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포스의 ‘감정교육’: 『단순한 이야기』와 열정적 사랑의 문제

Critique 2016.03.26 19:24

이우창. 「도리포스의 '감정교육': 『단순한 이야기』와 열정적 사랑의 문제」 . ≪영미문학연구≫ 29 (2015): 141-64.


논문 pdf 형태로 보시거나 혹시라도 공식적인 지면에 인용하실 분은 링크를 참조해주시길 바란다(http://kiss.kstudy.com/journal/thesis_name.asp?tname=kiss2002&key=3390177).


첫 투고 결과물을 드디어 학술DB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글 자체는 소품격이지만, 그래도 한국 영문학계에서 루만을 써먹은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라는 데 작게나마 의미를 부여할 순 있겠다. 작은 글 하나를 글 답게 만들기 위해서 여러 분들께 큰 도움을 받았다. 투고-게재 과정에서 얻은 중요한 깨달음은 1) 글은 역시 고치는 만큼 좋아지긴 한다 2) 공식적인 심사과정을 포함해 글을 개선시킬 수 있는 시스템/네트워크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 특히 몇몇 선생님들의 큰 조력이 없었다면 이 정도 퀄리티도 절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을 제외하고도, 루만에 관해 친절히 설명해주신 J 선생님, 영어초록을 뜯어고쳐 주신 분들께 특히 감사드린다.


본문을 읽어보실 분은 접어둔 부분을 클릭하시길. 다만 한글 파일을 바로 웹브라우저로 옮기면서 이탤릭 표기를 포함해 원문의 표기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지점들이 있다. 혹시라도 필요하신 분은 위의 링크를 통해 직접 다운받으시고, 급하게 파일이 필요하신 분은 내게 따로 말씀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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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s 0 : Comments 6
  1. Sarantoya 2016.05.07 17:32 신고 Modify/Delete Reply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열정적 사랑이 낭만적 사랑으로 '진화'하는 과정이 곧 대상에서 주체로, 사랑의 수동성에서 능동성으로 주체의 내면을 완성해가는 과정이었군요. 젠더에 대한 부분이 나올까 내심 기대하고 읽어갔는데, 끝내 나오지 않아서 조금 아쉬었습니다.

    • BeGray 2016.05.08 14:45 신고 Modify/Delete

      오랜만에 뵙는군요.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죠?^^

      이 소설에 대한 비평사는 거의 젠더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고, 사실 제 글도 그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오늘날의 프레임에서 만들어진 젠더에 대한 관점을 18세기에 그대로 투사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 시대의 맥락에 맞춰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젠더를 다루는 통상적인, 거의 클리셰적인 비평을 굳이 넣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virtue와 passion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그 자체로 18세기 영국문학에서 젠더와 권력, 주체성이 묘사되는 방식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 루만의 책도 그렇지만 Barker-benfield의 Culture of Sensibility도 한번쯤 읽어보면 좋은 책이에요!

  2. Sarantoya 2016.05.08 23:46 신고 Modify/Delete Reply

    처음에는 제목을 잘 이해를 못했어요. <단순한 이야기> 속 인물과 그 인물의 사랑의 방식을 단순화하면, 도리포스=17세기의 이상적 사랑, 밀너=18세기의 열정적 사랑, 마틸다=19세기의 낭만적 사랑으로 도식화할 수 있을 것 같고, 마틸다의 사랑의 방식=도리포스의 사랑의 방식+밀너의 사랑의 방식이고, 이것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해가는 인물이 엘렌우드경이죠. 그런데 <단순한 이야기>에서 실제로는 마틸다까지는 가지 않고 밀너의 사랑의 방식이 전반부를 이루고, 도리포스의 사랑의 방식을 대리하는 인물로 엘렌우드경의 사랑의 방식이 후반부를 이루죠. 그 후반부에서 마틸다의 사랑의 방식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우창씨가 그것을 열정적 사랑에 관한 루만의 논의를 끌어다 19세기의 낭만적 사랑으로 연결한 것이죠.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연애대상에 위치한) 객관적 미덕을 주체가 선취함으로써 내면을 완성해간다는 행간의 논지가 이 논문의 틀을 잡아주는 것 같아요. 그렇게 읽었어요. 그래서 저는 과연 루만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을까? 이 점이 궁금하고 루만의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근대서구의 '진화' 과정에서 감성이 주체화의 장치(?)로 기능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구현하는 젠더로서 여성이 이제까지의 근대의 주체화에 관한 서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최근 인류학의 논의에 자극을 받아서 이 서사에 관해 조금 의문을 갖고 진지하게 풀어보려고 해요. 이 과정을 주체화가 아니라 탈주체화,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식으로 말하면 '사고의 식민화'로 뒤집어볼 수 있고, 그렇다면 이 속에서 젠더가 교착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이 페미니즘의 딜레마로 계속해서 표출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요.

    추천해주신 책은 읽어보겠습니다.

    • BeGray 2016.05.10 12:01 신고 Modify/Delete

      1.

      "<단순한 이야기> 속 인물과 그 인물의 사랑의 방식을 단순화하면, 도리포스=17세기의 이상적 사랑, 밀너=18세기의 열정적 사랑, 마틸다=19세기의 낭만적 사랑으로 도식화할 수 있을 것 같고, 마틸다의 사랑의 방식=도리포스의 사랑의 방식+밀너의 사랑의 방식이고, 이것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해가는 인물이 엘렌우드경"

      -> 제가 이 글에서 표현하려 했던 바와 상당히 다른 독해네요 ㅎㅎㅎ <단순한 이야기>는, 혹은 대부분의 소설은 <정신현상학>이 아니며 저 또한 그러한 '변증법적 전개'의 거대서사를 소설에 강제로 덧씌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마틸다는 이 소설에서 기능적으로 소비되는 인물이기에 "낭만적 사랑"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분명히 말해 저는 제 글에서 그런 주장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포스와 밀너가 각각 17세기, 18세기의 사랑을 대변한다기보다는, 양자가 공존하는 가운데 긴장과 균형이 나타나는 관계 자체를 18세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제가 서두에 밝혔듯 한 인물의 주체성 자체가 아니라 인물들 간의 관계양태로서 '사랑'을 논하는 것이 루만의 논지고 제가 참조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객관적 미덕을 주체가 선취함으로써 내면을 완성해간다"는 서사, 주체를 중심에 둔 서사는 오히려 제가 피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단순한 이야기>는 열정의 논리를 밀고 나갔을 때 18세기적 연애가 어떻게 붕괴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줍니다. 텍스트는 이걸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찾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아는 유일한 방법인 과거의 해결책으로 돌아가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합니다. 루만에 따르면 로맨스의 역사는 이 해결책을 "낭만적 사랑"을 발명하는 데서 찾았는데, 인치볼드의 텍스트는 그러한 '진화'의 경로를 따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에서 보면 상당히 이상한 작품이 된 거죠. 여튼 댓글 첫 문단에서 말씀해주신 해석은 제 글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기 때문에 혹시 시간이 나고 제 글이 그럴 가치가 있다면^^; 다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ㅎ


      2. "근대서구의 '진화' 과정에서 감성이 주체화의 장치(?)로 기능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구현하는 젠더로서 여성이 이제까지의 근대의 주체화에 관한 서사"
      -> 영문학에서는 80년대 중반에 이런 이야기가 많이 유행합니다(대표적으로 Nancy Armstrong의 _Desire and Domestic Fiction_). 하지만 90년대 초부터 17-18세기의 역사적 문맥들이 수용되면서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쉽게 하기 힘들게 되었죠(저라면 "근대적 주체"가 도대체 어떤 걸 의미하는 거냐부터 다시 물어보겠습니다만). 저는 여성주의-역사비평 쪽에서 그런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따로 따라가진 않았고요, 다만 제가 추천해드린 바커-벤필드만 봐도 상당히 점잖게 우회적으로 언급하긴 하지만 암스트롱의 테제를 비판합니다.

      저는 비베이로스의 작업에 대해 잘 모르고(블로그에서 카스트로 로 검색되어 나온 글을 한번씩 훑어보았지만, 퍼스펙티브주의에 대한 간단한 설명 말고는 특별히 알 수 있는 게 없더군요), 따라서 근대의 주체화를 "탈주체화,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식으로 말하면 '사고의 식민화'"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히 어떤 작업을 뜻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우리가 통상적으로 "서구 근대"라고 부르는 대상에 대한 역사적 이해 역시 계속해서 복잡해져왔고, 이제는 과거처럼 그것을 매우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 정도겠습니다.

  3. 관제거사 2016.06.19 12:10 Modify/Delete Reply

    확인이 늦었네.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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