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교수의 한일협상과정논평 비판: 지식인과 수사

Critique 2016. 1. 1. 17:54

28일 박유하 교수의 페이스북에 포스팅 한 건이 올라왔다(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56280397732205?pnref=story). 여러 가지 복잡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게시물인데, 중요한 대목을 먼저 뽑아보자.


"아무튼 결정된 이상, 이제 남은 일은 이런 결정이 얼마나 정당한지에 대해 검토하고, 뒤늦게라도 납득에 기반한 국민적합의에 이르는 일일 것이다. 위안부할머니들 "당사자"의 생각과 선택과는 별개로. [...]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이 필요하다. 좌우로 나뉘는 게 아니라 그저 합리적이면서 윤리적인 판단에 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반으로 갈려 대립하는 게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의 공통시각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실례를 무릅쓰고 그의 요지를 간략하게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결정은 됐고, 중요한 건 "정치적 입장을 떠나" "좌우로 나뉘는 게 아니라" "반으로 갈려 대립하는 게 아니라" "그저 합리적이면서 윤리적인" "'대다수 국민들'의 공통시각"을 만드는 거다. 모두 좋은 말들이지만 어느 하나 유효한 말은 없는 수사들의 나열 끝에는 결국 어떤 합의, 공통감각과 같은 것이 유일한 실체로서 남는다--정확히 말해 박 교수의 말에는 공통감각이야말로 "합리적이면서 윤리적인" 지평을 마련한다는 논리로 이끌려가는 정신이 엿보인다. 그런데 그 항에는 두 가지 조건이 따라붙는다. 


하나는 이 '공통시각'이 "납득에 기반한 국민적합의"란 것인데, 물론 기본적으로 박 교수의 글 자체가 의미가 불충분한 포스팅이란 사실을 감안해야겠지만, 우리는 맥락상 그가 이 "납득"을 위안부 피해자 보상에 관한 양국정부의 협상결과에 대한 납득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강하게 추론할 수 있다. "아무튼 결정된 이상"이라는 말에는 '이미 일은 결정되었으니 받아들이는 거 말고 다른 수가 있겠니'라고 말하고픈 속마음이 들어 있고, 이것이 곧바로 같은 문장의 "납득"에 따라붙는다.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뒤이어 나오는) "일본 우익"이 아닌 "대다수 일본국민들은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에 공감한다"는 문장은 협상결과에 승복하고 납득하는 것이 일본의 상식인들도 동의하는 바라는 판단으로 교묘하게 유도한다. 결정됐다는데, 좋은 일이라는데, 모두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일종의 "몰아가기"인 셈이다.


두번째, 박유하 교수가 스스로의 본심을 숨기지 못하고 표출한 크리티컬한 지점은 바로 "위안부할머니들 "당사자"의 생각과 선택과는 별개로"라는 대목이다. 양쪽 정부가 결정했고, 일본의 상식인들도 좋다고 하니, "대다수 국민들"만 합의하면 이 문제는 끝난다는 거다--위안부 할머니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이번 한국정부의 협상과정에서 가장 문제적인 지점 중 하나가 피해당사자들(박 교수는 "당사자"란 단어에 따옴표를 침으로써 당사자로서의 성격에 자신이 온전히 동의하고 있지 않음을 은밀하게 내비친다...""의 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포스팅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피소당한 상황인 박 교수가 그들에게 상당한 거리감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을 철저하게 배제시킨 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 교수는 오히려 그것을 내심 환영하고 있다. 그는 반쯤 공공연하게 위안부 할머니들을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대다수 국민들"의 집단으로부터 배제하고 있다--위안부 문제가 성범죄임을 감안한다면, 박유하 교수가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2차 가해라고까지 말할 소지가 있다.


지금까지 풀어낸 걸 다시 정리해보자. 양국 정부의 협상은 이미 결정된 것이고 (선량한) 일본인들도 좋아한다. 남은 것은 대다수 국민들이 납득하는 것 뿐이다. 국민 모두의 납득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각이 어떤지는 신경쓸 게 아니다.

... 비슷한 논리구조로 나는 다음과 같은 사고를 상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몰상식한 일은 없어야겠지만, 박유하 교수가 한국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한국국적을 박탈당하고 추방당했다고 가정하자. 한국 정부의 판결은 이미 결정된 것이고, 남은 것은 대다수 국민들이 납득하는 것 뿐이다. 국민 모두의 납득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박유하 교수 "당사자"의 생각과 선택은 별개로 하자. 후자가 말이 안 되는 정도는 정확히 전자가 말이 안 되는 것만큼이다. 누군가의 피해에 관한 공적인 의사결정과정에서 피해 당사자의 의견수렴과정이 중요하지 않은 '정당화'가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지금까지 박유하 교수의 연구자로서의 진정성을 의심한 적이 없고, 어쨌든 그가 현재의 사태에서 겪고 있을 심적 고통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설령 제 아무리 위안부 할머니들의 판단능력에 의혹을 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태를 저렇게 편의적으로 해석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물론 박유하 교수가 현재의 사태에 대해 남과 다른 판단을 내릴 수는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스스로의 합리와 윤리가 무엇에 기초하는지를 밝히는 데서 출발하는 대신 국가권력과 다수의 합의라는 '현실권력'에 기대는 것은 지극히 빈곤한 사유다. 그것은 "지식인"을 자청하는 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악의, 자멸적인 수사적 정당화 방식이다. 유감스럽지만 지금 박유하 교수는 연구자도, 지식인도 아니며 단지 레토릭으로 본심을 감추는 꾀밖에 남지 않은 이데올로그로 전락했다는 평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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