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인문학 전공 대학원생을 위한 효과적인 공부법": 비판과 답변 및 추기

Comment 2021. 5. 12. 14:39

대체로 글이란 것의 운명은 다음의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따르고는 한다. 오해되면서 인용되거나, 인용되지 않거나. 엊그제 서구 인문학 전공 대학원생을 위해 정리해 포스팅한 간략한 조언도 예외는 아니었다. 단시일 내에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신 것은 무척 감사한 일이지만, 드물게나마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글을 읽고 비판적인 의견을 전해주신 분들이 있다. 몇 가지 쟁점을 짚어 간략히 부연한다.

 

 

-비판1: 내 글은 고전적인 학술연구서의 교육적 가치를 지나치게 폄하한다

 

-답변1: 나의 요점은 학술연구서를 읽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그것'만' 읽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특정한 연구분야를 개척하고 발전시킨 고전적인 연구서를 통해 해당 분야의 문법과 쟁점에 입문하며 나아가 대가와의 지적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사유를 정교화하는 과정은 당연히 필수적이다. 논문 단위의 독서만으로는 불가능한, 좀 더 크고 복잡하며 세세한 사고의 구조물을 이해하는 능력도 마찬가지로 책 단위 연구서와의 접촉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하지만 거기에서 공부가 멈출 때, 혹은 그러한 책 단위 연구서를 통해서만 공부를 해나갈 때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미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고전적인 연구서 혹은 책으로 출간된 학술서만을 공부하는 것은 학술적 경향·유행을 파악하는 속도 및 그 이해의 정교함을 낮추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논문은 '인스턴트' 유행일 뿐이고, 학술서는 오래 지속되는 골조라는 식의--그럴 리가!--잘못된 비유에 사로잡히는 걸 피한다면, 우리는 결국 학술서 또한 특정한 시기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논쟁점, 다시 말해 유행의 산물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단지 논문보다 더 늦게 나오는 만큼 좀 더 많은 (이것도 출판사 및 에디터에 따라 다르지만) 논의와 검토를 거칠 기회가 있었을 따름이다. 직접적으로 다루는 분야가 아니라서 나중에 책으로 정리된 내용 정도만 따라가고 싶은 경우라면 모를까, 자신의 핵심적인 관심분야에서 일부러 논의의 파악속도를 늦추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더불어 고전적인 연구서 혹은 학술서 중심으로만 학문적 논의를 따라가면, 해당 주제를 구성하는 촘촘한 쟁점들을, 그리고 그러한 주제가 발전하고 논박되며 정교화되는 과정을 섬세하고 깊이 있게 파악하는 게 매우 어려워진다. 이른바 고전을 정말로 문장과 단어 수준에서 뜯어먹듯이 읽어본 연습을 해본 사람이라면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 특히나 많은 내용을 응축한 저작일수록 그것을 해당 텍스트의 세부 논의를 맥락화하는 작업 없이 제대로 읽어내기란 불가능하다(아무렇게나 읽어도 좋은 취미로서의 독서, 교양과 배경지식을 쌓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면 고전을 사전지식 없이 직접 읽는 데 명확한 한계가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리고 학술서를 맥락화하는 가장 정석적인 방법은 그것을 구성하는 여러 논의를 다룬 학술지 논문들을 읽고 논의 지형을 정리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작업을 통해 비로소 특정한 저자의 주장을 물신화하지도, 얄팍하게 읽어내지도 않는 게 가능해진다. 대학원생들이 그러한 연습과 훈련의 가치를 낮게 평가해야 할 이유는 없다.

 

 

-비판2: 내 글에서 제안하는 방법은 서구 학술장의 단발적인 유행에 맹종하는 경향을 낳을 수 있다

 

-답변2: 두 가지 반론을 제시한다.

 

첫째, 내가 이전의 글에서 명시적으로 제안한 방법은 학술지에서 최근의 논문만 훑어보는 일을 출발점으로 삼아 점점 시공간적 범위를 확장해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 가까이의 연구사를 정리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연구사를 정리하고 그 맥락 속에서 최근의 지적 흐름을 이해하는 게 왜 유행에의 맹종인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때그때 잘 팔리는 (별로 쓸모 없는) 키워드 가져와서 '장사하는' 연구자들이야 늘 있지만, 이는 오히려 연구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긴 호흡에서 연구사의 흐름과 과거의 논쟁들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당면한 유행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둘째, 최근의 흐름을 이해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이전에 배운 고전적인 연구서를 따르는 태도는 반대로 수십 년 전의 유행을 맹종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19세기 후반의 유행, 1960년대의 유행, 1980년대의 유행, 1990년대의 유행에 얽매이는 게 2020년의 유행을 추종하는 태도보다 나을 지점이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동시대의 유행을 추종하는 사람은 자신이 지금 쫓아가는 내용이 한때의 유행이며 언제 바람이 다른 방향으로 불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자기역사화라도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수십 년 전 유행'에 '고전'이라는 이름의 우위를 부여하는 태도는 학술장에서 자기 위치를 역사적으로 객관화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 문제적이다.

 

물론, 나부터가 과거의 문헌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과거의 뛰어난 작업으로부터 배우는 건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특히 전문연구자에게 그러한 독서는 어디까지나 연구사의 맥락에 대한 인식 위에서 수행되어야 하며, 연구사를 이해하지 않은 채로, 특정한 고전이 당대 및 이후의 연구에서 어떠한 논쟁을 거쳤는지 알지 못한 채로 그 탁월함만 추종하는 것은 우상을 세워놓는 일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학술지 논문들을 따라가는 작업 없이 연구사의 세밀한 이해가 어떻게 가능한지 나로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비판3: 내 글은 서구 학술장 중심부 외에서 나오는/존재하는 비판적·대안적 논의의 가능성을 간과한다

 

-답변3: 일단 A를 하자는 작업이 왜 B를 하지 말자는 작업으로 읽혀야 하는지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어쨌든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두 가지 반문을 하고 싶다.

 

하나, 어떤 사유와 입장이 진정으로, 그러니까 그 주창자가 스스로 '내 이야기는 이~만큼이나 비판적이고 급진적이며 대안적이다'라고 외치는 것--물론 이러한 제스처 자체가 '급진적' '비판적'이란 말의 사용을 관습적인 유행으로 만든 20세기 후반 북미학술장의 산물이다--외에 어떠한 비판적·대안적 가치가 있는지 판별하는 기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둘, 특정한 학술장의 중심부 외에서 진정으로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논의가 나오는 경우, 한국의 우리가 그걸 접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경로가 무엇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두 질문의 답은 같음을 알 수 있다. 주류의 통념이란 게 무엇인지, 또 주류가 제기한 반론에 비판론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비판론'이 얼마나 실제로 비판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동시에, 일반적으로 중심부-주변부 간의 소통보다 주변부-주변부 간 소통이 더욱 빈약한 (이는 당연하다) 학술장의 현실을 생각해볼 때, 어느 주변부에 속한 사람이 다른 주변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아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은 중심부로 들어가 그곳에 집적되는 다른 주변부의 논의를 체크하는 것이다. 주변부 학술장에 속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현실이 답답하고 짜증날 수는 있지만, 정말로 지적인 실천과 비판에 사명감을 가진 연구자라면 현재의 상황을 직시하고 그에 따라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을 구상하는 게 맞지 현실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갈 이유는 없다; 필요가 논리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비판4: 현대 서구 학술장 중심부의 논의를 철저하게 이해하자는 것은 우리 자신의 자율적이고 비판적인 실천을 포기하자는 것과 같다

 

-답변4: 딱 한 가지만 질문해보자. 우리가 지금 "자율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라고 여기는 무언가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한반도가 근대 학문을 수용한 이래, 우리가 비판적인 사유/지적 실천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이미 서구의 담론장·학술장의 반복적인 수용과 전유를 통해 구축되어 왔다(그 언어와 논리 구조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볼수록 명확해지는 사실이다). 이는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이른바 서구의 혁명적 사상가들 본인조차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여러 정치적 혁명·개혁론을 한국의 상황에 맞게 활용하여 더 중요한 변화를 추동해온 역사는 그 자체로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또 자랑스럽게 여길만한 과정이다.

 

진짜 문제는 식민주의 콤플렉스, 혹은 자율성에의 강박적인 태도가 종종 우리가 사용하는 비판적 사유 도구의 지적 기원을 망각하고 지워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언어가 어떠한 힘과 한계를 갖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도록 할 뿐더러, 그러한 사유도구에 어떠한 약점이 있는지, 그러한 약점이 이미 어떻게 논의되었으며 현대의 맥락에서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다시 벼려야 하는지 파악할 수 없도록 한다. 특히 '변혁적' '실천적' '비판적' 사유의 서구적 기원, 그리고 그것이 서구 학술장에서 무슨 난점에 직면하여 어떠한 논의를 거쳤는지 파악하려 하지 않는 태도는 효율적인 지적인 실천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나는 내 작업이 현실에 실제로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고민하는 데는 별 관심 없어, 그냥 내 작업은 자율적이고 비판적이고 진보적이다, 라고 스스로 믿고 외치는 걸로 충분해!' 따위의 태도의 어디에 실천성이 있는가? 그런 태도야말로 현실의 활동가·의사결정권자들에게 '역시 먹물은 도움이 안 된다'는 조롱과 경멸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나는 1950-60년대, 혹은 1980-90년대에 수입해온 비판적 이론을 고수하는 게 지적인 자율성과 실천성을 담보한다는 식의 태도는 거부되어야 한다고 본다. 도대체 수십 년 전에 유행한 이론이 지금도 그대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인양 믿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1980년대의 수입품이 2020년대의 수입품보다 우월하다니, 사상에서도 앤티크함이 가치와 품격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는 말인가(가끔 전근대 연구자들 중에서는 암묵적으로 이런 태도를 견지하는 예가 있다; 미신은 인류의 오랜 동반자다.)? 당연히 나는 현대 서구 학술장의 모든 논의가, 혹은 그중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논의가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구사를, 서구 학술장을 더 깊게 이해할수록, 이른바 스타와 대가들이 내놓는 작업 또한 특정한 시대적 인식에 제약받고 있으며, 대체로는 오답일 가능성이 높고, 운좋게 바람직한 결과를 내는 경우라고 해도 그것이 원래의 의도와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을 정확히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전유하는 노력을 생략하는 순간, '실천적 연구자'는 맹목적 신앙인, 최악의 경우 혹세무민하는 구루로 전락한다. 연구자로서의 역량과 태도는 학술장 중심부의 메커니즘과 연구사를 정확히 이해하고 새로운 유행의 약점까지도 파악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에만 유지될 수 있다.

 

 

지난 글에서도, 이번 글에서도 나의 관심사는 동일하다. 우리의 지식이 만들어지는 절차와 환경을 가능한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따라 지금보다 좀 더 효율적인 행동지침을 수립하여 공유하는 것이다. 당연히 나의 제한된 경험 하에서 작성된 내용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이를 비판하고 갱신하는 대화의 과정은 환영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으로 원 글의 의도와 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읽는 작업을 전제로 한다(그리고 타인의 글을 정확하게 읽는 것, 이것이 초기 근대 이래 인문학의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과제였다). 이번의 답변이 그러한 읽기와 대화에 약간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5월 13일에 덧붙인 P. S.]

 

이전 글에 대한 여러 반응을 보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심지어 서구 학술장 경험이 있는) 연구자/대학원생들 본인부터가 서구 인문학술장의 역사와 규모를 잘 모른다는 거다.

 

마치 학문의 역사가 책 중심의 고전-인문학에서 논문 중심의 현대-산업화된 자연과학으로의 이행하는 양 전제하고, 내 이야기를 산업화에의 굴복과정 같은 거로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있다. 늦어도 18세기부터 '인문학' 학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잡지나 학술지로 지적인 소통을 나누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학자들은 동시대 파리의 프랑스 왕립 금석학·문예학술원에서 나온 정기간행물을 참조했고, 애덤 스미스는 1756년 <에딘버리 리뷰> 2호에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 리뷰를 썼다. "문예공화국"을 작동시키는 부품에는 편지 못지않게 서평과 번역물을 수록한 잡지들도 포함되었다. 물론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18세기는 너무 옛날이고 주변에 전공자가 없어서 과거인들이 잡지나 학술지를 내고 논문과 서평을 주고 받았다는 상상 자체를 못할 수도 있다(과거인들을 '현대인들의 열등하고 원시적인 버전'으로 바라보는 경향은 인문 전공자들조차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혹은 내가, 나의 공부경력이나 인적 맥락을 아는 사람이라면 실소하겠지만, 인문학의 역사를 너무나 영어권에 편중되게 파악하고 있다는 불만이 있을지도 모른다.

 

좋다. 다들 '비영어권 유럽학문'의 중심부라고 생각하는 19-20세기 독일의 인문학계로 가 보자. 독일 역사주의자들은 <역사 잡지>(Historische Zeitschrift)를 비롯해 19세기 중반부터 전문화된 학술지를 발간하기 시작한다. 1929년 <역사잡지>엔 젊은 시절의 에른스트 칸토로비츠가 프리드리히 2세를 다룬 논쟁적인 전기를 신랄하게 공격하는 학술서평이 실렸다. 엄격한 실증주의로 무장한 중세사가들의 난타 끝에 1930년 4월 할레대학에서 열린 학술대회의 발표자로 칸토로비츠가 초청받았을 때, 그의 앞에는 140명의 역사학 교수·교원들 및 250명의 학생·사서·아키비스트·출판인들이 참석했다(Robert E. Lerner, _Ernst Kantorowicz: A Life_, 2017, p. 127). 나치 집권에 따라 학계가 그야말로 박살나면서 한스 바론, 펠릭스 길버트 같은 프리드리히 마이네케의 제자들이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 정점에 서 있던 독일 역사학계는 이미 여러 학술지를 운영하고 또 그를 통해 논쟁을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는 <파이데이아>가 번역된 베르너 예거는 위대한 빌라모비츠의 후임으로 베를린대학 고전문헌학 교수직에 취임한 후 역시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학술서 총서 외에도 자신의 (킬 대학에서 지도했던) 학생을 에디터로 임명하여 학술지를 운영했다(Ward W. Briggs & William M. Calder III, eds., _Classical Scholarship: A Biographical Encyclopedia_, 1990, p. 218). 근대 독일인문학의 역사에서 고전문헌학과 역사학이 보유한 위치가 얼마나 정통적인 것이었는지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 인문학은 책 중심이며, 학술지와 논문을 통한 교류는 반인문학적인 것이라는 믿음은 말 그대로 비역사적인 허구와 신화다. 학술장의 역사를 조금만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또 과거의 지성을 그가 속한 대화와 맥락 속에 위치시켜보면, 학술지와 논문은 18세기 이래 전문학자들의 중요한 소통수단이었고 그 영향력은 학계의 형성과 확장에 따라 더욱 커져갔음을 알 수 있다. 학술지의 중요성이 강화된 것이 서구 학술장이 '인문학을 존중할 줄 모르는' 이공계 미국인들에 의해 '변질'된 결과물이라는 논리 역시 헛소리다. 거칠게 2, 3차 문헌에 의존해서 20세기 초반 독일 학술장 논쟁을 접해도, 인문학자들이 주석에서 학술지 논문을 인용하며 첨예한 논쟁을 주고 받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자신들의 학문적 역량에 드높은 자부심을 가졌던 독일학자들이 후대에 미국의 영향력 하에 들어갈 거라고 예측이라도 해서 미리 학술지를 만들었을까? 영국의 역사가들이 1923년 <케임브리지 역사저널>(The Cambridge Historical Journal, 1958년부터 The Historical Journal로 명칭변경)을 만들었을 때 이들은 자신들이 반인문학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1960년대 말 스키너와 포콕, 던이 다른 영미 정치철학계를 겨냥해서 여러 논문들로 포격을 퍼붓기 시작했을 때, 이들은 철저히 영국의 정통적인 역사학계 내에서 교육받은 학자들이었다.

 

아마도 진실은 이럴 것이다: 우리에게 학술지를 통한 지적인 소통이 여전히 어느 정도는 '강요된 요식행위'로서 주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의 대학 및 인문학술장에서는 서구 학술장처럼 인문학자들이 단권의 밀도 있는 연구서를 써야 인정받을 수 있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은 서구 인문학계가 논문이 중요하지 않은, 오랜 기간 공들인 책으로만 대화하는 세계일 것이라 상상하고는 한다. 미안하지만 그것은 한갓 망상이다. 서구 학술장의 연구자들도 논문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공표하고 서로의 논문을 읽고 코멘트한다(단지 책을 쓰는 작업 또한 권장하고 유도하는 여러 비/제도적 장치들이 있을 따름이다). 이건 자연과학화나 산업화 따위와는 별 상관없는, 이제 소수의 사람들이 수시로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오랜만에 책 한 권 쓰는 식으로는 더 이상 유의미한 의사소통이 힘들 정도로 학술장이 규모의 차원에서나 공간의 차원에서나 커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오래된 경향이다. 이미 유럽 단위 학술장이 생겨난지 한 세기가 넘어가던 18세기에 지식인과 학자가 연구성과를 싣고 서로를 평가하는 정기간행물이 출현했고, 이것이 20세기 후반 (부분적으로는 미국의 패권 하에서) 진정으로 세계적인 규모의 인문학 학술장이 생성되기 시작하면서 매우 빠르게 가속화되며 마침내 우리 곁으로까지 왔을 뿐이다.

 

이제 최초의 조언으로 돌아가자. 학술지를 읽고 연구사를 정리하는 게 왜 필요한가? 이는 바로 인문학 전공자들이 위에서처럼 자신들의 학문의 역사에 관해 엉뚱한 환상을 갖고, 말도 안 되는 현실진단을 내리는 걸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특히나 서구 학술장과 닿아있는 학계라면, 그 학계의 역사와 규모, 범위가 직접 들어가서 헤매고 정리하기 전에는 가늠할 수 없을만큼 크고 오래되었으며 넓다는 사실을 체감해야 한다(당연하지만 나는 서구 학술장의 모든 것이 가치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거기서도 스터전의 법칙은 유효하며 비효율적인 경로, 삽질 끝에 버려지거나 누군가의 자원과 권위에 의존해 억지로 유지되는 연구도 흔하다). 그래야 몇 권의 책만 읽고 '서구 인문학계도 끝난 거 같아' '서구 학술장은 이런 것이다' 같은 헛소리에 넘어가는 일도 피할 수 있다. 비판 혹은 인문학적 실천은 어느 초월적인 사유로부터 내려오는 게 아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닿아있는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작동하고 있는지를 최대한 정확하게 들여다보려는 노력으로부터 비롯된다--그것이 스칼리제르와 카조봉을 비롯한 17세기의 문헌학자들이 규정한 "비판"critique의 핵심적인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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