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17일 기사 코멘트: 대입 불평등 / 학교 야구점퍼("과잠")

Comment 2016. 3. 17. 22:37

1. <‘금수저 고교’ 서울대 독식 더 심해졌다>,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735362.html


주요 인용: (이하 내용은 ppss에 편집 후 게재되었다. 링크는 http://ppss.kr/archives/76636 참조)


"‘2013~2016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현황(최종 등록자 기준)’ 자료를 보면, 특목고(과학고·영재학교·외국어고·국제고)와 자사고(전국단위·광역단위 포함) 비중이 2013학년도 32.9%에서 2016학년도 40.9%로 늘었다. 일반고(자율형공립고 포함) 비중은 같은 기간 60.3%에서 51.9%로 줄었다. 예술체육고·특성화고 등 기타 고교가 7.2%였다. ‘사교육 특구’로 불리며 특목고·자사고 못지않은 입시 실적을 내온 강남 3구 일반고의 비중은 같은 기간 9.1%에서 8.1%로, 다른 일반고에 견줘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다. 수시모집에서 강남 3구 일반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6.5%에서 6.7%로 소폭 늘었다. [...] 서울 지역만 놓고 보면 특목고(32.3%)와 자사고(22.2%), 강남 3구 일반고(21.0%) 출신 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75.5%에 달했다.

[...]

전문가들은 학생부 종합전형이 입시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면서 이런 흐름이 더 가속화되고 있다고 본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기초교육학부)는 “교내대회, 독서, 동아리 등 비교과 활동을 비중 있게 평가하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문화자본의 차이가 반영돼 계층적인 쏠림을 강화할 수 있다”며 “환경적인 요인에 따라 학생의 잠재력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할당제 도입 등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하 나의 코멘트.


이 기사에서 다루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세 가지 요소를 짚을 수 있다.


1) 2000년대 초중반부터 '수능 한 방'에 의존하는 평가시스템의 불합리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후 내신 및 비교과를 포함해 고등학교 과정의 삶을 다면적으로 평가하는 수시전형 입학생 비중이 엄청나게 늘었다. 서울대의 경우 10년 전까지 여전히 입시의 중심이 정시였다면, 지금은 수시에서 3/4 가까운 인원이 들어오고 정시는 훨씬 마이너한 입구가 되었다.


2) 학생부 및 각종 비교과활동은 단순히 부모의 경제력 자체보다는 그러한 활동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환경 및 네트워크의 유무에 압도적으로 의존한다. 쉽게 말해 아무리 뛰어난 학생이라도 실험실이 없으면 실험논문을 쓸 수 없고, 아무리 평범한 학생이라도 (예를 들어 모 국제고처럼) 되든 안되든 해당 분야와 연관있는 논문 수십 쪽 짜리를 쓰도록 하는 과정 하에 있다면 산출물을 뽑아낼 수 있다. 굳이 학부모의 인맥과 경제력을 직접적으로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런 기반/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는 곳과 아닌 곳에서 학생 실적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3) 결정적인 요소로, 한국 중등교육 과정에서 비교과/학생부 활동을 지원하는 기반이 대학 입시평가가 다면화하는 추세를 따라갈 만큼 균등하게 발전하지 못했다. 특목고와 자사고의 강점은 단지 똑똑한 자원 및 경제력이 집중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상위권 대학 입시과정의 변화에 맞춘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예컨대 모 외고는 영문과 수시면접 준비를 위해 교내 동아리를 따로 만들어 진학희망자들을 모아 상대적으로 최적화된 입시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한다(내가 졸업한 지역의 일반 인문계고가 그런 시스템을 지원할 수 있을까? 시스템 구축의 측면에서 그곳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대체로 특목고/자사고/강남3구 일반고의 인기 대학 점유율이 상승하는 과정을 보도하는 기사들은 두 가지 방향에 집중한다. 1) 이것을 불평등 심화의 일부로 간주하고 학부모의 경제력과 연동시킨다. 2) 입시 다면화가 가져온 폐해가 어떻게 일반 인문계 고등학생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드는지를 지적한다(이런 방향은 암묵적으로 다면화된 평가 대신 수능 한 방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던 시대로 돌아가자는 시선을 깔고 있다). 이것들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위에서 언급한 세 번째 항목의 문제를 짚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대입 결과의 불평등은 전국의 중등교육환경이 균질하게 발전하지 못한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의 교육정책가들은 대학 입시 전형이 다면화하도록 풀어주는 과정에서 전국 중등교육환경이 그에 맞춰 발전하지 않는 한 현재와 같은 불평등 심화가 필연적으로 나타나리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혹은 이를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한겨레의 기사보도에서는 쏙 빠져 있지만, 중등교육과정은 학생-학부모-사교육 못지않게 학교-교사들이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문제는 입시 과정이 바뀌는 흐름에 따라갈 만큼 중등학교 조직방식 및 교사들의 역량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충분히 유효하게 이루어졌는가다.


학교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나는 지금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사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10여 년 전과 비교해서 실질적으로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잘 체감하지 못하겠다(교사를 하고 있는 친구들의 경우에도, 나는 그 친구들이 정말 10년 전보다 합리화된 시스템에서 일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전체 교육기관이 입시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시점에서, 당연히 승자는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해 그 변화에 먼저 적응한 일부 교육기관 및 그 교육기관을 이용하는 소수의 (자본을 갖춘) 학생들이다. 


결론적으로, 대입 불평등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국적인 중등교육의 불균등발전, 혹은 좀 더 정직한 표현으로 저발전 상태를 반드시 다룰 필요가 있다. 이걸 다루지 않고 단순히 "특기자 전형은 돈 없는 학생에게 불리하니 수능 한 방으로 돌아가자"식으로 주장한다면--나는 중등교육시스템이 개선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입시 다면화 정도를 낮출 수는 있으리라고 생각한다--우리의 교육은 언제까지나 낮은 효율을 내는 과정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2. <나 이런 사람이야… 출신高까지 새긴 학교 점퍼: 대학교 점퍼 ‘계급 vs 개성’ 논란>, 서울신문.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code=seoul&id=20160316010016


이하 인용 및 코멘트.


"서울 시내 한 점퍼 제작업체 관계자는 15일 “명문대생은 대체로 자기가 다니는 학교의 상징과 학교명을 등쪽에 크고 선명하게 새긴다”며 “반면 지방대나 전문대의 경우는 학교 이름을 영어 필기체나 영문 이니셜로 바꿔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작게 쓴다”고 말했다. / 지방대라도 소위 ‘잘나가는 학과’는 전공명을 크게 부착한다. 여러 학과 중 광고학과가 유명한 수도권 대학의 재학생 이모(23)씨는 “보란 듯이 점퍼에 ‘광고학과’라고 박고 다니는 애들을 만나면 보기 싫다는 생각도 들지만 조금은 주눅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위의 인용만 봐도 알 수 있듯(비슷한 이야기가 오찬호 선생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 나온다), 이것은 어떠한 사회적 위계와도 무관한 '단순한 기호품'으로서의 "통상적인 패션"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러한 믿음으로 자기 자신을 손쉽게 기만하는 사람일수록 이 위계질서의 상층부가 제공하는 심리적 안정감에 어떠한 저항 없이 투항하는 영혼일 확률이 높다.


이게 학벌의 (과시라는 말에 불편함을 느끼는 분을 위해 순화하자면) '전시'(display)인 건 부연할 필요가 없다. 끝에서 두 번째 나오는 모 사회학과 교수 및 연구원의 코멘트는 무시해도 되는 수준. 서울 쪽 지하철만 좀 돌아다녀도 "과잠" 입은 학생들을 수시로 마주칠 수 있고, 주로 학교에서만 입으니까 내부 결속, 소속감의 표현이라는 분석은 애초에 현상 관찰부터 제대로 안 한 지적으로 게으른 이야기다. 이런 코멘트에 대한 반론은 다음 두 가지 질문으로 충분하다:

 1) 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여러 집단 중에서 학벌이라는 사회적 신분과 연관되어 있는 고등학교-대학교를 그 대상으로 선택하게 되었는가?

 2) 소속감 혹은 결속을 강화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 방식 중에서, 왜 하필이면 외부적 노출이 명확한 형태를 채택하게 되었는가?


사태는 명확하다. 2000년대 후반부터 대학생 집단은 단순히 대학이라기보다는 학벌 자체를 자신의 정체성과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이것을 내적으로 품는 대신 사회적으로 전시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이중 전자는 사실 어느 시점부터 한국사회에 상수나 다름없는 요소였다면--솔직히 말해 이 기사의 멍청한 두 인터뷰이를 포함해서 한국인들 중에 학벌에 대한 의식이 없는 사람이 몇이나 있나?--후자, 요컨대 학벌의 사회적 전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것이야말로 역사적 분석을 요구하는 물음이다. 한편으로는 이걸 신자유주의 체제 이래의 과잉경쟁으로 풀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이 과정을 역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선 우리가 '대학생'이라는 집단에 부여하는 의미가 어떻게 바뀌는가를 추적해야 한다고 본다.


*이 점퍼가 "개성"의 표현이란 주장은 단어의 의미조차도 알지 못하고 사용하는 헛소리다. 애초에 individuality는 본인이 학벌과 같은 외적 준거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자의식을 기반으로 성립하며, 이러한 정체성의 표현은 기본적으로 외부에서 주어진 집단적 정체성, 예컨대 국적, 민족, 지역, 인종, 성차와 같은 카테고리를 거부하는 것이다--정확히 말해 개성이 강한 성향일수록 학교 점퍼에서 학교 마크 따위를 떼어 쓰레기통에 쳐넣고 싶어할 것이며, 그런 점에서 디자인조차도 거기서 거기인 학교 점퍼의 유행은 개성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의 부재 혹은 소멸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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