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리오리엔트> / 우드사이드, <잃어버린 근대성들>

Reading 2017. 9. 9. 20:58
예비군 기간을 전후해서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 한국어 번역본(이희재 역, 이산, 2003, 원저는 _ReORIENT: Global Economy in the Asian Age_, 1998)을 급하게 훑어읽었다(왜 이 책을 읽어야 했는지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어차피 서구·아시아 경제사 관련 통계 및 그에 대한 분석의 정확도는 내가 코멘트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생략하고 큰 테제만 정리하자면

1. 세계사는 단일한 세계시장/세계체제라는 통일성 속의 다양성으로 봐야 하며(시간에 따른 종적 축만이 아닌 "횡으로 된 거시사"),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대표적으로 경기 및 무역에서 볼 수 있듯) 구조적 순환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프랑크의 "전체론"holism은 경험적인지 선험적인지 다소 모호한 성격을 갖는 "구조"structure를 전제한다--마크 비버라면 이를 전형적인 modernist assumption이라고 비판했을 것이다.

2. 1500-1800 기간에 세계 교역 및 생산의 중심지는 아시아였고, 아시아 시장에서 우위를 가질만한 교역품목이 없었던 유럽인들은 주로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은을 무제한에 가깝게 끌어오면서 아시아(서아시아, 인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국, 일본 등), 특히 중국 중심의 은화 기반 교역체제에 참여할 수 있었다. 아시아가 저발전 상태였다거나 "전통"에 머물러 있었다는 유럽중심주의적 편견은 경험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기술발전 또한 마찬가지다.

3. 1800 이후 유럽인들의 우위는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가능했다:
1) 1750년경부터 한 세기 간 아시아의 각 지역에서 교역과 인구 모두에 위기 혹은 하강국면(물론 이때 프랑크는 상승-하강이라는 구조적 순환을 상정하고 있습니다)이 발견되며,
2) 아시아의 각 지역의 생산은 노동집약적 측면을 띠고 있었고, 이것이 너무나 성공적이라 기술발전에 투자할 유인이 없었는데 비해, 식민지 개척 등을 통해 인구가 넓은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유럽은 그러한 노동집약적 생산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었다. 따라서 유럽은 지속적인 기술투자를 통해 생산성의 증대를 꾀해야만 했는데, 이것이 1800년 경 전후로 식민사업과 군사적 우위 등과 맞물려 그때까지 근근히 쫓아가고 있던 아시아 시장에서의 우위로 이어지게 된다.
이를 보다 일반적인 명제로 매우 간단히 요약하자면, 경제적 헤게모니의 일차적인 요인은 생산성에 있으며 이 생산성은 노동집약과 기술발전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 기초하는데, (적어도 일정 시기 이후에는) 후자에 투자하기 좋은 구조가 경제적 헤게모니의 창출로 이어진다는 서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프랑크의 '근대적 발전'에 대한 틀은 이미 널리 공유되고 있는 논의를 공유한다.

4. 유럽의 우위는 이처럼 상당히 일시적·우연적인 것이었으며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경제발흥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다만 세계경제체제에서의 아시아 헤게모니가 어떻게 돌아올 수 있을지에 대해 구체적인 서술은 없다.

이 네 가지는 물론 모두 흥미로운만큼 논쟁적인 주제다. 나의 관심사는 물론 경제사 서술 자체의 정합성이라기보다는 이것이 중빠·동아시아/유교 근대론자·"아시아적 가치"의 지지자들을 위한 내러티브를 어떻게 지지할 수 있느냐에 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프랑크의 책은 동아시아·유교의 정치적·사상적 전통을 옹호하는 이들을 지탱해주지 않는다. 프랑크 자신이 말하듯 이 책의 핵심이 전세계를 단일한 세계(경제)체제라는 프레임으로 정리하는데 있지 특히 자국(민)중심주의에 기초한 개별 국가·지역적 전통의 우월함을 옹호하는 걸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도 있지만, 내 생각에 좀 더 근본적인 지점은 이 책이 철저히 경제중심주의적 경제사, 정확히 말해 경제적 구조가 인간사회의 '토대'에 존재한다는 방법론적 성격에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프랑크가 본인이 비판하는 맑스("자본주의" 등을 선험적 개념으로 설정하는)와 실제로 얼마나 멀리 있는지에 대해선 질문을 던져볼 법하다고 생각이 든다.

"아시아적 가치"나 최근의 중화주의자들, 동아시아 전통의 옹호자들은 기본적으로 정치제도·사상적 차원에서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고 정당화하는데 관심이 있다. 프랑크의 책은 애초에 그러한 층위들을 부차적인 위치에 놓는다. 그는 때때로 자신의 저술이 "정치경제학"이라고 이야기하거나 (테다 스카치폴을 언급하며) 자신이 "국가"의 중요성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저술을 읽어보면 '정치'나 '국가'라는 영역에 대한 서술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 책이 최근의 보다 구체적인 관심사를 가진 지성사가들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예를 들어 나는 이 책에서 매우 제한적인 효용만을 얻는다). 물론 세계체제론자들 중 중국과 아시아에 주목하는 이들을 '동아시아론자'들이 멋대로 전유하려는 시도가 지금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들이 매우 자의적인 독해에 기반한다는 지적은 가능할 것 같다.

논문과 리딩, 마감에 허덕이는 가운데, 다음에 쉬어가면서 읽을 책은 알렉산더 우드사이드의 <잃어버린 근대성들>이다.






알렉산더 우드사이드, <잃어버린 근대성들: 중국, 베트남, 한국 그리고 세계사의 위험성>, 민병희 역, 너머북스, 2012. 원저명은 _Lost Modernities: China, Vietnam, Korea and the Hazards of World History_, 2006 으로, 저자의 2001년 하버드 대학 라이샤워 강연(The Edwin O. Reischauer Lectures) 원고를 수정하여 출간.


<잃어버린 근대성들>의 주 내용은 몇 가지 명제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중국(당 이후), 베트남(11세기 리 왕조 이후), 한국(고려와 조선)에서 '서구 근대'보다 이른 시기에 세습신분이 아닌 능력주의에 기초해 통치집단을 구성하는 "중국식 관료제"가 정착되었으며, 이른 시기에 봉건제로부터 벗어난 이들은 초기 형태의 복지정책을 시도하기도 했다. 둘째, 중국식 관료제를 정착시킨 이들은 '관료제의 주관성'에 수반하는 근본적인 문제들, 곧 한편으로는 자율성을 획득한 관료기구·집단이 통치대상과 괴리되면서 반대편에서는 통치대상인 민 혹은 사회가 체제 전반에 대한 소속감을 상실하는 위험이나, 관료집단 혹은 통치엘리트 자체의 제어에 따르는 어려움--관료집단 간 충돌 발생시 조정 및 중재 문제, 충성·도덕과 같은 가치를 통해 통치엘리트를 제어하려는 시도--등의 난점에 직면했으며, 이를 해결하거나 적어도 완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유교 전통이 그 자체로 근대적 관료제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내재한 위험성을 제어하기 위해 강조된 보수적이고 전근대적 이데올로기라는 지적은 꽤 흥미롭다). 셋째, 20세기에 전통적인 체제의 몰락 이후 이들은 서구 근대, 특히 20세기에 발전한 관료제 연구나 경영기법·시스템 공학 등을 받아들여 다시금 관료제를 발전시키고 있으나, 과거 조상들이 직면했고 또 인지했던 관료제의 근본적 난점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우려가 있다(*이 책의 중국·조선 관료제 이해에 대한 구체적인 서평으로는 박영철의 <동아시아 관료제의 근대성 논의에 대해>를 참고하라: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02345477 ).


위의 정리에서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듯, 비록 해롤드 버만이 작업모델로 언급되긴 하지만, 우드사이드의 책은 기본적으로 베버적 프레임에 입각하고 있다. 기술발전, 자유주의와 함께 "세 번째 근대성"으로 귀족제를 직업적 엘리트="지식을 갖춘 직업 관료"가 대체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면(57), 직업관료들이 운영하는 근대적 관료제는 고유의 합리성에 기초한 자율성을 획득한다. 문제는 이 자율성이 관료제의 합리화 및 정상적인 작동을 가능케 하면서 동시에 그 본질적인 부작용--외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관료주의적' 처리를 포함한--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관료제의 부작용은 바로 그 순기능의 토대에서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제거불가능하다. 근대적 통치가 발전할수록 관료제의 지배 또한 확장된다는 점에서 관료제의 딜레마는 곧 근대의 핵심적인 딜레마가 된다(이를 근대 계몽의 정신사로 옮긴 판본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이다). <잃어버린 근대성들>의 핵심에는 이 딜레마가 있으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몇몇 동아시아론자들이 편의적으로 끌어쓰듯 일견 동아시아의 조숙한 근대성을 칭송하는 것 같아보이면서도 그 근대성에 지워질 수 없는 베버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결코 일면적이지만은 않다(다른 독자들을 위해 조언하자면 이 책에서 가장 깊은 숙고를 요하는 대목은 따라서 2장, 4장, 결론이다). 본문 맨 마지막 페이지에 "우리는 모두 이처럼 위험한 화산 주변에 살고 있다"는 문장이 적혀 있음을 잊지 말자(233).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심오함과 별개로 역사가의 작업으로서 <잃어버린 근대성들>의 문제점은 어렵지 않게 짚을 수 있다. 이 책이 출간된 시기가 2006년이라는 사실에 약간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저자의 중세부터 근대 초기, 근대에 이르는 시기 서구에 대한 스칼라십은 시대에 뒤처져 있다. 저자는 암묵적으로 봉건제 및 종교적 성격과 서구 중세를 동일시하고, 이 반대편에 관료제 및 세속화된 (서구 근대 및 중국식 관료제의) 세계를 놓는다. 이는 저자가 과연 자신이 칭송하며 언급한 해롤드 버만의 테제를 얼마나 잘 이해했는가에 의구심을 들게 할만큼 과도하게 단순한 "베버적" 프레임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였던 버만의 연구가 보여주듯 서구 중세 기독교에 대한 오늘날의 연구는 그것과 '근대국가'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으며(이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는 나의 http://begray.tistory.com/426 를 참고하라), 200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증대하는 세속화에 대한 연구는 근대사회의 종교적 기원을 계속해서 묻고 있다.


저자가 자신이 서구중심주의적이라 비판한 베버를 되풀이하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층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결국 <잃어버린 근대성들>은 "근대적 관료제"라는 개념을 일종의 초역사적 유형(type)으로 설정한 뒤 그것을 동아시아 국가에 적용한 것에 다름 없다. 우드사이드에 따른다면 베버가 틀린 까닭은 동아시아 연구에서 베버적 범주를 충분히 적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관료제에 깃든 근대성의 딜레마는 서구 근대와 전근대 동아시아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베버의 범주는 부지중에 한층 더 높은 진리의 위치에 서게 된다. 역자는 우리가 근대성을 다루면서 "자본주의"라는 범주에 지나치게 묶여 있음에 한탄하지만, 사실 근대성에 대한 이 책의 입장은, 비록 근대성"들"이라는 복수형이 덧붙여져 있지만, "자본주의"를 '관료제'로 바꾼 정도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보기 어렵다(17-18). 좀 더 유명론적인 철저한 푸코주의자라면--비록 나는 진정한 푸코주의자가 얼마나 되는지에는 다소 회의적이지만--우드사이드의 방법에 깃든 초역사적 성격을 곧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범주"의 초험적(transcendental) 성격에 깃든 신칸트주의의 향취가 20세기 초의 독일인을 타고 21세기 초의 미국인에게까지도 깃들어 있다.


내가 다음에 시선을 돌릴 방향은 우드사이드 혹은 이러한 류의 시선을 한국의 동아시아 연구자들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느냐에 있다. 특히 "서구 근대"에 대한 이해가 현대적인 연구를 얼마나 따라잡고 있는지,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근대/성을 어떠한 방법에 기초해 규정하는지 모두에서 우드사이드의 저작이 문제적이기 때문에 흥미롭다면, 역시나 근대/성 앞에 선 한국의 연구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가? 결국 이는 우리가 역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우리를 규정하는 방식의 일부분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실천적이기 위한 인문학이 피할 수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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