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로크, 스미스. [131005]

Comment 2014. 3. 18. 13:17

*2013년 10월 5일 페이스북


헤겔과 로크. 한 측은 최종적으로 사민주의적 국가, 다른 한 측은 자유민주주의적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중추가 되었다(물론 헤겔로부터 사민주의로 이르는 길은 수많은 사상가들로 범벅되어있다). 로크의 경우에는 진즉에 느꼈지만, 헤겔을 읽으면서 확실히 그의 대다수의 진술은 오늘날에도 시대에 뒤쳐지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헤겔이 새롭다,라기 보다는 헤겔이 말했던 내용이 여전히 우리들의 사회에 아주 많이 통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로크가 그러하듯이. 오늘날 널리 퍼진 단순화된 설명에 따른다면 로크가 철저히 (경험론 전통에서 그러하듯) 개인의 심리로부터 시작하여 개인의 효용/자유를 최대한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조정장치로서, 즉 하나의 단순한 도구로서 정부의 역할을 말한다면, 헤겔의 역사철학에서는 "일반의지"로서 개별 인간의 목적을 끌어안되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실체로서 국가를 정의한다. 그러나 역사의 최대 아이러니는 로크적 기원으로부터 출발한 국가들과 헤겔적인 기원으로부터 출발한 국가들이 사실상 구별되지 않는, 마치 양과 염소가 구별되지 않는 밤과 같은 시대가 도래했다는 데 있다(가라타니가 자본=네이션=국가라고 부르는 집단이 그러하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그가 헤겔 전문가라는 걸 생각하면 이것도 퍽이나 아이러니컬하지만) 로크적인 자유-민주주의를 역사의 종착역으로 간주했다면, 오늘날 그러한 로크적 이념을 뿌리로 삼는 국가들 중 하나의 실체로서 국가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강조하지 않는 나라가 없다; 가라타니의 진술을 빌린다면 오늘날 모든 정상적인 국가는 그것들이 자기를 어떠한 수사로 지칭하든간에 사민주의적이지 않은 국가가 없다. 다시 말해 헤겔적인 국가와 로크적인 국가가 더 이상 구분되지 않게 되어버렸다는 것, 지극히 상이한 사상가들이 합치하는 지점이 생겼다는 사실이야말로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로부터 세계사의 종착지점을 말한다면 그것은 지적인 방기이다. 후쿠야마의 주장은 (거의 클리쉐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수많은 비판자들을 맞이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판자는 세계의 정세 그 자체다. 역사의 승리자로 언급되었던 체제는 오늘날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체제가 되어버렸고, 그 길이 어디로 향하든 오늘날의 세계가 지금까지와 동일한 형태로 남아있으리라는 전망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얄궂게도, 변증법적 역사철학이 효용을 폐기당한 시점에서 바로 그 논리가 가장 애호하던 형태로 세계가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90년대의 그 누구도 2000년부터 15년 정도가 지나는 시간동안 파국과 혁명과 같은 단어가 뉴스에 이렇게 자주 등장하리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다소 소극적인 태도로 말했던 홉스봄이 그나마 예외적인 케이스로 떠오른다). 다시금 헤겔과 로크로 돌아온다면, 무엇이 사실상 헤겔과 로크가 합일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는지는 여전히 쓸모있는 질문일 것이다. 동시에 지극히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두 논리가 사실상 어떤 점에서 일치하는지도. 이 지점에서 순수한 역사철학은 그 자체의 효용을 상실한다. 여기서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조금 다른 형태의 연구가 필요하다. 문헌학적인 견지에서 언급한다면, 한편으로 로크의 후계자이자 다른 한편으로 헤겔의 사회관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던 연결고리를 떠올릴 수 있다. 바로 아담 스미스가 삼각형의 한 꼭지점을 이룬다. 헤겔과 로크의 사이에 <도덕감정론>_Theory of Moral Sentiment_과 <국부론>_Wealth of Nations_, 유사하고 동시에 상호보완적인 두 텍스트가 자리하고 있다는 진술이 아주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스미스 자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스미스의 주장이 내포하는 기본적인 골격들을 뜯어내는 것,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혹은 어떻게 바뀔 것을 보여주었는지--를 탐구하는 작업은 조금 더 의미있겠지만.

아마도 내가 박사과정에서 18세기로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거기에 로크-흄-스미스로 이어지는 경험주의/스코틀랜드 계몽학파의 전통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19세기에 여전히 한쪽 다리를 걸치고 남아있다면 거기에 헤겔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20세기는 일종의 바깥으로서 여전히 중요하다. 20세기의 초입은, 그리고 다시금 돌아오고 있는 21세기의 초입은 두 전통이 어떻게 공통의 지반을 형성하고 또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

Trackbacks 0 : Comments 0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