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매맞는 아이'를 위하여: <약체, 인문학>에 대한 반비판

Critique 2016. 3. 5. 13:06

*원래 이 글은 2015년 12월 27일에 쓰여졌다. 이걸 뒤늦게 블로그에 업로드하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는 내 비판대상을 딱히 공적 발언력을 갖지 않은 필자의 (갑자기 인기를 끈) facebook 게시물 정도로 생각했고, 그래서 굳이 내 긴 반론을 블로그에까지 올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블로그에 올리는 글에 페이스북 링크를 거는 걸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그러나 최근 다른 이유로 우파 저널리즘을 살펴보다가 해당 필자가 (이데올로기적 지향은 차치하고라도, 지적인 면에서 그다지 높은 평가를 내리지 않는) 우파 사회비평 웹진 리버티 포스트(Liberty Post, 많은 분들에게는 지금도 접속가능한 도메인 명[jyjy.kr]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예전의 이름 "자유주의"로 유명한)에 상당히 많은 기고를 하고 있으며, 그 글 또한 2015년 12월 28일에 게재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http://libertypost.kr/archives/3882). 나는 한국사회에 고등교육/연구과정 및 지식생산과정에 대한 충분히 수준높은 담론이 거의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있으며, 그 점에서 필자의 아마추어리즘을 인격적으로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단지 그처럼 단순한 학문관이 이제부터는 점차 극복되어야 하며 그것이 한국 연구자들의 주요한 과제 중 일부라고 믿는다--특히 공적인 발언의 장에서는 말이다. 이에 따라 당시의 글을 옮겨온다. 몇몇 문장 및 단어는 수정했다.






또래보다 지적으로 조숙한, 혹은 자신이 그러하다고 믿는 학생이 주변의 지적 환경에 불만을 갖고 자신의 불만을 다소 거친 일반론으로 만드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나 자신 또한 그랬기에 (아마 앞으로도 그런 우를 범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기에) 굳이 그런 글을 본다고 해서 특별히 신경쓰지는 않는다. 거기에 전공자 입장에서 현재 한국 대학의 인문학 교육에 갖는 아쉬움이 남들보다 적은 것도 아니고, "까일만 하지"라고 생각하는 지점도 여럿 있다. 여튼 어느 페이스북 친구분께서 링크하신 이 글도 한번 훑어보고 그런 글들 중 하나라고 보고 넘기려 했는데, 의외의 분들이 긍정적으로 호응해 주셔서 짧게 코멘트를 단다.



1.


나는 필자가 어떤 수업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의 글을 바탕으로 토론 분위기를 유추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필자의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교육현장에 잠시 안타까움을. 더불어 자신이 속한 상황의 역사적 문맥에 관해 전혀 교육받지 못한 필자에게도 위로를.


2.


간략히 말해 필자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해 잘못된 결론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현대 학문의 분업과 전문화 및 사회의 복잡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함께, 일부분 그로부터 비롯되는 전도된 형태의 인문학 물신화가 있다. 인문학 물신숭배의 한 가지 패턴이 "인문학이면 뭐든지 해결이야!"라면, 반대편에는 "인문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게 이렇게 많다니, 인문학은 망했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거처하는데, 양자는 사실 만능학으로서의 인문학이라는 동일한 전제, 일종의 신비화된 개념에서 출발한다. 이 글은 후자에 속한다.


3.


이 글의 비판(?)이 무의미함을 밝히는 건 어렵지 않다. 필자가 인문학 혹은 인문학도들의 약점이라고 비난하는 것들을 똑같이 다른 학문분과에 적용해보면 된다. 2번부터 8번까지의 생생한 비난은 사실 인문학(이라고 불리는 서로 다른 영역의) 전공자들만이 아니라 필자와 같은 방법론에 기초하지 않은 모든 학문분과 전공학생들에게 해당될 수 있다. 통계 자료를 이용할 줄 모른다고? 나는 통계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는데 동의할 수 있지만, 통계적 자료를 유의미하게 활용하지 않는 방법론에 입각한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른다고 비난할 생각은 없다. 마찬가지로 다른 학문분과에 속한 사람들이 인문학에서 전문적으로 다루는 텍스트에 대해 조야한 견해를 보여주는 경우는 잦지만, 그걸 그 학문의 잘못이라고 말한다면 공정하지 않을 것이다.


뒤집어 말해볼까? 나는 인간의 언어적/문화적 산물에 대한 수사적 분석과 비판, 문헌학접 접근이 사회의 갖가지 의사소통에서 매우 필수적인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걸 경제학을 비롯해 다른 전공자가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고 해당 학문분과를 탓하지 않는다("이데올로기 형성과정"이 "자본의 논리"보다 덜 보편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거다). 그건 그 사람들이 훈련받은 전문영역이 아니니까. '인문학'은, 그 개별 연구자들의 역량과 별도로, 20세기 중반 이후 엄청난 속도로 전문화되어 왔고 지금도 그러는 중이다--다른 모든 학문이 그러하듯. 그중에서 통계학을 능숙하게 활용하(기 시작하)는 영역도 있고 아닌 영역도 있는데, 그건 해당 분과에서 연구하는 과제의 성격에 따라 결정되는 것 뿐이다.


고등지식생산과정으로서의 학문의 총합체는 지금 이 순간도 엄청나게 확장하고 있고, 기존의 학문분과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분업 및 전문화로 대응한다--인문학은 그중 특정한 지점을 나름대로 유의미하게 담당한다. 그 변화과정이 모두 완벽하게 효율적인 건 아니고 비판적으로 성찰할 지점 역시 있지만, 필자의 주장은 그 성찰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의 사고에는 애초에 지식의 발전과 분화, 전문화같은 지식 및 학문의 역사적 이해 자체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이건 필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물론 자신이 뭘 모르는지도 모르면서 과감하게 이야기하는 태도는 문제겠지만) 현대 지식의 역사에 대한 연구 및 교육을 간략한 수준에서조차도 실천하지 못하는 대학의 문제이긴 하다.


4.


필자의 주장에서 심각한 문제를 하나 더 꼽는다면, 그는 은밀하게 "세상의 논쟁에서 쓸모있는 논리"를 다루는 유일한 방법으로 자신이 익숙한 방법론 및 논의방식을 제시한다. 마찬가지로 틀렸다. 비록 한국의 엉망진창인 대중적 공론장에서 황당한 사례가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있지만, 사회적 이슈들은 해당 이슈에 보다 적합한 서로 다른 접근방식에서 접근하는 게 맞다. 현재 한국은 경제학적인 시선(처럼 보이는 것들)이 과도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사실은 이것 역시 역사적으로 특수한 현상일 뿐이다. 예를 들어 필자는 교과서 국정화 과정에서 시장자유주의나 사상의 자유와 같은 일반론이 성행하고 역사학계의 비중이 작았다는 (사실인지 의심스러운) 해석을 하는데, 일단 시장자유주의/사상의 자유가 고전적인 인문학적 주제이며 국정화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논외로 하고(그는 "시장메커니즘"을 내세운 수사적 작동과 실제의 시장메커니즘을 구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상황이 발생한 건 현재 한국 대중에게 역사학계의 논의를 따라가 소화할 역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밀양 송전탑처럼 공적 사업과 시민의 재산권이 충돌하는 경우를 떠올려보자. 그것의 사업효과를 경제적으로 계산하는 담론은 필연적으로 개인의 재산권 혹은 공동체적인 삶과 같은 가치와 부닥치게 된다(개인의 재산권에 대한 법적, 철학적, 사회적 기초와 같은 주제는 통계로는 지극히 제한적인 접근만 가능하다; 이 지점은 경제학적 방법론의 범위 바깥에 있다). 필연적으로 이 주제는 경영, 행정, 법과 같이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공적 권력의 작동으로 해결되는데, 그 과정에서 공적 주체는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여러 가지 의미망들을 참조한다. 인문이든, 경제든, 법이든 이와 같은 사회문제의 해결에서는 분업-전문화에 맞춰 작동하며, 우리가 문제의 정상적인 해결이라고 부르는 과정에서 어느 하나라도 누락되었을 때 국가/사회/시장은 그 반작용에 따른 충격을 감내해야 한다.


현대의 의사결정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대체로 단일한 방법론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필자는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세상의 복잡함을 깨달았다는 식으로 말하는데(나는 학부생들의 문학페이퍼에 첨삭할 때마다 "텍스트를 조금 더 복잡하게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라는 코멘트를 질리도록 단다), 그의 주장에서 내비치는 태도는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지나치게 단순하다. "사회적 논쟁"에서 인문학의 역할은 경제학만큼이나 제한적이면서도 필수적이다. "잘 모르면 숟가락을 얻지 말라"라니, 그 멘트를 충실히 실천하면 인문학만이 아니라 모든 학문영역은 사회적 주제를 다루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은 지식의 엄밀함을 흉내내지만 실제로는 조금 교묘한 버전의 반지성주의에 불과하다.



5.


필자의 주장에 포함된 여러 치명적인 오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상식적인 대화수준으로 돌아오자. 그의 불만을 좀 더 합리적으로 풀어본다면, 그의 비판 지점은 인문학이라기보다는 제대로 된 시민교육 부재라고 보는 것이 맞다(이때 나는 시민교육을 사회의 제반 문제를 일반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적인 역량을 길러주는 기초 정도로 정의한다). 한국의 대학은 시민교육이나 교양교육에 대한 인식을 대체로 결여하고 있으며, 이는 교양의 상당수를 책임지는 인문학 전공자들 역시 슬프지만 예외가 아니다. 필자의 분노는 인문학도들이 아니라 제대로 된 시민교육과정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고민조차 결여한 한국의 대학 및 교육자집단에 돌아가는 게 맞다. 나는 이 글에 쏟아지는 호응 역시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대학의 인문학이 갖는 문제나 개선책이 논의될 필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 글의 접근방식은 전혀 유효하지 않다. 학문에 대한 신비화된 태도, 현대 지식과 대학의 발전에 대한 역사적 이해의 결여, 지나치게 단순한 사회이해모델에 기초해서--이 글은 세 가지를 다 보여준다--인문학을 두들겨봐야 나오는 결론은 "그러니까 인문학이 잘못했네" "책을 더 열심히 읽어라"라는 식의 무의미한 말 아니겠나.


P.S. 충분한 독서량의 결여는 학부의 인문학 전공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대학생에게 해당되며, 나아가 (엘리트 관료들이나 유수의 기업인들을 포함한) 한국인 대다수 집단이 공유하는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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