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집회, 여성혐오, 전략적 판단
Critique 2016. 11. 29. 14:01[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게재되었다. http://www.huffingtonpost.kr/woochang-lee/story_b_13295304.html ]
DJ DOC 관련 논쟁의 대립구도에는 여러 측면이 있고 그걸 한번에 묶어 전부 치워버릴 생각은 없지만, 그중에서도 "집회에 나와서 혐오발언 좀 하는 게 뭐 어때서"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많은 (평소에는 존경할만한) 분들에게는 솔직히 동의하기 어렵다. 나는 이 케이스를 집회·대중정치에서 혐오발언이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표현 자체의 승인 여부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사태의 핵심을 제대로 짚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이 상황에서 요점은 혐오표현 일반이 아니라 누구에 대한 어떤 혐오가 용인될 것인지의 여부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집회의 급진성과 전복성을 이유로 여성혐오도 용인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진보적' 발화자들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묻고 싶다. 과연 그들은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과 같은 인물이 무대에 올라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면서 이 정권의 성립에 기여한 노동자, 농민, 민중을 "개돼지"라고 비난하는 걸 마찬가지의 논리로 옹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집회에서 여성혐오가 별 것 아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면, 같은 논리를 일관되게 적용해서 (정권 비판과 연결시킬 수만 있다면) 농민혐오, 노동자혐오, 빈민혐오, 민중혐오도 용인할 수 있는가(극우파들은 실제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우리는 많은 '진보'들이 여기에서 자신들의 논리를 일관되게 적용하지 못하리라는 걸 예측할 수 있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본질적인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의 사고체계 속에서 '여성'은 '농민, 노동자, 민중'에 비해 덜 중요한, 보잘 것 없는 위치를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집회에서 여성혐오 좀 나올 수 있지"라고 말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그저 여성을 진정으로 중요한 정치적 정치성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강하게 확신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사고가 그 정당성의 여부를 떠나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로서 정치적으로 해롭고 쓸모없는 결과를 낳으리라 생각한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9년간에 걸쳐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집회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살펴보면,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조직적 동원에 의한 참가자가 줄어들고 대신 특히 젊은 여성집단을 중심으로 하는 개인·가족 단위 참가자들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10여 년 정도의 시점에서 보면, 과거의 보다 전투적인 집회가 문화제 형태로 바뀐 것은 후자의 대대적인 참여를 가능하게 한 중요한 요인으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성공적이긴 했다.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에 수십 만의 집회군중에 놀라는 사람이라면, 한번 여성 참가자 및 그들과 함께 온 가족·아이·친구가 일제히 빠졌을 때 그 인원수가 얼마나 급격하게 쪼그라들 것인지를 떠올려봤으면 좋겠다. 이미 한국의 전국단위 대중집회는 (젊은) 여성 참가자들을 빼면 제대로 성립하기 어려우며, 앞으로 한동안 이 추세는 계속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진보 혹은 시민정치의 "여성화"(feminization) 흐름은 대중집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여성 참가자 집단이 대중집회동원의 핵심적인 세력이 되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대의'와 '연대'를 위해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모욕적인 표현이나 추행을 감내하라는 주장이 얼마나 한심한 판단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노동절 집회에 가서 노동자 욕하고, 쌀값투쟁 자리에 가서 농민을 경멸하는 발언을 하는 게 멍청한 짓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지금 집회에서 여성 집단에 대한 비하를 너그럽게 용인하자는 주장이 전략적으로 멍청한, 우리 같이 집회 포기하고 자멸하자는 이야기랑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처럼 자명한 사실조차 보지 못하는 이들이 집회에서의 여성혐오를 옹호하며 자신들이 "현실정치"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게 심각한 블랙 코미디라고 느낀다. 유감스럽게도 그 선량한 '진보'들은 현실정치를 전혀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그걸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
만약 당신이 대의와 연대, 그리고 효과적인 전략의 중요성을 믿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사적인 입장이나 편견이 무엇이든 간에 공적으로는 집회의 여성혐오를 거부하는 게 맞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에서 본의아니게 여성혐오적 표현을 실천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일은 그분들의 행위를 덮어놓고 옹호하며 "예민한 페미들"을 비난하는 대신 그분들의 부적절한 발언을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정정해주는 것이다. 연대, 대의, 전략적 행위는 바로 우리 자신의 여성혐오적 편견을 떨쳐버리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Critiq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켄 로치, <나, 다니엘 블레이크>. (2) | 2017.01.06 |
---|---|
젊은 세대의 공적인 것과 제도에 대한 태도에 관하여 (0) | 2016.12.22 |
10월 29일 집회 및 "거리의 정치"에 대한 노트 (2) | 2016.11.01 |
현실정치와 사고모델 (2) | 2016.10.30 |
서울대 인권가이드라인을 비난하는 탈동성애 기독교 비판 (5) | 2016.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