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일 일기.

Comment 2015. 7. 11. 05:20

1. 요즘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지나치게 좁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슴 한 구석에는 분명히 누군가의 소모품으로서 좁은 틀 안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다. 공부를 시작한지 5년을 넘겼고 이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 그러나 지금 이 길이 가리키고 있는 미래가 내가 원하는 만큼 크고 넓은 세계인지에 대해서는 점차 자신이 없어진다. 대학은 연구자들을 빠른 속도로 소모품으로 바꾸어버리고 있다.




2. 6월 하순에 정부에서 내놓은 "인문계 전공자 취업촉진 방안" 문건을 죽 읽어보았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비 이공계 학생들(이 보고서는 인문, 사회, 교육, 예체능의 광범위한 전공들을 "인문계"라 부른다)의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상대적으로 취직이 될 것 같은 일을 시켜야 하고 그러니까 대학에서부터 비 이공계 학생들에게 이공계열 기술들을 가르치라는 거다, 기존의 인문사회 전공은 융합전공으로 바꾸고. 쉽게 풀어보면 대학생을 전면적으로 이공계화 한다고 할 수 있겠다. 대충 보면 좋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 정책의 핵심은 대학을 본격적으로 기업의 인력공급처로 바꾸겠다는 데 있다. 실제로 "대학의 근본적 변화 유도"라는 말이 이 정책의 정신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인적 자본'들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가 직접 대학을 재조직하는 매우 강력한 신자유주의적 교육관이 여기에 투사되어 있다.


 이 상황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 역사적인 시선을 취할 필요가 있다. 90년대까지 한국의 대학은 한편으로 정부 및 기업자본을 위한 인적자본을 공급하는 공장이자 다른 한편으로 "민중"으로 응축되는 시민사회적 담론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장소로 기능했다; "지식인"과 같은 개념은 대학 및 대학에서 배출한 사람들이 사회적 담론장을 만들고 작동시킨다는 전제조건 하에서만 가능했다.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인문학/대학 위기론은 한국의 시민사회가 정치적 주체를 생성하는 기능을 상실하면서 후자의 기능 또한 필연적으로 상실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가장 우스꽝스러운 비극은 인문학 위기론의 당사자들이 시민사회와 학문의 관계를 거의 건드리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한국의 정치/시민사회 영역이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빠르게 재코드화되면서 대학의 두 기능에서 전자가 압도적으로 강력해졌다. "교육은 돈이다"라는 말이 'CEO로서의 총장'과 뒤얽혀 널리 유포된 게 이 때부터다(물론 이 테제는 돈이 행정적으로 제대로 조직화되지 못할 경우 엉뚱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망각했기에 그다지 진실에 부합하지 않았다).


 교양교육과 인문사회 전공은 한국사회에 시민사회적 지식을 공급하는 사실상 마지막 보루였다는 점에서 비 이공계의 이공계화는 비판적 지식/사회와 (사실상 한국에서 따로 떨어져본 적이 없던) 정부/자본 사이에 놓여있는 대학을 완전히 후자로 끌어가기 위한 우파 정부의 마지막 못질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이공계 전공자들이 사실상 비판적으로 정치/사회/문화적 규범에 접근할 수 있는 시민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당연하지만 우파 교육부에서 시민교육의 문제는 뉴라이트 교과서 보급을 제외하고는 거의 신경쓰지 않고 있다--, 대학의 이공계화는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시민교육을 지워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코딩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값싼 2류 노동자들을 양산하는 건 물론이다. 대학 바깥의 인문학 소비는, 설령 그것이 진지한 학자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할지라도, 학업적 능력의 축적에 필요한 훈련을 편안한 소비과정으로 대체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대학과 같은 역할을 대체하기 어렵다.


 "인문계 전공자 취업촉진 방안"을 비판하기는 어렵지 않다. 애초에 이공계 인력이 (적어도 단기간은) 부족하지도 않을 뿐더러--이공계 졸업자 실업률을 보라--인건비를 극도로 줄이는 착취적인 기업조직을 손대지 않는 상태에서 비 이공계를 이공계로 만들어봐야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하는 경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인력이 부족하며 인문계 친화적이라고 꼽는 영역이 "에너지진단사, 영상그래픽 디자이너, 친환경제품인증심사원, 관광통역안내원, 항공기 정비원 등"인 걸 보면 솔직히 억지논리에 가깝다. 그러나 나는 초점이 결국에는 대학의 역할 또는 기능이 무엇인가, 사회와 대학의 관계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 대학이 취업학원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렇다면 대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학문의 전당'이 왜 필요한가? 이 물음들에 대한 답변은 오늘날 전혀 자명하지 않다. 여기에 답변하지 못한다면 이 논쟁구도에서 절반은 지고 들어가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3. 최저임금이 6030원으로 결정된 걸 보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좌절과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걸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이 싸움에서 승자가 있었다는 사실 또한 짚어야 한다. 누가 이겼는가? 승자에 가장 가까운 진영을 꼽는다면 경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청년유니온이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최저임금 협상과정을 어느 정도 공개하는데 성공했고, 경총 및 전경련의 하수인들이 얼마나 '계급적으로' 사고하고 있는지--알바는 여행가고 용돈 쓸 돈 버는 일인데 왜 그런 일의 시급을 올려줘야 하냐는 정말로 '부르주아적인' 주장을 보라--드러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그 정보들은, 카드뉴스는 누구의 이름을 통해 알려졌는가? 450원 인상은 충분하지 않지만 앞자리를 5에서 6으로 바꾸었고 (설령 정부에서 이미 설정한 범위였다고는 해도) 청년유니온은 그 선봉에 있었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 '승리'의 가치는 지금 당장 보이는 정도보다 더 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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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년의 노래 2015.07.11 19:47 Modify/Delete Reply

    어느 교수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정확지는 않지만)

    "한국의 인문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도의 보수성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대학의 기업화 문제가 일반 시민들에게 있어 커다란 반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은, 대학이라는 기관의 본질을 '권위주의'라는 보수성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에 맞춰 대학이라는 보수적 기관은 그 본질에 맞게 인력양성소로 탈바꿈시키고 나머지에 해당하는 학문들은 '생활교양' 차원으로 습득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진보적 태도로 인식되기 때문이죠. 또한 대학이라는 공간도 결국 공적자금이 투여되는 곳인데 실증적으로 검증이 되지 않은, 투입 대비 산출이 확실치도 않은 학문을 위해 왜 우리가 돈을 내야 하느냐는 '합리적 경제인관'의 입장에서도 대학의 기업화가 마냥 비판적으로 보이지는 않거든요. 그들에게 있어 자본화, 자유화는 곧 '권위주의'의 해체에 해당하는 것이며 그 권위의 수혜를 받으며 살아온 인문학을 배척/배제하는 것이야말로 또한 '진보적 태도'라 믿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단순히 '대학의 순수성과 본질'을 내세우는 방식으로는 이 사태를 극복할 수 없으며 어떡해서든 시민사회와 결부시켜 헤쳐나가야 한다는 begray님의 주장에 저는 100% 동의합니다.

    • BeGray 2015.07.16 18:43 신고 Modify/Delete

      고등교육/고등지식의 창출과정이 사회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은 특히나 현대사회에서는 자명한 사실입니다만, 기분나쁠 정도로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은 (자칭)엘리트들을 포함한 모두가 그런 걸 체득할 정도의 교육을 받지 못한 거죠. 그건 일정 부분 '자기 할 일만 하며' 대학을 이끌어왔던 사람들의 책임이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교수들조차도 스스로의 존재의의를 설명하지 못하거나 신비주의로 일관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곤 합니다만, 그들의 무능력과 별개로 대학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내놓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필요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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