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여성주의와 여성주의혐오에 대한 인터뷰 코멘트
Comment 2016. 9. 17. 21:27<월간여기> "<개강특집>[인터뷰]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페미니스트, 신지윤을 만나다. -페이스북 “대나무숲” 들여다보기." 인터뷰 원문: http://weolganyeogi.tistory.com/33
읽고 흥미로운 대목에 개인적인 물음을 붙여 기록해둔다. 나중에 발전시킬 수 있는 지점들이 있을지도.
1)
"내 [여성주의적] 제보가 필터링당한 이후, 페이스북 페이지에 성별을 묻는 댓글을 달았다. 그랬더니 필터링당한 내 글을 보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남자 선배들이 폭행범의 성별을 물었다는 것만으로 모두 떠났다. 남자 선배들 뿐 아니라 여자 선배,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에브리타임에서는 나를 매장시키겠다거나, 일베에 올려 신상을 털어보겠다는 둥의 이야기가 오갔다. 일베가 사회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성별 분란 조장을 일으킨 나를 처단하기 위해서는 일베의 손을 빌리길 원한다. 성별 분란이 (일베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 아마도 일베와 같은 지향점을 가진 게시물을 워마드에 올려서 신상을 털겠다는 이야기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는 걸 감안할 때, 특히 반여성주의적 집단에서 일베=메갈을 주장하는 이면에는 어떤 차별적 접근이 존재하는지 한번쯤 물어볼 필요가 있다.
2)
"페이스북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들은 관리자들만 모이는 전국적인 규모의 단톡방이 존재한다. 트위터에서 나의 일을 공론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톡방의 존재를 알려온 분이 계셨다. 이분이 보내주신 자료를 보자마자 왜 내 제보가 필터링 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 관리자들끼리 모여 페미니즘에 대한 제보는 올리지 말자는 이야기를 나눈다. 페미니즘은 누군가에게 규제, 검열당하는 중이다. 여기에 서울의 모 여대 대나무숲 관리자 역시 동조하고 있었다.
여성혐오적인 제보글은 필터링 없이 올린다. 거기에 페미니스트들이 항의하면 ‘좌표 찍고 쿵쾅대면서 온다’, ‘그 분들이 오셨다’고 조롱한다. 사실상 대나무숲 관리자들은 보다 조직적으로 단톡방을 꾸려서 ‘우리 대숲이 난리 났으니 지원을 와 달라’고 여론을 조작한다. 일반 학우인 양 와서 여론을 조작 중인 대숲 관리자들도 있다."
-> (캡쳐된 단톡방 사진을 보면 '우린 여성주의를 필터링하는 게 아니라 메갈리아를 필터링하는 것일뿐'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상 이 운영자들에게 메갈리아와 여성주의를 구별하는 명확한 기준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여성주의 및 여성주의가 필연적으로 초래할 논란 자체를 회피하고 시야에서 지워버리고픈 욕망이 있다면, 그런 점에서 이들은 실질적인 반여성주의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대나무숲 페이지 운영진을 포함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상식인의 태도'가 (암묵적인) 반여성주의를 띠고 있다는 점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지 몇몇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의 문제만은 아니다.
3)
"얼마 전까지도 친했던 사람들이 괴롭히겠다는 목적으로 가계정을 만들어서 페이스북으로 모욕적인 말을 보낸다. 동기들, 선배들이 공개 모욕에도 가담하고 있다. 모르는 번호로 협박전화를 받기도 했다. 집주소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쫓아와 해코지를 할까봐 현재는 집에서 지내지 못하고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
-> 나는 이런 종류의 온라인 트롤링, '표현'과 실질적 위협의 흐릿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혐오표현을 우리가 단지 '그깟 넷잉여'로 치부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가 스마트폰 및 SNS 시대의 도래와 함께 온라인에서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단지 여가 혹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그 자체로 중요한 삶의 영역이 되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그 삶의 안녕함을 부당한 사유로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더 이상 사소하고 하찮은 일이 아니게 된다.
4)
"[문:] 5.사건에 관련해서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가 있나? 국제캠 총여학생회라던지.
[답:] 없다. 오히려 서울캠 총여학생회 회장의 연락은 받았다. 교내의 여성주의 단위가 도움을 준 적 역시 없다. 성평등 센터가 있고, 후마니타스 정신을 강조하는 만큼 진보적인 줄 알았지만 대나무숲 페이지에 댓글을 단 이후 교직원이나 교수들 중 누구도 도움을 주고자 연락해온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 교육부에 민원을 넣자 그제야 긴급회의가 소집됐다고 한다. 9월 1일 즈음 성평등 센터 상담가에게 전화가 왔다. 어떤 대처를 원하냐기에, 페이스북 가계정을 파서 성희롱, 강간 위협을 한 학우들에게 강력한 조치를 취하길 부탁했다. 회의를 해보고 연락해주겠다고 하지만 늦은 대처다. 내가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온라인 페미니스트 개개인들이다. 민우회나 한국 여성의전화에 도움을 요청해보라고 권하거나, 개인 블로그에 글을 써 사건을 알려주신다."
-> 이것이 경희대만의 사례는 아닐 것이다. 아직 한국에서 공동체적인, 공적인 처리기구에서 이와 같은 유형의 문제에 대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에서 공동체적 문제해결의 전통이 거의 자리잡히지 않았음을 감안한다면--공동체적 집단의 의사결정권자들 중 그러한 문제에 정당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필연적으로 이 문제를 완전히 사적인 개인들 간의 활동으로 남겨두거나 공적 기구의 대응체계를 재구성하도록 정치적 요구를 전달하거나의 양자택일이 있을 뿐이다.
5)
"태생부터가 페미니스트였다. 몰랐을 뿐이지. 초등학생 시절 같은 학생인데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의 가슴을 보고 ‘아스팔트 껌딱지’ 등 성적인 모욕을 하는 모습을 보고 ‘너희 고추는 어떠냐’고 반박했었다. 그때부터 분노했다.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억압성 발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런 현장을 목격할 때마다 투쟁해왔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 내가 페미니스트임을 깨달았다. 6월 21일 즈음 sns에 페밍아웃을 했다. 그러면서도 메갈과는 거리를 뒀다. 그때는 ‘메갈년’이라는 낙인이 매우 무서웠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메갈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치환해 억압하려 드는 것이 두려웠다. 내 사진과 신상 정보 등을 가져가 악의적으로 공격할 것 같았다. 스스로 메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주변에 남자 인맥이 없어지는 걸 본인이 원하는 건가? 저 사람들 자폭하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혐오용어가 또 다른 혐오를 양산하는 것 같아 메갈의 워딩도 싫었다. 나는 메갈이 아닌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다."
->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억압성 발화가 잘못됐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개체의 출현인가, 혹은 이러한 세대의 출현인가?
-->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온라인 여성주의의 확산에 끼친 영향. 분명 1년 전 메르스갤러리-메갈리아 커뮤니티의 출현이 온라인 여성주의가 많은 이들의 시야에 들어올 수 있도록 중요한 트리거를 제공했지만, 이후 강남역 사건을 포함해 그러한 흐름이 더 많은 집단에게 확산될 수 있는 계기들이 출현하고 중첩되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
6)
['페밍아웃' 후]
"당당하고 떳떳했지만 왜인지 인간관계의 단절이 시작됐다. 그러다 페이스북 친구였던 여자 선배가 보이지 않았다. 나를 차단한 것이었다. 그 사람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여성혐오가 짙었다. 제대로 개념녀인 사람이었다. 선배에게 닿기를 바라며, 개념녀와 페이스북 페이지 ‘유머저장소’의 여성혐오에 대한 글을 써서 개인 계정에 올렸다. 그랬더니 8월 5일 내가 쓴 글이 유머저장소에 박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내 글을 보고 ‘뭐만 하면 여혐’이라며 비아냥댔다. 글을 확인한 여자 선배는 ‘학교 망신을 다 시킨다’며 내 신상을 뿌리고, 페밍아웃 이후 마음껏 메갈짓을 하고 다닌다고 욕했다. 충격적이었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했을 뿐, 메갈을 한 적도 없는데 메갈이 됐다. 나는 무결한 줄 알았지만 메갈짓을 한다고 공개모욕을 당했다.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무슨 행동을 하든 세상은 나를 메갈년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를 메갈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메갈을 안 하는 개념 있는 페미니스트’라는 코르셋을 이렇게 벗을 수 있었다."
-> "메갈"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방식, 그리고 반여성주의자들에게 "메갈"과 여성주의가 어떻게 혼용되는가도 흥미롭다.
http://weolganyeogi.tistory.com/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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