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단상들.

Comment 2016. 2. 14. 04:39
토드 헤인즈(Todd Haynes)가 감독한 <캐롤>(Carol)을 보았다. 보고 나서 처음으로 든 생각은 "이동진은 도대체 뭘 본거야!"(...) 디테일한 지점까지 섬세한 손길로 매만진 잘 만든 영화라는 건 동의한다. 그러나 내게 그만큼 인상깊은 영화였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내가 본 영화가 별로 없어서 마땅히 비교할 걸 대기 힘든데, 억지로 말하자면 나는 <브로크백 마운틴>과 같은 걸 좀 더 좋아한다). 여튼 잡다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나열해본다.

1. 확실히 <캐롤>은 "1950년대 미국의 동성애"를 그려내는 영화가 끌어올 수 있는 긴장의 최대치에 비해 아마도 의도적으로 더 적은 긴장만을 유발한다. 50년대 미국사회라는 배경은 사실상 영화의 핵심적인 갈등지점이 두 사람의 사랑과 이것을 억압하는 사회적 장치들 사이에 놓이도록 정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인" 영화일수록 양자의 모순 혹은 충돌을 강조하는 방향에 이끌리기 쉽다면, <캐롤>의 플롯은 로맨스와 사회적 억압의 충돌을 충분히 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캐롤은 어쨌든 딸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권리를 획득한 것처럼 암시되며, 테레즈는 사실 이 로맨스를 통해 별다른 대가를 치르거나 하지 않는다(그녀를 유혹하는 남성들을 거절하는 게 그다지 큰 기회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분명 두 인물은 갈등과 고통을 겪지만 그 감정의 크기는 과장되기는커녕 절제되는 쪽에 가깝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반-멜로드라마적이다(총은 발사되지 않는다).

요컨대 <캐롤>에서 우리는 동성애의 정치적 성격을 강조하는 영화들이 일반적으로 채택하는 경로 대신 2010년대의 '웰메이드' 영화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는 세련된 절제의 감각을 좀 더 엿볼 수 있다. 나는 <캐롤> 비평의 핵심은 이 영화가 고통과 긴장의 과잉이 아닌 절제, 세련됨, 디테일함과 같은 것을 강조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굳이 정치적인 해석을 붙인다면, 2010년대 미국의 퀴어정치가 그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한 데 따른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캐롤>이 레즈비언적인 사랑보다는 보편적인 사랑을 좀 더 강조한다는 해석(이동진)이나 소재만 동성애지 "흔하디 흔한 로맨스"라는 입장(이택광)은, 분명 많은 반발을 불러오긴 하겠지만, 적어도 이러한 '절제'의 감각을 지각하기는 한다는 면에서 "<캐롤>은 명백한 레즈비언 영화다!"라고만 주장해버리는 목소리들보다는 유효한 면이 있다--문제는 감각적 판단에서라기보다는 충분히 유효한 해석적 서사를 구축할 수 있냐는 것이다.

2. 영화에서 1950년대는 마치 인형의 세계처럼 그려진다--대체로 예쁘고, '적절한' 범위 안에서 행동하고, 주어진 역할에 맞춰 행동하는 인물들이 세계 말이다; 테레즈가 캐롤을 만나기 전까지 일했던 인형과 (자동으로 움직이는) 장난감의 세계는 그 자체로 1950년대 미국사회를 가리키는 기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1950년대가 인형의 세계처럼 표상된다면, 그 세계에 살고 있는 캐롤과 테레즈 자신들은 인형이 아닐 수 있는가? 적어도 캐롤은, 물론 케이트 블란쳇의 뛰어난 연기가 이를 잘 커버하지만, 그 자체로 비관습적인 성격의 인물은 아닌 것 같다. 단지 그 방향이 이성애중심적인 사회적 규범을 거스르는 것일 뿐, 그녀 또한 기본적으로 상층 부르주아의 온몸을 휘감는 갖가지 스타일로 구성된 인물이지 않은가?

역으로 <캐롤>에서 가장 파악하기 힘든 것은 테레즈 쪽이다. 물론 우리는 테레즈가 캐롤을 처음 본 순간부터 이끌렸으며 자신의 이끌림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따라서 나는 테레즈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는 이동진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상태와 어떤 선택지에 맞춰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갈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같지 않으며, 테레즈의 경우 스스로의 성향을 인지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그 성향에 맞춰 재구성하기를 망설였다는 쪽이 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정작 카메라가 여러 차례에 걸쳐 테레즈의 시선을 감상자들에게 공유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테레즈의 내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그녀가 캐롤에게 품는 사랑의 성격 또한 구체적인 지점까지 풀어내기는 어렵다. 그 모든 작고 섬세한 행위들에는 늘 망설임이 깃들어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나는 능숙하고 알 거 다 아는 캐롤이 순진하고 혼란스러운 테레즈를 이끈다는, 권력관계 상에서 전자의 우위를 전제하는 해석에는 거리를 두고 싶다. 그 모든 조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캐롤이 아니라 테레즈다. 캐롤에 대해서는 해석상의 이견이 나올 일이 별로 없지만 테레즈는 해석이 분분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부분적으로 영화가 테레즈의 내면을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는 공간처럼 그리기 때문이다.

3. 내게 시각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아직 연인이 되지 않은 두 사람의 첫 드라이브에서 터널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인물, 유리창, 터널의 레이어가 겹치고 뒤바뀌고 교차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청각적인 차원에서도 이렇게 상이한 레이어들이 공존하는 구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컨대 다소 불안한 듯한 인상을 주는 배경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캐롤이 음악을 트는데, 통상적인 경우 이때 음악이 자연스럽게 배경음악을 이어받아 하나의 단일한 음향적 레이어를 형성하겠지만, 이 장면에서는 배경음악과 차 오디오의 음악이 병존하면서 조화라기보다는 일종의 불협화음에 가까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음악에 집중할 수 없는 채 계속 이질적인 것들의 공존을, 나아가 무언가 '바깥'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모티프에 주목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가장 기저에 깔린 깊은 감정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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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이상 2016.02.14 15:14 신고 Modify/Delete Reply

    이동진 씨의 라이브톡 전문을 보면 '동성애라는 소재 그 자체가 중요한 영화가 있고 아닌 영화가 있는데 캐롤은 후자에 속한다.'고 나와있죠. 이 발언 자체에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고 보지만 아무리 봐도 '잘못된 발언'이라고는 볼 수가 없었는데 말이죠. SNS에서 나름대로 세련된 인권의식을 뽐내는 분들에게 평소에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는 있지만 이따금씩 그 윤리를 어떤 '강박증'처럼 활용하려는 모양새는 참 보기가 불편하더군요. 이동진의 평소 스탠스에 저 역시도 비판적이었고 이번에 캐롤에 대한 평도 '굳이 동성애라는 소재에 무게가 있느냐, 없느냐?'를 나눌 이유가 있는가?'는 의문점은 들었지만 '동성애에 무지하다, 편협하다'는 비판에 직면할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뭐랄까? 그냥 '잘못의 경중을 따지는 것'에 거부반응들이 너무 심한 것 같아요. 그냥 좀 씁쓸했습니다.

    그나저나 제가 평소 즐겨 읽는 글쟁이인 이택광씨는 왜 뒷북을 저렇게...이동진씨에 비해 화제도 안 되는 것 같은데 어찌어찌 begray님 귀에까지 들어갔나보네요. ;;

  2. 2016.02.26 07:10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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