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 결정론의 귀환과 한국 안티페미니즘의 형성

Comment 2019. 5. 5. 20:51

[*3월 26일 페이스북에 올린 포스팅]


동국대학원신문 [젠더비평] 코너에 "생물학적 결정론의 귀환과 한국 안티페미니즘의 형성"이란 제목으로 짧은 글을 기고했다. 애초에 원고지 8매 분량의 지면이라 본격적인 이야기를 내놓기보다는 문제의식을 던지는 데 만족하기로 했다(Intellectual Dark Web을 포함한 동시대 북미 담론장은 나의 주 관심사가 아닌 것도 사실이다). 내가 글을 통해 의도했던 바를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최근의 한국 지식/담론장을 이해할 때 북미 지식/담론장을 염두에 두는 건 필수적이다; 특히 영어를 자유롭게 이해하는 이용자들이 늘어나고 SNS 및 거대 커뮤니티를 통해 영어권에 대한 실시간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북미는 (선별적으로나마) 실시간으로 수용되고 있다.

 

2) 특히 한국의 경우, 주요 SNS플랫폼 및 분절화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특정 담론이 매우 빠른 속도로 형성·전파되는 게 하나의 주어진 조건이 되었다. 그리고 때로 이것들이 기존의 정부·전문가집단·언론에서 형성된 논의를 우회하거나 그것들을 '대체'하는 '대안지식'이 되기도 한다. "안아키"는 예외가 아니라 일상적인 조건이다.

 

3) 본문에서는 분량상 페미니즘을 언급하지 못했지만, 안티/페미니즘 양자는 상기 두 가지 매체적 조건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바꿔말하면 진지하게 안티/페미니즘적 개입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매체적 변화가 가져온 새로운 조건을 주의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연구자의 시점에서 풀어보면, 현재 안티/페미니즘 논의에 제대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언어/그룹 간 담론수용·전파를 추적할 수 있는 지성사/담론사적 접근 및 매체적 조건의 변화를 다루는 매체이론적 접근이라는 두 가지 방법론적 함의를 숙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조건에 맞춰 연구방법론을 재설정해야 한다(그런 점에서 나는 여전히 규범적 주체철학이나 정신분석적 뉘앙스에 매달려 있는 연구자들이 보다 '역사적인' 연구방법론을 채택하는 게 훨씬 실천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담론사적 접근과 매체이론적 접근은 20세기 후반 학술장에서 역사분과와 문학분과를 중심으로 발생했으나, 한국 대학의 해당 분과들이 학생들에게 이러한 접근법을 위한 충분히 효율적인 훈련을 제공하는지에 나는 다소 회의적이다. 학문이 실천적일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좌파적이라고 공인된 교의를 반복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발생하는 사안들을 제대로 다루고 분석할 수 있게 해주는 데서 출발한다. 오늘날 안티/페미니즘의 확산은 달리 말해 인문사회 연구자들을 위한 중요한 시험대이기도 하다; 학문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가?

 

P. S. 한국의 인문학술장에 필요한 게 뭘까...라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는데, 많은 내용을 정확하게 읽고 분석하고 쓰는 작업을 훨씬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기본이라면, 자신이 접하고 습득하는 방법론이 무엇을 할 수 있/없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무슨 문제의식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메타-방법론적 훈련이 다음이 아닐까 한다. 전자는 학부 졸업할 때, 후자는 석사 졸업할 때쯤 완벽하게는 아니라도 기본은 습득할 수 있도록(그리고 박사 때부터는 다른 연구자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큰 프로젝트를 협업할 수 있도록 해야...). 그런 교육과정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질까? 나는 '그런 게 필요한데 한국은 안 될거야' 보다는, '필요하니까 하나씩 만들어보자'라는 태도가 우리에게 좀 더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전자의 자학적인 어리광을 계속하기에는 우리의 상황은 너무 급박하다.

 

http://m.dgugs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1888


[젠더비평] 생물학적 결정론의 귀환과 한국 안티페미니즘의 형성

성별 간 격차·차이는 자연적인가, 인위적인가? 통상적으로 ‘생물학적 결정론자’란 이 고전적인 물음에서 남성·여성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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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기고문 전문.




성별 간 격차·차이는 자연적인가, 인위적인가? 통상적으로 ‘생물학적 결정론자’란 이 고전적인 물음에서 남성·여성의 특성 및 그로부터 관찰되는 양성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기인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를 사회적으로 교정하려는 노력은 틀렸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과거에는 이러한 입장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지만, 사회 변화 혹은 어떠한 사회에 속하느냐에 따라 남성·여성의 삶이 달라질 수 있음이 인식되면서, 또 특정한 생물학적 요소와 실제 인간의 삶 사이의 관계가 무척 복잡함이 드러나면서 이제 생물학적 결정론을 진지하게 주장하기란 어렵게 되었다. 분자, 세포, 조직, 기관 등의 수준에서 ‘자연적인’ 성차가 유의미하게 발견될 수 있다는 주장, 그것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관찰되는 특정한 성별 격차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설명, 현상이 규범적으로 정당한가 여부의 판단은 각각 다른 과제다. 생물학적 결정론자들은 대체로 셋의 차이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데 소홀한 이들로 평가된다.


   성차별을 둘러싼 최근의 대중적 논쟁지형에서 흥미로운 점은 거의 논파된 허수아비 정도로 취급받는 생물학적 결정론이 여러 형태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관찰되는) 성별 간 소득격차 문제를 필두로 한국사회에 성별 간 차별·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하게 존재하는지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을 살펴보면, 그것은 부당한 차별이 아니라 양성의 생물학적 본성에서 기인한 ‘자연스러운 차이’에 불과하다고 강변하는 사례가 종종 발견된다. 물론 이것이 일상적인 편견의 표현이거나, 아니면 이런 무리한 방식이 아니고서는 성별 간 소득통계로 드러나는 명백한 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예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물학적 결정론자들이 종종 자신의 ‘학술적’ 근거로 북미의 대중적 안티페미니스트 조던 피터슨을 든다는 사실은 짚을 필요가 있다. 토론토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 『12가지 인생의 법칙』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피터슨은 북미 반(反) 리버럴·진보 그룹 “Intellectual Dark Web"의 일원이자 대중적인 영향력을 갖춘 안티페미니스트로, 특히 페미니즘을 비난하면서 조잡한 형태의 진화심리학적 논변에 기초한 성차의 생물학적 결정론을 주장하는 것으로 비판받는다.


   중요한 점은 그의 논변이 한국에 수용되는 경로 자체다. 간략히 정리하면 북미의 (공식적인 학계에서라면 엄청난 비판에 직면할) 대중적 주장이 유튜브·SNS·온라인 커뮤니티를 경유하여 한국의 온라인 공론장에 빠르고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이것이 다시 사회현상을 특정한 각도에서 해석하는 ‘학술적’ 근거로 활용된다. 즉 생물학적 결정론의 재등장은 한국의 공식적인 학술장 바깥에서 어느 정도의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유사학술담론이 형성되는 매우 흥미로운 사례다. 이런 맥락에서 생물학적 결정론을 포함해 한국 안티페미니즘 담론의 형성과 확산을 단순히 ‘2030남성의 보수화’나 반지성주의의 대두로만 치울 수는 없다. 이는 명백히 오늘날 특히 영어권을 중심으로 온라인을 통한 전지구적 의사소통의 양과 속도가 모두 급격히 증대해온 상황의 산물이며, 따라서 (페미니스트를 포함한) 우리는 이러한 변화가 한국의 지식·담론장의 조건을 어떻게 변모시키는지, 그리고 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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