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과 질문: "대학교육은 사라질 것인가?" & "유교문화는 초저출산의 원인인가?"

Comment 2023. 6. 4. 15:33

지난 몇 달 간 페이스북에 올렸던 포스팅 두 건을 백업 차 옮겨둔다. 앞으로 블로그/페이스북 포스팅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이런 음슴체 포스팅의 비중이 더 늘어날...수도?

 

각각 2023년 5월 6일, 같은 해 2월 22일 작성한 포스팅.

 


Q. 근미래에 대학(교육)은 (AI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그 가치를 잃고 사라지게 될 것인가?

A. 별로? 나는 대학소멸/붕괴론에 회의적임.

1. 저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생각해봐야 함.

1) 가까운 미래에 인간이 한 명의 사회구성원으로 '유의미하게' 기능하기 위해 습득해야 하는 지식&역량의 양과 질이 감소할 것인가?

2) 그러한 지식&역량의 교육 및 인증에 있어 대학보다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기능하는 기구/경로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은가?

한국이 어떤 형태로든 '근대국가'로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대학의 기능 상실이 현실화되려면 저 두 가지 질문 중 하나에는 Yes라고 답변할 수 있어야 함. 즉 아예 고등교육에 준하는 수준의 지식이 없더라도 정치적-경제적 삶에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는 사회가 되든가, 대학을 대체하는 더 나은 고등교육 기구/경로가 발생하든가. 내 생각엔 둘 다 그렇게 가능성이 높지 않음.

먼저, 예를 들어 흔히 예측하듯 AI와 로봇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일자리가 대체되는 방향으로 미래가 전개된다면, 대체가능성이 낮은 일자리를 얻고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적 역량의 총량은 늘어날까, 감소할까? 대부분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답변할 것. 그럼 그렇게 높아진 역량/전문성의 허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습득할 수 있는가? 아예 정규 교육기관 바깥에서 전문성 축적의 경로가 형성되는 분야가 아니라면, 우리는 돌고 돌아 다시 대학(원)을 떠올릴 수밖에 없음.

당연히 대학은 이런저런 걸 제대로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반론이 나올 것. 그러나 그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다음과 같은 사항은 고려하지 않음. 대학이 충분한 해결책이 되지 않을 수 있음, 근데 그럼 다른 뭘로 대체할 거임? 전문적 지식을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교육 인력/체계를 지금 대학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 돈과 인력은 누가 대며, 그렇게 만든 게 기능적으로 대학과 별 다를 게 없다면 결국 대학을 하나 더 만든 거랑 차이가 없을 것.

대학붕괴론 혹은 회의론자들은 대학의 부족함을 판단할 때 절대평가에 가까운 척도를 들이대고는 함. 하지만 현실의 사회는 상대평가로 돌아감. 대학이 수행하는 기능에 대한 수요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수요를 충족시키는 '더 나은' 선택지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대학 혹은 그에 준하는 기구는 계속해서 지속될 가능성이 높음. 그게 내가 대학 소멸론/붕괴론에 회의적인 이유. 개별 대학이 망하고 사라질 순 있겠으나, 사회 재생산-발전의 기본 메커니즘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대학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은 낮음.
...이는 한국이 고학력사회로서의 성격을 상실하지 않는 한 학벌의 가치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함, 슬프게도.

2. 내 생각에 좀 더 고민이 필요한 사실은 왜 이런 대학붕괴론이 나름 식자층에서 손쉽게 나오는가...임. 몇 가지 이유는 생각해볼 수 있음.

a.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 중 대학이 어떤 곳이고,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잘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별로 없음.
a-1. 대부분은 70-90년대 본인이 다녔던 대학만 생각하지,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대학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는 잘 모름.
a-2. (본인을 포함한) 대졸자들이 대학에서 어떤 자원(인적 네트워크, 사회적 인정, 특정 영역의 문해력 등등)을 습득하는지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은 더 드묾.
a-2-1. 사람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하고 홈스쿨링을 해도 대졸자보다 나을 수 있다!라고 생각할 순 있으나, 그런 정도의 홈스쿨링을 구축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자원이 투입되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따져보는 일도 별로 없음.
a-3. 공정하게 말하자면, 한국은 고등교육 연구자가 매우 희귀한 나라임(대학 수도 대졸자도 많은데 대학에 대한 분석/정보가 별로 없음). 그러다보니 대학에 대해 코멘트하는 사람들이 참조할 수 있는 괜찮은 지식이 별로 없고, 걍 본인 경험이나 주변에 내 동년배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이렇더라~ 수준의 정보만으로 썰을 풀게 됨. 데이터가 별로인데 분석이 좋을 수 있음?

b. 객관적으로 한국 대학의 상황이 그리 밝지 않아보이는 건 사실임
b-1. 학령인구감소, 기술변화를 포함해 거대한 사회적 변화가 예견되며 이는 대학에 큰 충격을 줄 가능성이 높음(근데 그럼 다른 고등교육기구는 타격을 안 받음? 유구한 "대마불사"의 전통을 고려하면 인적 자원도 자산도 더 많이 갖고 있는 큰 대학들이 더 잘 살아남을 것)
b-2. 한창 학생 수 증가할 때 대학 수 마구 늘려놓고 퀄리티 관리 안 하다가 이제 학생 수가 급감하니 개별 대학은 헬이 되는 게 당연
b-3. 2011년 이래 한국 대학재정정책은 골때리는 상황임. 등록금으로 먹고 사는데 정부는 등록금 인상을 막아놓고 그렇다고 지원금을 더 주는 것도 아님(돈을 안 줄 거면 등록금을 풀든가, 등록금을 막을 거면 돈을 주든가 해야지...). 간단히 말해 대학이 더 고급인력을 유치하고 &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데 사용할 돈을 못 모으는 구조임.
b-3-1. 대학원을 가서 연구자가 되고 싶어도 교수가 되기도 더 힘들고 교수 대우가 상대적으로 점점 안 좋아지니 고급인력의 선택지에서 자꾸 밀리는 게 당연함. 대학원생&교수 투자를 늘리면 대학의 퀄도 좋아지겠지.

c. 생각보다 대학에 있는 사람들도 대학이 뭘 제공하는지 잘 모름.
c-1. "교실에서 수업만 잘 가르치면 되지"라고 흔히 생각하는데, '좋은' 대학의 가장 강력한 혜택은 좋은 인적 네트워크 형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임. 제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고립된 한 명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음(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천재를 무인도 정글에 혼자 떨어트린다고 가정해볼 것. 생존이나 겨우 하겠지...). 반대로 평범한 능력치(?)라도 좋은 인적 네트워크가 있다면 자기 능력 이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음. 좋은 대학은 '좋은' 사람들을 물리적/제도적으로 인접한 공간에 모아놓고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을 높이는 곳임. 개인적으로 온라인대학이 오프라인 '명문'대학을 대체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라고 봄.
c-2. 의외로 한국 대학에서 교육환경을 조성할 지위에 있는 사람들 중 이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함.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고? COVID 때 대학에서 무슨 조치를 취했는지 확인해보면 됨. 비대면 전환 이상의 무언가를 제공한 대학이 많지 않음
c-3. '대학이 구성원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는 한 당분간 대학운영자들이 대학의 기능을 최대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

d. 위에도 말했지만, 부분적으로나마 대학을 대체할 수 있는 후보들의 장단점을 냉정히 평가하는 예가 잘 없음.
d-1. 홈스쿨링? 개인화라는 강력한 장점이 있지만, 대학이 제공하는 네트워킹 경험을 포기해야 할 가능성도 크고, 무엇보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감
d-2. 학원? 아주 부분적인 수요는 채울 수 있음, 근데 사이즈-기간이 증가할수록 대학과 비슷해지지 않을까?
d-3. 각종 독학 자료? 접근성이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네트워크 축적은 힘들고 똑같은 수료자라고 해도 퍼포먼스 차이의 폭이 크기 때문에 사회적 인정을 획득하기 쉽지 않음. (기존 교육기관 졸업장과 성적표의 주 기능은 일종의 품질보증임)
d-4. 온라인 커뮤니티/SNS를 통한 집단지성 활용&인맥 구축?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보통 SNS에서 효율적인 네트워킹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미 본인이 많은 걸 갖고 있는 사람임
d-5. 뭔지 모르겠지만 미래의 대안적 교육 기회? 그건 대학도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결론: 저 조건을 다 뚫고 대학을 대체하는 보다 효율적인 뭔가가 나올 가능성보다 그냥 (일부) 대학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가능성이 큼. 물론 현재 한국 대학 안팎에 모두 문제가 있긴 한데, 역사는 현실이 상대평가임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 나은 선택지가 나오지 않는 한 살아남는 대학들 학위의 가치는 쉽게 0이 되지 않을 것. 정부가 오죽 투자를 안 하면 대학소멸론이 이리 쉽게 나오나 싶음.

 


"국제 인구 저널들도 저출산 위기를 겪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유교 문화권’(Confucianism)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 지역에서 유교는 종교이자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2천년 이상 사회 전체에 윤리 원칙을 제공해왔다. 학자들은 그에 따라 이 지역에 △성에 관한 도덕적 엄숙주의 △엄격한 성 역할 구분으로 한쪽 성에 집중되는 육아 부담 △사회적 성취를 중시하는 입신양명 문화 △과거제 전통으로 인한 학력주의 △삶의 만족도보다 근면성실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등 출산율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고유의 특징’이 있다고 지적한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80512.html)

: 실제 저널 아티클에는 좀 더 정교한 설명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여기에 나열된 특징 상당수는 기독교/이슬람교 문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찾아볼 수 있는 요인들임. 상식 수준에서 생각해보면;

☞ 성에 관한 도덕적 엄숙주의: "빅토리아 시대"라는 수식어가 괜히 생겼을까?
☞ 성 역할 구분: '전통적인' 기독교나 이슬람교 문화에서 강고한 성역할이 과연 없을까?
☞ 학력주의: 찐 유교사회라면 과거를 통해 입신양명에 진입하는 계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 않나?
☞ 삶의 만족도보다 근면성실을 강조하는 분위기: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근면성실보다 삶의 만족도를 강조하는 사회는 20세기에나 등장한 게 아닐까?
☞ 같은 기독교로 취급되더라도 카톨릭과 신교는 임신/출산/가족관계 등에서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는 함(20세기에 카톨릭교회가 '가족'의 가치에 얼마나 커다란 담론적 투자를 했는지 정리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재밌을 듯). 마찬가지로 같은 유교문화권으로 묶이는 한-중-일이 과연 동질적인 유교문화를 공유했다고 볼 수 있는가? 정말로 유교체제가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동질적인 형태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면, 이는 인류사에 둘도 없는 최강의 체제일 거임. 그러나 내가 알기로 그런 체제는 아직 등장한 바 없음.

=> 간단히 말해 위에서 언급된 요인들은 그 자체로는 특별히 유교문화권에 고유한 특질이라고 볼 수 없음. 이는 유교문화냐 아니냐의 문제라기보다는, 19-20세기 초까지 유통되었던 전통적인 사회·종교규범의 문화적 지배력이 이후에 얼마나, 어떻게 지속/쇠퇴했는지의 문제, 또 어떤 새로운 규범들이 이를 대체했는지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음.

물론 동아시아 사회에서 혼인 관계 바깥의 출산을 기피하려는 강력한 경향성이 있고, (적어도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그러한 경향성을 정당화하는 세부적인 논리가 유교적 도덕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은 있음. 하지만 조선시대의 서얼 범주나, 20세기 초중반의 축첩폐지 운동은 역으로 한반도에서 공인된 혼인관계 바깥의 성관계/임신출산이 아주 드문 일이 아니었음을 보여줌. 즉 현재 동아시아의 일부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특정한 경향성과 유교 전통 사이에 직선적인 연관관계를 설정하기란 상당히 까다로움(이는 저출산의 요인으로 지목된 다른 특성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 달리 말해, 극도로 낮은 혼외출산률은 여러 요인이 결합한, 그 자체로 설명이 필요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음. 유교적 전통은 기껏해야 그 복수의 요인 중 하나일 뿐임(예컨대, 기사 본문의 다른 대목에서 인용하듯, 결혼/출산의 허들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혼외출산이라는 우회로가 작동하는 것을 가로막는다든가 등등).

통속적인 유교문화권론에서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또 하나의 사실은 (한국의 경우) 초저출산 경향이 지속적인 산아제한정책 후반부에 나타난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라는 것임. 진짜로 유교문화 자체에 초저출산을 야기하는 요인들이 풍부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유교적'이었던 20세기 중반에 베이비부머 세대가 어떻게 등장할 수 있었겠음? 한국도 중국도 강력하고 지속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거친 후에 초저출산 사회로의 급격한 이행을 겪은 거지, 유교의 지속적인 영향으로 초저출산이 생긴 게 아님.

내 생각에 좀 더 생산적인 접근법은 유교니 기독교니 하는 크고 그럴듯하지만 조금만 따져보면 생각보다 유용성이 없는 범주를 바로 들이미는 대신 출산기피를 촉발하는 구체적인 세부 요인을 하나씩 뜯어보는 것임. 예컨대 초저출산은 유교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반대로 유교적 혹은 전통적 가족개념이 파괴되는 과정의 부산물이라는 게 더 정확한 추정일 수 있음. 한두 세대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다수의 사람들에게 '정상적인 삶'의 기준과 가족형성의 의무는 분리할 수 없는 요소였음. '개인'의 관점에서 쾌와 고통, 이익과 손실을 계산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삶도 합리적일 수 있다' 혹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게 더 합리적이다'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난 것은 유교적 정상성이 파괴된--그리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정상성'의 범주가 형성되지 않은--최근의 현상임. 낮은 혼외출산율을 조장한다고 하는 유교적 관습은, 나는 그게 진짜 유교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유교가족규범/윤리관의 파괴 이후 남은 얼마 안 되는 잔재라고 보는 게 맞을 거라고 생각.

(*물론 교육비와 주거비 증가 등등의 요인 + 청년 세대 다수가--아마도 SNS를 포함한 대중매체의 확산에 힘입어--일제히 '합리적 개인'으로서의 삶을 유의미한 선택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도 중요한 변수일 것)

초저출산의 원인을 설명하려는 논의는 이미 많고 나는 해당 분야에 얼씬조차 해본 적 없는 문외한이므로 더 이야기할 건 없음. 어쨌든 요점은 우리 시대의 문제를 설명하는 데 수천년에 걸친 전통을 극히 단순화해서 덮어씌우는 것보다는 좀 더 정밀한 도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임. 그런 면에서 초저출산문제의 유교원인론은 잘해봐야 매우 국지적인 요인을 설명하려는 가설이며, 대체로는 그냥 이데올로기에 불과함. 종교와 문명에 관해 거시적인 설명을 제공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대체로 재미있는 썰 혹은 재미조차 없는 망상으로 귀결되는 것은 학문과 사상의 역사에서 흔히 있는 일이니, 특별히 저 사람들이 대단히 잘못한 것은 아니라는 말만 덧붙이고 싶음. 끝.

P. S. 초저출산 관련해 커뮤를 돌다보면 '가난한 집이라면 차라리 애를 안 낳는 게 아이의 관점에서도 더 바람직하다', '빈곤 가정에서 아이를 낳는 건 아이의 인생에 해harm를 끼치는 것이다' 등의 이야기가 주기적으로 튀어나옴. 이런 식의 극단적인 위해원칙(harm principle)의 적용은--J. S. 밀이 이런 예시를 보면 무덤에서 빙글빙글 돌 것 같지만--유교적 전통과 무관함. 이는 오히려 현대 한국인들이 삶을 설명하는 도덕 언어에 특정한 유형의 '자유주의적 윤리관'이 매우 빠르게 침투했음을 보여줌. 물론 "이게 다 자유주의 때문이다"라는 빛바랜 타령으로 돌아갈 이유는 전혀 없지만, 실제 사람들이 스스로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를 뜯어보면 '한국은 유교문화권이니까' 같은 거시적 진단이 대체로 무쓸모함을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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