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고백"(Foucault's Confessions): 피터 브라운의 발표 후기
Intellectual History 2021. 5. 7. 03:00현재 미국 라이스 대학에서 푸코의 <성의 역사 4권: 육체의 고백>을 놓고 "푸코의 고백"(Foucault's Confessions)이란 이름의 연속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시간으로 5월 6일 새벽 1시에 열린 피터 브라운(Peter Brown)의 발표 및 다음 주 필립 슈발리에(Philippe Chevallier)의 발표에 눈길이 끌리는데, 시간이 조금 안 맞기는 해도 이런 발표를 집에서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만큼은 감사한 기분.
https://foucaultsconfessions.org/schedule/
1.
내가 젠더 연구의 전문가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은 젠더 연구 중에 베스트를 꼽으라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피터 브라운의 _The Body and Society: Men, Women and Sexual Renunciation in Early Christianity_(초판 1988, 20주년 기념판 2008)를 꼽을 수 있다. 성의 문제를 사회와 사상 속에서 이해하는 가장 정교한 모델을 보여주는 브라운의 작업에 한 가지 결점이 있다면, 흥미롭고 신기한 역사적 사실이 그것도 유려한 문체로 너무나 부드럽게 서술된다는 것이다--독자들이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여 텍스트의 분석틀을 메타적으로 재구성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그냥 부드럽고 재미있게 읽히는 역사책처럼 흘러지나가버린다.
책은 1) 고대-후기 고대 사회에서 성적인 것이 신앙과 인간학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2) 그것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어떠한 지적 운동으로 이어졌는지, 3) 특히 동방에서부터 확산된 금욕주의의 도덕-신학 운동이 도시의 엘리트들과 인민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4) 도시의 도덕적 통치자들인 교부들이 거기에 어떻게 대응을 했고, 그들의 '신학적' 저작이 그러한 대응전략을 어떻게 보여주는지를 생생하게 풀어낸다. 옥스포드에서 공부한 뒤 20세기 중반 미국으로 건너가서 인류학, 사회학 연구의 조류를 한발 빨리 흡수한 (케임브리지스타일과는 다른) 지성사가답게, 브라운은 계급/계층, 사제와 세속인, 성차, 종파별 차이, 지역차, 시대차 등등 20세기 후반에 설정되는 사회과학의 주요 분석필터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그러한 활용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찬가지로 의식적으로 연구자의 눈으로 읽지 않으면 그러한 필터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놓치게 된다. 젠더 연구, 특히 역사적인 연구, 젠더 담론의 연구에 관심을 둔 사람들에게 매번 추천하곤 하는데 (슬프게도 아직 진짜로 읽었다는 사람은 없다), 각을 잡고 읽으면 정말로 지적인 레벨업을 할 수 있는 책이니 포스팅을 쓰게 된 김에 다시 한번 홍보한다. :)
2.
간략한 발표 후기. 재미있게 들었던 내용을 일부 기억하자면,
1) <성의 역사> 4권은 출간 뒤에 비로소 읽었는데, 브라운 본인이 _The Body and Society_를 준비하던 시기에 푸코가 얼마나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어 무척 놀랐다고 한다. 실제로 두 책을 함께 읽은 독자라면 두 저자가 다루는 대상이 상당히 겹치는 걸 알아차릴 수 있을텐데, 브라운에 따르면 참조한 판본이나 대목까지도 겹치는 예가 적지 않았다. 사회를 맡은 (최근 푸코 아카이브르를 뒤져 <성의 역사> 전체의 맥락 및 4권의 위치에 관해 정리소개하는 논문을 출판한) Nikki Clements 에 따르면 푸코의 작업참고용 서류함에 브라운의 1983년도 강의 "Augustine and Sexuality"가 들어가 있다.
2) 브라운은 1970년대 후반 <성의 역사> 1권을 읽었을 때 무척 신선한 해방감을 느꼈다. 당시까지만 해도 마치 과거에는 온통 성을 억압하고 금지했다는 식의 역사관이 만연해서 너무 답답했는데,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푸코의 저작은 흥미로웠다. 1980년 경 푸코가 여러 차례 강연을 하러 미국으로 오면서 버클리에 있던 브라운과도 직접 만날 수 있었는데, 푸코는 브라운의 대작 아우구스티누스 전기를 읽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지만 (브라운은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주로 던진 질문은 요한 카시아누스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3) 물론 브라운은 <성의 역사> 4권의 중요한 약점은 간략하게나마 다 짚는다. "푸코는 근대 주체의 기원을 탐색한 철학자였다"라는 코멘트가 의미심장했는데 (당연하지만 역사가, 특히 사상과 담론을 다루는 역사가가 누군가를 "철학자"로 지칭할 때는 칭찬의 의미가 아니다), <성의 역사> 4권은 유대교 이야기를 전혀 다루지 않으며, 기독교의 역사 또한 첫 두 세기는 건너뛰고 시작한다고 지적. "푸코의 기독교는 다소 협소한 것처럼 보인다Foucault's Christianity seems rather narrow".
*실제로 _The Body and Society_를 읽은 독자라면 브라운이 이런 코멘트를 하는 게 당연하다는 데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4) 질문 시간에 곧바로 역사가로서의 푸코와 철학자로서의 푸코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들어왔는데, 물론 브라운은 자신이 푸코를 단순한 철학자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답한다. 그리고 개별 텍스트를 읽어내는 데서 푸코는 절대적으로 일급의 안목을 지녔다고 인정.
(브라운에 동감하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성의 역사> 2-4권에서 특히 개별 문헌을 붙잡아 그것이 어떤 논쟁을 겨냥해 어떤 논리와 전략을 전개하는지를 읽어내는 시선은 푸코의 저작 전체를 통틀어 가장 탁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5) 푸코의 계보학에 관한 질문에서 아르날도 모밀리아노Arnaldo Momigliano가 자신의 멘토였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해서 흥미로움. 브라운이 모밀리아노 사후 꽤 긴 추도문을 쓴 건 알고 있었으나...
한국의 우리는 근대-포스트모던으로 '진보하는' 포스트모던의 학술사적 관점을 너무 쉽게 믿어버리곤 하는데, 실제로 20세기 초중반 영어권 인문학술장에서 독일을 포함한 대륙의 영향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고, 전후에 어떤 식의 방법론적 문제의식이 생기는지 등은 중요한 주제.
6) 푸코가 통치성 문제를 다루면서 "악한 것이 갖는 쓸모란 무엇인가what is the use of evil thing"라는 질문에 접근하게 된 것 같다는 코멘트는 매우 흥미로웠다(나는 브라운 본인의 BS, 특히 아우구스티누스 장에서 같은 문제의식이 공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미나에서 언급된 것은 아니지만, 1970-80년대 예컨대 포콕의 <마키아벨리언 모멘트The Machiavellian Moment>나 허시먼의 <정념과 이해관계>를 포함한 서구 인문사회학의 위대한 저작들 중에는 단순히 악덕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 나아가 악덕으로 간주되던 요소들이 전체 세계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유용한 기능을 한다는 사유의 등장에 주목하는 작업이 있다. 이것은 신학에서 출발해 정치경제학을 포함한 통치의 학문으로 가는 여정의 이야기로, 한편으로는 현대사회의 자기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무척 세속화된 것처럼 보이는 근대학문의 한 기원에 웅크리고 있는 악의 문제=신학적 물음을 직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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