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의 개인적 기억

Comment 2014. 6. 5. 05:21

강원도 교육감으로 진보계열 민병희 후보가 당선되었다. 내가 강원도민도 아니고 민병희 후보의 정책을 쫓아오지도 않았지만, 해당 선거 캠프에서 빡세게 고생하고 지금쯤 승리를 만끽하고 있을 한 선배를 기념하기 위해 짧게 끄적거린다.


생각해보면 이 아저씨(...)랑 나의 인연은 처음부터 일로 얽혀있긴 했다. 학부 4학년 때 나는 선배가 주도적으로 실무를 떠맡던(...) 팀에 스태프로 들어갔고 한 2주 정도는 정신없이 살았다(어느날 저녁 시험공부였나 과제였나 때문에 일찍 들어간다니까 진심으로 서운해하던 표정을 짓던 모습이 떠오른다...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좀 미안했다-_-). 지금도 생각하는데 정말 길거리에서 모금하는 일은 성격상 하고 싶지 않다;; 그때 내가 일을 잘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학교에서 부려먹을 후배가 없어서였는지 싼 값에 순순히 노동력을 제공해서였는지 이후에도 몇 번 불려다녔다. 덕택에 나름 학교신문 광고에 모델로도 나와보고 (내 역할은 "빛과 소금" 같았다. 그러니까 다른 좀 더 괜찮은 마스크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좋은 배경 역할...) ... 하여간 학부 시절을 조금 더 풍성하게 보내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건 2010년 지방 선거 때다. 이 선배의 선배가 관악구 구의원으로 출마했고, 당시 학교에서 직장을 갖고 있던 이 선배는 정말 투 잡을 뛰었다. 그리고 역시나 나에게 일손보조를 요청했다-_-;;; 석사 3학기 때여서 수업을 두 과목 밖에 안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대충 기말로 넘어가는 시점이라 수업로드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툴툴거리면서도 참여할 수 있었다. 나는 진보신당을 지지했지만 여차저차한 이유로 당원은 아니었다(딱 한 번 당원이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가 있었는데 때마침 사이트가 트래픽 초과로 다운...). 민노당->진보신당 분당 사태 때 이런저런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당원이 되겠다니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서 서울대에 진보신당 당원들이 좀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선거캠프에 가보니 내가 제일 어렸고 다 아저씨들 뿐이었다;;; 나름대로 짬밥만 보면 노회찬/심상정보다 윗급이라는 베테랑들이었다. 나중에 녹두 쪽 이기중 선본을 보기 전까지는 대학생/대학원생 중 선거에서 몸으로 뛰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이 정말 처참한 결과를 거둔 뒤 온라인에서만 당원이니 하는 사람들이 격론을 벌이고 서로를 공격하기에 여념이 없는 걸 (그렇게 키배를 할 에너지가 도대체 왜 선거운동에는 활용되지 못했을까?) 목도한 일과 함께 진보신당의 이후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다. 이후 온라인 지지자/당원과 선거인력 동원이나 조직력은 무관하다는 걸 깨닫게 해준 경험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적어도 지역구 선거에 한정해서는 온라인 지지자 100명보다 실제로 와서 봉사하거나 소액 후원금이라도 보태는 사람이 훨씬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그때 선거 운동 이야기로 돌아가면...진짜...나를 아는 사람이면 내가 원래 몸치인데다가 노래방 빼고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부르고 춤추는 거 절대로 못한다는 거 알 거다. 근데 그걸 했다. 꽤 많이 했다ㅠㅠ. 그나마 빨간색 티셔츠 입고 춤추는 거라면 나았는데, 무려 코스츔도 맞추어서 춤추고 노래부르기도 했다...덩치와 동작이 크다고 봉사자 아주머니들이 나름 좋아하셨다...후보 성씨가 홍 씨면 무조건 홍길동으로 컨셉을 잡는 상상력의 빈곤은 이제는 사라졌기를 바란다ㅠㅠ(이번에 홍준표가 홍길동 컨셉으로 나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망상이 잠시 머리를 스친다-) 그것도 대로 상에서 하고 아파트 찾아가서 하고 시장에서 하고 학교 앞에서 하고...비오는 날에 선거홍보음악에 맞추어서 율동을 하면 습해서 훨씬 덥다. 덕택에 관악구에 그전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는 제법 싸돌아다녔다. 학교 사람들, 특히 교수들과 마주칠까봐 은근히 걱정도 많이 했다(나중에 밝혀졌지만 먼 발치에서 알아보고 몰래 도촬한 지인들도 있었다;;). 명함도 많이 뿌렸고 (기금 모금보다는 훨씬 편하다. 그냥 인사만 하고 부드럽게 명함을 건네기만 하면 된다) 식당 같은 데 돌아다니면서 아침나절에 인사만 하러 다니기도 했다. 아직도 주말에 교회마다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계속 꾸벅꾸벅 절 하며 명함과 홍보물을 뿌렸던 게 기억난다. 교회도 안 다니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한다고 생각해보면 조금 상상이 될까? 아침 일찍 나와야 할 때도 있고, 꽤 밤 늦게까지 있었기도 한데다가 조금 쉴만하면 일손 부족하다고 나오라고 선배가 문자를 뿌리곤 해서 툴툴거리면서 나가곤 했다. 누가봐도 이 양반이 엄청 고생하는 건 분명했기 때문에 선배한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시커멓게 된 얼굴로 담배를 뻑뻑 피우면서 한숨을 푹푹 쉬는데 무슨 불만을 얘기하나-_-;; 다른 후보들과 비교하면 애초에 자금도, 노동력도 부족한데 나오는 사람의 노동력이라도 더 쏟아부어야지.

 나름 지역구에서 제법 쌓아온 게 있고 주민 반응도 좋은 후보라서 비록 마이너 정당이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한나라당 후보야 원래 지지율 1위였고, 민주당 후보는 공무원만 하다가 갑자기 나온 사람이라서 목표는 민주당을 넘고 2등으로 구의원에 당선되는 거였다. 물론 결과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기억은 안 나는데 갑자기 노무현 열풍이 불었고 (그래, 한명숙이 오세훈과 엄청난 접전을 벌였다...) 갑자기 민주당 지지율이 확 뛰면서 우리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사태가 전개되었다. 선거 직후 뒷풀이 저녁 식사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는데(아저씨들은 이제 내게 그만 당원이 될 때가 되지 않았냐고 웃으면서 물어보기도 해주었다ㅋㅋ), 뚜껑을 열어보니 민주당 1위, 한나라당 2위, 우리는 거의 25% 가까운 득표율을 잡았지만 (양대 정당 빼고 이 정도 득표율 얻는 게 TV로 볼 때는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현장에서 뛸 때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3위로 탈락. 사람들은 술을 퍼마셨고 술은 안 먹는 나도 한껏 우울해졌다. 이 선배는, 개표현장에 있다가 조금 늦게 들어왔는데, 얼굴이 벌개져 있었다. 사람들 보이는 곳에서야 꾹꾹 눌러담았겠지만 안 보이는 곳에서는...그렇게 고생했는데 눈물 한 방울도 안 흘렀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거운동기간 중인지, 선거날 당일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다가 선배랑 같이 편의점을 들를 일이 있었다(사실 워낙 바쁘게 돌아다니는 입장이었고 나도 캠프에 오면 바로 뭔가 일하러 나갔기 때문에 둘이 같이 있을 일이 별로 없었다). 그때 선배가 해준 이야기가 어렴풋 하지만 아직도 기억난다. 나름 학생 때부터 운동하던 사람이었으니까 (사실 학부 때 나는 학생운동과 거리가 멀었고 조직에 속해있던 적도 없었는데, 이 양반이 왜 나한테 도와달라고 했을까, 이건 이후에도 가끔 궁금하긴 하다) 수많은 싸움을 겪어왔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고, 이제는, 이번만은 좀 이겨보고 싶다고(아마 한국에서 진보로, 좌파로, 무언가 대의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소망을 갖고 있을 것이다... 지긋지긋하게 계속 지기만 해온 시간들, 이제는 제발 한번만이라도 이기고 싶다는 아주 강렬한 소망을...), 그리고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결과는 전술했다시피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어느틈엔가 선배는 강원도 교육청에서 일하고 있었다.



 4년이 지났다. 군대도 다녀오고, 사는 곳이 워낙 거리가 머니까 사실 연락을 한두번 밖에 못했다. 그나마 페북이 있으니까 대충 뭐하는지야 알았지만. 틀림없이 일 많이 하고 있을 거라고, 그리고 역시 (은근히 맘 여린 면도 있는 사람이니까) 맘고생도 많이 할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불리했던 여론조사에서 점점 선배가 있는 캠프의 후보가 올라오는 걸 보았다. 그리고 투표일이 되었다. 어쩌면 이 양반이 팍삭 늙은(...몇 주간, 아니 몇 달 간 얼마나 고생했겠나...) 얼굴로 아이와 함께 투표소에서 찍은 사진을 본 게 내가 툴툴거리면서 제천까지 내려간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출구조사에서부터 어느 정도 여유있게 앞섰다. 개표결과가 진행되고 어느 정도 결과가 가시화되었다. 어쨌든 4년만의 지방선거였고...나는 이 선배랑 같이 뛰었던 시간을 절대로 잊을 수 없기 때문에, 지난 시간이 다시 한 바퀴 돌아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에 응원문자 한 통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한참 뒤에 "이겼다"라고 답이 왔다. 선배는 본인이 나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글쎄, 아마 나 자신이 선거에서 이겼다 할지라도 그와 같은 감동을 받지는 못했을 것 같다. 드디어 이겼구나. 충분한 결과는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 이겼다는 것. 혼자 모니터 앞에서 울컥해서 답문을 보냈는데 너무 닭살이 돋아서인지 아님 자러 갔는지 선배는 답문을 보내지 않았다-_-;;



 어쨌든, 나한테는 민병희 교육감이 선거에서 이겼다는 것보다는 (아는 사람만 알, 그리고 뉴스와 매스컴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을) 선배가 이겼다는 게 지금으로서는 더 와닿고 기쁜 일이다. 우리의 미래는 이보다 더 오래 지속되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저 선배의 승리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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