노출한 적은 드물었다. 나는 다른 극우파들이 이러한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좌우파를 떠나 대청연의 표현에 강렬한 거부감을 느낄 것임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대청연과 한대포의 발언이 큰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넘어간다면, 아마도 그 가장 큰 요인은 아무도 이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현실에서 비롯할 것이다. 그러한 고립이 지속될수록 이들의 수사는 더욱 더 자극적이 되겠지만 그 결과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이 주장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나는 그러기를 바라는데, 반지성과 폭력, 협잡으로만 가득찬 이들이 더 많은 설득력을 얻어갈수록 우리 모두의 삶에서 나아질 점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망령은 무덤으로 들어가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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