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군주론>.

Reading 2016. 1. 16. 03:20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군주국에 대하여)>. 곽차섭 역주. 도서출판 길, 2015. Trans. of _Il Principe_ by Niccolò Machiavelli, ed. by Mario Martelli, 2006.

 

수유 세미나에서 잠시 쉬어가는 주로 <군주론>을 다시 읽었다. <논고>를 읽기 전에 (그러나 한국어 번역이 존재하지 않는 <전쟁의 기술>을 포함해 그의 상을 그려내기 위해 읽어야 할 저술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마키아벨리에 관해 무언가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럽지만, <군주론>에서 보았던 걸 기억하기 위한 용도로나마 짤막한 노트를 남긴다.

 

먼저 마키아벨리가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를 위해 쓴 헌정사에서 두 대목을 훑어보자.

 

첫째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보유물 중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위대한 인물의 행적에 대한 지식"(5)을 꼽는데, 여기에서 주목할 지점은 이 지식이 "현대의 일들에 대한 오랜 경험과 고대의 일들에 대한 끊임없는 독서[una lunga esperienzia delle cose moderne e una continua lezione delle antique]"라는 두 가지 수단을 통해 습득되었다는 사실이다. <군주론> 본문에 들어가면 곧바로 알 수 있듯 이 책은 기본적으로 군주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려 설명하고, 이는 일반원칙 혹은 교훈들로 제시된다. 추상적인 체계로 발전해나갈 동력을 잠재한 원칙들은 그러나 그 자체로는 풍성한 경험에서 도출된 것들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마키아벨리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겪은 동시대의 일과 고대의 독서를 통해 접한 사례들로 구성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고대의 시공간이 그 자체로 어떤 신성함 혹은 절대적 규범이 깃든 시공간이 아니라 마키아벨리의 '현대'와 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곳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곧 그가 열거하는 고대인들과 현대인들은 동일한 시공간에 속해 있으며, 단지 각자가 처한 구체적인 조건이 달랐을 뿐이다.

시공간의 균질함은 다시금 경험의 균질함으로 이어진다--현대인들이 고대인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면, 이는 양자의 경험이 근본적으로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의 사건은 초월적인 지평으로서의 신성함이나 독특함을 갖추지 못한 채 현대인의 지식을 증강기시키 위한 또 하나의 유용한 경험 혹은 사례로서 남을 뿐이다. 이는 6장에서 입법자-군주를 다루는 대목, 즉 모세, 키루스, 로물루스, 테세우스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잘 드러나는데, 마키아벨리는 이들이 분명 탁월한 모범임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현대의) 군주의 행위/태도를 설명하는 언어의 의미망 안으로 이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자신이 고대인들을 신적인 존재가 아닌 세속의 인간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키아벨리를 세속화라는 관점에서 다룬다면, 그가 탈도덕적인 정치언어를 처음으로 본격화한 인물 중 하나라는 것 못지않게 모든 시간을 세속의 세계, 인간=군주가 탁월함을 발휘해야 할 세계 안쪽에 배치시킨다는 사실을 짚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헌정사에서 이 세속의 세계, 바깥을 고려하지 않기에 단 하나 뿐이나 다름없는 세계를 두 가지 근본요소의 상호작용으로 그려낸다. 그것은 각각 "인민의 본성"[la natura de' populi]"군주의 본성"[quella(=la natura, 나의 덧붙임) de' principi]이다(7). 세속화된 세계, 그중에서도 정치적 세계의 작동이 기본적으로 인민과 군주라는 두 요소의 상호작용임을 이해할 수만 있어도 <군주론>의 요점을 파악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주지하다시피 마키아벨리의 세계는 비르투[virtù, /역량/탁월함, 이 단어의 번역에 있어서 지금 논의를 이어나가지는 않겠다. 그러나 어떤 역어를 선택하든 한국어 단어와 일대일 대응이 성립하지 않는 이 개념에 묵직한 주석이 붙어야 한다는 것만은 사실이다]와 운[fortuna]의 투쟁이기도 하지만, 포르투나는 너무나도 크기에 단지 때때로 스스로를 드러낼 뿐 합리화된 요소로 설정할 수 없는 개념이며 비르투는 군주라는 행위자에 부가된 속성이라는 점에서 나는 인민과 군주라는 두 항의 관계가 <군주론>의 핵심적인 요소임을 강조하고 싶다.

이 둘의 관계에서 주목할 점은, 방금 말했듯 <군주론>에서는 비르투가 오직 군주에게만 주어지는 속성이라는 사실이다. 마키아벨리는 적어도 이 텍스트에서는 전체로서의 인민은 물론 인민에 속하는 특정 계급, 예컨대 베네치아적 모델에서 덕을 담당하는 소수(the few)=귀족과 같은 집단에 특별히 비르투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군주(혹은 군주가 될 사적 인간들)만이 비르투를 가지고 있고 오직 그만이 행위자다. 인민은 어떤 면에서 농민 또는 군대가 마주해야 하는 자연환경처럼 주어진 조건 혹은 질료(materia)에 가깝다. 군주는 지형지물에 맞춰 전술을 짜되 그것을 활용하고 통제하는 사령관 혹은 농부와 같고, 그의 역량을 표현하는 단어가 바로 비르투다.

 

통상적으로 마키아벨리를 (그 자체로는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Francesco Guicciardini가 사용했다고 하는) 국가이성(raison d'etat) 개념의 원류로 보는 시선은--대표적으로 프리드리히 마이네케Friedrich Meinecke--마키아벨리의 텍스트에서 군주 또는 통치자가 점차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군주 개인의 인격적 이해관계가 아닌 비인격적인 '국가'의 이해관계에 합치되는 논리를 읽어내는데, 사실 이 논리의 반대 방향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이 진행되고 있다. 인민은 덕의 보유자가 아니며 따라서 인격적인, 도덕적인 판단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각자의 이해관계를 갖고 그렇기에 그 본성과 행동양식을 파악하고 예측가능하며 적절한 수단을 통해 그것을 개조할 수도 있는 비개인적인, 비인격적인 집단으로 표상된다. 요컨대 통치권력과 그 상관물로서의 피통치자=인민의 비인격화는 상호적으로 진행된다. 물론 이러한 논리에 함축된 탈도덕적 측면은 이후 비도덕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비난받는다. 넓게 본다면 통치와 인민의 비인격화는 근대세계의 진행과 함께 계속 전개되지만, 17세기에 홉스와 같이 통치와 피통치자를 비인격적인 이론체계로 연결시킨 이는 예외적이며, 로크와 스피노자 모두 정도의 차는 있으나 여전히 덕과 시민됨의 연결고리를 고수한다.

상업과 정치경제와 같은 문제의식이 본격화되는 18세기의 저자들, 몽테스키외, 루소, 스미스, 그리고 시에예스에게서는 통치자의 역할이 점차 약화되며 시민사회, 3계급과 같은 인민 개념의 변종들에 더 많은 무게가 실려가는 걸 볼 수 있다. 이때 중요한 차별점이 바로 인민과 '생산'의 연결이다. 마키아벨리는 물론이고, 앞서 언급한 17세기의 저자들에게 인민은 생산-재생산하는 존재, 사회의 기체substance라기보다는 여론으로서 심리적 주체에 가깝다. (물론 기본적인 경제적 생활은 보장해야겠지만) 마키아벨리와 홉스에게 중요한 것은 피통치자의 심리상태로서, 군주의 주요한 역할은 그것 혹은 그것의 집합체인 여론을 읽고 컨트롤하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18세기에는 인민이 심리적 주체에서 물질적 실체로 이행하는 것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 풍토에 따라 인민의 기질과 힘, 습성이 달라짐을 연구한 몽테스키외, 토지와 결합하여 일하고 생산하는 계급으로서 농민을 칭송하고 상업과 예술을 비판한 루소,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을 구별한 스미스, 그리고 "3신분은 모든 것이다"라고 선언한 시에예스까지 우리는 인민에게 부여되어 있던 덕 개념 자체가 생산성으로서의 성격을 띠어감을 본다. 토머스 페인과 같은 자연권의 옹호론자들도 암묵적으로 피통치자 집단이 생산적 계급으로서 미덕의 차원에서도 우월한 존재라는 명제를 부인하지 않는다. 물론 인민-생산-덕의 연결망이 완성되는 과정은 17세기 중반부터 영국의 정치언어를 형성해온 공화주의자들, 대표적으로 제임스 해링턴과 같은 이들이 만들어낸 관념의 계보를 무시할 수 없다; 예컨대 우리는 루소의 <코르시카 헌법 구상>에서 매우 해링턴주의적인 가부장-시민-토지-노동-지방자치 등의 의미연결망을 찾을 수 있다--다만 이를 지금 더 언급하지는 않겠다.

(*루소와 '마키아벨리적 계기'의 관계는 좀 더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루소의 정치철학은 마키아벨리와 마찬가지로 정부와 인민이라는 두 가지 요소에서 출발할 뿐만 아니라 전자가 제도를 통해 후자의 풍습을 다스리고 형성할 수 있음을 예컨대 <정치경제학> 같은 텍스트에서 분명히 말한다. 루소의 인민주권은 인민의 풍습/덕을 개량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두 인물의 저작은 함께 읽을 때 풍성해지는 지점이 많다)

인민-생산--권리를 모호하게 연결시키던 18세기 후반의 자연권 논변을 끝장낸 것은 (버크를 뺴놓으면 섭할 수 있겠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맬서스다. 어떤 면에서 덕과 권리라는 개념을 무력화시키고 인민을 탈도덕적인 "조절 기술"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맬서스는 마키아벨리로부터 진행된 통치-인민의 비인격화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는 조절권력으로서의 통치에 필요한 여러 테크닉들을 제시하긴 했으나 비인격화된 통치권력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당대 영국에서 행정의 힘을 선구적으로 깨우친 사람들은 어쨌든 맬서스주의자들이 아니라 벤담주의자들이었다), 통치자와 피통치자 모두에게서 인격적-도덕적 요소를 박탈하고 (흄부터 강조되어온) 이해관계를 통해 비인격화된 양자를 작동시키는 체계적인 이론을 만드는 몫은 벤담과 그의 지지자들에게 돌아간다.

 

 다시금 <군주론>으로 돌아오자. 1장부터 11장까지는 군주국의 종류 및 획득방식을 다루고 있는데, 공화국이냐 군주국이냐, 군주국이라면 세습 군주국이냐 신 군주국이냐, 신 군주국이면 원래 주어진 영토에 추가된 것이냐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영토냐, 완전히 새로운 영토일 경우 인민은 군주의 통치에 익숙한 존재인지 자유로운 공화국에 익숙한 존재인 거냐와 같이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져나가는 논리전개가 있는데, 어쨌든 이 때 핵심이 인민/피통치자의 속성에 달려있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3장부터 그러한 인민/피통치자를 다루고 제어하는 군주의 힘에 점차 초점이 두어지기 시작한다. 군주가 쉽사리 편하게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이 있고 그렇지 않은 조건이 있는데 후자로 갈수록 군주의 비르투는 더욱 다양하고 강력한 형태로 요구된다--안정된 세습군주국의 경우 군주에게 특별한 비르투가 요구되지 않지만, 직전까지 공화국으로 존재하던 나라가 전혀 낯선 인물에 의해 갑작스레 군주국으로 전환되었을 경우, 그러한 신군주는 막강한 비르투를 보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4장에서 주목할 지점은, 이때 군주의 역량이 단지 특정한 행위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체제의 형태와 같은 "제도"의 측면을 통해서도 작동한다는 것이다. 즉 인민들이 어떤 속성을 갖고 있으면, 군주는 그 속성에 적합할 뿐더러 최종적으로 자신의 목적에 따라 인민의 성격을 재형성할 정치제도를 선택해야만 한다(이것 자체가 군주의 비르투가 행사되는 한 가지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군주와 인민 사이에 제도라는 심급이 끼어든다: 군주는 제도를 통해 인민을 통치하고, 제도는 다시 인민의 성격을 바꾸며, 인민의 속성은 군주의 통치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6장에서 볼 수 있듯 가장 탁월한 군주들은 마주친 인민을 "스스로의 국가와 안전을 다지기 위해 도입치 않을 수 없는 새로운 제도와 방식[nuovi ordini e modi]"(71)을 도입한 입법자들이기도 한 것이다(이와 동시에 계속해서 강조되는 것이 바로 자립의 이상이다...오로지 자기 자신의 힘에만 의지해 살아남는 것이 마키아벨리적 군주의 이상적인 상이다).


 이어 12장부터 14장까지는 군대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14장부터 24까지는 신군주가 좇아 따라야 할 비르투/덕을 풀어 설명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그리고 그 덕은, 군사적 덕을 강조하는 데서 볼 수 있듯 남성적인 것으로 표상된다). 24은 군주들이 왜 지배권을 상실했는가를 이렇게 제시된 원칙들에 기반해 설명하며, 25장은 포르투나의 역할과 그것에 맞서고 나아가 (변화무쌍한 여성의 이미지로 등장하는) 포르투나를 굴복시키기 위해 군주의 (남성적) 비르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26장은 이탈리아 군주들을 향한 호소로 끝난다. 텍스트의 후반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역시 18장에서 "[인간에게 적합한] 법을 통한 싸움과 [짐승에게 적합한] 힘으로 하는 싸움"(combattere, l'uno con le legge, l'altro con la forza, 219)을 수행해야 하기에 "반은 짐승이고 반은 인간"(uno mezzo bestia e mezzo omo, 221)이 되어야 하는 군주가 갖춰야 할 비르투의 성격을 제시하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짐승의 이미지가 다시금 "여우와 사자"(la golpe e il lione, 221)로 나뉘는 데서 볼 수 있듯 힘을 통한 싸움 역시 단순히 물리적인 무력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마키아벨리는 사자보다는 여우의 미덕을 강조하는데, 여우의 미덕이란 한편으로는 자신이 맞닥트린 상황의 본질을 재빨리 파악하는 판단력과 함께 (사람들에게 올바른 덕목으로 여겨지는) "성품들을 갖추고 항상 그대로 준수한다면 해가 되며, 그것들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득이 된다는 것"(225)을 이해하는 분별력을 가리킨다.

 군주의 핵심적인 비르투로서의 분별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곧이어 이어지는 대목을 함께 읽어야 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손보다는 눈으로[piú alli occhi che alle mani] 판단하는 경우가 더 많다. 왜냐하면 보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미치지만, 느끼는 것은 소수에게만 미치기 때문이다. 소수만이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느끼며, 모두가 겉으로 드러나는 당신을 본다"(227, 번역 일부 수정). 우리는 이를 다른 방식으로 말해볼 수도 있다. 먼저 군주의 실제 역량/도덕이라는 차원이 있고, 사람들이 군주를 평가하는 도덕적 판단의 차원이 있다. 여기에 마키아벨리가 덧붙이는 것은, 진짜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행위/판단을 결정짓는 여론과 같은 영역이며, 도덕적 가치평가기준은 이 영역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만약 어떤 비도덕적인 행위가 도덕에 따르는 것보다 여론-효과의 차원에 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군주는 기꺼이 그 행위의 비도덕성을 감수해야 한다. 이때 마키아벨리의 요점은 단순히 필요에 따라 도덕을 무시하라는 흔해빠진 충고가 아니라, 물리적인 힘이나 도덕과 같은 요소들 자체보다 사람들의 행위/판단을 구성하는 심급이 존재한다는 것, 그 연장선상에서 진정으로 실천적이기 위해서는 이 심급의 작동방식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에 있다. 요컨대 군주의 비르투는 '여론의 과학'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우리가 17세기의 홉스를, 그리고 부분적으로 스피노자를 마키아벨리적 사고의 흐름에 놓을 수 있다면,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정치를 일종의 심리학적 게임으로 모델링하는 관점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홉스에게 있어 자연상태로부터 주권자와 공동체가 존재하는 시민사회로의 전환은 실제의 폭력이 아닌 서로의 폭력에 대한 고려로부터 출발하는 심리학적 게임의 결과물이다. 마키아벨리에게 타인의 행위/판단을 예측하는 유일한 주체가 군주였다면, 홉스에게서 심리 게임은 모든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위양식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홉스가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발상을 확장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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