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20 일기. 벌초.

Comment 2015. 9. 21. 01:15
올해도 벌초를 다녀왔다. 두부 같기도 벽돌 같기도 한 숫돌에 낫을 서걱서걱 갈아대면 검은 쇳물이 흘러나온다는 것을, 날붙이도 결국엔 소모품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직접 보았다. 날붙이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 몸에 배어 있는 나로서는 앉아서 쉼없이 솜씨있게 칼을 갈아대는 친척 어르신처럼 자연스러워지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옆에서 얼굴과 목을 가리도록 수건과 모자를 다듬어 썼다. 내 정글모는 옆에 통기처리가 되어 있어 한결 쓸만했다. 사소한 기술상의 발전이 힘든 순간에는 무척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문화culture는 경작이 아니라 수목의 제거에서부터 시작함을 깨달았다. 군대에서 '적'이 작전수행을 위해 극복해야 할 모든 대상이라면, 자연환경부터 그 적에 들어간다고 배웠던 때가 떠올랐다. 모터로 돌아가는 예초기의 칼날이 수풀을 썰어대고 그 죽은 풀때기를 산처럼 쌓아놓은 광경을(작년처럼 개구리 몸통이 반으로 잘린 장면은 다행히 보지 못했다), 수풀더미가 통채로 날아간 뒤 순간적으로 갈 곳을 잃은 흰 나비와 모기떼가 헤매는 광경을 보았다. 모기 떼는 사람을 덮치고, 사람은 기피제를 뿌린다. 모터소리 드높은 곳에서 노동요가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밖에 없음을, 기계가 기계를 돌리는 사람의 몸에도 (주로 좋지 않은)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을 알았다. 숙련도에 따른 예초기, 낫, 갈퀴의 삼분업 구조를 그려보았다--아직 한참 짬이 낮은 나는 힘과 체력만 있으면 되는 갈퀴질만을 할 수 있었다. 손을 다치지 않으면서 풀을 베어내기 위해 어떻게 낫질을 해야 하는가를 들었다. 들었다고 곧바로 잘 할 수 없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숙련된 어른들과 나의 차이는 현격했다. 가장 숙련된 이는 낫으로 손가락 두 마디만큼 굵은 나무줄기를 서걱서걱 깎아 베어냈다. 흉내를 내보았지만 나는 베어내기보다는 떄려 꺾어내는 쪽에 가까웠다.

멧돼지가 넘어오는 일을 막기 위해 제주로 쓰인 막걸리를 묘에 뿌려서는 안 된다는당부의 말이 몇 번이나 오갔다. 그래도 멧돼지는 땅을 파헤쳐놨고, 멧돼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사이즈가 있을 듯한 짐승이 제삿상으로 쓰는 묘석 위에 똥을 싸놓았다. 통로라고 짐작되는 곳에 굵은 나무몸통을 베어 쌓아놓았다. 톱질을 할 때 가볍게 밀고 당길 때 힘을 주라고 말을 들었다. 멧돼지는 바로 눈 앞 밖에 보지 못하며, 앞에 나무가 쌓여 있으면 벽이라고 생각해 그냥 다른 길로 돌아가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걷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산에 길이 뚫려있다는 것은 곧 그 길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의 노동이 축적되었음을 뜻한다. 어떤 곳은 가시나무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고, 어떤 곳은 덤불이, 어떤 곳은 대나무만치 단단하고 쉽게 꺾이지 않는 풀들이 빽빽하게 들어서고 있다. 1년에 한 두번 이 길을 지나야 하는 인간과 363-4일을 그곳에서 세를 불리는 풀들 사이의 전투가 벌어지는 떄가 벌초다. 강원도의 인적따위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비포장 도로로 들어와서도 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야 하는 곳에서 우리는 흔적만 남아있는 길을 다시 만들다시피 했다. 갈퀴 몸통을 몽둥이 삼아 길을 내려 굵은 풀을 때려봤다가 몸통만 휘었다. 적어도 낫질로 가슴께 위의 나뭇가지들을 쳐내는 데는 약간의 요령이 붙었다. 사실 나는 요령보다는 힘으로 하는 쪽에 좀 더 가깝다(그래서 낫보다는 차라리 정글도나 공병삽이 더 맞는 도구일 것이었다). 가시나무는 아주 잘 자라서 두꺼운 몸통을 자랑하는 나무가 되어버리며 거기에다가 군집을 이루기 때문에 악착같이 쳐내지 않으면 곧 손쓰기 어려워진다. 대나무 비슷하게 생겨먹은 풀은 어설프게 쳐내면 베인 부분이 죽창처럼 날카롭게 남는데, 사람들이 밟아 지나가다가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최대한 낮은 지점까지 베어내어야 한다. 어설프게 쳐내면 뾰족하고 날카로운 부분이 정강이를, 무릎께를 찔러댈 것이다. 산은 대체로 평지가 아니라 경사진 곳이기 때문에 힘주어 걷다보면 몸의 곳곳을 찔러대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승용차는 지나가기조차 힘든 산길 옆에 넓은 감자밭, 무밭이 있다. 이미 수확이 끝난 무밭에는 버린 무청들, 버려진 무들만 곳곳에 떨어져 있고 아직 수확중인 감자 밭에는 땅속농작물을 전문적으로 수확하는 기계가 돌아가고 있다. 작년에는 아마도 동남아계로 추정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와서 수확을 하고 있었는데, 올해에는 주로 할머니들로 이루어진 노인노동자들이 기계가 꺼내어놓은 감자에서 흙을 털어내고 알들만 주워담고 있다. 어릴 적 외가에서 가위로 고추를 자르고 깻잎을 뜯어내던 경험 정도는 이제 오늘날의 기계화된 농업 앞에서 감히 농업이라고 부르기조차 어려워졌다. 황량한 풍경에서 노인노동자들이 돌아다니고, 매끈하게 검은 얼굴의 남성 운전자들이 몇 톤짜리 트럭을 몰고 들어와 감자를 가득 싣고 오간다. 좀 더 깊은 산 속 계곡에는 바위와 콘크리트로 하방댐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길을 지나면서 모터 소리가 들리는 걸 보고 어디선가 벌초를 위해 예초기를 돌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실제로 작년엔 그랬다), 알고 보니 아래 경사면에서 나무들을 베어내는 전기톱의 소리였다. 그곳에서도 5-60대로 보이는 나이든 남녀노동자들이 농사지을 때 입을 법한 작업복에 모자를 쓰고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댐 앞에서 말라붙은 물의 유속은 느려졌고 그 직전의 상류에서는 검은 이끼이 가득했다. 어디서부터인가 콘크리트로 직강화된 하천과 상류에서 내려온 자연하천의 경계는 모호해졌지만, 어쨌든 손을 씻을 수 있는 물과 그렇지 않은 물의 차이는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손이 들어갔을지 셀 수도 없는 식사자리도 몸의 욱신거림을 경감시켜줄 수는 없었다(나는 한 번은 위를 위해 죽을 먹고, 다른 한 번은 유혹에 굴복했다). 결국엔 언제나처럼 잠, 잠이 제일 중요하다. 아직 붓기가 남아있는 손도, 시큰거리는 전완근도 하루 이틀 푹 자고 나면 이틀 간의 기억을 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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