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28일, 추석 일기
Comment 2015. 9. 28. 23:24추석 일정을 마치고 올라왔다. 명절 집에서는 지적으로 집중하기가 어렵다. 영화를 보는 것이 상대적으로 최선의 선택이 되는 것 같다.
추석 당일 성묘를 마치고 <부당거래>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보았다. 후자는 깔끔하고 귀여운 소품 가족영화고(이 영화의 결말은 여전히 부자의 자선과 뜻밖의 아이디어에 의한 사업적 성공이라는, 전자본주의적 및 자본주의적 해결책에 기댄다) 전자는...<베테랑>을 보기 전에 봐두고 싶었는데 만족스러웠다. <짝패>는 분명 색채감이 돋보이는 영화지만 발차기의 회전에 의존하는 액션신의 반복이 다소 지루한 감이 있었는데, <부당거래>는 훨씬 느와르 또는 범죄영화에 가까워졌고, 이 영화 역시 2010년대 이후로 한국대중영화에서 일반화된 '쉴 틈 없는' 편집에 힘입고 있다. 마지막에 황정민과 마동석의 액션신을 몰아넣어주긴 하지만, 실제로 황정민과 류승범은 액션연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은 공이 들어간 건 히트hit 장면으로, 음모물과 스릴러, 조직범죄물이 교차한다는 점에서 <부당거래>와 가장 가까운 한국영화는 아마도 <신세계>일지도 모른다(지금 찾아보니 <부당거래>의 시나리오 작가가 <신세계>를 감독했다); 후자가 명백히 인공적인 세계에서 인물들의 심리묘사에 좀 더 집중했다면, 전자는 경찰-검찰-언론-자본의 복잡한 유착관계를 배경으로 삼는다. <부당거래>는 <짝패>에서부터 이어져 온 '사회비판적' 테이스트를 소화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음모plotting 자체의 쾌가 커져버리면서 전작의 디테일한 사회적 갈등이 축소되고 범죄물의 전형적인 논리로 들어간다.
밤부터 투고예정인 수정고를 다시 손보기 시작해서 새벽 2시에 마쳤다. 본론은 거의 문장을 가다듬었고, 서론은 각주와 본문을 고쳤다. 결론에서 한 문단을 새로 쓰다시피하면서 마지막 논지를 바꾸었는데, 전의 (논문으로서) 안전하지만 그닥 만족스럽지 않은 대신 내 해석이 강하게 들어가 있지만 모험적인 결론을 채택했다. 텍스트의 close-reading은 특별히 바꿀 부분이 없지만, 그걸 맥락화하는 작업에서...계속 공부가 누적될수록 더 많은 것들을 더 복잡하게 이야기하도록 이끌린다. 18세기-19세기 영국소설의 도덕성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는 아마 박사논문을 쓸 때까지도 계속 의문으로 남을 것 같다.
칠성에 갔고 할머니를 보았다. 봉투를 확인해보니 약을 제대로 드시지 않았다. 벽에 걸린 커다란 달력을 떼어와 매일매일의 날짜가 적힌 숫자에 그날치 약을 테이프로 붙여놓았다. 마음이 편치 않다. 조금씩 말길이 어그러지고 같은 궤도를 빙빙 돌기 시작하는 게 느껴진다. 손을 붙잡고 마당에 나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복무 중일 때 휴가 나와서 한 컷을 같이 찍고...거의 2년 만이다). 1년에 겨우 두어번 뵙는 거, 뵐 수 있을 때 가능한 많은 걸 기록해두고 싶다. 마을은 벌써 시간의 바퀴가 지나간 자욱으로 가득한데, 바퀴는 지나갔던 곳을 한번 더 지나가기 때문에 매 순간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우리는 삶을 스틸컷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한다. 인간이 어느 순간 삶의 인식으로부터 시간성의 바퀴가 이탈해 빠져나간, 그래서 헛도는 수레 위에 앉아 여러 시간이 뒤섞인 단 한 순간을 계속해서 살아가나는 시점에 도달하게 될 때, 누군가의 기록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고등학생 때 '친구들'에게 다른 누군가를 때리라는 명령을 받던 아이가 자신보다 약해보이는 사람 앞에서 자연스럽게 손이 올라가는 것, 경멸의 표현으로서 "장애인"이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가 자신의 앞에 있는 다른 이에게 조용히 그 단어를 똑같이 읊조리는 걸 보면 머리가 너무 복잡해진다.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모를 거다. 우리는 이 아이와 같이 살 수 있을까? 솔직히 현재로서는 자신이 없다. 다듬어지지 않은--어쩌면 다듬어지지 않을--성정 및 오랜 기간 누적되어온 상처로부터 기인한 예민함과 우리 자신의 무능함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토니 주트Tony Judt의 <포스트워: 1945~2005>_Postwar: A History of Europe Since 1945_를 연휴용 책으로 붙잡고 읽기 시작했다(1/4 정도 읽었다...연휴 중에는 국역본 1권 밖에 못 읽을 것 같다). 역사가란 그 당시에도 해결책이 없었고 아마도 앞으로도 해결책을 찾지 못할 세계의 기록들을 최선을 다해서 대면하는 직업일까? 내가 이 순간 역사가에게 공감한다면, 이는 분명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없는, 단지 언젠가는 반드시 다가올 일과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 앞에서 단지 키보드를 두드려 기록하는 일 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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