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 반대자'들에 관한 몇몇 게시물 체크.

Comment 2016. 8. 31. 18:45
24시간도 채 못되는 자체 휴가 사이에 최근의 온라인 여성주의와 관련 있는 흥미로운 게시물들이 몇 개 나왔다. 혼자라도 체크해둘 겸 해서 정리.

급변하는 사태 중에서 먼저 주목하게 되는 것은 도대체 자칭 '진보적' 한국남성들이 메갈리아 사냥에 이토록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이다(시사인 기사의 나무위키 분석은 "성기가 작다고 놀려서"라는 매우 흥미로운 해석을 제공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이 주제는, 좀 더 나아가서 "개저씨 이후 세대의 한남들"은 어떤 프레임에 기초해 사고하는가라는 주제는 앞으로 여러 연구자들이 달라붙어서 분석해볼 가치가 있다. 옳건 그르건 그 자체로 하나의 '실력행사'였던 "메갈리아" 현상이 우리가 20-30대 여성집단에게 주목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면, 나는 이번 '메갈리아 사냥-시사인 절독운동' 현상이 20-40대 남성집단이 어떤 사람들인지 질문해볼 기회가 되어도 좋을 거라 생각한다. 여기에 관해서 몇 가지 읽을만한 글들은:

1. 온라인 커뮤니티 오유를 중심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시사인 절독운동"에 대한 미디어 오늘의 소개기사. <http://m.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1877>

2. 여기에 대해 '뒤끝이 대단한 한국남성들' 이라 비판적인 논평을 남긴 서민 교수의 여성신문 칼럼. <http://womennews.co.kr/news/97005>

서민 교수의 칼럼은 이 사태가 이해되는 한 가지 전형적인 프레임을 잘 보여준다. 즉 한국 남성들은 처음부터 여성들을 자신보다 못한 이등시민으로 간주하고 있었고, 그런 여성들에 의해 자신들의 "남성"(=일등시민) 정체성이 모욕받는 것에 대한 강력한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 이 프레임의 타당성을 떠나서, 이러한 프레임이 (시사인의 "정의의 파수꾼들?"<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6764> 기사를 포함해서) 공유되는 까닭 중 하나는 '메갈리아 사냥-시사인 절독운동'으로 이어지는 흐름의 중심에 일종의 반지성주의적 집단행동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인물들은 (나무위키의 관련 게시물로 대변되는) 자신들의 고유한 '팩트덩어리'를 창출·공유한 뒤, 그와 배치되는 자료나 반대 논리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그건 틀려"라는 판단을 내린다. 그들은 자신의 반대자가 "잘 모르고 섣불리 판단하거나" "편향된 자료만을 봤다거나" "그냥 비이성적"이라는 결론으로 너무나 쉽게 도달한다. 심지어 상대방이 그렇게 주장하는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자료를 축적한 전문가인 경우에도 말이다. 서민 교수에게 “무지한 대중 속 나 혼자 깨어 있다는 생각은 제가 대학 1학년 때나 갖던 생각입니다. 부디 철 좀 드시길”이라고 '충고'한 학생과 같은 패턴으로 말하는 이들은 지금의 흐름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들은 정작 자기 자신의 판단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선 충분히 엄격하게 묻지 않는다.

냉정히 말해 이들이 기대는 나무위키 자료나, 커뮤니티의 게시물 모두 유사한 선입견을 공유한 이들의 동어반복적 의사소통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바로 그러한 의사소통을 통해 도달한 결론이 한국의 전문가/'지식인'/언론기사 모두의 견해보다 더 올바르다는 믿음을 확고하게 견지한다(http://h2.khan.co.kr/201609011011001 참고. 이 글에서 인용한 “독자 기고문 >>>국민일보>>>조중동 >>>>>>> ///넘사벽/// >>>>>>>>>>>> 한경오석희”와 같은 말은 "언론 믿지마 일베 믿어"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종종 자신들이 "기득권"과 대항해 정의를 관철시키는 '집단지성'이라는, 1년쯤 뒤 앞에서 읽어주면 부끄러워할 만한 유사-음모론적인 자기평가도 망설임없이 등장한다. "메갈리아=혐오사이트, 따라서 메갈리아 지지=혐오 찬성"이라는 (실제로 자료를 파고 들어가 보면 정당화되기 힘든) 그들의 주장이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는 건 그것이 그냥 별 설득력이 없는 줄거리이기 때문이라는 아주 단순한 가능성을 그들은 좀처럼 떠올려보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메갈리아 사냥-시사인 절독 운동에 참여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적어도 이 케이스에 관해서는 단순히 비합리성만이 아니라 독특한 형태의 반지성주의적 집단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이들은 스스로의 합리성과 자료분석능력을 실제보다 매우 과대평가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언행에 일종의 도덕적 정당성까지도 부여한다(마치 자신들이 일베와 메갈을 필두로 한 타락과 방종으로부터 이 사회를 수호하려는 십자군인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러한 정신상태가 형성되었는지는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연구겠지만--물론 우리는 특히 오유와 같은 몇몇 커뮤니티의 사용자들이 스스로를 이 사회의 악으로부터 청결함을 유지하는 "개념사이트"의 구성원이라 믿어왔다는 걸 기억해볼 수 있다--내가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얻은 개인적인 깨달음 중 하나는 스스로를 진보적이라 간주하든 보수적이라 간주하든 최소한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갖춘, 혹은 그러한 훈련을 받은 사람의 수가 우리가 믿어온 것보다 현저하게 적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리고 다음의 두 케이스는 "착한 한국남성 전체를 혐오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아주 약간의 가슴쓰라림을 안겨줄 것 같다--그들이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말이다.

3. 국민대·고려대·서울대·경희대 등에 이어 서강대에서도 남학생들의 단톡방에 여성혐오적 발언이 나왔다는 여성신문 기사. <http://www.womennews.co.kr/news/97211>

4. 강남역 살인사건 첫 공판에서 피의자가 자신의 행위동기를 '여성들로부터 피해를 받아온 것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설명했다는 여성신문 기사. <http://womennews.co.kr/news/97073>

이들에게 끝까지 단톡방은 일부의 사악한 소행이고,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혐오와 무관한 사건으로 남아있을까(내가 본 것 중 가장 흥미로운 반응은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혐오와 무관함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는 매우 확신에 찬 반응이었다...도대체 어떤 의미의 과학인가?!)? 나는 이들이 자기 자신이 속해있다고 간주하는 "한국 남성" 집단을 과연 어떻게 이해할지가 무척 궁금하다.

5. "착한 페미니즘으로 남녀평등을 외치다"는 구호를 걸고 "진짜 남녀평등을 위한 페미니즘 티셔츠"를 제작판매하겠다는 텀블벅 모금 페이지(현재 중단, 중단 사유로는 모금액 숫자를 참조) <https://tumblbug.com/ilovefeminism4>.

이 프로젝트 홍보문에는 "남혐(메갈리아/워마드) 반대"가 가장 크게 강조되어 있으며, "성평등주의"를 천명하는 걸 제외하면 딱히 여성주의적 견해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를 "남성혐오는 비판하지만 여성혐오에는 신경쓰지 않는" 최근의 반 메갈리아 흐름에 편승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텐데, "진짜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전유하고자 하는 이러한 노력은 역설적으로 여성주의가 얼마나 보편적인 언어가 되었는가를 잘 보여준다...여성주의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이 말을 일종의 당연한 선(善)으로 간주하게 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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